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포로 오세요 - 24 사천8경 그 3. 남일대 코끼리 바위 남일대(南一臺)! 남쪽 바닷가에서 제일 절경이라고 신라시대 고운 최치원 선생이 명명하셨다고 합니다. 부산 해운대도 그분 작명이라지요. 성골진골도 아닌 6두품 출신의 비운의 천재! 뜻을 펴지 못하는 신분의 한계. 서러움이 느껴집니다. 그 서러움을 국토 곳곳을 방랑하면서 풀었겠지요. 시대도 천재를 만나야 하지만 천재는 더욱 시대를 잘 만나야 합니다. 남일대는 남일대 해수욕장과 남일대 코끼리 바위 그 주변을 말합니다. 조개껍질이 부서져 이루어진 반짝반짝 빛이 나던 모래사장과 구녕(구멍의 사투리)바위라 했던 코끼리바위가 기억에 선합니다. 남일대에 붙어있는 마을이 모래실입니다. 제가 다닌 초등학교 학구입니다. 옆동네 진널전망대와 매향비가 있는 신향마을도 같은 학구입니다. 그 동네 제 또래는 초등학교 동기라는 이야기입니다. 조금 사리 물때 한물 두물 등 바다와 관련된 용어들을 그 친구들한테서 듣고 배웠지만 지금도 잘 모릅니다. 그 친구들은 여전히 바다와 관련된 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전후 베이비붐세대라 하지요. 시골 우리 마을만 해도 동기가 20명 넘어요. 모래실 신향에는 30명도 더 될겁니다. 참 많이도 낳았습니다. 선주집 아이, 방아간집 아이 등 몇몇 빼면 다 힘들게 살았습니다. 가난이 덕지덕지 묻어났습니다. 우리 마을은 농산촌지역이라 보리밥이라도 먹었지만 농토가 거의 없는 바닷가쪽 마을 아이들은 그러하지 못했을 겁니다. 중학교 진학도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우리 마을에서는 방아간집 딸이 유일하게 주간 중학교 들어갔고 더러는 야간 중학교에 갔습니다. 사내아이들은 그래도 조금 낫고요. 세월이 흘러 초등학교 동기회를 두달마다 하는데 하는 짓이 배운넘이나 안배운넘이나 똑 같습니다. 오히려 부모 생각하는 쪽은 덜 배운 넘들입니다. 교육 무용론이 여기서도 불거집니다. ㅋㅋ 초등학교 4학년 땐가 5학년 땐가 도덕교과서 내용 중 어느 한 부분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웃사랑이라는 덕목을 가르치는 내용인데 고깃국에 국수를 말아 이웃과 나눠먹었다는 내용입니다. 왜 이해가 되지 않았을까요? ㅎㅎ 그 당시 제 사고의 범주에는 고깃국 하면 생선국이지 소 등 육고기 국이 없었던 것 입니다. 비린 생선국에 어떻게 국수를 말아먹지? 경험이 사고를 지배하는 겁니다. 참 못 살았던 옛날 이야기입니다. 근데요, 요즘에는 생선매운탕에 라면사리 넣어 먹더라고요. 세상 참. 남일대 이야기 하다 또 삼천포로 빠졌습니다. ㅋㅋ 남녘 제일의 절경 남일대. 제 어릴 때의 기억은요. 푸른 언덕이 은빛 모래밭을 병풍처럼 감싸고 은빛 모래밭은 반원을 그리며 푸른 바다를 둘러쌌습니다. 그 반원을 지나 갯바위를 건너서 파도를 맞으며 늠름하게 서있는 구녕바위! 저는 이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림을 잘 그리면 그려낼 수 있으련만... 지금도 그 바위는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새로운 이름표를 달고서요. 조개들이 잘게 부서져 이루어진 고운 모래실 백사장을 품고 있는 남일대 해수욕장. 그 해수욕장 끄트머리에 자리한 코끼리 형상의 바위. 마치 코끼리가 물을 마시는 듯 한 모양이라 하여 남일대 코끼리 바위라고 부르고 있답니다. 남일대해수욕장 많이 아담합니다. 제 기억의 푸른 언덕은 관광호텔로 변했고, 생뚱맞은 풍력발전기 모형도 서 있습니다. 물이 많이 빠지면 남일대 코끼리바위는 바로 근처까지 접근이 가능합니다. 바로 옆에서 깎아지른 듯 한 코끼리 바위의 위용을 볼 수 있습니다.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는 파도소리도 덤으로 듣고 오십시오. 여름도 좋지만 겨울에 가도 좋습니다. 그리고요. 예전에 구녕바위 가는 길 위 언덕에 삼천포 제일 갑부 별장이 있었습니다. 소나무 사이에 바다를 바라보며 언덕 위의 서 있는 양옥! 부러움을 넘어 경이로움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