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Henri
Bergson
par
Vladimir Jankélévitch (1903-1985)
[속표지]
Les Grands Penseurs
collection dirigée par P.-M Schuhl
Henri
Bergson
par
Vladimir Jankélévitch
Presses Universitaire de France
108, Boulevard Saint-Germain, Paris
1959
[다음쪽]
Dépot Légal
1re édition .. .. .. 4e trimestre 1959
Tous Droits
de traduction de repoduction et d'adaptation
réservés pour tous pays
ⓒ 1959, Presses Universitaire de France
La gravure qui illustre la couverture s'inspire du frontispice de l'Istuauratio magna(1620): ce frontispice représentait un navire franchissant les colonnes d'Hercule, et cinglant vers des horizons nouveaux
[차례] 300
서문 Avant-Propre 1
제1장 유기적 총체성 Totalités organiques 5
제2장 자유 Liberté 28
제3장 영혼과 신체 L'âme et le corpa 80
제4장 생명 La vie 132
제5장 영웅주의와 성성 L'héroïsme et la sainteté 182
제6장 개면들의 무와 정신의 충만 Le néant des concepts et le plein de l'esprit 200
제7장 단순성 La simplicité. Et de la joie 229
부록: 벩송과 유대주의 Appenice: Bergson et le judaïsme 255
영혼 전체와 더불어 Avec l'âme tout entière 286
참고문헌 Bibliographie
서문 Avant-Propre 1
현 저술은 벩송의 편지 한 편을 포함하는 1931년에 출판된 벩송(Bergson, 1931)의 전반적 개작이다. 이 책은 카톨릭 신부인 팔로리에스(Fortuné Palhoriès 1878-19??.)가 발간을 주도한 “위대한 철학자들 총서”(la collection `Les grands philosophes`)에 속해 있었다. 현 이 책의 본문에는 출판일자 이래로 출판되었으나, 대중들이 잘 찾을 수 없거나 또는 대중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여러 시론들과 소품들을 보탰다. 즉 1933년에 출판된 도덕과 형이상학 논집(Revue de métaphysique et de morale)에 실린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에 관한 한 장(章), 1941년에 앙리 벩송을 추념하여 베겡(Albert Béguin, 1901-1957)과 테브나즈(Pierre Thévenaz, 1913-1955)가 헌정했던 자료 모음집 속에 쓰여진 단순성에 관한 시론(이 시론은 현 저술에서는 그 당시에 출판에 포함되지 않은 내용도 들어있다), 명증함 논집(Evidences)와 도덕과 형이상학 논집에 1951년에 나타난 「환희」와 「벩송의 낙관주의」에 관한 두 논문들, 마지막으로, 유대계 철학과 문학의 혼합들(Mélanges de philosophie et de littérature juives) 에다가 1957년에 부록으로 실은 「벩송과 유대주의(Bergson et le judaïsme)」에 관한 연구 등이 있다. 우리는 이 원문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허용해준 도덕과 형이상학 논집과 명증함 지의 편집장들에게, 라바꼰니에(La Baconnière) 출판사 편집장에게, “헤브류 연구 국제 연구소”(Institut international d'Etudes hébraiques)의 원장에게, 보다 더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1931년의 벩송은 첫줄에서 마지막 줄까지 다시 쓰는데 몇 날이 요구될 것인데, 우리는 미래에 필요로 할 모든 시간을 훨씬 더 나중에 광범위한 작업에 헌신할 생각이다. 우리는, 이 책의 재편집에서는 새로운 세 개의 장들을 완전히 수정 증보로 되어있으며, 1959년에 벩송의 탄생 100주년을 추모하는 방식으로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고려하였다.
[이제] 시간 안에서 진화하고 변화하는 한 철학자를 읽을 방식만이 남았다. 그것은 바로 그의 작품을 편년체의 순서를 따라가는 것이며, 그 출발점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이 순서는 확실하게 증가하는 난점의 순서에 항상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1896년 나온 물질과 기억은 1900년의 웃음보다 훨씬 더 공들여야 깔끔하게 읽히는 책이다. 그러나 벩송주의는 기계적인 제작 작업도 아니고, 몇몇 위대한 “체계들”의 방식에 따라 완성되거나 돌 하나씩 쌓아올려 건축한 건축물도 아니다. 벩송주의 전체는, 새롭게 반짝이는 서광아래서, 그 철학자의 계속된 저술들 속에서, 그리고 마치 플로티노스(Plotin, Πλωτῖνος, 204-270)의 유출설에서 위격들(hypostases, 위상들)이 각 위격을 그리는 것처럼, 그려지는 것이다. 게다가 동일한 방식으로 라이프니츠(Gottfrid Leibniz, 1646-1716)는 자신의 저술들의 각각에서 자신의 총체적 철학을 제시했었다. 모나드들은 각각이 각각의 개별적 관점에서 전 우주를 표현하지 않는가? 전 우주는 단자론의 물방울 속에서도 스스로를 비추지 않는가? 왜냐하면 소우주는 우주의 작은 모형이기 때문이다. 생성 안(en devenir)에 있는 또 다른 철학자인 셸링(Friedrich Schelling, 1775-1854)이 쓰기를 “내가 고려하는 것은 항상 총체성이다”(계시의 철학(Philosophie der Offenbarung: Philosophie de la Révélation)(1831 강의, 1854 출판), 제2강에서)고 하고, 그리고 이 총체성을 그는 잠재성(Potenz)라고 불렀다. 벩송은 자신의 저술들의 각각을 다른 모든 저술들을 잊고서, 심지어는 이들 각각의 연속으로부터 결과로서 될 수 있는 불일치(비정합성)도 근심하지 않고서 썼다. 벩송은 각 문제를 마치 그 문제가 세상에 유일한 문제인 것처럼 깊이 숙고했고, 다른 선들과 독립적으로 “사실들의 선”을 각각 끝까지 따라갔다. 마찬가지로 생명 도약도 분화하는 진화의 선들을 따라가는데, 주석자들에게 우발적 모순들을 해결하도록, 그리고 다양한 분화의 다발을 조화시키도록 것을 책임지게 하는 것 같다. 이 화해는 틀림없이 무한하게 작업하는 가운데 이루어질 것인데, 논리적 정합성에서가 아니라 주선율들에 대한 음악적 인접성처럼 또한 도약의 연속성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벩송의 순서(l'ordre, 질서)는 체계 제작자들의 끈기 있는 구성작업보다[칸트처럼] 고정된 생각으로부터 이탈(la digression obsessionnelle)하는 순서(l'ordre, 방식)에 닮았다. 벩송의 직관은 항상 총체적이고 불가분적이며 또한 단순하고 전체적인데, 유일한 유기체적 충력으로부터 증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에서 벩송주의는 창조적 진화의 400쪽에서 만큼이나 「가능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Le possible et le réel, 1920)」(1930 개작)의 논문 18쪽으로도 충분하다.
영속적인 생성 안에 있는(en perpétuel devenir) 이 위대한 천재는 영향력이 매우 컸다. 벩송은 우리의 벩송(1930)에 대해 1930년 초에 알고 있었고, 우리의 벩송(1930)을 읽고 난 뒤에, 벩송주의의 지성에서 중심이 되는 「가능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의 논문이 1930년 11월 스웨덴에서 나타난다. 우리는 이 책에서, 벩송이 1920년 옥스퍼드 대학의 모임의 연설에서 그자신이 이미 예감했던 것으로, “회고성의 착각”의 중요성을 제시했으며, “전 미래(futur antérieur)”의 가능성에 대해 말했고, 무(無)의 비판에 대해 중심적인 특성을 알렸다. 따라서 벩송은 조금씩 천재적 독창성에 대해, 즉 자신의 고유한 직관들의 창조적 풍부성에 대해 의식하고 있었다. 직관이 생겨난 것은 1906년에 “무의 관념”에 관한 철학논집(Revue philosophique)의 한 논문에서 그리고 1907년에 “무와 무질서”에 할애한 창조적 진화의 여러 쪽들에서 이다. 1920년에 직관은 처음으로 의식 그자체로 강조했다. 1930년 말에 그리고 1934년 사유와 운동자에서, 결국 벩송은 해석자들의 영향을 받아서 운동을 재구성했다. 이 운동 그를 기원적 일별로부터 변화와 창조적 충만으로 옮겨 놓았다. 모든 의욕과 원인 작용(causation)처럼 벩송의 진화[과정]에서 과거를 향한 현재의 소급(rétroaction)이 있으며, 그리고 차후에 생성의 이상적 재구축(reconstruction)이 있다. 왜냐하면 셸링이 말한 것처럼, 목적은 시초[태초]에 관한 증거를 지탱해주기 때문이다.
마지막 음악 소절에 의해 시작하면서 그리고 하류에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거꾸로 연주되는 멜로디는 수많은 목소리의 혼합이 될 뿐일 것이다. 이것은 무매개적인 자료들에 관한 시론이 우리에게 이해해주게 하는 무엇이다. 어떻게 살아있는 철학이, 그리고 생성의 차원에서 환원할 수 없을 정도로 전개되는 철학이, 만일 사람들이 마지막에 의해서 또는 중간에서 시작한다면, 도대체 이해될 수 있을 것인가? 시간적 순서는 소나타의 임시부호가 아니라 오히려 소나타의 본질이다. 시간적 순서와 순간들의 연속은 벩송주의에서는 격식에 맞는 세부사항들이 아니다. 이것들은 벩송주의 그 자체이며, 다른 철학들처럼 되어 있지 않은 한 철학에 대한 벩송의 정체성(l'ipséité, 자체성)이다. 앙리 벩송의 벩송주의를 이해하는데 요구되는 첫째 조건은 그것을 시간에 반대로 거슬러서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벩송주의는 미래화 작업(le futurition)의 의미 자체 속에서, 다시 말하면 옳은 방향으로(à l'endroit) 사유되기를 바란다.
N. B. -----------
1941년부터, 벩송의 저술들은 앞선 편집들의 쪽수들을 다시 매기지 않고서 새로운 인쇄소에서 다시 인쇄되었다. 이 편집들이 몇 경우에서[MR. PM] 반세기보다 더 오래 이어져서 계속되었기 때문에, 또 그 쪽수 매김은 거의 고전이 되었다 할지라도, 이 인용문들에서 쪽수 찾기에 약간의 혼잡이 있을 수 있다[왜냐하면, 예를 DI, MM, EC의 경우는 판본에 따라 쪽수 차이가 있다]. 그래서 유일한 해결책은 이 다음에 모든 참조들을 새판본에 맞게 하나하나 수정하는 것이 될 것이다. 길고도 지난한 작업이 실현될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이 책에서] 우리의 편의를 따랐다. 즉 의식의 무매개적 자료들에 관한 시론(Essai sur les données imédiates de la conscience, 1889)(DI), 물질과 기억(Matière et mémoire: Essai sur la relation du corps à l'esprit, 1896)(MM), 창조적 진화(L'évolution créatrice, 1907)(EC)은 원판본(벩송이 살아있을 때, 인쇄되고 검토된 것)에 따라서 인용했으며, 웃음(Le Rire: Essai sur la signification du comique, 1900)(RI), 정신적 에너지(L'énergie spirituelle, 1919)(ES),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Les deux sources de la morale et de la religion, 1932)(MR)는 새로운 판본에 따라서 인용되었다.
단 한권으로 된 벩송의 전집은 앙리 구이에(Henri Gouhier, 1898–1994)의 서문과 앙드레 로비네(André Robinet, 1922-)의 검토로 1959년에 나왔다.
***
[# 참조: 우리는 이 책의 번역에서는, 벩송의 주저 8권은 프랑스대학출판사(PUF)의 카드리지 판본에서 쪽수, 그리고 전집의 경우에 1959년판이 아니라 1970년 증보판 전집(Oe)과 1972년판 잡문집(Me)을 인용 쪽수로, 가능한 한 병기,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쟝켈레비치의 인용 쪽수와 달리, [DI 126, Oe 110.]처럼 로 표기 할 것이다. 내용에서 판본 상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경우에는 주에서 첨가할 것이다. (49LKD)]
책쟝켈레1959앙리베16L01.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