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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경 제5권
23. 사미수계자살품(沙彌守戒自殺品)
단본에는 이 품이 제7권에 있고 순번이 24이다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안타국(安陁國)에 계셨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간곡하게, 계율 가지는 사람을 찬탄하면서 말씀하셨다.
“계율을 잘 지키라. 차라리 목숨을 버릴지언정 마침내 범하지 말라. 왜냐 하면, 계율은 도에 들어가는 기초요, 번뇌를 없애는 묘한 길이며, 열반의 안락한 곳에 이르는 평탄한 길이다. 그러므로 청정한 계율을 가지면 그 공덕은 한량없고 끝이 없느니라. 비유하면 큰 바다는 한량이 없고 끝이 없는 것처럼 계율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마치 큰 바다에는 아수라ㆍ자라ㆍ거북ㆍ마갈 따위의 많은 생물들이 사는 것처럼, 계율 바다도 그러하여 3승(乘)을 닦는 대중이 산다. 또 큰 바다에는 금ㆍ은ㆍ유리 따위의 보배가 많이 있는 것처럼, 계율 바다도 그러하여 선한 법을 많이 내며, 네 가지 덧없음[四非常)과 37도품(道品)과 여러 선정[禪] 등의 보배가 있느니라.
또 큰 바다는 금강이 바닥이 되고 금강산으로 둘러싸였으며 네 개의 큰 강이 흘러 들어가되 불어나지도 줄지도 않는 것처럼,
계율의 바다도 그와 같아서 비니(毘尼)가 바닥이 되고 아비담산(阿毘曇山)으로 둘러싸였으며 4아함(阿含)의 강이 거기에 흘러 들어가되, 언제나 맑아 불어나지도 줄지도 않는다.
무엇 때문에 바닷물은 불어나지도 줄지도 않는가?
바다 밑에 있는 아비지옥의 불길이 위로 큰 바다를 끓여 물이 졸아들기 때문에 불어나지 않고, 또 항상 강물이 흘러 들기 때문에 줄지 않는다. 불법에 있어서 계율의 바다는 방일하지 않기 때문에 불어나지 않고 공덕을 갖추었기 때문에 줄지 않는다.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계율을 잘 가지는 사람은 그 덕이 매우 많으니라.”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였다. 그때에 안타국에는 어떤 걸식하는 비구가 있었는데, 그는 혼자 고요히 있기를 즐기고 위의를 갖추었었다. 대중 속에 살지 않고 혼자 걸식하는 비구를 부처님께서는 칭찬하신다. 왜냐 하면, 걸식하는 비구는 욕심이 적고 만족할 줄을 알아 물건을 쌓아 두지 않고 차례로 걸식하면서 자리를 펴고 한[露] 데 앉으며, 하루에 한 끼 먹고 세 가지 옷밖에 가지지 않나니, 이런 일은 존경할 만하고 숭상할 만하기 때문이다.
대중과 같이 사는 비구는 욕심이 많아 만족할 줄 모르므로 물건을 많이 쌓아 두고서도 탐하여 구하고 아끼며 질투하고 애착한다. 그러므로 큰 이름을 얻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걸식하는 비구는 덕행을 완전히 갖추고 사문의 결과를 성취하여 6통(通) 3명(明)을 얻고 8해탈(解脫)에 머무르며 위의가 조용하여 명성이 널리 퍼지느니라.
그때 안타국에 어떤 우바새가 있어 3보(寶)를 믿어 공경하며, 5계(戒)를 받들어 지녀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으며, 음행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으며, 술 마시지 않으며, 보시를 행하고 덕을 닦아 이름이 온 나라에 두루하였다.
그는 그 걸식하는 비구를 청하여 몸을 마칠 때까지 공양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생각하였다.
‘공양하는 복은 그 인(因)을 따라 과보를 받는다. 만일 스님네를 집에까지 청해 공양하면 수도에 방해될 뿐 아니라 오가는 도중에 추위와 더위를 겪는 괴로움이 있을 것이니, 뒷날 과보를 받을 때에는 반드시 생각을 괴롭히면서 밖으로 나가 돌아다녀야 비로소 얻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스님네들에게 나아가 공양을 올리면 뒷날 과보를 받을 때에는 편안히 앉아 있어도 저절로 받게 될 것이다.’
그 우바새는 신심이 순수하고 독실하여 빛깔과 냄새와 맛이 좋은 갖가지 음식을 장만하여 사람을 시켜 보내되, 날마다 계속하였다.
사문에게는 좋고 나쁜 것을 밝히기 어려운 네 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마치 암라(菴羅) 열매가 설었는지, 익었는지를 알기 어려운 것과 같다.
어떤 비구는 위의가 조용하고 천천히 걸으면서 자세히 보지마는, 속에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계율을 부수는 비법이 가득 찼으니, 그것은 마치 암라 열매가 겉은 익었으되 속은 선 것과 같으니라.
어떤 비구는 바깥 행은 추하고 서툴러 의식을 따르지 않지마는, 속에는 사문의 덕행인 선정과 지혜를 갖추었으니, 그것은 마치 암라 열매가 속은 익었으나 겉은 선 것과 같으니라.
어떤 비구는 위의도 추하고 거칠며 계율을 부수어 악을 지으며, 속에도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과 간탐과 질투가 가득 찼으니, 그것은 마치 암라 열매가 속과 겉이 모두 설익은 것과 같으니라.
어떤 비구는 위의도 조용하고 자세하며 계율을 가져 스스로 지키며, 속에는 계율과 선정과 지혜와 해탈을 갖추었으니, 그것은 마치 암라 열매가 속과 겉이 함께 익은 것과 같으니라. 저 걸식 비구는 안팎을 완전히 갖추었고, 또한 그와 같이 덕행이 원만하기 때문에 사람의 숭배를 받느니라.
그때 그 나라에 어떤 장자가 3보(寶)를 믿고 공경하였다. 그에게는 외동아들이 있었다. 그는 가만히 생각하였다.
‘저 아이를 출가시키되, 좋은 스승을 구해 맡기고 싶다. 왜냐 하면, 좋은 스승을 가까이하면 좋은 법이 더욱 자라고 나쁜 스승을 가까이하면 나쁜 법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바람 성질은 비록 공(空)하나 전단림(栴檀林)이나 첨복림(瞻蔔林)을 거쳐 향을 날리면 그 바람에는 묘한 향냄새가 있고, 더러운 똥이나 썩은 시체를 거쳐 오면 그 바람에는 악취가 나는 것과 같다. 또 깨끗한 옷을 향기로운 상자에 넣어 두었다가 내어 입으면 옷에서 향냄새가 나고, 더러운 냄새 나는 곳에 두면 옷에서도 냄새가 나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착한 벗을 친하면 착함이 날로 높아가고 악한 벗을 친하면 악이 더욱 자라간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이 아이를 저 존자에게 주어 출가를 시키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곧 그 비구에게 가서 아뢰었다.
“내 외동아들을 이제 출가시키고자 하오니, 원컨대 대덕께서는 가엾이 여겨 받아들여 제도하여 주소서. 만일 받아 주실 수 없으시다면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 비구는 도의 눈으로, 그가 중이 되면 깨끗한 계율을 잘 가져 불법을 더욱 자라게 할 수 있으리라 보고 곧 받아 제도하여 사미(沙彌)를 만들었다.
그때 그 우바새에게는 어떤 친한 거사가 있었다. 그는 우바새와 그 처자와 온 집안 종들까지 그 이튿날 모임에 청하였다. 우바새는 이른 아침에 생각하였다.
‘지금 우리가 모두 그 모임에 가고 나면 누가 남아서 이 집을 지킬 것인가? 내가 만일 힘이 세다고 하여 억지로 한 사람을 붙들어 두고 그 몫을 받아 가진다면 나는 그를 배반하는 것이다. 혹 누가 제 스스로 마음을 내어 집에 머무르면 나는 그 모임에서 돌아와 따로 보수를 주리라.’
우바새의 딸이 아버지에게 아뢰었다.
“원컨대 부모님께서는 여러 하인들을 데리고 가서 그 청을 받으소서. 제가 남아 집을 지키겠습니다.”
아버지는 기뻐하며 말하였다.
“참으로 착하고 착하다. 이제 너는 집을 지켜라. 나와 네 어머니는 똑 같이 우리 집의 손해와 이익에 대해서 의심하거나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온 집안 사람이 모두 가서 청을 받았다. 딸은 문을 굳게 닫고 혼자 집에 있었다.
그때 그 우바새는 그 날 바쁜 중에 그만 비구에게 공양 보낼 것을 잊고 있었다.
그때 그 존자는 가만히 생각하기를,
‘해가 저물어 온다. 그러나 속인이 일이 바빠 그만 잊어버리고 밥을 보내지 않고 있다. 내가 이제 사람을 보내어 밥을 가져 오게 하리라’ 하고,
곧 사미에게 말하였다.
“네가 가서 밥을 가져 오너라. 그런데 부처님께서 늘 말씀하시는 것처럼, 마을에 들어가 걸식할 때는 위의를 잘 단속하여, 탐하고 집착하는 마음을 내지 말라.
마치 꿀벌이 꽃에 앉을 때에 그 맛만 취하고 빛깔과 향기는 다치지 않는 것처럼 이제 너도 그렇게 하되, 집에 이르러 밥을 얻을 때에는 감관의 문을 잘 단속하여 색(色)ㆍ소리[聲]ㆍ냄새[香]ㆍ맛[味]ㆍ촉감[觸]을 탐하지 말라. 만일 계율을 가지면 반드시 도를 얻을 것이다.
저 제바달다(提婆達多) 같은 이는 경을 많이 외웠다지만 악을 행하여 계율을 부수었기 때문에 아비지옥에 떨어졌고, 구가리(瞿迦利) 같은 이는 부처님 제자를 비방하여 계율을 깨뜨렸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졌으며, 주리반특(周利槃特)은 게송 하나밖에 외우지 못하였으나 계율을 가졌기 때문에 아라한이 되었느니라.
또 계율은 열반으로 들어가는 문이 되고 즐거움을 받는 종자가 된다. 비유하면 바라문법에서, 석 달이나 넉 달 동안의 긴 재(齋)를 베풀어서 이름이 높고 지혜 있으며 계율을 가지고 범행을 닦는 여러 바라문을 청하되, 두루 청하지 않고 가려서 청하였기 때문에, 구류(仇留)에게는 봉인(封印)된 청을 하여 청하는 사람을 원망하였다.
어떤 바라문은 경전에는 밝았으나 그 성질이 청렴하지 못하여 벌꿀의 단맛을 탐하였기 때문에, 봉인된 꿀을 핥다가 봉인이 다 없어졌었다. 이튿날 그 모임에 봉인을 바치고 들어갈 때에 그 바라문은 봉인이 없으면서 들어가려 하였다.
일맡은 이는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봉인을 가졌습니까?’
그는 대답하였다.
‘나는 가졌었지만 그것이 달기 때문에 핥다가 다 없어졌다.’
일 맡은 이는
‘당신은 지금 그와 같이 이미 만족하였으므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조그만 단맛을 탐하여 넉 달 동안의 그 달고 향기롭고 맛난 음식과 또 갖가지 보배 보시를 잃어버렸습니다.’
지금 그와 같이 조그만 일을 탐하여 깨끗한 계율의 인(印)을 깨뜨림으로써 인간과 천상의 다섯 가지 맛난 즐거움과 번뇌를 없애는 37도품(道品)과 한량없이 안락한 열반법의 보배를 잃지 말라. 너는 삼세(三世) 부처님의 계율을 훼손하거나 3보(寶)와 부모ㆍ스승을 더럽히지 말라.”
사미는 이 분부를 받고 스승 발에 예배하고 떠났다.
그는 그 집에 이르러 문을 두드리면서 소리쳤다.
처녀는 물었다.
“누구십니까?”
사미는 대답하였다.
“사미가 스승님을 위해 공양을 가지러 왔습니다.”
처녀는 못내 기뻐하여 ‘내 소원이 이루어졌군’ 하고, 곧 문을 열어 주었다.
처녀는 얼굴이 단정하고 뛰어나게 아름다웠으며 나이는 막 열여섯, 음욕이 불꽃처럼 타올랐다. 처녀는 사미 앞에서 어깨를 흔들고 그림자를 돌아보기도 하며 갖은 아양을 떨면서 몹시 음란한 몸짓을 하였다.
사미는 그것을 보고 생각하였다.
‘이 여자는 풍병이나 미친 병이나 또는 간질병이 있는가, 혹은 아무 번뇌가 없는 깨끗한 내 행을 훼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위의를 더욱 굳게 단속하였고 얼굴빛도 변하지 않았다.
처녀는 땅에 엎드려 사미에게 하소연하였다.
“내가 늘 원하던 것이 이제 때가 왔습니다. 나는 항상 사미님께 할 이야기가 있었으나 조용한 틈을 타지 못했습니다. 아마 사미님도 내게 늘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사미님은 내 소원을 풀어 주어야 합니다. 우리 집에는 많은 보배와 금ㆍ은의 창고가 있어 저 비사문 천궁의 보배창고 같지만 주인이 없습니다.
사미님이 뜻을 굽히시기만 한다면, 곧 이 집 주인이 될 것이요, 나는 사미님의 아내가 되어서 시키는 일은 아무도 어기지 않을 것이니, 우리 소원은 다 이루어질 것입니다.”
사미는 가만히 생각하였다.
‘나는 무슨 죄가 있어 이런 나쁜 인연을 만났는가? 나는 지금 차라리 이 신명(身命)을 버릴지언정 삼세 모든 부처님께서 정하신 계율은 훼손하지 않으리라.
옛날의 어떤 비구는 음녀 집에 이르러 차라리 불구덩이에 몸을 던질지언정 음행은 범하지 않았고,
또 어떤 비구는 도적을 만나 풀에 묶였을 때, 바람에 불리고 햇볕에 쪼이며 온갖 벌레에 물렸지마는 계율을 지키기 위해 풀을 끊고 떠나지 않았다.
혹은 거위가 구슬을 먹었을 때에 어떤 비구는 그것을 보았지마는 그는 계율을 지키기 위해 지루한 고통을 당하면서도 말하지 않았다.
또 바다에서 배가 부서졌을 때 아랫자리 비구는 계율을 지키기 위해 널빤자를 윗자리 비구에게 주고 자기는 바다에 빠져 죽었다.
이런 사람들은 부처님 제자로서 계율을 잘 지켰거늘 나는 부처님 제자가 아닌가? 왜 지키지 못하겠는가? 부처님께서는 그들만의 스승님이요, 내 스승님은 아니라는 말인가?
마치 첨복꽃을 깨에 섞어 기름을 짜면 첨복꽃 향내가 나지마는, 악취가 나는 꽃을 섞으면 기름도 그에 따라 악취가 나는 것처럼, 나는 지금 좋은 스승님을 만났는데 어떻게 나쁜 일을 저지르겠는가?
차라리 신명을 버릴지언정 마침내 계율을 깨뜨림으로써 불ㆍ법ㆍ승과 부모와 스승을 더럽히지 않으리라.’
그는 또 생각하였다.
‘만일 내가 도망쳐 달아나면 저 여자는 왕성한 음욕 때문에 부끄러움도 모르고 밖으로 달려나와 나를 붙들고 모함해 비방하리니, 거리 사람들은 내가 더러운 욕을 벗어나지 못했다 할 것이다. 나는 지금 여기서 목숨을 버리고 말리라.’
그리고는 방편으로 말하였다.
“지게문을 굳게 닫으시오. 내가 방에 들어가 할 일을 준비할 것이니, 당신은 그때에 들어오시오.”
그 여자는 곧 지게문을 닫았다. 사미는 방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마침 머리 깎는 칼을 발견했다. 그는 몹시 기뻐하면서 법복을 벗어 시렁 위에 걸고 합장하고 꿇어앉아 구시나성(拘尸那城)의 부처님 열반하신 곳을 향하여 스스로 서원을 세웠다.
‘나는 지금 불ㆍ법ㆍ승을 버리지 않고 화상(和上)ㆍ아사리(阿闍梨)를 버리지 않고 또 계율을 버리지 않으며, 올바로 계율을 가지기 위하여 이 신명을 버립니다. 원컨대 태어나는 곳에서 집을 떠나 도를 배우고 범행을 깨끗이 닦아 번뇌를 없애고 도를 이루게 하소서.’
곧 목을 찔러 죽자, 피는 쏟아져 흘러 온몸을 적셨다.
처녀는 사미의 더딘 것을 이상히 여겨 지게문 가까이 가 보았으나 문은 열리지 않았고 불러 보았으나 대답도 없었다. 지게문을 박차고 열자 그가 이미 죽어 본래의 안색이 없는 것을 보았다.
처녀는 음심이 이내 사라지고 부끄럽고 뉘우치고 고민하면서, 제 손으로 머리를 잡아 뽑고 손톱으로 얼굴을 찢으며 진흙땅에 뒹굴면서 눈물을 흘리고 슬피 부르짖다가 그만 정신을 잃고 까무러쳐 버렸다.
그 아버지가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서 딸을 불렀다. 그러나 딸은 잠자코 대답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 조용한 것을 이상히 여겨 사람을 시켜 대문을 넘고 들어가 문을 열고 살피다가 딸의 그런 꼴을 보고는 흔들어 깨웠다.
“너는 왜 그렇게 되었느냐. 어떤 사람이 들어와 너를 능욕하였느냐?”
딸은 잠자코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생각하였다.
‘지금 내가 사실대로 대답하기는 너무 창피하다. 그렇다고 사미가 나를 능욕하였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선량한 사람을 모함하는 것이니, 장차 지옥에 떨어져 끝없는 죄를 받을 것이다. 속이지 말고 사실대로 대답하자.’
처녀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제가 혼자 집을 지키고 있을 때 사미가 와서 그 스승의 공양을 청했습니다. 저는 정욕이 발동하여 사미를 졸라 내 마음에 따라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계율을 지키는 마음이 변하지 않고, 방편으로 방에 들어가 스스로 제 목숨을 버렸습니다. 저의 이 더러운 몸으로 그 깨끗한 그릇을 부수려 하였습니다. 그 죄가 이러하기 때문에 저는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딸의 말을 듣고는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왜냐 하면 번뇌의 법은 으레 그런 줄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는 곧 딸에게 말하였다.
“모든 법은 다 덧없는 것이니, 너는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
그는 곧 사미 방에 들어가 보았다. 사미 몸은 피에 붉게 물들어 마치 전단(栴檀)으로 만든 책상과 같았다. 그는 앞으로 나아가 예배하고 찬탄하였다.
“장하여라. 부처님 계율을 보호해 가지기 위하여 능히 목숨까지 버렸구나.”
이때에 그 나라 법에는 사문이 속인 집에서 죽으면, 그 집에서 금 일천 냥을 나라에 들여놓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 우바새는 돈 일천 냥을 구리소반에 담아 싣고 왕궁으로 들어가 아뢰었다.
“신이 죄를 범한 벌금을 대왕께 바칩니다. 원컨대 받아 주소서.”
왕은 물었다.
“우리 나라에서 삼보를 믿어 공경하고 충성하고 정직하여 도를 지키며 말과 행실이 어긋남이 없기는 오직 그대 한 사람뿐이어늘, 지금 어떤 허물이 있기에 벌금을 싣고 왔는가?”
우바새는 위의 사실을 자세히 아뢰어 자기 딸을 나무라고 사미가 계율 지킨 공덕을 찬탄하였다.
왕은 그 사정을 듣고 마음으로 놀라고 송구스러워하면서 불법을 믿는 마음이 더욱 독실해졌다.
“사미가 계율을 지켜 스스로 목숨을 버린 것이요, 그대에게는 허물이 없거늘 어떻게 벌이 있겠는가? 이것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라. 나도 지금 몸소 그대 집에 가서 그 사미에게 공양하리라.”
곧 금북을 울려 나라에 영을 내려 앞뒤로 백성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그 집으로 갔다. 왕은 몸소 안에 들어가 사미의 몸이 붉은 전단 같은 것을 보고 앞으로 나아가 예배하고 그 공덕을 찬탄하였다. 갖가지 보배로 장엄한 높은 수레에 사미의 시체를 싣고 평탄한 곳으로 가서 온갖 향나무를 쌓아 화장하고 공양하였다.
또 그 여자를 갖가지로 장식하니, 절세 미인이 되었다.
그를 높은 곳에 세우고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다 보게 하고는 대중에게 말하였다.
“이 여자는 뛰어나게 아름다워 얼굴은 저처럼 빛난다. 탐욕을 아직 여의지 못한 이로서 그 누가 탐내지 않겠는가? 그런데 저 사미는 아직 도를 얻지 못하여 나고 죽는 몸이지마는 계율을 받들어 목숨을 버렸으니 참으로 놀랍고 드문 일이다.”
왕은 다시 사람을 보내어 그 스승 비구를 청해 널리 대중을 위하여 묘법을 연설하게 하였다.
거기 모인 대중으로서 이 일을 보고 들은 이는 집을 떠나 깨끗한 계율을 가지려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위없는 보리심을 내는 이도 있었다. 그리하여 모두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