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호가리(2)
백년골로 이사 간 지도 어느덧 몇 해가 지나갔다. 그동안에 나는 인천으로 나와 도시 생활을 했고 백년골에는 부모님과 동생이 살았다. 동생도 어느덧 중학교에 들어가 하루 20여 리의 멀리 있는 길을 매일같이 걸어서 통학하였다. 동생과 같은 나이의 작은아버님댁 사촌 동생도 우연히 집안 사정으로 인해 백년골 우리 집에서 동생과 함께 중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타 동네에서 이사 온 동생에게 동네 아이들이 가끔 놀려댔다. 우리는 돈호가리까지 헤엄쳐 하루에도 몇 번씩 가는데, 그것은 아주 식은 죽 먹기이다. 너희들은 아마 갈 수 없지? 살살 약을 올리는 바람에 동생들은 은근히 기가 죽어지냈다. 그들은 시간 날 때마다 돈호거리를 바라보며 우리도 언젠가는 반드시 저곳까지 헤엄쳐 갈 거야 두 번 세 번 결심을 해보지만, 막상 물이 밀려와 방죽까지 찰랑찰랑 차면 그 검푸른 바닷물이 석축에 부딪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겁이 나서 번번이 기가 죽곤 하였다.
사실 방죽에서 돈호가리(무인도)까지는 약 500~800m 정도로 중학생 정도라면 헤엄쳐 갔다 온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느 날,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네 아이들의 말이 문득 생각나자 그들은 대단한 결심을 하게 되었다. 오늘은 꼭 가고 말 거야!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내려놓고 방죽으로 나갔다.
밀물 정점이 가까웠는지 바닷물이 석축 꼭대기까지 찰랑찰랑 밀려와 있었다. 석축을 향해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달려드는 파도가 섬뜩하였지만, 언젠가 한 번은 넘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 동생들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더구나 잊힐 만하면 치근덕치근덕 놀려대는 동네 아이들 생각에 반드시 건넌 다음 겁쟁이가 아니라는 것을 보란 듯이 동네 아이들에게 말해주자!…
무언의 결심을 주고받은 둘은 옷을 벗어 차곡차곡 개켜 석축 위에 가지런히 놓고 그 위에 신발을 벗어 올려놓은 다음에 돌을 하나씩 꾹 눌러 놓았다. 그리고 달랑 팬티 하나 걸치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검푸른 파도를 헤치며 돈호가리 쪽으로 헤엄쳐 나갔다. 의외로 파도가 높았고 특히 수온이 떨어져 섬뜩함이 온몸에 밀려왔지만 용감하게 헤엄을 쳤다. 그런데 생각보다는 돈호가리가 멀었다. 한참을 갔는데도 돈 호가라는 멀게만 보였다. 똑바로 간다고 열심히 온몸을 휘저었지만, 몸은 밀물의 조수 흐름에 자꾸만 옆으로 밀려가고 있었다.
사투를 벌이며 중간을 넘어설 때쯤 문제가 생겼다. 체력이 약한 동생이 먼저 힘이 빠져 허우적거렸다. 힘이 빠지니 벌렁 드러누워 송장헤엄(배영)을 쳤는데, 조류에 점점 밀려가기 시작하였다. 점점 힘이 빠지자 귀에서는 그저윙-하는 소리가 들리고 절망적인 생각과 함께 갑자기 부모님과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랑하는 내 가족들…
조금만 더 힘을 내자, 정신을 차려야 해! 설상가상, 어둠이 몰려왔다. 두려움에 대한 공포에서 오히려 초연해졌다. 다행히 물살은 썰물로 바뀌어 서서히 물이 빠지고 힘 안 들이고 자연스럽게 돈호가리쪽으로 밀려가고 있었으니…. 이제 남은 거리는 어림잡아 20m 정도였다. 혼비백산 초주검 상태에서도 마음만은 그렇게 다잡고 있었다. 조금만 기운을 내야지…
천신만고 끝에 둘의 몸은 돌섬에 도착하였다. 굴 껍데기가 더덕더덕 붙어 있는 무인도‘돈호가리!’기진맥진하여 돈호가리 꼭대기에 웩! 왝! 바닷물을 토하면서 초주검의 상태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금세라도 쏟아질 듯한 별빛만 초롱초롱하였다.
아! 한순간의 꿈이었구나…우리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추위가 몰려왔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턱까지 덜덜 떨린다. 물이 빠지고는 있지만 그래도 한두 시간은 기다려야 걸어서 나갈 수가 있었다. 그렇게 초연히 추위와 허기, 죽음의 공포와 싸우고 있는 그 시간에…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책가방만 내려놓고 나가서 저녁때가 다 되어도 돌아오지 않아 동네 아이들에게 물어보아도 모른다고 하니, 얼마나 걱정이 되었을까? 부모님과 온 동네 사람들이 등불을 켜 들고, 손전등을 동원하여 아이들을 찾아 나섰다. 사람들은 고래고래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번갈아 부르며 한참을 찾던 중 동네 아이 하나가 헐레벌떡 달려오면서 찾았어요!하고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닌가! 우르르 그 아이를 따라 방죽 끝으로 몰려간 곳에는 두 아이의 옷과 신발이 가지런히 석축 위에 놓여있었다.
아이고!…부모님의 통곡 소리! 일순간 동네 분위기는 초상집으로 바뀌었다.
이를 어쩌나, 이를 어쩌지? 어머니의 울음소리와 왁자지껄 동네 사람들의 걱정 소리가 조용하던 바닷가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말았다.
돈호가리에서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린 아이들이 동네 쪽을 바라보니 방죽 끝에 여러 개의 불빛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아! 이제 살았구나. 안도의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모님에게 야단맞을 생각에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들은 별빛도 찬란한, 그 시린 밤을 추위와 배고픔에 지쳐 터덜터덜 갯벌을 따라 동네 어귀로 돌아왔다.
필시 사고를 당했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이 돌아온 집에서는 기쁨과 미움이 교차한 환희의 눈물바다가 이루어졌고, 동네 사람들도 모두 기뻐해 주었다. 두 동생의 추억은 그렇게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동네 아이들이 단 한 명도 돈호가리에 헤엄쳐 간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안 것은 그 사건이 일어난 지 불과 얼마 후의 일이었다. 비록 죽음의 끝까지 갔다 오긴 했어도 당당하게 돈호가리를 헤엄쳐 갔다는 자부심에 어깨를 으쓱이던 두 동생이 동네에서는 유일하게 돈호가리에 헤엄쳐 간 첫 번째 인물이 되었다.
동생들이 고등학교를 고향에서 졸업한 얼마 후에 우리 집은 완전히 그곳을 떴다. 어쩌면 어린 시절의 작은 꿈이 끈적끈적하게 묻어 있던 아주 소중한 곳이었는데…
작년 여름휴가 때에 나는 삼십여 년 만에 내가 살던 백년골을 찾았다. 그러나 돈호가리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뛰놀던 모래장술도 없었고, 피보다 진한 해당화 꽃도 없었다. 씹을수록 달짝지근하던 해당화 열매를 따 먹고 캑캑거리던 바닷가 해당화 군락지도 보이지 않았다.
공항 개발에 밀려 모든 게 사라져버렸다. 인천 신공항 건설의 일환으로 공항 배후단지가 들어설 자리로 그곳은 모두 탈바꿈해 버렸다. 돈호가리가 있던 곳을 포함해서 앞바다는 모두 매립되어 육지로 바뀌었고 바다가 한눈에 바라보이던 예전에 우리가 살았던 집터는 오간데 없이 매립지와 같은 높이로 깎여 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사라져 버리고 말았지만, 예전에 내가 살았던 그리운 그 집의 집터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다녀보아도 간곳없이 사라져 버린 빈 집터에서 돈호가리쪽을 바라보니 확 트인 바다 대신 답답한 매립지만 보였다.
아!… 내 고향이 발전되어 간다는 사실보다는 개발로 인해 망가져 가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을 저미게 한다. 변화와 파괴야말로 새로운 세상으로 비약할 수 있는 첫걸음이라고 했던가?
그런데, 왜 하필 평화롭기 그지없던 내 고향이 그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야 한단 말인가?
아득히 먼 옛날의 추억만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