서정주의 자화상(自畵像)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 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시건설}, 7호, 1939.10)
이 시는 많은 시련과 피맺힌 노력으로 시인으로 인정받기까지 화자의 삶을 형상화한 시이다.
이 시는 시인이 자신의 살아온 모습인 자화상을 표현한 것이기에 시적 화자와 시인이 일치하는 시이다. 화자는 자신의 ‘애비’가 ‘종이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화자는 ‘종이었’던 아버지를 부정하고 자신을 ‘애미의 아들’이라고 한다. 화자가 아버지를 부정하는 것은 단순히 신분이 ‘종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릴 때 경험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부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임신을 하여 신 것이 먹고 싶어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고 아버지에게 말을 ‘하였으나 ……’ 아버지는 주인집에 일을 가서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아 어머니의 작은 소망도 들어주지 않은 사람이라고 인식한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작은 소망도 들어주지 못한 것은 종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의 시간적인 배경은 ‘대추꽃’을 통하여 알 수 있다. 화자가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에서 대추나무라고 하지 않고 ‘대추꽃’이라 한 것은 이 때가 ‘대추꽃’이 핀 5-6월이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 때는 농사일로 몹시 바쁜 때이다. 그리고 ‘풋살구가’ 열려 있는 때이다. ‘어매’가 해산달을 앞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한 바람이 쉽게 충족 될 수 있는 때임에도 불구하고 주인집에 가서 ‘밤이 깊어도 오지’ 못하는 종의 아들이 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 시에서 화자가 자신을 ‘손톱이 까만’ 아이라고 하고 ‘마당에는’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는 구절로 인하여 기존의 해석에는 화자가 몹시 궁색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본다. 그러나 ‘손톱이 까만’ 건 1920년대의 활달한 어린이가 지닌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생각된다.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는 앞에서 살폈듯이 시간적 배경을 말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화자는 자신을 아버지의 자식이 아니라 ‘에미의 아들’이라 생각하여 아버지를 부정한다. 그리고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하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어머니의 아들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정당화한다. ‘에미의 아들’이 되어 자신을 ‘외할아버지’의 핏줄에 연결한 것은 ‘갑오년(甲午年)’에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 ‘외할아버지’의 피를 받으므로 갑오년(甲午年)에 일어난 동학혁명정신과 가냘픈 연관이라도 맺고 싶어 한 마음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의 피를 부인하고 종의 자식이 되기를 거부하며 시인이 되려는 삶을 ‘스물세’ 살이 된 지금까지 사는 과정이 몹시 어려웠기에 화자는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라고 하였다. ‘바람’은 떠돔 또는 시련의 의미로 쓰였다. 자신의 마음으로는 아버지를 부정하고 있지만 현실에서 아버지가 종이라는 신분은 변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화자에게 ‘세상은’ 살아도 살아도 ‘부끄럽기만’ 한 곳이다.
종인 아버지의 자식인 화자가 자신이 종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반항적인 눈빛에서 ‘어떤 이는’ 화자의 ‘눈에서’ ‘죄인(罪人)’ 모습‘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어매의 자식’이라는 천륜을 거역하는 말을 듣고 ‘천치(天痴)를 읽고 가’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화자는 누가 자신을 비난해도 ‘어매의 자식’이라는 자신의 신념이 떳떳하다고 생각하기에 뉘우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화자는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고 말하는 것이다. 어쩌면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시인’이 되어 좋은 시를 쓰겠다는 말을 듣고 현실을 모르는 ‘천치(天痴)’라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드디어 화자가 시인으로 인정받는 ‘찬란히 틔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좋은 시를 쓰기 위한 노력은 계속된다. 이 날이 오기까지 화자는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어디서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온 힘을 다하여 시를 쓰며 ‘나는 왔다’. ‘이마 위에 얹힌’ 시를 쓰기 위한 노력으로 흘리는 이슬(땀)은 단순한 땀이 아니다. 화자는 목숨을 걸고 피를 짜는 노력을 하여 시를 썼다. 그렇기 때문에 화자의 땀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다. 이러한 피땀 흘리는 노력의 결과로 세상 사람들이 화자의 시를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찬란히 틔워 오는 어느 아침’이 온 것이다.
이 시가 시인이 자신의 살아온 삶을 표현한 것이라면 시의 내용이 시인의 실제 삶을 담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 시를 바르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시인의 실제적인 삶을 살펴 해석해야 한다. 이러한 역사적인 접근이 필요한 이유는 이 시를 내재적으로만 해석했을 때에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를 논리적으로 해석하기 어렵다. 이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인의 삶을 바탕으로 한 외재적 해석을 병행해야 한다.
시인은 자신의 ‘애비’가 ‘종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숨기고 싶은 사실을 밝힌 것은 이 시가 가지고 있는 미덕이다. 실제 시인의 아버지는 친일파 김성수의 마름 노릇을 했다고 한다. 마름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부유한 삶을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 시에서 화자가 자신을 ‘손톱이 까만’ 아이라고 하고 ‘마당에는’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는 구절을 근거로 해서 시인이 어렸을 때에 가난한 집의 아들이었을 것이라는 기존의 해석은 재고되어야 한다.
‘손톱이 까만’은 위에서 이야기 했듯이 화자가 밖에 나가 뛰어놀기를 좋아했음을 나타낸 것으로 보아야 한다.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는 화자의 기억에 ‘어매’가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고 한 때가 ‘대추꽃’이 핀 5-6월이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 때는 ‘풋살구가’ 열려 있는 때이다. ‘어매’가 해산달을 앞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한 바람을 충분히 이루어 줄 수 있었으나 이를 친일파의 마름 노릇을 하느라 ‘밤이 깊어도 오지’ 못한 것이 아니라 ‘오지 않’아 어매의 조그만 바람을 들어주지 않은 가정을 소홀이 하면서 친일을 한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나타내기 위한 소재로 보인다. 그래서 화자는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가 마당에 나와 ‘밤이 깊어도 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고 있음에도 자신은 집안의 ‘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서 ‘까만’ ‘손톱’을 바라보거나 때를 파내고 있었던 것이다.
화자의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자신을 아버지의 자식이라 하지 않고 ‘에미의 아들’이라 한 데서 확연히 들어난다. 주위 사람들이 화자를 보고‘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어도 ‘에미의 아들’이라 한 것은 친일파의 종 노릇하는 아버지에 대한 극단적인 부정인 것이다. 화자는 친일에 대한 반감을 나타내고 ‘에미의 아들’이 되어 자신을 ‘외할아버지’의 핏줄에 연결한 것은 일제 강점기 상황에서 민족정신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고 ‘갑오년(甲午年)’에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 ‘외할아버지’의 피를 받으므로 갑오년(甲午年)에 일어난 동학혁명정신과 가냘픈 연관이라도 맺고 싶어 한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렇게 반친일과 동학정신을 가진 화자는 시대의 세력에 거역하는 삶을 ‘스물세’ 살이 된 지금까지 살았다. 그 과정이 정신적으로 몹시 어려웠기에 화자는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라고 한 것으로 보인다. ‘바람’은 떠돔이 아니라 시련의 의미로 보인다. 친일파 집에서 민족정신을 생각하며 살았지만 친일하는 아버지로 인하여 ‘세상은’ 살아도 살아도 ‘부끄럽기만’ 했다.
이렇게 친일파의 종인 아버지의 자식인 화자가 일제 강점기를 부끄럽게 살아가는 것을 말없이 보는 민족지사인 ‘어떤 이는’ 화자의 ‘눈에서’ 민족을 배반한 친일파 자식인 ‘죄인(罪人)’ 모습‘을 읽고 가고’, 화자가 말하는 동학정신을 듣고 친일파인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세상의 흐름을 모르고 바보처럼 어리석게 살려고 하는 ‘천치(天痴)를 읽고 가’ 어느 쪽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화자는 누가 자신을 비난해도 떳떳한 정신적으로 떳떳하게 살았다고 생각하기에 뉘우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화자는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최근 신문기사에서도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동국대 국어교육과 윤재웅 교수는 "미당의 초기 생애에 관한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미당 학적부는 매우 소중한 문학적 자료가 될 것"이라며 "조선어로 시를 썼다는 죄목으로 44년 4월부터 석 달간 구속됐던 일을 밝히는 증거를 찾다가 우연히 학적부를 발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중앙일보 2006년 11월 4일자 기사)’
서정주가 친일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친일을 한 것은 일제 말엽이라는 점을 생각하고 위의 기사를 참고로 하면 일제에 협력하기 전까지는 나름대로 민족주의를 지닌 시인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23살에 쓴 이 시에는 시인이 지닌 사상이 비교적 솔직하게 담겨 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서정주가 민족정신이 전혀 없이 친일한 시인으로만 해석하는 기존의 관점은 다시 한 번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20061106월후0914 어둠 낮엔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