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단의 거목 중 한 분이던 신경림 시인께서 어제(22일) 아침에 별세하셨습니다.
소외된 농촌의 현실과 농민들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농무', '파장' 등의 시로
1970년대 한국 민중문학을 이끄셨던 시인께서는
대장암으로 투병하시던 중 일산 암센터에서 숨을 거두셨다고 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농무(農舞)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 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아 밝아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둘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들고 날나리를 불거나
고개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가난한 사랑 노래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아래는 신경림 시인 부고와 함께 시인의 삶을 소개한 경향신문 기사입니다.
‘한국 문단 거목’ 시인 신경림 별세…민중의 삶을 시에 담은 ‘민중문학 개척자’ 잠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