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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정론 제8권
12. 귀심유지편(歸心有地篇)
1) 양나라 무(武)황제가 도교를 버리는 칙문(勅文)
천감(天監) 3년 4월 8일에 양나라 황제 난릉 소연(簫衍)은 머리를 조아리고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시방의 높은 법과 시방의 보살승에게 화남(和南)합니다.
삼가 경문의 현묘한 뜻을 보니, 이치를 반드시 전표(銓表)하여 “보리의 마음을 발한다”라고 한 것은 곧 부처의 마음이다.
그 나머지의 온갖 착한 것은 비유하여 말할 수가 없으니 중생으로 하여금 삼계의 괴로운 문을 벗어나서 무위(無爲)의 뛰어난 길에 들어가게 합니다.
공을 표(標)하고 이치를 살핌에 연현(淵玄)하고 미묘하며 뜻에 나아가 말을 세워서 용(用)을 인하여 나타남을 이룬다. 그러기에 여래의 누(漏)가 다한 지혜는 견고히 깨달음을 이루고, 지극한 도는 기틀에 통달하는 덕이 원만하여 성인을 취합니다.
지혜의 횃불을 발하여 미혹한 이를 비추고 법의 흐름을 거울삼아서 더러움을 맑힌다. 상서의 자취를 하늘 가운데 열었으며 신령스러운 거동을 상(像) 밖에 불태워서 중생들을 고통 바다에서 건지고 함식(含識)을 인도하여 열반에 나가게 하며 항상하고 즐거운 높은 산에 올라서 애욕의 바다의 깊은 즈음에 벗어납니다. 말은 4구(句)에 어긋나고 의론은 백비(百非)에서 초절(超絶)하였습니다.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자취를 응하여 정반(淨飯) 왕궁에 남을 보이셨고, 왕궁에 모양을 탄생하시어서 삼계에 걸음하여 높은 이가 되었으며, 보리의 나무에 빛을 이루시어 널리 대천세계(大千世界)에 비춤을 흘리었습니다.
이 국토의 근기와 정식(情識)이 얕고 얇아서 싫어하고 게으름을 내기 좋아하기에 스스로 2개월 뒤면 쌍림(雙林)에 이를 것을 기약하셨으니, 이는 또한 원상(圓常)을 담설(湛說)하신 것이요, 또 학수(鶴樹)에서 빛남을 잠기신 것입니다.
아사세왕(阿闍世王)이 죄를 멸하였고 바수밀다(婆藪密多)가 재앙을 덜었으니 그들이 만일 큰 성인의 법왕(法王)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뉘라서 구제하여 인접(引接)하겠습니까? 자취에 있어서는 비록 숨으셨지만 그의 도는 이지러짐이 없습니다.
이 제자가 오랫동안 미혹하고 거칠어서 노자를 탐하여 섬겨서 역대(歷代)로 서로 이으면서 이 삿된 법에 물들었으나 익힌 인(因)이 좋게 발하여 미혹함을 버리고 돌아설 줄 알았습니다.
이제 옛날에 익혔던 것을 버리고 바른 깨달음에 귀빙(歸憑)합니다.
원하오니 미래의 세상에 동남(童男)으로 출가하여서 경의 가르침을 널리 펴서 중생들을 화도(化導)하여서 다 함께 성불하고, 여러 지옥에 들어가서 널리 군맹(群萌)을 제도하겠습니다.
차라리 바른 법 가운데 있으면서 길이 악도에 빠질지언정 노자의 가르침을 의지하여 잠깐 하늘에 남을 얻는 것을 즐겨 하지 아니합니다. 대승의 마음을 건너고 2승(乘)의 생각을 여의겠습니다.
바로 원하오니 모든 부처가 증명하시고 보살들이 섭수(攝受)하옵소서. 소연(簫衍)이 화남합니다.
칙지(勅旨)를 신필(神筆)로 스스로 중운전(重雲殿)의 중각 위에서 쓰면서 보리의 마음을 발하니 그때에 승속[黑白] 2만 사람이 또한 같이 발심하여 받아 가졌다.
[칙령]
문하에 칙명을 내렸다.
“큰 경에서 말한 도에 아흔여섯 가지가 있는데 오직 부처님의 한 도만이 바른 도이고 그 나머지의 아흔다섯 가지는 다 외도이다. 짐이 외도를 버리고 여래를 섬긴다. 그러니 만일 공경(公卿)으로서 이 서원(誓願)에 들어오는 자가 있으면 각각 보리의 마음을 발해야 할 것이다.
노자와 주공과 공자 등은 비록 여래의 제자들이지만 교화를 폄이 이미 삿되어서 세간의 착함을 한데 그쳤고 범부를 고쳐 성인을 이루지를 못하였다. 그러니 공경과 백관(百官)과 후왕(侯王)과 종실(宗室)들은 거짓을 돌려 참됨에 나아가고 삿된 것을 버리고 바른 데 들어와야 한다.
경의 가르침인 『성실론』에서
‘만일 외도를 섬기는 마음이 무겁고 부처의 법을 믿는 마음이 가벼우면 이것이 곧 삿된 견해이고, 만일 마음이 하나여서 다 같이 무기(無記)면 착함과 악함에 해당하지 않으며 부처를 섬기는 마음이 강하고 노자를 믿는 마음이 적은 자는 이를 청신(淸信)이라 한다’ 하였다.
청신이라 함은 청(淸)은 밖과 안이 함께 청정하여서 때의 더러움과 미혹한 누(累)가 다 없어진 것이요, 신(信)은 바름을 믿어 삿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기에 청신한 부처님의 제자라 말하고 그 나머지의 여러 착함은 다 삿된 견해여서 청신이라고 일컬을 수가 없다. 문하에서 속히 시행하여라.”
천감(天監) 3년 4월 11일 공덕국주(功德局主) 진석(陳奭)ㆍ상서(尙書) 도공덕주(都功德主) 고(顧)ㆍ상서령(尙書令) 하경용(河敬容)ㆍ중서사인(中書舍人) 임효공(任孝恭)ㆍ어사중승(御史中丞) 유흡(劉洽)ㆍ조고사인(詔告舍人) 주선(周善).
2) 소릉왕(邵陵王)이 칙명을 받들어 노자의 법을 버리고 보살계 받기를 허락해 달라고 청함
신(臣) 윤(綸)은 아뢰나이다.
신이 듣기로는 여래의 단엄(端嚴)하신 상호는 높고도 높아 유정(有頂:有頂天)을 능가하시고 미묘(微妙)하신 색신(色身)은 밝고도 밝아 무제(無際:끝없는 세계)에 드러나신다 합니다.
금륜(金輪:금륜왕의 상징물)에 의하시어 만물을 계도하시고 은속(銀粟:돈륜왕과 속산왕 등 군소왕)에 맞추어 범인에 응하시며, 반야의 예리한 검을 갈고 열반의 열매를 거두시며 생사의 고해(苦海)에 배를 띄워 상락(常樂)의 저 언덕으로 인도하시옵니다.
하옵기에 자비의 구름을 드리우사 감로의 비를 내리시니 칠처(七處)와 팔회(八會)에서 교화하신 이치가 끝이 없고 오시(五時)와 사제(四諦)로써 이익을 주신 방편이 다함이 없으시니 모두가 얼음이 맑고 햇빛이 밝고 안개가 걷히고 구름이 흩어지며 타오르는 불꽃이 빛을 가리우고 뜨거운 모래바람이 저절로 고요해진듯 함을 얻게 하시옵니다.
실로 세속에 드셔서는 어리석음을 감화시키시고, 세속 밖에서는 이 진여를 성취하셔서 삿된 소견의 빽빽한 숲에 빠진 사람으로 하여금 법문을 우러르기에 게으름이 없게 하시고 갈애(渴愛)에 눈멀고 귀먹은 인사로 하여금 거룩한 진리를 흠모하여 돌아갈 곳을 알게 해 주시나이다.
도수(道樹:보리수이나 여기서는 부처님을 가리킨 듯)가 가유(迦維:가비라국)에서 시작하여 덕음(德音:불법)이 서울[京洛]에서 성대해짐에 이르기까지 항성(恒星)이 나타나지 않음으로써 주(周) 때에 그 조짐이 비추었고 만월(滿月) 같이 둥근 모습이 한왕(漢王)의 꿈에 보였나이다.
오법(五法)으로 전하시니 만덕(万德)이 비로소 싹텄고 화락(華洛:낙양중화)에 옛법이 사라지더니 고매한 도덕의 바람이 드높이 일었나이다.
삼명(三明)을 의지하여 미혹한 길목의 실수를 비추었고, 칠각(七覺)을 의지하여 긴긴 밤의 고통을 구제하였나이다.
때마침 황제보살(皇帝菩薩)께서 천명에 응하사 천하를 통치하시고 어좌에 앉으사[負] 백성을 다스리시니 빛이 우주를 감싸고 광채가 땅 끝에 미치시옵니다. 무애변(無碍辯)을 드리우사 만백성을 두루 접하시고 본원력(本願力)으로 뭇 중생을 거두어 주시나이다.
그러므로 어디서나 병에 맞추어 약을 지으시고 권(權:方便)으로써 그 원인[因]을 드러내시되 일승(一乘)의 취지 드높이시고 십지(十地)의 터를 넓히셨나이다.
그런 까닭에 만방(万邦)이 회향(廻向)하여 모두가 바른 식견(識見)을 물려받았고, 유현(幽顯)의 영기(靈祇)는 모두가 친절한 구제를 받았나이다.
사람들은 부처님과 가까워지려는 원을 세웠고 중생들은 보리심을 일으키고는 모두가 근본 경지로 돌아가기를 바랐으며 근원으로 돌아가는 길목을 기뻐했나이다. 모두가 자비를 보전하고 다 같이 인욕을 닦았으니, 이른바 덮어주고 이롭게 해 주며 돌다리와 나룻배가 되어 주는 것이옵니다.
도법이 이미 이와 같이 널리 퍼지자 백성 또한 감화되었으니 이에 응진(應眞)의 비석(飛錫)의 그림자가 허공에 이어졌고 사도와 외도를 부수는 힘으로 국정을 굳게 지탱하고 있사오며, 가람과 정사의 보찰이 추녀를 맞대어 이어졌고, 도와 경전을 논하고 전하는 소리는 간 곳마다 귀에 가득하나이다.
신은 지난날 근본이 되는 진리를 알지 못하고 잘못하여 외도의 법을 받았었사오니 마치 단 과일을 먹고자 하면서 쓴 씨앗을 심은 것 같고 기갈을 면하고자 하면서 도리어 바닷물을 찾는 것과 같았나이다.
이제 잘못 접어든 길을 깨닫고서야 비로소 가야 할 곳을 어렴풋이 알았사옵기에 보살대계를 받아 몸과 스스로의 마음을 단속하고 노자의 삿된 가풍을 버려 법류(法流)의 참된 가르침에 들고자 하오니, 바라옵건대 높으신 자비를 내리시어 허락하여 주옵소서.
천감(天監) 4년 3월 17일 시중(侍中) 안전장군(安前將軍) 단양윤(丹陽尹) 소릉왕 신 소륜(簫綸) 아룀.
[이에 대한 대답[勅]]
미혹을 고치고 바른 길로 들어오니 숙세에 수승한 인을 심었다 하리라. 더욱 용맹정진하도록 하라.
천감 4년 3월 18일 중서사인(中書舍人) 신(臣) 임효공(任孝恭) 발표함.
3) 상서(尙書) 우복야(右僕射) 채국공(蔡國公)에게 드리는 글
제법사(濟法寺)의 석법림(釋法琳)은 상서 우복야 채국공 좌하[足下]에 아룁니다.
법림은 초의(草衣)를 걸친 야객(野客)으로서 목실(木實)을 먹는 산인(山人)이니 마치 굽은 바늘과 같고 썩은 겨자를 닮았나이다.
세상에 알려질 만한 것이 없은즉 마땅히 평생 동안 입을 다물고 분수껏 지내야 할 것이온데 이미 덕을 안으로 쌓는 일에 부끄러움이 있고 명예는 겉으로 가득 채우는 일에 창피함이 있사오니 이 어찌 혜원(慧遠)을 저버리는 것뿐이겠습니까? 실로 도안(道安)에게까지 누를 끼치는 일이옵니다.
그러므로 청계(靑溪)에 뜻을 다하고 자개(紫蓋)에 마음을 붙이며 복선암(覆船巖) 밑에서 영원히 경서(經書)에 맛들이고 귀곡지(鬼谷池) 앞에서 영원토록 고기와 새나 구경하려 하거늘 어떻게 숲속을 떠나 다시 세속으로 들어갈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오랫동안 진천(秦川)에 떠돌다보니, 어느덧 초새(楚塞)와 멀어졌고 여덟 갈래 물에 부평초처럼 떠다니며 낙엽을 세 번이나 보았고 먹고사는 데 끄달리는 폐단이 이미 오래 되었으니 중숙(仲叔)의 정이 어디에 남아 있겠습니까?
영대(靈臺)에 누어서 한을 되씹고 백사(白社)에 거닐면서 흥을 돋우노라니 고향을 찾는 정[南巢之戀] 곱절이나 더하고 고향으로 가고픈 슬픔[北風之悲]은 더욱 간절하나이다.
태어난 바탕이 불우[坎]하고 타고난 기질이 우둔[迍邅]해서 공연히 『칠애(七哀)』를 읊조리고 헛되이 『구탄(九歎)』을 내뱉으면서 제몸을 어루만지며 외로운 제 그림자를 위로하지만 운수야 어쩌겠습니까? 더구나 병은 고황(膏肓)에 들고 풍(風)은 피부[腠理]에 얽히어 여러 해를 쉬었으나 조금도 차도를 느끼지 못하나이다. 심지어는 눈발에 비추고 반딧벌레를 모으려 해도 이미 근력이 쇠진해져서 구류(九流)와 칠략(七略)에서 들어갈 길[緣山]을 찾기 매우 어렵고, 만 권의 백가서적은 아직도 그 실천의 길이 묘연하옵니다.
전날 인편[傳子]에 글월[斐然]을 올렸으나 아직도 잘못된 근원을 다하지 못했으므로 이제 다시 『변정론』을 닦았사온데, 자못 경서(經書)에 갖추어지지 않은 것과 사적(史籍)에 충분치 못한 부분을 채우려고 짧은 지식을 다하였사오나 바로 되었는지 아닌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생각하옵건대 복야공께서는 장막 안에서 산가지를 세는 재주로 아형(阿衡)의 소임에 계시온데, 사람을 알아보시는 도량은 산과 바다[山濤]보다 넓으시고 선비를 제접하시는 마음은 다시 조무(趙武)에 견줄 만하십니다.
풍자(風姿)가 상명(爽明)하시고 지식[識度]은 넓으십니다. 어느덧 영사(靈蛇)의 구슬을 손에 쥐시더니 다시 형산(荊山)의 옥을 차셨습니다. 그러기에 모든 업무를 처리하심에 문장이 현란하심은 덕경(德鏡)과 진신(搢紳)들이 조야(朝野)에서 칭송하고 있나이다.
더구나 가문이 필해(筆海)로 불리시고 대대로 유종(儒宗)이라 일컬어지시건만 전생의 회포를 잊지 않으시고 어여삐 여기시는 방문을 주시니, 싸늘한 재가 다시 따뜻해졌고 죽었던 나무가 다시 살아났나이다.
옛날에 왕찬(王粲)이 글을 읽을 때엔 채씨(蔡氏)에게 자문을 구했고 상여(相如)가 시를 완성할 때엔 반드시 양후(楊侯)에게 의뢰했었습니다.
바라는 뜻은 그저 제자(諸子)들의 잡서(雜書)와 진(晋)ㆍ송(宋) 이래 내외의 문집으로서 석전(釋典)과 관계된 곳이오니 모두 훑어보아 주옵소서. 삼가 별록(別錄)을 앙정(仰呈)하나이다. 두터우신 은혜 주시기를 희망하노라고 청원의 말씀을 경솔히 사뢰었으니 송구한 마음 어찌 다하오리까?
사견(邪見)과 신심은 옛부터 공존하는 터요, 선인과 악당이야 오늘인들 없겠습니까? 전날 인편에 접한 진정[讇言]에 간략히 나의 주장을 폈거니와 이미 상(上)의 재가를 받고 다시 포상[褒揚]을 받으니 간절히 마음 모아 덕을 참괴할 뿐입니다.
지난날 『삼도부(三都賦)』를 썼으나 장화(張華)를 만나지 못했던들 아무도 감상할 길이 없듯 오늘 나의 『파사론』도 당신[君子]을 만나지 않았다면 뉘라서 보배롭게 여겨 주리까?
전에도 나라 안[海內] 여러 고을에서 사방의 도속(道俗)들이 퍼뜨리고 베끼고 찬탄하고 가락을 만들어 삿된 소견의 마음을 돌이키고 어리석은 사람의 선(善)을 시작했으니 어찌 당신의 힘이 아니겠나이까?
반드시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에 큰 공이 있을 것이옵니다. 바라옵건대 이로써 장엄하여 모두 회향하게 되어지이다. 공이시여, 큰 단월이 되어 주시기 바라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