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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바새계경 제6권
22. 오계품(五戒品)
선생이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떠한 사람이 삼귀의를 얻고, 어떠한 사람이 삼귀의를 얻지 못하나이까?”
“선남자여, 만약 사람이 원인을 믿고 과보를 믿고 진리[諦]를 믿고 도를 얻음이 있음을 믿으면 이러한 사람은 삼귀의를 얻느니라.
만약 사람이 지극한 마음이면 믿음이 무너질 수 없으며, 삼보께 친근(親近)하고 좋은 벗의 가르침을 받으면 이와 같은 사람은 곧 삼귀의를 얻느니라.
우바새계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만약 능히 우바새계를 관하되,
‘무량한 공덕 과보가 있어서 능히 한량없는 폐악(弊惡)의 법을 부수는 것이다.
중생이 끝이 없고, 괴로움을 받음이 또한 그러한데,
얻기 어려운 사람의 몸을 비록 얻었으나 모든 근(根)을 갖추기가 어렵고,
비록 모든 근을 갖추었어도 신심을 얻기가 어려우며,
비록신심을 얻어도 좋은 벗을 만나기가 어렵고,
비록 좋은 벗을 만나도 자재함을 얻기가 어려우며,
비록 자재함을 얻더라도 모든 것은 덧없는 것이다.
내가 이제 악업을 지으면 악업으로 인하여 2세(世)에 몸과 마음의 악보(惡報)를 받으니,
이 인연으로 몸과 입과 뜻이 악한 것은 곧 나의 원수다.
설사 삼업의 악이 악한 과보를 얻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악은 역시 마땅히 짓지 않으리라.
이 3악업이 현재에 능히 폐악색(弊惡色) 등을 내고 죽을 때에 뉘우침을 내니,
이 인연으로 내가 이제 삼귀의와 8재법을 받고 멀리 일체의 악과 불선업(不善業)을 여읜다’고 관할지니라.
지혜로운 자는 마땅히 관찰하되,
‘계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세계(世戒)요,
두 번째는 제일의계(第一義戒)이다.
만약 삼보께 귀의하지 않고 계를 받으면 이를 세계라고 한다.
이 계는 견고하지 않아서 채색에 아교가 없는 것과 같으니,
그러므로 나는 먼저 삼보께 귀의한 연후에 계를 받으리라’고 할지니,
만약 종신토록 받거나, 혹은 1일 1야에 받을 것은 이른바 우바새계와 8계재법이니라.
대체로 세계는 먼저의 모든 악업을 파괴할 수 없으나,
삼귀계를 받으면 능히 이를 파괴하며, 비록 큰 죄를 짓더라도 계를 잃지 않나니, 왜냐하면 계의 힘 때문이다.
두 사람이 함께 공동으로 죄를 지었을 때, 한명은 계를 받았고, 다른 한명은 계를 받지 않았다면,
이미 계를 받은 자가 범한 것은 죄가 중하고,
계를 받지 않은 자가 범한 것은 죄가 가볍나니, 왜 그런가?
부처님 말씀을 훼손시켰기 때문이니라.
죄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성중(性重)이요,
두 번째는 차중(遮重)이니라.
이 두 가지 죄에 또 가볍고 무거움이 있으니,
혹 사람이 능히 중죄를 가볍게도 짓고, 가벼운 죄를 중하게도 짓느니라.
마치 앙굴마라(鴦掘魔羅)는 세계(世戒)를 받았고, 이라발룡(伊羅鉢龍)은 의계(義戒)를 받았는데,
앙굴마라는 성중죄(性重罪)를 지었어도 중죄가 되지 않았고,
이라발룡은 차제(遮制)를 범하였어도 중죄가 되었나니,
그러므로 사람이 중죄를 지어도 가벼울 수 있고, 가벼운 죄를 지어도 중할 수 있느니라.
그러므로 마땅히 계가 같다고 해서 과보도 같다고 하지 말지니라.
세계에도 불살(不殺)과 부도(不盜)가 있으며,
의계에도 역시 불살과 부도가 있어서,
불음주(不飮酒)에 이르기까지 역시 마찬가지이니라.
이러한 세계는 근본부정(根本不淨)ㆍ수이부정(受已不淨)ㆍ장엄부정(莊嚴不淨)ㆍ각관부정(覺觀不淨)ㆍ염심부정(念心不淨)ㆍ과보부정(果報不淨)이기 때문에 제일의계라고 이름하지 않고,
오직 세계라고 하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의계를 받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여, 후세에 중생의 몸의 키가 8장(丈)이고 수명은 8만 4천 세(歲)를 채우는데,
이때 계를 받는 것과, 또 지금의 악세(惡世)에 계를 받는, 이 두 과보가 같으니라.
왜냐하면 삼선근(善根)이 평등하기 때문이니라.
혹은 말하기를,
‘가히 목숨을 끊는 곳에서 계를 얻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렇지 않으니라.
왜냐하면 대체로 금계(禁戒)라는 것은 일체의 죽일 것과 죽이지 않을 것 가운데서 얻나니,
일체의 죽일 것과 죽이지 않을 것이 무량무변하며,
계의 과보도 또한 이와 같이 무량무변하니라.
선남자여, 온갖 보시 중에 무서움을 없애 주는 것이 제일이니,
그러므로 내가 설하는 5대시(大施)란 곧 이 5계이니라,
이와 같은 5계가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5포외(怖畏)를 여의게 하느니라.
이 5종의 보시는 쉽게 수행할 수 있고 자재무애(自在無碍)하면서 재물을 잃지 않느니라.
그리하여 무량무변의 복덕을 얻나니, 이 다섯 가지 보시를 여의고는 수다원의 과보와 내지 아누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없느니라.
선남자여, 만약 계를 받고나면,
이 사람은 모든 천상과 인간의 공경과 수호함이 되고 큰 이름을 얻으며,
비록 악한 상대를 만나더라도 근심과 괴로움이 없고,
중생이 친근히 하고 곁에 있으며 즐겁게 의지하느니라.
아나빈저(阿那邠坻) 장자의 아들은 비록 8천의 금정을 위하여 계를 받았어도 또한 한량없는 공덕 과보를 얻었나니라.
선남자여, 재물을 위하여 계를 받아도 오히려 이익을 얻거늘 하물며 지극한 마음으로 해탈을 위하는데 어찌 얻지 못하겠는가!
선남자여, 다섯 가지 선법이 있어서 둘러싸면 이 계가 항상 증장(增長)하는 것이 항하수와 같나니,
어떠한 것이 그 다섯인가?
첫 번째는 인자함이요,
두 번째는 가엾어 함이요,
세 번째는 기뻐함이요,
네 번째는 참는 것이요,
다섯 번째는 믿음이니라.
만약 사람이 능히 무거운 사견(邪見)을 부수고 마음에 의심이 없으면 정념(正念)을 갖추어 장엄이 청정하고 근본이 청정하며 나쁜 각관(覺觀)을 여의느니라.
선남자여, 만약 사람이 능히 다섯 가지 악한 일을 멀리하면 이것이 계를 받는 것이며 일체의 몸과 입과 뜻의 악함을 여의게 되느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5계를 떠나고도 생사를 벗어나 해탈한다’고 하면 이것은 옳지 않으니,
선남자여, 만약 사람이 생사의 큰 바다를 건너고자 한다면 응당 지극한 마음으로 5계를 받아 지킬지니라.
이 5계 중에서 네 가지는 후세에 무작계(無作戒)를 이루지만 오직 애욕만은 끊기 어렵기 때문에 이루지 못하나니, 이러한 인연으로 음욕에 얽히는지라, 응당 지극한 마음으로 방일함이 없도록 삼갈지니라.
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다시 무량한 아주 무거운 법이 있거늘 과거의 모든 부처님이 무슨 인연으로 그 모든 것에 대한 계율을 제정하지 않고 술에 대한 것만을 제정하셨는가?’라고 한다면,
선남자여, 음주(飮酒)로 인하여 참괴심이 무너지고, 삼악도에 두려움을 내지 않으니,
이 인연으로 능히 그 나머지 네 가지의 계도 받지 못하는지라,
그러므로 과거의 모든 부처님이 계율을 제정하여 술 마시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느니라.
또 어떤 사람이 말하길,
‘여래가 이미 술에 과실이 많다는 것을 말씀하셨다면 왜 5계의 처음에 두어서 말씀하지 않았는가?’ 한다면,
그 뜻은 그렇지 않으니, 왜 그런가?
이와 같은 술에 대한 계금(戒禁)을 차중(遮重)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라고 성중(性重)이 되지 않나니, 여래가 먼저 성중의 계를 제정하시고 뒤에 차중을 제정하였느니라.
선남자여, 여래가 먼저 백월(白月)ㆍ흑월(黑月) 중에 각각 3재(齋)가 있다고 말한 것은 외도의 것을 따른 것이니라.
모든 외도의 무리가 항상 이 날로써 모든 하늘에 공양하는데, 그러므로 여래도 삼재가 있음을 말한 것이니라.
선남자여, 창에 휘장을 치는데 휘장을 눌러야만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삼재의 법도 이와 같으니라.
중생이 만약 마음을 내서 받아 지키면 마침내 삼악도 중에 떨어지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누가 만약 보시할 때, 혹은 삼보께 공양할 때 혹은 좌선할 때, 혹은 선행을 닦을 때, 혹은 독경할 때, 부모께 공양할 때,
마땅히 먼저 법을 세우기를,
‘내가 만약 짓지 않으면 꼭 스스로 벌하리라’라고 한다면,
이 사람은 복덕이 밤낮으로 더하는 것이 항하의 흐름과 같으리라.
이와 같은 5계에는 다섯 가지의 과보가 있으니,
첫 번째는 무작과(無作果)요,
두 번째는 보과(報果)며,
세 번째는 여과(餘果)요,
네 번째는 작과(作果)며,
다섯 번째는 해탈과(解脫果)이니,
만약 5계를 갖추어 받아 지킨다면 이 사람은 이와 같은 5과를 얻느니라.
만약 우바새로서 항상 능히 승원과 사당과 승방(僧坊)에 나아가고, 나아가서는 모든 비구들과 친근히 하며 친근히 하고나서는 법을 묻고,
이미 법을 물었거든 마땅히 지극한 마음으로 들을 것이며,
듣고 나서는 받아 지키되 생각하고 생각하여 잊지 않도록 하고 능히 그 뜻을 분별할 것이며,
뜻을 분별하고는 다시 중생에게 전하여 교화한다면,
이를 이름하여 우바새의 자리이타라고 하느니라.
만약 우바새로서 능히 이와 같이 말한 바를 익혀 배우지 않고,
비구를 경만(輕慢)히 여겨 그 과실을 구하며,
가서 법을 들어도 믿고 공경하는 마음이 없거나, 외도를 받들어 섬기면서 그 공덕을 보고,
깊이 해ㆍ달ㆍ5성(星) 따위 별들을 믿는다면,
이 우바새는 견고하게 법에 머문다고 할 수 없느니라.
만약 우바새로서 비록 5악업(惡業)을 스스로 짓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사람으로 하여금 짓게 한다면, 이는 우바새로서 법답게 머무는 것이 아니니라.
만약 우바새로서 먼저 남의 물건을 취하여 일을 마치었다고 한다면, 이 우바새는 법답게 머무는 것이 아니니라.
만약 우바새로서 붐비는 나루터의 세금을 알면서 고물(估物)을 판다면 이 우바새는 법답게 머무는 것이 아니니라,
만약 우바새가 값을 헤아려서 병을 고치고 나서 그 물건을 판다면, 이 우바새는 법답게 머무는 것이 아니니라.
만약 우바새로서 관(官)을 어기고, 사사로이 법을 정한다면 법답게 머무는 것이 아니니라.
만약 우바새가 스스로 악을 짓지 않고 남에게 짓도록 가르치지 않으며, 마음으로 악을 생각하지 않으면 법답게 머문다고 하느니라.
만약 우바새로서 객번뇌(客煩惱)로 인하여 일어난 죄를 짓고 나서 참괴와 뉘우치는 마음을 내지 않으면 법답게 머무는 것이 아니니라.
만약 우바새로서 몸과 목숨을 위하여 모든 악한 일을 짓는다면 법답게 머무는 것이 아니니라.
만약 우바새로서 비록 사람의 몸을 얻었으나 비법(非法)을 행한다면 사람이라고 이름 할 수 없느니라.
만약 신심을 얻고 능히 복덕을 지으며, 잘 정념(正念)을 닦고, 모든 법을 관하되, 다 이것이 항상 함이 없는지라, 아(我)와 아소(我所)가 없고, 온갖 것에 취착하는 마음이 없으며 온갖 것이 자재하지 않고 생멸하는 것이며 괴롭고 공허한 것이며, 적정(寂靜)함이 없음을 보느니라.
사람의 몸을 얻기가 어려운데, 비록 사람의 몸을 얻었으나 모든 근(根)을 갖추기가 어렵고, 비록 모든 근을 갖추었으나 바른 견해를 얻기가 어려우며, 비록 바른 견해를 갖추었으나 믿는 마음을 얻기가 어려우니라.
비록 믿는 마음을 얻었으나 좋은 벗을 만나기가 어려우며, 비록 좋은 벗을 만났으나 바른 법을 듣기가 어렵고, 비록 바른 법을 들었으나 받아서 지키기가 어렵다고 하여, 능히 이와 같이 관찰하면 이를 사람이라고 할 만하니라.
만약 사람이 능히 관찰하되, 욕계(欲界)가 항상함이 없고, 내지 비상비비상천(非想非非想處)가 모두 항상함이 없으므로 3악도와 내지 비상비비상처를 원하지 않으리라.
이렇게 관찰하면 세 가지의 견고하지 않음을 보게 되고, 견고하지 않은 몸을 견고한 몸으로 바꿀 수 있으리니,
예배ㆍ공양하며, 맞이하여 오고 배웅하여 보내며 자기의 손으로 베풀어 주고, 친히 복된 일을 하면,
이것이 견고하지 않은 몸을 가지고 견고한 몸으로 바꾸는 것이며,
견고하지 않은 재물을 견고한 재물로 바꾸는 것이니라.
능히 스스로 먹고 쓰고, 또 보시하여, 병든 이와 길 가는 사람에게 공급하며, 사문이나 바라문 등과 빈궁하고 하천한 사람에게 공양하면,
이것이 견고하지 않은 재물을 견고한 재물로 바꾸는 것이며,
견고하지 않은 목숨을 견고한 목숨으로 바꾸는 것이니라.
6념(念)과 자ㆍ비ㆍ희ㆍ사를 닦고, 4진제(眞諦)를 증득하며, 잘 능히 생ㆍ노ㆍ병ㆍ사를 관찰하고, 분명히 선업과 악업의 과보를 믿으며, 틀림없이 은애(恩愛)에는 이별이 있다는 것과, 일체 중생이 자재함을 얻지 못한다는 것과 성도(聖道)를 얻지 못하면 생사의 힘이 크다는 것과, 온갖 세속의 즐거움에 항상 괴로움이 따른다는 것을 알고 비록 받더라도 마음을 염착(染着)하지 않을 지니라.
마치 겨울철 달에 불을 구하여 스스로 따뜻하게 함과 같이 비록 또 하더라도 마침내 악을 짓지 않을 것이며, 인욕을 닦고, 두 가지의 보시로써 중생을 윤택하게 할지니라.
깊이 괴로움과 즐거움의 성품이 평등함을 관하고,
모든 말하는 것이 유연(柔軟)하여야 하며,
잘 중생을 교화하여서 법답게 살도록 하고,
나쁜 벗을 멀리하며,
마음에 방일함이 없고 술을 마시거나 노름을 하거나 사냥을 하는 일은 모두 하지 않으니,
이것이 견고하지 않은 목숨을 견고한 목숨으로 바꾸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만약 사람의 몸을 얻고 재물이 넉넉하며 더불어 자재함을 얻었거든,
먼저 마땅히 부모와 스승과 화상과 나이 많고 법을 지키는 분들께 공양하고,
멀리에서 온 초행의 사람과 질병인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 할지니라,
말은 유연하여야 하고, 참괴심이 많아야 하며, 치우쳐서 덕이 있는 한 사람만을 믿거나 존경하지 않을 것이며,
계를 지니고 많이 들은 현성(賢聖)을 보거든 능히 집과 음식과 침구와 의복과 약으로 공양할지니라.
깊이 승가 중에는 공덕이 많음을 말할 것이며,
향도(向道)를 닦아서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얻고, 내지 아라한으로 향하는 길을 닦아서 아라한과를 얻으며,
금강삼매(金剛三昧)와 전광삼매(電光三昧)를 닦는다고,
이와 같이 관하고는 평등하게 받들어 보시 할지니라.
이와 같이 보시하면 한량없는 복을 얻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녹자경(鹿子經) 가운데에 녹자모에게 말하기를,
‘비록 부처님과 5백 아라한을 청하더라도 승가를 청하는 복을 얻었다고는 할 수 없다.
만약 능히 승가 중에 아주 극악한 비구에게 보시하여도 오히려 한량없는 복덕의 과보가 있다’고 하였느니라.
왜냐하면 이러한 비구가 비록 악인이어서, 계(戒)도 다문(多聞)도 없으며, 선한 법을 닦지 않더라도,
또한 능히 세 가지 보리에 인(因)이 있고 과(果)가 있음을 연설하고,
또한 불ㆍ법ㆍ승보를 비방하지 않으며,
여래의 위없는 수승한 기를 지녔고, 바른 견해여서 잘못이 없는 수승한 기를 지녔고, 바른 견해여서 잘못이 없느니라
만약 승가에게 공양하면 곧 이것이 불ㆍ승 2보(寶)께 공양하는 것이니라.
그리고 만약 불법의 공덕이 미묘함을 관하면 곧 이것은 온전하게 삼보께 공양하는 것이니라.
만약 사람이 보시할 때 과보를 구하지 않으면 곧 이것은 위없는 보리에 공양하는 것이니라.
온전하게 단바라밀을 성취하고, 보리도를 닦으면 능히 미래에 한량없는 공덕을 얻어서 스스로도 이롭고 남도 이익하게 하리라.
능히 자비를 닦아서, 남의 괴로움을 없애기 위하여 스스로 자기의 즐거움을 버리면 아직 보리는 얻지 못하였어도 마음에 근심과 뉘우침이 없느니라.
비록 보리는 오래 얻기가 어렵다고 들었어도 그 속마음은 처음부터 퇴전이 없으며, 모든 중생을 위하여 한량없는 세상을 큰 고뇌를 받아도 또한 피로와 싫증이 없느니라.
법다운 행을 좋아하여 세속의 즐거움을 구하지 않고, 고요하게 머무는 것을 즐기어서 출가 수도할지니라.
아직 출가하지 못하고 비록 집에 있더라도 해탈한 사람과 같이 여러 가지 악을 짓지 않으면 세 가지의 계율인 계계(戒戒)와 정계(定戒)와 무루계(無漏戒)를 얻으리라.
선남자여, 보살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재가보살이요,
두 번째는 출가보살인데,
출가보살은 법답게 수행함이 어렵지 않으나,
재가보살은 법답게 수행하는 것이 어렵나니,
왜냐하면 재가보살은 많은 악연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