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태백의 풍경들 속에서
김혜경
“00네도 지난 주말에 자식들이 와서 데리고 갔대.”
“에고, 참.....그리 억세고 바둥바둥 식당하면서 살더니.... 우리도 이제 갈 때가 된기야.”
요즘 내가 근무하는 곳은 태백시에서도 변두리 지역인 철암동에 있다. 이곳에는 아침마다 동네 어르신들이 다녀가신다. 열두 분이 하루씩 번갈아 가며 오셔서 청소도 하시고 마당에 풀도 뽑고 하다가 앉아서 수다삼매경에 빠지신다. 지지난 주에는 또 할머니 한 분이 자식들 곁으로 가셨다. 자식들 곁으로 갔을 수도 있고 요양시설로 가셨을 수도 있다. 그 할머니는 치매기가 약간 있었지만 참 마음씨가 고우신 어르신이었다. 이렇게 하루하루 어르신들이 태백을 떠나시고 태백시 변두리에는 할머니들이 사시던 빈집들이 늘어가고 있다. 그나마도 지금처럼 ‘노인일자리사업’에라도 참여하여 어르신들 표현대로 ‘오늘도 한 공수 때우기’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한 일이다.
마을을 돌다 보면 작고 초라한, 대문이 굳게 닫혀있는 집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할아버지는 규폐로 병원에 계시고 할머니는 요양시설로 가신 집이다. 더이상 마을에는 사람들이 살러 오지 않는다. 대한석탄공사 철암갱이 있어 만 명이 넘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이 마을은 산 위까지 다닥다닥 닭장같은 집들이 들어차 있었다. 그러나 어느덧 그 많던 집들도 사라지고 광부들이 출근하던 산길은 아무도 가지 않는 인적 드문 산길로 변했다.
이제 다음 달이면 추석이다. 추석이 오면 마을에서는 낯선 차량에서 허리 굽은 노모를 모시고 온 한 무리의 가족들이 두리번두리번 웅성웅성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저기 어디에 우리 집이 있었던 것 같은데.....혹시 여기 우체국이 어디 있어요?”
이곳이 우체국 있던 자리라고 대답을 하면 그들은 추억에 젖은 이야기를 한 보따리씩 꺼내서 펼친다. 뒷산 빽빽하게 집들이 있었다는 흰머리가 수북한 노년을 바라보는 자식은 어릴 적 까만 마을에서 까맣게 뛰어놀던 추억에 젖는다.
까만물이 흐르던 냇물에서 물장구치며 놀던 아이들이 이렇게 노인이 되어가고 있는 사이에 철암동의 인구는 십분의 일로 줄어버렸다. 아마도 노모를 모시고 올 날들도 그리많이 남지는 못할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인구변화가 가장 드라마틱하기로 유명한 태백시, 그 중에서도 단연 1등은 철암동이 아닐까한다. 올여름을 마지막으로 태백시 철암동의 대한석탄공사도 문을 닫았다. 따라서 더 이상 탄광도시가 아닌 철암 마을이 어떻게 남을지 막연하기만 하다. 하지만 어디 사람 사는 곳이 그리 쉽사리 없어지기야 하겠는가? 여름에도 시원한 이 미을이 아름답고 고즈넉한 스위스의 어느 산골처럼 마음 쉴 곳 없는 이들이 찾아와 쉬다가는 힐링마을로 변할수도 있지 않겠는가!
철암동 언덕위에 위치한 새들마을에 오르면 인적이 없는 한적한 성당이 있다. 나는 그곳에서 서 있으면 왁자지껄하던 학생들의 설렘이 귓가에 들리는 것 같다. 성당과 언덕 밑으로 내려다보이는 ‘지금은 맑은’ 철암천을 사진으로 남긴다. 언젠가는 오늘 이 풍경도 사라져 버릴 것이고 나는 또 그 누군가처럼 지금의 이 마을을 찾아와 나만의 추억에 잠길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