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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세품경 제5권
[관찰하는 열 가지]
보현보살이 말하였다.
“보살이 관찰하는[觀] 데에 열 가지가 있습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그 참된 이치[眞諦]를 관찰하면서 착한 업을 짓고 세우고,
미묘한 색(色)을 보고 그 근원을 모두 통달하여 수명이 끝나는 것 같이 관찰하며,
생(生)을 받는 것을 보고도 탐하거나 의지하거나 시끄러운 대중 모임을 좋아하지 않고,
일체의 근성[根]을 보고서 분별하여 모든 무너진 근성[敗根]을 교화하며,
모든 법을 관찰하여 법계를 파괴하지 않고,
눈앞에서 모든 법을 보면서 불안(佛眼)을 체득하며,
지혜의 성스러움을 체득하여 상응하는 데에 따라 설법하며 무생의 법인[無所從生法忍]으로 마지막에는 모든 부처님 법의 불퇴전의 자리[不退轉地]를 체득하고,
모든 진로와 삼계의 뭇 재난과 성문ㆍ연각의 작은 길[徑路]를 제거하며,
아유안(阿惟顔)을 관찰하여 모든 부처님 법에서 자재함을 얻고,
기쁜 법을 나타내 도의 뜻[道意]을 잘 알면서 시방의 모든 존재를 널리 나타내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보살의 열 가지 관찰입니다.
[뒤돌아보는 열 가지]
보살이 뒤돌아보는 데[顧視]에 열 가지가 있습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모든 빌고 청하는 것[乞求]을 보면 해치려는 생각을 품지 않고 그의 원하는 것에 따라 기쁘게 해줍니다.
금계를 범한 이를 보면 모두 일체지의 계율을 건립합니다.
모든 중생으로서 성내는 뜻을 품은 이를 보면 인욕의 뜻을 알고 이 부처님의 어짊[仁]으로써 권유하여 나아가게 합니다.
게으른 이를 보면 이미 행을 여의지 않으면서 권하고 도와 대승을 배우게 합니다.
마음이 산란한 이를 보면 교화하면서 심란하지 않은 각지(覺地)와 모든 신통과 민첩한 지혜[敏慧]를 건립합니다.
나쁜 지혜[惡智]를 지닌 이를 살펴 그를 위하여 일찍이 모든 사견(邪見)을 품는 일이 없으면서 남음이 없게 합니다.
착한 벗과 여래의 배울 바를 참되게 살피면서 부처님의 법을 건립합니다.
경에서 들은 대로 그 근원을 관찰하면서 위없는 뜻을 닦습니다.
중생을 돌보면서 모두 다 초췌(憔悴)하다는 생각을 품고 크게 가엾이 여김을 나타냅니다.
모든 부처님 법을 돌아보면서 바른 깨달음과 모든 신통과 민첩한 지혜를 이루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보살이 뒤돌아보는 열 가지입니다.
[기운을 뻗는 열 가지]
보살이 기운을 뻗는 데[頻申]에 열 가지가 있습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코끼리와 같이 기운을 뻗으니,
모든 하늘ㆍ용ㆍ신ㆍ아수라[阿須倫]ㆍ가루라[迦留羅]ㆍ긴나라[甄陀羅]ㆍ마후라가[摩睺勒]의 온갖 대중들이 모이는데,
올 수 없는 이는 마치 용과 코끼리같이 탈 것을 만들어 마음으로는 중생을 대신하여 무거운 짐을 지겠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교룡(蛟龍)이 구름을 일으켜 비를 퍼붓고
번갯불을 번쩍이면서 천둥소리를 내는 것과 같으니,
근(根)ㆍ역(力)ㆍ각의(覺意)와 선정ㆍ해탈ㆍ삼매의 감로수(甘露水)를 펴고 법의 비를 널리 퍼뜨립니다.
큰 봉황왕(鳳凰王)처럼 기운을 뻗으니,
모든 무명(無明)의 어리석음과 어둠을 뽑아내고 뿌리와 줄기에 깊이 들어가 애욕의 샘물을 녹여 없애며,
그 근원과 거리끼는 문을 구제하여 욕심과 독해(毒害)와 진로와 하자(瑕疵)의 모든 더러움을 면하고 벗어나게 합니다.
사자처럼 기운을 뻗으니,
두려움을 여읜 큰 지혜 등의 검(劍)으로 대중에 있으면서 외학(外學)을 소멸하며 조복시킵니다.
용맹스럽게 기운을 뻗으니,
모든 원적(怨敵)과 애욕과 하자와 더럽고 혼탁한 어둠을 제거하면서 교화하기 어려운 것을 조복하는 것이 마치 큰 장수가 적을 항복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성스런 지혜[聖慧]로 기운을 뻗으니,
5음(陰)ㆍ4대(大)ㆍ모든 입(入)과 12인연 등을 버리고 더욱 자라지 못하게 하면서 지혜로 극히 높은 세력의 법을 나타냅니다.
총지(總持)로 기운을 뻗으니,
뜻은 매우 강건한 데 머물며 들은 것들을 곧 받아 지녀서 빠뜨리거나 잊는 일이 없으며,
이미 받아 지닌 것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연설합니다.
변재(辯才)로 기운을 뻗으니,
근기에 맞추어 대답하고 장구(章句)를 연설함이 헤아릴 수 없어도 분별하고 차례대로 펴면서 막힌 것이 없으며
중생을 즐겁게 하고 침범하거나 속이는 일 없이 본말(本末)을 다합니다.
부처님과 같이 기운을 뻗으니,
사자(師子)의 수승한 자리에 있으면서 악마의 관속을 항복받고 넓은 지혜와 모든 신통과 민첩한 지혜를 완전히 갖추며
한 생각 동안에 때에 응하고 평등하게 지혜를 이루어 최정각이 되고 밝게 통달한 보호[護]로 곧 뜻과 같이 이루면서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에 이르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보살이 기운을 뻗는 열 가지의 일입니다.
[보살의 사자후 열 가지]
보살의 사자후(師子吼)에 열 가지가 있습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나는 장차 성불하여 성도(聖道)를 품으리라’고 하면서 크게 사자처럼 외칩니다.
아직 제도되지 못한 이를 제도하고 아직 해탈하지 못한 이를 구제하며
편안하지 못한 이를 안락하게 하고 무위(無爲)에 이른 이는 열반[泥洹]을 취하게 하면서 중생을 가엾이 여깁니다.
부처님의 가르침과 법의 가르침과 성인 대중의 교훈을 수순하면서 거역하지 않고 여래께서 계신 곳에서 반복(反復)하게 됩니다.
견고한 원(願)으로 모든 부처님 국토를 청정하게 하고 모든 것을 다 용감하게 통달하며 금계를 삼가고 조심하며 모든 악취(惡趣)를 제거하여 다 함께 녹여 쉬게 하면서 사자처럼 외칩니다.
몸은 빠짐없이 부처님의 몸ㆍ입ㆍ마음을 갖추고 상호(相好)를 장엄하여 모든 공훈을 구하되 만족해함이 없고 부처님 지혜를 원만하게 갖추며
성인의 밝고 마땅함[明宜]을 그리워하면서 게으르지 않고 뭇 악마를 항복시켜 해되는 일[害事]이 없게 합니다.
바르고 참된 행을 받들면서 진로의 업[塵勞業]을 버리고 모든 법에는 나[我]도 없고 사람[人]도 없고 오래 삶[壽]도 없고 목숨[命]도 없음을 알고 보면서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으로 마음은 마치 허공과 같이 청정하여 때[垢]가 없으며,
곧 모든 법전(法典)을 알고 무생의 법인(法忍)을 체득하면서 사자처럼 외칩니다.
맨 마지막의 보살은 청정하여 때[垢]를 여의고 명(明)을 알며
모든 부처님 국토를 밝게 빛내고 감동(感動)시키면서 대중과 제석ㆍ범왕과 사천왕에게 고(告)합니다.
나고[生] 아직 나지 않은 것[未生者]을 보고 탄식하면서
한계나 막힘이 없는 끝없는 지혜로써 각의(覺意)를 자세히 관합니다.
이미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이루어 모두 아무것도 감수함이 없으니 크게 기뻐합니다.
또 일곱 걸음 걸으면서
‘나는 세상에서 존귀하며[世尊] 지극히 뛰어나 견줄 이 없으며 장차 중생의 생로병사를 제거하리라’ 하고
행한 대로 말하면서 사자처럼 외칩니다.
이것이 바로 보살의 열 가지 사자후입니다.
[보시가 청정한 열 가지]
보살의 보시가 청정한[施淨] 데에 열 가지가 있습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중생에게 평등하게 보시하되 마음에 치우침이 없고 기뻐하는 바에 따라 보시합니다.
모든 원을 두루 갖추면서 산란하지 않게 보시하고 가엾이 여기는 업을 끊지 않습니다.
때맞추어 보시하니 여러 사람의 모든 근원을 알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일부러 보시하지 않으며 모든 잡다한 생각을 떠납니다.
잘 베풀면서 보시하고 마음의 애착을 모두 버리고 몸 안이나 몸 밖의 것에 대해 애착하지 않습니다.
모든 아끼는 것을 보시함으로써 구경(究竟)에는 준 것에 대해 청정하게 됩니다.
베풀어 준 것으로 부처님 도를 권하여 돕고 유위와 무위로 버리면서 이러한 것을 깨우쳐 교화하는 것입니다.
베풀어 주는 사람은 구경에는 통달하기에 이르러서 도량(道場)을 이루게 됩니다.
보시에는 세 가지 경우[三場]인 보시하는 이와 받는 이와 그 마음의 작용[處]이 청정해야 합니다.
모든 법을 생각[念]하되 마치 허공과 같이 평등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보살의 보시가 청정한 열 가지의 일이니,
만일 여기에 머무르면 여래의 위없는 대보시[大施]를 체득합니다.
[계율이 청정한 열 가지]
보살의 계율이 청정한[戒淨] 데에 열 가지가 있습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몸으로 하는 행이 청정하면서 세 가지의 일[事]을 수호하는 것과,
입으로 하는 말이 청정하면서 입의 네 가지 허물[過]을 버리는 것과,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의 더러움[三穢]을 버리면서 성냄이나 어리석음이 없는 것과,
금계(禁戒)를 기르면서 어떤 것도 범하지 않고 허물이 있는 이를 보면 때에 따라 편안하게 하면서 탐욕의 업을 녹이고 성냄이나 어둠을 버리는 것과,
그 덕이 천상과 세간을 밝게 비추고 도의 마음을 지키면서 대승을 생각하며 좋아하는 것과,
모든 여래를 받들면서 바른 가르침을 배우고 무위의 계[無爲戒]로 잠자코 계율의 금지를 따르는 것과,
모든 중생의 재난과 뭇 죄를 제거하고 뭇 악을 멀리 여의는 것과,
온갖 덕의 근본에 따르면서 사견을 끊는 것과
금계로써 자만하지 않는 것과,
중생을 어루만져 기르면서 크게 가엾이 여기는 힘을 좇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보살의 계율이 청정한 열 가지입니다.
[인욕이 청정한 열 가지]
보살의 인욕이 청정한[忍淨] 데에 열 가지가 있습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만일 사람이 욕설을 퍼붓고 나쁜 소리로 해치더라도 잠자코 응하지 않으면 인욕이 청정하고 또 중생을 보호하는 것이고,
기와나 돌로 때리고 던지거나 칼이나 몽둥이로 몸을 해치더라도 받아들이며 겨루지 않으니 그와 나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며,
설령 그를 향해 성을 내고 원망하더라도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 본래부터 성질에 해치려 함이 없는 것이고,
만일 업신여기는 이에게 나쁜 생각을 품지 않고 밝은 빛으로 감당해 내고 만일 와서 생각을 돌리면 능히 돕고 따르게 하는 것이며,
차라리 몸과 목숨을 버릴지언정 참으면서 거역하지 않고 자만하는 생각을 버리고 아직 배우지 못한 이를 가벼이 여기지도 않는 것이고,
스스로 몸을 허공과 같이 보고 탐하지 않고 마치 요술과 같다고 관찰하며 참는 것이며,
어떤 이들이 악으로 향하여도 마음에 해를 품지 않고 그와 나라는 생각[彼我想]이 없는 것이고,
진로를 수순하면서 갖가지 독[衆毒]을 녹여 없애는 것이며,
모든 보살의 지혜로 부드럽고 온화하게 인욕하면서 모두 법을 다하여 없어짐을 일으켜 나타내는 것이고,
모든 통혜(通慧)의 경계로 다른 사람에게 숭상할 바는 없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보살의 열 가지 청정한 인욕입니다.
[정진이 청정한 열 가지]
보살의 정진이 청정한[精進淨] 데에 열 가지가 있습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몸으로 행하는 정진이 청정하니 모든 보살들을 공경하고 귀의하면 곧 성현(聖賢)과 적정에 든 중우(衆祐:세존)를 위합니다.
입으로는 말로 부지런히 힘쓰면서 모든 여래께서 널리 펴신 바를 듣고 모두 알고 기억하면서 지니며, 모든 부처님의 덕을 찬탄하고 들은 법 그대로를 중생을 위하여 연설하되 고달파하지 않습니다.
마음과 생각이 곱고 깨끗하여 자(慈)ㆍ비(悲)ㆍ희(喜)ㆍ호(護)와 선사(禪思)ㆍ해탈문ㆍ정의(定意) 정수(正受)에 있어서 선권(善權)을 버리지 않고 겁내거나 하열하지 않으면서 언제나 정진으로 닦으며 아첨을 품지 않고 맑고 깨끗한 행에 나아가면서 질박하고 정직하여 모든 행에 잡다하거나 번쇄함이 없습니다.
지성(志性)이 온화해지도록 힘쓰고 머물거나 가는 곳마다 언제나 남다르게 뛰어나 그 지혜가 한층 더 늘어나면 맑고 깨끗한 법은 드디어 광명이 치성하면서 널리 퍼집니다.
계(戒)도 없고 허망함도 없으면서 보시로 뜻을 조화하고 인화(仁和)를 밝게 알면서 계(戒)와 다문[聞]과 베풀어 주는[施與] 데에 영원히 방일함이 없으며 여쭙고 받는 일을 버리지 않습니다.
장차 불수(佛樹)에 나아가 악마를 항복받아야 하니, 그것을 위하여 청정하게 정진하면서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과 애욕과 진로와 모든 집착과 사견과 음개(陰蓋)의 거리낌을 끊습니다.
지혜의 광명을 이루어 언제나 진실로 사유하면서 착하고 밝은 마음에 이르고 뜨거운 번뇌를 품지 않으면서 업을 짓지 않으며 또한 모든 부처님 법에 상응하고 상응하지 않는 것도 없는 데에 이르게 되고 그를 위하여 언제나 부지런히 닦으면서 마음을 열어서 받습니다.
입과 마음으로 영원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보는 것과 보지 않음을 평등하게 하여 넓은 문[普門]의 경계를 진실로 깨달아 알고 아는 것에 따라 순종하며, 법의 광명을 성취하고 강하고 온화한 세력으로 머무르는 지위[住地]를 모두 초월하여 모든 부처님의 연설을 좋아하고 불신(佛身)에는 어떠한 번뇌도 없다는 것을 압니다.
현생에서 태(胎)에 들어가고 출생하여 세속에 있으면서 나라를 버리고 왕을 버리고 최정각(最正覺)을 이루어 법륜을 굴립니다.
위대한 멸도(滅度)로 보이면서 모두 다 보현의 행을 갖춥니다.
이것이 바로 열 가지 정진의 청정한 것입니다.
[선정이 청정한 열 가지]
보살의 선정이 청정한[禪淨] 데에 열 가지가 있습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언제나 출가를 바라면서 뜻을 한마음에 두면 곧 청정하게 되고,
온갖 탐욕을 버리면서 착하고 친한 벗을 만나고 때맞추어 고요한 데에 이르니 평등하게 도(道)를 알기 때문이며,
한적한 데에 거처함을 익히면서 곱고 깨끗한 행을 익히고 나[吾我]라는 것에 계탁하지 않으면서 또한 연모하지도 않고,
모든 수면(睡眠)을 제거하면서 시끄러움을 버리고 고요함을 좋아하면서 마음을 부지런히 닦으며,
모든 감관[根]의 문이 고요하면서 자기의 지혜에 한마음이 되면 온갖 칼과 쇠사슬[枷鎖]의 위험이나 흉악한 사람에게 피해나 장애를 받지 않고,
도의 길[道路]과 깨달음의 마음[覺意]으로 때마다 고요하게 모든 것을 닦으며 지혜로써 관찰하며,
일심(一心)에 대해 사유하여 선권(善權)에 의하기 때문이고,
다시 되돌아서 욕계(欲界)에 들어와 신통의 자취를 밟도록 일으키며,
모든 중생의 모든 근성을 분별하여 고요한 데에 들게 하여 아무것도 없음[無所有]을 좋아하고,
담박(澹泊)한 문으로 부처님의 정의(定意)에 이르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선정이 청정한 열 가지입니다.
[지혜가 청정한 열 가지]
보살이 지혜가 청정한[智淨] 데에 열 가지가 있습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청정한 지혜로써 그 보응(報應)을 알고 과실(果實)을 바라지 않으면서 일체를 제도하며 눈으로 본 것에 대해 언제나 안락과 화합을 도모하면서 다투지 않고 끊을 것을 분명히 알면서 또한 항상 있다[常]고 헤아리지 않습니다.
인연(因緣)에 들어가서 참된 이치의 지혜[眞諦慧]를 따르고 모든 사견을 버리면서 중생을 섭수하되 일찍이 쉬거나 그만두지 않습니다.
모든 중생들이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행하는 일을 보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自然] 보면서 마치 요술이나 허깨비[幻化]와 같다고 여깁니다.
큰 변재(辯才)의 지혜로 성스런 광명에 들어가 청정한 지혜로 삼고 장구(章句)를 분별하면서 널리 펴되 막힘이 없습니다.
온갖 악마와 뭇 외도ㆍ이학과 성문ㆍ연각을 멀리하면서 모든 여래의 선권(善權)의 지혜에 들어갑니다.
모든 부처님의 청정함과 중생의 청정함을 보며 모든 법의 고요함을 보고 모든 세계 국토는 있는 그대로여서 마치 허공과 같다고 관합니다.
넓은 지혜가 청정하고 이 가운데 노닐면서 무위상(無爲相)에 이르러 총지를 체득합니다.
변재(辯才)를 널리 펴면서 선권방편에 머무르고 모든 도무극으로 노닐고 거니는 데마다 대중과는 뛰어나게 다릅니다.
한마음으로 생각하는 동안에 모든 법의 평등함을 알고 지혜는 마치 금강과 같으며 성을 내거나 원한을 품지 않고 두렵다는 생각도 없습니다.
청정한 지혜로 모든 법의 거룩한 정수리[聖頂]의 지혜를 모두 체득합니다.
이것이 바로 지혜가 청정한 열 가지입니다.
[인자함이 청정한 열 가지]
보살의 인자함이 청정한[慈淨] 데에 열 가지가 있습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평등하게 중생을 사랑하면서도 청정한 마음에는 여러 가지가 없고,
언제나 가엾이 여기는 행으로 뭇 사람을 위하여 짐을 지고서 어루만져 기르며,
몸을 돕고 사랑하면서 중생의 나고 늙고 죽는 재난을 함께 구제하고,
중생을 버리지 않으면서 덕의 근본을 일으키며,
해탈의 어짊[仁]을 행하면서 중생의 진로와 애욕을 모두 끊어 없애고,
도(道)의 뜻을 잊지 않고 중생에게 가르치고 타이르면서 통혜(通慧)의 마음에 들어가며,
사람들에게 해가 없게 하면서 평등한 빛을 널리 펴고,
허공과 같이 두루한 사랑으로 일체를 돕고 수호하며,
법을 좇아 닦고 가엾이 여기면서 마치 참된 이치의 무루(無漏)의 사랑과 같이 교화하고,
그것을 얻음으로 인하여 보살의 적연(寂然)한 데에 드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보살의 인자함이 청정한 열 가지입니다.
[크게 가엾이 여김이 청정한 열 가지]
보살의 크게 가엾이 여김이 청정한[大哀淨] 데에 열 가지가 있습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견줄 데 없이 크게 가엾이 여기니 자기 몸을 위하는 까닭입니다.
크게 가엾이 여김을 싫어하지 않으니 중생을 위하는 까닭입니다.
고뇌를 만나도 근심 걱정하지 않고 악취(惡趣)와 8난(難)에 처한 모든 이를 가엾이 여기며 그곳에 나게 되면 힘써 그들을 구제합니다.
하늘이나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크고 청정한 자비[悲]를 일으키고 덧없음을 널리 강설하면서 온갖 사견에 떨어진 이들을 가엾이 여기며 헤아릴 수 없는 겁 동안 그로 인하여 덕의 갑옷[德鎧]을 입고 아직 제도되지 못한 이를 버리지 않으면서 안락하게 한 뒤에는 물러서지 않습니다.
가엾이 여기면서 중생에게 권하여 큰 안락을 얻게 하고 온갖 업(業)을 짓되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자기 마음의 가엾이 여김이 청정해지면 모든 뒤바뀐 이와 세간의 무지(無智)에 머무르는 이를 가엾이 여기면서 의지함을 멀리하게 하고 때에 맞추어 설법합니다.
모든 법은 본래부터 있는 그대로 청정하며 텅 비어서 견실(堅實)함이 없지만 모든 객진(客塵)에 더럽혀집니다.
보살은 이것을 알기 때문에 중생에 대하여 크게 가엾이 여기는 생각을 일으켜 청정하지 못한 이로 하여금 영원히 청정한 곳을 얻게 합니다.
때[垢]가 없이 밝게 빛나면서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고 모든 법을 분별하되 마치 공중에 날아다니는 새의 발자국과 같이 합니다.
중생은 이 온갖 경의 뜻에 대하여 어둡고 분명히 알지 못하므로 보살이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켜 그들을 위하여 큰 지혜로 멸도(滅度)를 취하는 것을 나타내고 참된 이치[眞諦]로 자취[跡]를 밟습니다.
이것이 바로 보살의 크게 가엾이 여김이 청정한 열 가지 입니다.
[기쁘게 하는 마음이 청정한 열 가지]
보살의 기쁘게 하는 마음이 청정한[喜淨] 데에 열 가지가 있습니다.
기뻐하면서 큰마음[大心]을 일으키고 기쁨으로 청정함을 삼는 것이고,
가진 모든 물건을 보시하면서 아까워하거나 괴로워하지 않고 겁이 많거나 허약함도 품지 않는 것이며,
계(戒)를 훼손한 이를 가르칠 때에는 그 중생에게 나쁘게 해도 모두 참는 것이고,
모든 서원을 통달하여 경의 이치로 인해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뜨거운 번뇌를 청정함을 기뻐하는 것으로 삼지 않는 것이며,
뜨거운 번뇌를 생각하지 않고 법락(法樂)을 즐김으로써 온갖 탐욕의 즐거움을 버리는 것입니다.
중생에게 경전의 요의(要義)를 나타내 보여 그로 하여금 모든 탐욕과 이익의 은혜를 버리게 하는 것이며,
부처님을 뵙되 싫증냄이 없고 받들어 공경하면서 스스로 귀의하며 법에 파괴됨이 없는 기쁨으로써 청정함을 삼는 것이고,
모두가 선정의 일심(一心)으로써 해탈문과 정의(定意)ㆍ정수(正受)에 이르면서 스스로 재미있게 즐기는 것이며,
다시 이 법으로 다른 사람을 교화하되 고요하고 능히 어질면서 선정으로 성을 내거나 원한이 없는 것이고,
지혜를 으뜸으로 삼아 모든 사견을 버리고 보살행을 갖춤을 기쁘게 하는 마음이 청정함으로 삼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기쁘게 하는 마음이 청정한 열 가지입니다.
[보호함이 청정한 열 가지]
보살의 보호함이 청정한[護淨] 데에 열 가지가 있습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모든 사람들이 유위(有爲)를 탐내고 좋아할 적에 그 중생을 교화하여 무위(無爲)에 이르게 하면 곧 청정하게 보호함이 됩니다.
본래 성품이 욕심이 없는 법에 있고 도리어 세간에 머물면서 세간[器]에 상응하지 않음을 보니 위험하거나 해롭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법에 상응한 이를 보면 방편을 나타내어 청정한 법에 뜻을 두면서 성문이나 연각의 업과 학(學)ㆍ불학(不學)의 일을 사모하지 않으며 온갖 애욕의 즐거움을 탐내지 않습니다.
업(業)이 진로에 있어도 마음은 항상 전일하게 경전에 두도록 힘쓰며 성문이나 연각의 생사를 싫어합니다.
처소에 머무르지 않고 세속의 말과 다른 이를 위험하게 하는 말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때에 따르지 않는 말을 떠납니다.
성문이나 연각은 언설로써 보살도를 어지럽히고 상실하게 하므로 그와는 어울리지 않으면서 중생을 교화합니다.
이미 이해한 힘으로 4대(大)를 구제하고 모든 입(入)이 고요히 사라지며 법을 알지 못하면 때맞추어 자세히 관합니다.
그 어떤 보살이 본래부터 여래의 지위[如來地]에서 변화를 나투면 보살은 두 가지 일[二事]을 떠나서 갑작스러움도 없고 돌연함도 없으며 뽐내지도 않고 낮추지도 않는다고 관찰합니다.
많은 생각과 허망한 생각으로 생기는 병폐를 떠나 마음이 언제나 고요하게 가라앉으며 진실한 이치의 법에 처하여 법인(法忍)을 체득합니다.
이것이 바로 보호함이 청정한 열 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