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장엄경론 제6권
13. 홍법품[2]
[설법의 절차]
이미 설법의 뜻이 성취되었음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설법의 절차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이른바 영입절(令入節)과
상절(相節)과 대치절(對治節)과
비밀절(秘密節),
이를 네 개의 절(節)이라 한다.
[釋] 여러 부처님의 설법이 이 네 절(節)을 떠나지 않는다.
첫째는 영입절이요, 둘째는 상절이요, 셋째는 대치절이요, 넷째는 비밀절이다.
[문] 이 네 개의 절은 무슨 뜻이 있습니까?
게송으로 말한다.
성문과 자기 성품과
허물을 끊음과 또한 말이 깊음이
순서대로 네 가지의 뜻을 의지하여
절(節)을 말해 네 가지가 있다.
[釋] 영입절이라 함은, 여러 성문들을 가르쳐서 법의 뜻에 들어가서 색(色) 등이 유(有)라고 말한 것을 두렵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상절(相節)이라 함은, 분별 등의 세 가지의 자기 성품이 체가 없고 일어남이 없어서 자기 성품이 청정하게 일체의 법을 말하기 때문이다.
대치절(對治節)이라 함은, 모든 허물 끊음을 의지하여 여덟 가지의 장애를 대치하는 것이니,
대승 가운데 설한 것과 같이 두 게송을 받아 가져도 그만한 공덕을 얻는다고 함이 다 대치를 위하여서 말한 것이니, 이 대치는 뒤에 마땅히 해석하겠다.
비밀절이라 함은, 여러 깊은 말을 의지한 것이니, 말을 돌림으로 말미암아 바야흐로 뜻을 얻기 때문이다.
대승경의 게송에서 말한 불견 견고해(不堅堅固解)는 전도에 잘 머물러서 번뇌의 시달림을 받기에 속히 큰 보리를 얻는다고 하였다.
이 절 가운데 불견은, 이른바 중생들의 마음이 어지럽지 않은 것이다.
이 어지럽지 않은 데서 견고한 앎을 지으면 아는 것이 가장 뛰어나서 능히 보리를 얻고
마음이 어지러운 자는 마음이 치닫고 견고하게 집착하여 능히 보리를 얻는 데 이르지 못한다.
이는 제1구(句)의 뜻이다.
전도에 잘 머무는 자라 함에서
전도라 함은, 이른바 상(常)과 낙(樂)과 아(我)와 정(淨)의 집착이다.
만일 사람이 능히 전도 가운데서 무상(無常)과 무락(無樂)과 무아(無我)와 무정(無淨)을 알아서 물러나지 않으면 곧 능히 보리를 속히 얻을 것이요,
그렇지 못하면 얻지 못할 것이니,
이는 제2구의 뜻이다.
번뇌의 시달림을 받는 자는 오랜 기간 동안 행하기 어려운 고행을 부지런히 닦으면 극히 피곤함으로 말미암아 능히 보리를 얻을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얻지 못할 것이니,
이것이 제3구의 이다.
[설법의 뜻]
이미 설법의 절차를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설법의 뜻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평등과 별의(別義)와
별시(別時)와 별욕(別欲),
이 네 가지의 뜻을 의지하여
여러 부처님의 말씀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釋] 여러 부처님의 설법이 네 가지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첫째는 평등의 뜻이요, 둘째는 별의(別義)의 뜻이요, 셋째는 별시(別時)의 뜻이요, 넷째는 별욕(別欲)의 뜻이다.
‘평등의 뜻’이라 함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난 옛날 비바시(毗婆尸) 부처님이 곧 내 몸이다”라고 하셨다.
그것은 법신에는 차별이 없음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것들의 말을 평등의 뜻이라고 이른다.
‘별의의 뜻’이라 함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법은 자기의 성품이 없기 때문이요, 생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셨다.
이와 같은 것들의 말을 별의의 뜻이라고 이른다.
‘별시의 뜻’이라 함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일 사람이 아미타 부처님을 보기 원하면 일체가 다 왕생(往生)함을 얻는다”고 하셨으니, 이는 별시로 말미암아 태어남을 얻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것들의 말을 별시의 뜻이라고 이른다.
‘별욕의 뜻’이라 함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선근이 있으면 여래께서 어느 때는 찬탄하시고 어느 때는 헐뜯으신다.
그런데 사람들이 조그마한 선근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문득 만족하게 여긴다고 한다.
이와 같은 것들의 말을 별욕의 뜻이라고 한다.
[대승을 받들어 지니는 공덕]
이미 설법의 뜻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대승을 받들어 지니는 공덕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부처님을 가볍게 보고 법을 가볍게 여기며
게으르고 만족한 줄 아는 것이 적으며
탐욕의 행과 아만의 행과
뉘우쳐 행함과 정하지 못한 것들,
이와 같은 여덟 가지의 장애를
대승에서는 대치하여 말한다.
이와 같이 모든 장애를 끊으면
이 사람은 바른 법에 들어가리라.
[釋] 이 두 게송은 대승에서 장애를 끊는 공덕을 말한 것이다.
장애에는 여덟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부처님을 가볍게 보는 장애요,
둘째는 법을 가볍게 여기는 장애요,
셋째는 게으름의 장애요,
넷째는 만족한 줄 아는 것이 적은 장애요,
다섯째는 탐욕을 행하는 장애요,
여섯째는 아만을 행하는 장애요,
일곱째는 뉘우침을 행하는 장애요,
여덟째는 일정하지 않은 장애이다.
부처님을 가볍게 보는 장애를 대치하기 위해 대승경(大乘經)에서 지난 옛날 비바시 부처님이 곧 내 몸이라 한 것이다.
법을 가볍게 여기는 장애를 대치하기 위해 대승경에서 한량없는 항하사(恒河沙) 부처님의 처소에서 대승을 수행하여 이에 앎을 낸다 하였다.
게으름의 장애를 대치하기 위해 대승경에서 만일 어떤 중생이 안락 국토(安樂國土)에 태어나기를 원하면 일체가 왕생함을 얻으며, 무구월광불(無垢月光佛)의 명호를 일컬어 생각하면 결정코 마땅히 부처님이 되리라고 하였다.
만족함이 적은 장애를 대치하기 위해 대승경에서 어느 곳에서는 보시[檀] 등의 행을 찬탄하고, 어느 곳에서는 보시 등의 행을 헐뜯는다고 하였다.
탐욕을 행하는 장애를 대치하기 위해 대승경에서 모든 부처님 국토는 극히 묘하고 즐거운 것이라고 하였다.
아만을 행하는 장애를 대치하기 위해 대승경에서 부처님의 국토가 가장 뛰어남을 성취한다고 하였다.
뉘우침의 행에 대한 장애를 대치하기 위해 대승경에서 어떤 중생이 부처님과 보살에게 요익(饒益)되지 않은 일을 일으켜도 착한 길에 남을 얻는다고 하였다.
일정하지 못한 장애를 대치하기 위해 대승경에서 모든 부처님이 성문을 수기(授記)하여 마땅히 부처님을 이루고 일승을 얻는다고 하였다.
이를 일러 대승을 받들어 지니면 여덟 가지의 장애를 벗어나게 된다고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만일 글이나 뜻의
두 게송을 부지런히 받들어 지니면
공덕의 수(數)가 열 가지 있으니
이를 뛰어난 지혜라고 한다.
착한 종자가 원만함을 얻고
죽을 때에 환희가 뛰어나고
생을 받음이 하고 싶은 대로 따르고
염생지(念生智)가 또한 이루어진다.
태어나는 데마다 항상 부처님을 만나고
법을 듣고 믿음과 지혜를 얻으며
두 가지의 장애를 멀리 여의고
위없는 도를 속히 이룬다.
[釋] 여기서 셋째 게송은 대승을 받들어 지녀 공덕을 모음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이 공덕에는 열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일체 선근의 원만한 의지를 성취하는 것이요,
둘째는 목숨이 마칠 때를 임하여 위없는 기쁨을 얻는 것이요,
셋째는 일체의 처소에 원함을 따라 태어남을 받는 것이요,
넷째는 모든 태어나는 곳에서 자기 성품의 염생지(念生智)를 얻는 것이요,
다섯째는 태어나는 곳마다 항상 부처님 만남을 얻는 것이요,
여섯째는 항상 부처님의 옆에 있어서 대승의 법을 듣는 것이요,
일곱째는 증상하는 믿음의 뿌리를 성취하는 것이요,
여덟째는 증상의 지혜의 뿌리를 성취하는 것이요,
아홉째는 미혹과 지혜의 두 가지의 장애를 멀리 여읨을 얻는 것이요,
열째는 위없는 보리의 성취를 얻는 것이다.
만일 사람이 일체의 대승 경전에 있어서 만일 경문이든지 또는 경문의 뜻이든지 한 구절이라도 바로 부지런히 받들어 지니면 곧 이와 같은 열 가지의 공덕을 얻게 된다.
여기서 마땅히 알 것은, 현재의 세상에서는 처음 두 가지의 공덕을 얻게 되고 미래의 세상에서는 나머지 여덟 가지의 공덕을 얻는 등 점차적으로 늘어나고 뛰어나게 되어간다는 것이다.
[대승의 법을 설하는 공덕]
이미 대승의 법을 지니는 공덕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대승의 법을 설하는 공덕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지혜가 적절함과 물러서지 아니함과
큰 자비와 명칭(名稱)이 멀리 남과
선교방편(善巧方便)으로 모든 법을 설함은
마치 해가 세간에서 빛남과 같다.
[釋]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다섯 가지의 인(因)을 구족하면 설법을 잘한다고 이른다.
첫째는 전도되게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혜가 적절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둘째는 항시 말한다. 그것은 물러서지 아니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셋째는 번뇌에서 벗어나기를 구하여 말한다. 그것은 큰 자비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넷째는 믿을 수 있도록 말한다. 그것은 이름과 칭호가 멀리까지 들림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근기를 따라 말한다. 그것은 선교방편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이 다섯 가지의 인으로 능히 법을 잘 설하여 중생들을 인도하여 공경하는 마음을 많이 내게 한다. 비유하면 해가 솟아서 세간을 비추는 것과 같다.
「홍법품(弘法品)」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