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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보살소문경론 제8권
3.8. 반야바라밀을 성취함
[문] 반야바라밀을 성취한다 하시는데,
무엇 때문에 여래께서는 방편을 말씀하신 뒤에 다음으로 반야바라밀을 성취한다고 말씀하시는가?
[답] 방편으로 반야를 포섭함을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며, 또 모든 보살들이 증득하게 된 지위의 이치를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방편을 말씀한 뒤에 다음으로 반야바라밀을 성취하는 것을 말씀하셨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보리분법(菩提分法)을 이룰 수 있는 깨끗하고 선한 뿌리를 자세히 살핀다.
보살은 진여(眞如)의 법 바탕[法體]을 보려고 하나 아직 진여의 실다운 지혜를 볼 수가 없으므로
먼저 성문ㆍ벽지불의 지위와 다스리는 것의 법에서 넘어서는 것을 자세히 살피고
크게 인자함과 가엾이 여김 등을 자세히 살피고
근본의 크게 인자함과 가엾이 여김 등을 성취한 연후에 그 진여의 법을 볼 수가 있게 된다.
이런 이치 때문에, 진여의 법을 보고서 성문과 벽지불의 지위에 떨어지지 않나니,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수행하는 차례의 이치를 나타내 보이기 위하여 먼저 방편을 말하고 다음으로 반야바라밀을 성취하는 것을 말씀하셨다.
[반야의 뜻]
[문] 반야바라밀을 성취한다 함의 반야의 뜻을 말해야 하리라.
실답게 알고 봄을 반야라고 하는가, 살펴야 할[所觀] 경계를 자세히 살피는 것을 반야라고 하는가, 깊고 얕은 수량을 사실대로 아는 것을 반야라고 하는가?
이 뜻을 말해야 하리라.
[답] 저 언덕에 이르기[到彼岸] 때문에 바라밀이라 하며,
또 모든 부처님ㆍ여래께서는 이미 저 언덕에 이르렀으므로 바라밀이라 하며,
초지 보살은 그가 마침내 저 언덕에 이를 것이기 때문에 바라밀이라 하며,
모든 보살은 마침내 저 언덕의 행을 얻을 것이기 때문에 바라밀이라 한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경전에서 말씀하시기를
“저 행(行)을 따름을 바라밀이라 하느니라”고 하셨나니,
저곳은 아직 저 언덕이라는 뜻이 결정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무진의소문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만족하게 보살의 행을 행함을 바라밀이라 하며, 상쾌하고 깊은 지혜가 만족함을 바라밀이라 하느니라”고 하신 이와 같은 것 등이다.
[반야바라밀의 뜻]
[문] 반야바라밀의 뜻을 말해야 하리라.
무엇이 반야바라밀의 뜻인가?
[답] 부처님의 보리를 구하고 크게 인자함과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일으키는 방편 지혜를 포섭하여 온갖 법의 같은 모습과 다른 모습의 훌륭한 뜻을 사실대로 알 수 있음을 반야바라밀이라고 하는 뜻이다.
[문] 성취한다는 뜻을 말해야 하리라. 무엇이 성취한다는 뜻인가?
[답] 구경(究竟)이라는 뜻이 성취한다는 뜻이다. 온갖 범부를 멀리 여의면 반야바라밀이라 하며 구경이라는 뜻이며, 반야바라밀에 의하여 세간을 멀리 여의고 마지막이라는 뜻을 얻으므로 반야바라밀이 성취한 것이라 한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반야바라밀에 의하여 마지막의 두려움이 없는 곳을 얻는 것이다.
[문] 만약 그와 같다면, 초지를 증득할 때에 바로 마지막이라 이름할 수 있고 반야바라밀을 성취하는가?
[답] 그것은 그 부분대로의 차례에 의하는 것인 줄 알아야 한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초지로부터 부처님 보리를 얻으면 다스림의 법이 앞에 나타나게 되나니, 다스림의 법을 얻기 때문이다.
또, 초지의 방편으로 방편 반야를 포섭하여 온갖 나쁜 갈래를 여의고 성문ㆍ벽지불의 지위를 여의나니, 이와 같이 다른 지(地)에서도 그 부분을 따라 서로가 응하는 부분의 곳인 줄 알아야 한다.
보살이 만약 이와 같이 알 수 있으면, 실다운 지혜의 반야를 따라 함이 있음의 행은 다른 것의 힘과 서로가 의지하여 제 바탕이 없는 것임을 자세히 살핀다.
[함이 있음의 행이 나는 원인 두 가지]
[문] “이 법에 의하여 이 법이 있고, 이 법에 의하여 이 법이 난다”고 거듭하여 말하는데, 어떠한 훌륭한 이치가 있는가?
[답] 두 가지의 원인인 이치를 나타내려고 두 가지로 말한 것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함이 있음의 행은 나는 원인에 두 가지가 있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가 먼저 나는 원인[先生因]이며,
둘째가 같이 나는 원인[共生因]이다.
먼저 나는 원인이라 함은
마치 안식(眼識) 등이 나려고 할 때에 먼저 의식이 나는 것과 같다.
서로 비슷하게 따르면서 앞의 마음이 없어지지 아니하면 뒤의 마음을 용납하지 않으며 반드시 앞의 마음이 없어져야 뒤의 마음이 나게 되므로 앞의 마음이 비록 없어졌다 하더라도 뒤의 원인이 되어 주므로 먼저 나는 원인이라고 한다.
같이 나는 원인이라 함은
모든 식(識)이 서로 응하여 느낌 등의 법과 마음과 서로 응하지 않는 법이 그 법과 함께 나는 것이다. 눈 등의 모든 법은 인연을 지을 수 있고 그 법에 의지하여 그 법을 낼 수 있으며 그 법을 낼 때에 원인을 지어줄 수 있으므로 같이 나는 원인이라 한다.
또, 이 법에 의한다 함은 먼저 나는 원인을 말하고, 이 법이 난다 함은 같이 나는 원인을 말한다.
[문] 이 법에 의하여 이 법이 난다고 말하는데, 이 이치는 그렇지 않다.
왜 그러한가?
같이 나는 법은 일정한 원인이 없기 때문이며, 인과의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같이 나는 법에서는 이 법이 바로 원인이며 이 법이 바로 결과이므로 이와 같이 규정된 원인의 차별이 없으며, 이 법이 바로 원인이고 이 법이 바로 결과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일정한 인과로 인한 차별이 없다.
[답] 보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역시 세간에서 같이 나는 법을 보면 하나의 법은 원인이며 하나의 법은 원인이 아닌 것은, 마치 심지에서 비추어짐이 함께 같이 나지만 이 심지는 비추어짐의 원인이 될 수 있으나 비추어짐은 심지의 원인이 되어 줄 수 없는 것과 같다.
왜 그러한가?
이 비추어짐의 법은 심지를 따르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비추어지는 법은 심지를 따르나 심지는 비추어짐을 따름이 아닌 것을 보며, 심지는 더함이 있고 덜함이 있으며 비추어짐도 그와 같아서 더함이 있고 덜함이 있으며, 심지가 없어지면 비추어짐도 따라서 없어질뿐더러 또 심지가 다른 곳으로 떠나갈 때에 비추어짐도 따라서 떠나감을 보게 된다.
이와 같이 안식 등의 법이 함께 나는데, 눈과 몸 따위에 의하고 몸과 눈 따위로 인하여 안식(眼識) 등이 나는 것이며, 안식으로 인하여 눈과 몸 따위가 나는 것이 아니다.
또 이 법에 의한다 함은 모든 보살들은 이와 같이 먼저 나는 법은 짓는 이가 없고 오직 인연과 함께 화합하여 날 뿐이며, 이 법이 있으면 이 법이 난다고 자세히 살피기 때문이다.
또, 보살들은 이러한 마음을 내나니,
‘원인이 이미 무상하거늘, 어떻게 이 법을 낼 수 있을까?’ 라고 한다.
그러므로 보살은 이러한 마음을 낸다.
‘이 법에 의하기 때문에 이 법이 나고, 먼저 법이 있다 하여 뒤의 법이 나는 것이 아니다. 만약 먼저 있으므로 뒤에 난다고 하면 곧 이는 항상한 법이리라.’
이런 이치 때문에, 곧 법이 날 때에 인연이 화합하며 하나의 법도 일정하고 진실이라는 것이 없고 일정하고 진실한 안식의 경계로 환히 비추어 안다는 따위의 법이 없다.
이런 이치 때문에, 이 법이 날 때에 결정코 그곳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또, 곧 함께하는 인연으로써 없어지나니, 만약 법이 곧 함께 하는 인연으로써 없어진다면 모든 인연이 떠났다고 생각할 때에는 머무르지 않는다.
이런 이치 때문에, 이 법이 없어질 때에는 이곳으로부터 떠나서 다른 곳으로 가는 것도 아니다.
또 이 법에 의하여 이 법이 난다 함은 그것과 그 인연이 화합함에 의하여 그것과 그 법이 생기고 그것과 그 법을 보는 것이니, 그 법은 인연으로 나는 것이며,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님을 나타내 보인다.
또 이 법에 의하여 이 법이 난다 함은 자세히 살핌으로 인한 생각 때문이다.
또, 이 법에 의하여 이 법이 난다 함은 과거의 무명(無明)과 지어감[行]의 부분을 나타내 보인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과거의 무명 등의 두 가지에 의하여 현재의 의식[識] 등의 여덟 가지 부분이 있게 되므로 현재의 부분이 있음을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다.
또 이 법에 의하여 이 법이 난다 함은 현재에 부분이 있음을 나타내 보인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현재에 부분이 있음에 의하여 속히 나고 늙고 죽는 부분이 있음을 나타내 보인다.
또 이 법에 의하여 이 법이 난다 함은 무명과 욕망[愛]ㆍ잡음[取]으로써 번뇌의 길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니, 이 번뇌의 길에 의하여 지어감과 존재[有]의 업의 길이 생긴다.
또 이 법에 의하여 이 법이 난다 함은 업의 길에 의하여 다른 갈래가 생기나니, 이른바 괴로움의 길 등이다.
또 이 법에 의하여 이 법이 난다 함은 무명ㆍ지어감ㆍ욕망ㆍ잡음ㆍ존재에 의한 쌓임의 진리[集諦]의 원인이기 때문이니, 나머지 일곱 가지 부분이 나면 괴로움의 진리[苦體]라 한다.
또 이 법에 의하여 이 법이 난다 함은 곧 일곱 가지 부분인 괴로움의 진리에 의하기 때문에 무명 등의 다섯 가지 부분인 쌓임의 진리가 생긴다.
또 이 법에 의하여 이 법이 난다 함은 여래의 수다라에서 말씀하시기를
“무명과 지어감에 의하여 의식 등이 나느니라”고 하셨으며,
또 어떤 수다라에서 말씀하시기를
“지어감의 인연에 의하여 무명이 나느니라”고 하셨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모습이 생길 때에 무명 등의 법은 마음과 서로 응하고 마음과 서로 응하지 않는 것과 함께 몸의 업ㆍ입의 업이 모두 다 같이 생기며 뒤의 시기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또 이 법에 의하여 이 법이 난다 함은, 곧 생각을 낼 때에 무명의 어두운 지혜가 같이 동시에 나는 것이며, 먼저 나는 것이 아니다.
[문] 무명의 인연이 처음의 인연이 된다고 말하는데, 만약 그렇다면 12인연은 곧 시작이 있게 되는가?
왜 그런가?
무명의 앞에서는 다시 다른 인연이 있음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모든 세간의 함이 있음의 법 중에서는 그 무명이 최초가 되기 때문이다.
[답] 번뇌를 내는 업은 갈마들며 인연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이 뜻이 무엇인가?
낢[生]으로부터 번뇌가 나며 번뇌로부터 업이 나며 업으로부터 낢이 나므로, 마치 시작이 없는 수레바퀴와 같이 나는 것이다. 이런 이치 때문에, 세간은 시작이 없다.
[문] 자재천(自在天)들이 하는 일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자재천과 작은 티끌 등에서 세간이 생긴다. 이런 이치 때문에, 세간은 시작이 있다.
[답] 그 이치는 그렇지 않다.
왜 그러한가?
항상하는 법이 세간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니, 하나의 법이라도 자재천과 작은 티끌 등에서 생김을 보지 못했다.
무상한 인연으로부터 생김을 보았고 항상하는 법 중에서는 생김을 못 보았으며, 무상한 인연 중에서 생김을 보았으므로 그대의 법 중에 자재천 등은 모두 다 이는 항상한 것이다.
이런 이치 때문에, 자재천 등은 법을 낼 수가 없다.
또, 다르고 달리되는 원인 중에서 갖가지 결과가 생김을 실제로 본다.
왜 그러한가?
코끼리ㆍ말ㆍ소ㆍ양ㆍ당나귀ㆍ낙타에서 사람과 하늘 등에 이르기까지 차별이 있음을 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자재천 등이 지은 것이 아니다.
[문] 인연으로부터 온갖 법이 생기지 않았다.
왜 그러한가?
가시나무와 공작새 등을 보건대 다르고 달리되며 같지 않기 때문이니, 무명의 인연으로부터 세간이 생기지 않았음을 알겠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인연이 없어도 세간은 생긴다.
왜 그러한가?
나는 가시나무와 공작새 등을 보건대, 인연으로부터 차별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같아서 세간은 무명으로 생긴 것이 아니다.
[답] 이 이치는 그렇지 않다.
왜 그러한가?
나는 실제로 결과를 보면, 인연으로부터 나며 원인이 없이 나는 것이 아니다. 마치 종자가 땅과 물과 시절이 잘 화합하면 싹이 나고 이들의 갖가지 인연을 여의면 싹이 나지 않는 것과 같다.
만약 원인을 여의고 원인 없이 만물이 생긴다고 하면 이 이치는 그렇지 않다.
왜 그러한가?
다르고 달리되는 법을 보건대 다르고 달리되는 법에서는 비지[比智]로써도 세간은 역시 그러한 줄 알겠으며, 일찍이 원인을 여의고서 원인 없이 법이 생기는 것을 보는 일이 없다.
이런 이치 때문에, 원인으로부터 결과가 생긴다. 그러므로 세간의 온갖 법은 원인 없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또, 허물이 있다.
만약 그렇다면 갖가지의 결과가 생기지 않거늘, 그대는 결과가 원인 없이 있다고 말한다.
만약 그렇다면, 만물은 으레 똑같아야 하고 세간에서는 갖가지 결과가 생기지 않아야 하겠지만, 나는 실제로 갖가지 원인으로부터 갖가지 결과가 생김을 본다.
이런 이치 때문에, 원인 없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또 다시, 대답이 있다.
만약 온갖 물건이 원인 없이 생긴다 하면, 응당 하나의 물건 중에서 온갖 법이 생겨야 하며 그렇지 않더라도 온갖 물건 중에서는 하나하나가 저마다 있고 온갖 물건이 생겨야 하는데도 그 이치는 그렇지 못하다.
이런 이치 때문에, 인과가 없는 것이 아니다.
또 다시 대답이 있다.
으레 변하고 달라짐이 없어야 한다.
이 이치는 무엇인가?
만약 온갖 물건이 인연으로부터 생기지 않는다면 변하고 달라지지 않아야 할 것이니, 마치 허공과 같아야 한다. 그러나 이 이치는 그렇지 못하다.
왜 그런가?
변하고 달라지기 때문이다.
어떻게 변하고 달라지는가?
먼저 있던 것이 뒤에는 없으며, 이미 있던 것이 도로 없어져서 다르게 생기고 다르게 없어지는데, 원인 없는 법 중에서는 이와 같은 결과의 법이 바꾸어지고 변하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모든 법은 인연으로부터 생기며, 인연 없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또 허물이 있는데, 온갖 하는 일의 모든 업이 공(空)하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만약 원인이 없이 온갖 물건이 생긴다면 모든 하는 일의 업이 공하여 이익이 없을 터인데 실은 이와 같은 일이 있음을 보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원인 없이 결과가 있는 것이 아니다.
[문] 나는 지혜로부터 지혜가 생기는 것을 본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현실로 바깥 물건인 함이 있는 법 중에서 종자가 원인이 되고 과거가 원인이 아님을 본다.
이와 같이 실제로 안의 함이 있는 법을 보건대 붉고 흰 것 등이 화합함으로 인하여 생기며 과거가 원인이 아니다.
[답] 그 이치는 그렇지 않다.
왜 그러한가?
현재의 지혜는 과거의 지혜로부터 생기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지혜의 생김을 보건대 과거 지혜의 원인으로부터 존재하며 지혜 없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만약 지혜가 앞의 지혜로부터 생기지 않는다면, 응당 흙덩이와 나무며 돌 따위로부터 생겨야 하며 또한 다르게 서로 계속하는 데서부터 생기지 않아야 한다.
왜 그러한가?
만약 다르게 서로 계속하면서 지혜를 낸다고 하면 부모도 아이의 지혜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나는 저 태(胎) 등의 중생들의 지혜는 상속함에서부터 생기는 것인 줄 안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태 등의 지혜 앞에는 다시 지혜가 있으며 그 태 등의 지혜는 먼저의 지혜를 여의지 않으면서 계속하여 나니, 그러므로 과거 세상의 원인이 있는 줄 알리라.
[문] 그 이치는 그렇지 않다.
왜 그러한가?
마치 부싯돌을 비비는 사람의 공력과 소똥의 뭇 인연이 화합하면 먼저 불이 없어도 불이 생길 수 있는 것처럼,
지혜도 그와 같아서 먼저 지혜 인연의 화합이 없어도 지혜가 생길 수 있는 것과 같다.
[답] 그 이치는 그렇지 않다.
왜 그러한가?
다른 법을 보고서 견주어 아는 지혜로써 알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어떠한 법 중에서 생기는 법을 보건대 그 법과 서로 비슷하여야 법을 낼 수 있으며, 서로가 비슷함이 없는 다르게 생긴 가운데서는 보는 것은 아니니,
마치 벼가 생기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비록 벼를 보지 않더라도 벼로부터 도로 벼를 내는 것을 보나니, 그러므로 종자는 벼다.
불도 그와 같아서 불을 비비는 것과 소똥 등 가운데에서 불이 생기는 것을 보나니, 비록 불을 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부싯돌을 비비는 따위 가운데서 불을 구한다.
이와 같이 지혜로부터 지혜가 생기는 것으로 보면 비록 지혜를 보지 않더라도 지혜는 과거의 지혜로부터 생기는 것인 줄 안다.
이로써 그대가 말한
“먼저 불이 없어도 불을 낼 수가 있고, 먼저 지혜가 없어도 지혜가 생길 수 있다”고 한 것과
“온갖 물건은 오직 현재의 원인으로부터 생길 뿐이며, 과거의 원인으로부터 생기는 것이 아니라”라고 한 것과 같은
그런 이치는 옳지 못하다.
이런 이치 때문에 번뇌의 업으로부터 세간의 법이 생긴다.
이를 어떻게 아는가?
성인이 말씀하고 세간 사람들이 말한 것이다.
이 뜻이 무엇인가?
번뇌를 여읜 온갖 성인이신 모든 부처님ㆍ여래와 부처님 제자인 성문승의 사람들은 이와 같은 것을 말씀하시기를
“번뇌 업의 원인으로부터 세간이 생긴다”고 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만약 사람이 집착하고 탐을 내어 몸으로 나쁜 행을 짓고 입으로 나쁜 행을 지으며 뜻으로 나쁜 행을 지으면, 그 사람은 나쁜 행의 인연에 의하여 그 몸이 무너진 뒤에는 나쁜 갈래에 나게 된다”고 하셨다.
온갖 의론도 역시 그와 같아서 ‘업으로부터 낢[生]이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경전에서 말씀하시기를
“밝음으로부터 밝음에 들어가고 어두움으로부터 어두움에 들어가느니라”고 하셨다.
세간의 사람도 역시 그와 같이
“업으로부터 낢이 있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말하나니
“온갖 즐겁지 않은 데에 나는 것이 두려우면 모든 가지가지의 나쁜 행을 멀리 여읠 것이며, 온갖 즐길 만한 데에 나는 것을 구하면 모든 갖가지 선한 행을 수행하라”고 하였다.
이런 이치 때문에, 모든 성인에 의지하고 온갖 의론에 의지하며 세간 사람에게 의지하여, 나는 이와 같이 업의 원인으로부터 세간이 생기는 것이며, 원인 없이 생기는 것이 아닌 줄 안다.
[문] 원인이 되는 생각이 머무르지 않거늘, 어찌 결과가 생길 수 있겠는가?
이는 무슨 뜻인가?
모든 번뇌의 업은 찰나 동안에도 머무르지 않아서 번뇌의 업은 찰나에 곧 없어지나니, 그러므로 모든 업의 번뇌로부터 세간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답] 원인이 없어져도 결과가 생김을 나는 본다.
이는 무슨 뜻인가?
원인이 없어져도 그 없어진 원인에 의하여 결과가 생기게 됨을 보나니,
마치 마다융가(摩多隆伽)의 열매 가운데서는 신맛이 있음을 보는데, 그 씨와 싹ㆍ줄기ㆍ가지ㆍ잎ㆍ꽃 등의 안에는 모두 다 신맛이 없고 그 씨와 싹ㆍ줄기ㆍ가지 등에서 서로가 이어졌다가 뒷날 열매의 가운데 있게 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 마다융가의 열매 속에 있는 신맛은 곧 그 원인이 아니며 또한 달라진 원인도 아니다.
이와 같이 보이는 것은 바깥 인과가 화합하여 생긴 것이며, 이와 같은 법은 이렇게 견주어서 아는 지혜로 알게 되나니,
원인이 없어진 뒤에도 그 없어진 원인에 의하여 세간이 생기는 것이며 원인 없이 생기는 것이 아니며 달라진 원인도 아니다.
[문] 만약 원인이 없는 것도 아니고 뒤바뀐 원인이 아닌 것으로 세간을 내고 업의 번뇌에 의하여 세간이 있다고 하면,
이를 어떻게 아는 것인가?
[답] 허물이 생기는 줄 모르고서 업행(業行)을 짓게 된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모든 세간 사람들은 허물이 생기는 줄 모르나니, 그 사람은 곧 다섯 가지 욕심 경계인 온갖 이익 없는 일을 집착하여 세간의 갖가지 이익 없는 일을 내게 한다.
그러므로 수행은 세간의 과보를 얻게 되며, 짓는 업은 번뇌를 끊어 없애기 위하여 짓는 업이 아니다.
이는 무슨 뜻인가?
온갖 세간의 어리석은 범부는 지혜가 없기 때문에 자세히 살필 수가 없으며, 무명의 어두운 지혜로써 한량없는 백천의 가지가지 괴로움 가운데서 공덕의 생김이 있음을 보고 미래세상에서 받을 즐거운 과보를 구하기 때문에 공덕을 행하며 계율 보시 등의 모든 공덕 될 행을 수행한다.
또, 어떤 사람은 마음이 뒤바뀌었기 때문에 현재세상의 다섯 가지 욕심의 경계에 집착하여 미래세상에 복과 덕이 없음을 당하나니, 그러므로 복덕 없는 행인 살생 따위의 업을 수행한다.
또, 어떤 사람은 삼매의 즐거움으로 선정을 사랑하고 선정에 대한 소견을 내고 선정에 대하여 오만하고 선정을 의심하고 선정에 뛰어난 체하는 따위에 집착하여 온갖 통달하는 등의 행을 수행한다.
그러므로 저 세 가지 세계 중에 나는 것이 끊어지지 않으며 나서부터는 다시 온갖 번뇌를 일으키고 번뇌 때문에 모든 업을 일으키나니, 이와 같이 하여 세간은 끝없이 끊어지지 않는다.
[문] 만약 온갖 번뇌로부터 세간의 행이 생긴다 하면, 여래께서는 이 수다라 중에서 무엇 때문에 무명으로부터 세간이 생긴다고만 말씀하셨는가?
[답] 비록 무명만을 말씀하셨으나 탐냄 따위의 온갖 번뇌를 포섭하겠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비록 무명만을 말한다 하더라도 탐냄 따위의 온갖 허물들이 포섭된다.
이를 어떻게 아는가? 어리석은 사람이 탐냄 따위를 일으키고 지혜가 없기 때문에 탐냄 따위의 온갖 번뇌를 일으키지만 허물이 없이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경전에서 말씀하시기를
“무명의 인연은 탐냄의 허물을 일으키고, 성냄의 허물을 일으키며, 어리석음의 허물을 일으키느니라”고 하신 것과 같다.
그러므로 저 무명의 근본은 그 밖의 번뇌의 모든 허물이 포섭되었다 함을 말씀한 것이니, 마치 세간에서 왕이 오고 왕이 가면 그 신하와 병사들이 또한 오고 또한 가는 것과 같다.
[문] 어떠한 이치 때문에, 과거 부분 중에서 무명을 말하고 욕망[愛]은 말하지 않으며, 미래 부분 중에서는 욕망만을 말하고 무명은 말하지 않는가?
[답] 경계가 크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무명은 온갖 경계에 두루하지만 욕망은 그렇지 못하다.
이는 무슨 뜻인가?
저 무명은 온갖 처소에 두루하지만 욕망은 두루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함이 있음과 함이 없음에 반연한다.
이는 무슨 뜻인가?
저 무명은 함이 있는 법과 함이 없는 법에 반연하지만, 욕망은 그렇지 못하여 오직 함이 있음에 반연할 뿐이다.
또, 같은 자리[同地]와 같지 않은 자리[不同地]에 반연한다.
이는 무슨 뜻인가?
무명은 같은 자리와 같지 않은 자리에 반연하지만 욕망은 그렇지 못하여 같은 자리에만 반연할 뿐이다.
또, 온갖 번뇌와 서로 응한다.
이는 무슨 뜻인가?
저 무명은 온갖 번뇌에 모두 함께 서로 응하지만 욕망은 그렇지 못하여 어리석은 사람만이 일으키고 지혜로운 이는 일으키지 않는다.
또, 온갖 고통이 끊어지지 않는 원인이다.
이는 무슨 뜻인가?
무명은 온갖 괴로움의 무더기로서 근본이 되나니, 이런 이치 때문에 처음 부분 중에서 무명만을 설명하고, 저 둘째 번뇌의 문 중에서 욕망만을 나타내보였다. 그러므로 저 미래의 부분 중에서는 욕망만을 설명하고 무명을 설명하지 않았다.
[문] 어떠한 이치 때문에 과거세상 동안에 포섭된 모든 업이 어떠한 번뇌를 따르면 원인을 지어 줄 수 있으며, 그 모든 번뇌는 무명이라는 이름으로써 말하는가? 현재세상 동안에 포섭된 모든 업이 어떠한 번뇌를 따르면 원인을 지어줄 수 있으며, 그 모든 번뇌는 욕망의 잡음[愛取]이라는 이름으로써 말하는가?
[답] 나타나 보이지 않는 것과 나타나서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인가?
과거세상 동안의 모든 번뇌는 바로 멀기 때문에 실제로 볼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 동안의 번뇌는 차별하여 나타내 보일 수도 없으며, 그 어두움의 형상을 말할 수조차 없나니, 그러므로 모두를 무명이라는 이름으로써 말한다.
현재세상에 살면서 포섭된 번뇌는 실제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모든 번뇌는 차별하여 말할 수도 있고 나타내 보일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욕망의 잡음[愛取]이며, 이것이 바로 욕심의 잡음[欲取]이며, 이것이 바로 소견[見取]의 잡음으로써 이와 같은 따위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모든 번뇌는 욕망의 잡음이라는 이름으로써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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