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회화나무
조계사 백송과 회화나무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조계사는 대한민국 불교의 총본산이다. 대한불교총무원, 역사문화관이 경내에 있다. 조계사 대웅전 입구에는 노거수 백송이 있고 대웅전 앞쪽에는 노거수 회화나무가 조계사 호법신장 역할을 하고 있다. 90여년 된 라일락 한그루는 종로구 아름다운 나무로 지정되어 있다. 백송은 나무껍질이 넓은 조각으로 벗겨져서 흰빛이 되므로 백송 또는 백골송(白骨松)이라고도 한다. 중국이 원산지로 중국소나무이다. 조선시대에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이 가져다 심은 것이다. 아마도 당시의 유행하는 문화였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경복궁을 중심으로 노거수 백송이 남아있다. 현재의 헌법재판소, 조계사, 통인동에 있는 백송이다. 중국에 다녀온 사람들이 기념으로 가져와서 경복궁 주위에 심기 시작한 것으로 본다. 백송은 오래될수록 수피가 하얗게 변하므로 흰백자 백송이라 부른다.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정할 때 앞 번호가 거의 백송이었다. 지금 남아있는 백송 중에서는 헌법재판소(창덕여중, 고 터) 백송이 모든 면에서 으뜸이다. 조계사 백송도 오래된 천연기념물이지만 우정국터 가까운 곳에서 자라다 100여년전 지금의 조계사가 들어오면서 법당앞에 지키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조계사를 찾는 수많은 불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아주 귀한 존재가 되었다. 아쉬운 점은 출입이 가장 많은 대웅전 옆문 입구쪽이라 늘 여러 시설에 가리기도 하고 뿌리 내려 편안하게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다른 곳의 백송에 비해 늘 다양한 공양을 받기도 하고 관심을 받으니 최고의 백송이 되고 있다. 조계사 백송의 나이는 약 500여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4m, 뿌리부분 둘레 1.85m이다. 조계사 뜰 안 대웅전 옆 가까이 서 있고, 대웅전 쪽으로 뻗은 가지만 살아있다. 나무의 한쪽은 사람들이 오가는 통로에 바로 접해있고, 다른 한쪽은 건물에 인접해 있어서 나무가 자랄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고 생육상태도 좋지 않은 편이다.
백송은 흔히 볼 수 없는 희귀한 소나무이고,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이며, 생물학적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1500년대 조선시대 중종 시절 성리학이 왕성하던 때. 회화나무와 백송등이 경복궁 주위에(지금의 인사동, 견지동, 통인동 등) 많이 심어졌다. 그 당시 심어졌던 나무로 추정된다.
회화나무는 조선시대 선비들과 유생들 등 소위 지식인들이 좋아한 나무이다.
회화나무는 은행나무와 함께 대표적인 학자수(學者樹)라 통한다. 이는 중국 주나라때 삼괴구극(三槐九棘)이라고 해서 회화나무 3그루와 가시나무 9그루를 심어놓고 여기에 정승 3명, 고급관료 9명 등을 세웠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그래서 회화나무는 집 출입문 쪽에 3그루씩 식재하는 것이 포인트이다. 이 유래로 인해 서양에는 'chinese scholar tree'로 불리기도 한다.
은행나무와 마찬가지로 궁궐이나 정승이 난 고택, 문묘 등지에서 이 나무를 많이 심었고 길상목으로 여져졌는데 이 나무를 집안에 심으면 가문이 번창하고 큰 학자나 큰 인물이 난다하여 아무곳에나 함부로 심지 않았다고 한다. 임금이 친히 상으로 하사하기도 했다고. 그래서 몇백 년 이상의 회화나무 고목은 궁궐이나 향교, 서원 등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한편 궁궐 등에서 이 나무를 많이 심은 한 가지 이유는 바로 명칭 자체이다. 회화나무 괴(槐)를 파지하면 나무 목(木)과 귀신 귀(鬼)가 되므로, 회화나무를 '귀신 쫓는 나무'라고 하여 궁궐 등에서 잡귀를 쫓기 위해 회화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한다. 수형이 제멋대로 뻗는 듯하면서도 단정한 모습인데 이를 학자의 기개를 표현한다고도 여겼다. 반대로 가지가 구불구불한 것을 보고 곡학아세를 일삼는 어용학자를 뜻한다고 비꼬는 시각도 있었다
궁궐에 식재된 회화나무 중 유명한 것이 2006년에 천연기념물에 지정된 창덕궁 회화나무 군락으로 돈화문으로 들어서자 마자 보이는 회화나무이며, 3정승인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상징하기 위해 식재된 나무로서 동궐도에 노거수로 그려진 것으로 보어 현재 수령이 400년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계사 마당에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는 대웅전 앞 회화나무는 서울시 지정보호수 78호이다.
조계사는 1938년에 창건되었다. 그렇다면 이곳에 있던 두그루 명품나무는 누가 심어 가꾼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조계사가 들어서기 이전 이곳은 김교헌의 집터였다.
일제때 민족정신을 하나로 결집해 항일무장 투쟁을 하기 위해 홍암나철은 대종교를 만들었다.김교헌은 나철의 뒤를 이은 대종교의 2대 교주이다. 그는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막대한 집안 재산을 모두 팔았다. 그때 조계사 자리에있던 사당과 종가도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전 재산을 처분하여 만주로 가서 항일 독립투쟁기금으로 바쳤다. 조계사의 백송과 회화나무는 김교헌의 선조들이 조선초기 중국사신으로 갔다가 묘목을 구해 와서 심은 것으로 보인다. 수령이 90여년 되는 조계사 라일락은 종로구의 아름다운나무로 지정되어 잘 관리되고 있다. 회화나무와 백송의 존재감이 워낙 뛰어나서 라일락은 비교적 무관심속에 있지만 봄이 되면 꽃과 향기로 방문객을 반긴다. 이렇게 조계사의 역사는 100년이 안되지만 이 터에서 500여년 이상 살아온 노거수 덕분에 더욱 역사적, 문화적 의미를 지닌 곳으로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