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레도"(Toledo)는 "마드리드"에서 남쪽으로 약 70 여 Km 떨어진 곳으로
1561년 "마드리드"로 수도(首都)가 옮겨지기 전까지 옛 스페인의 수도(首都)였단다.
오전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이곳 대성당(大聖堂)에서 미사를 드리기로 했다.
"톨레도"는 옛날 "돈키호테"(Don Quijote)의 활약무대였고, 스페인 내전(內戰)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잠깐 딴 생각을 하는 사이에 벌써 "톨레도" 입구에 도착했다.
이야기를 듣던 것처럼 건물들이 옛 도시의 정취를 흠뻑 지니고 있다.
"톨레도" 입구에 들어서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물이 저 건물이다.
어떤 건물인지 궁굼하기는한데 그냥 지나쳐 버린다.
나중에 찾아보니 "추기경 병원"(Hospital Del Cardenal Tavera)이라고 한다.
"추기경"님을 위한 병원이 아니라 "후안 파르도 데 타베라"(Juan Pardo De Tavera)추기경님이 1541년에
이곳 "톨레도"의 환자들을 위해 만들기 만들은 병원이란다.
건축의 시작은 1541년에 했지만 우여곡절끝에 1624년에야 완성이 됐다고 한다.
완성 당시에는 약 300여명의 환자를 수용할 수있는 큰 병원이 됐다고 한다.
18세기경에 "레르마"(Lerma)후작(侯爵)이 이 건물을 사들여 그의 거주지로 사용하다가
지금은 일부는 미술관으로, 일부는 옛날의 병원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점심을 먹기위해 조금 더 가서 "알칸타라 다리"(Puente De Alcantara) 앞에 정차한다.
이 다리를 건너면 바로 앞에 우리가 점심식사를 할 식당이 있단다.
다리 건너편 언덕에는 오래된 옛 성(城)이 자리잡고 있다.
이런 옛 성(城)을 "파라도르"(Parador)라고 하며 스페인 전국에 90여개가 있다고 한다.
스페인은 이 성(城)들의 실내를 모두 고쳐서 모두 관광객을 위한 국영호텔로 운영한단다.
다리 입구의 문.
"알칸타라 다리"(Puente De Alcantara)의 안쪽 탑(塔)위에는 "이사벨 여왕"과 "훼르난도 국왕"의 문장이 조각되어 있다.
이 다리의 역사는 무척 오래 되었다고 하지만, 지금의 모양대로 만들어 진 것은 1257년 대 홍수로 다리가 유실 되고,
그 다음해에 지금의 모양으로 지어졌고 전쟁으로 인해 몇번의 파손과 복구가 이루어 졌다고 한다.
"알칸타라"(Alcantara)는 "아라비아"語로 다리(橋)라는 뜻이란다.
다리 위에서 보는 "따호 江"(Rio Tajo)
"따호 강"은 "톨레도"의 세 면(面)을 돌아 "U" 자 모양으로 흘러간다고 한다.
"따호 강"과 "톨레도"를 한꺼번에 넣는 아름다운 사진을 찍으려면
언덕위의 城 "파라도르"로 가야 한다는데 미쳐 몰랐다.
알았다면 점심을 포기하고서라도 그리로 올라가 봤을텐데,,,,,
다리에서 보는 외측의 문.
문 위에는 누구인지 모를 상이 있다.
다리를 나와 길에서 보는 문.
다리의 외측 문의 탑.
위에는 "톨레도"의 문장(紋章)이 있다.
점심식사를 하고 밖으로 나와 강 건너 오늘 들어 갈 "톨레도"를 바라본다.
"알카사르"(Alcázar)가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다.
옛날에는 王이 거주하는 성(城)이였을 것이고,
스페인 내전(內戰 : 1936~1969)때에는 프랑코 軍이 있어서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엄청난 포격으로 심한 파손을 입어 근래에 새로 보수를 했다고 한다.
현재는 "군사박물관"(軍士博物館)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내전(內戰) 당시의 슬픈 이야기를 각국의 언어로 들려준다고 한다.
당시 이곳의 사령관(司令官)인 "모스카르도"의 아들이 인민전선군(人民戰線軍)에게 포로로 잡혔다고 한다.
인민전선군(人民戰線軍)은 사령관(司令官)에게 전화를 하여 항복하지 않으면 아들을 해치겠다고 했다고 한다.
사령관인 아버지는 비통한 목소리로 아들 "루이스"에게 말했단다.
"아들아, 만세를 두 번 외치거라. 한 번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고 한 번은 스페인을 위하여!"
아들은 곧 힘차게 만세를 외쳤단다.
"그리스도 만세! 스페인 만세!"
사령관의 아들 루이스(당시 16세)는 만세를 외침과 함께 총격을 받고 "타호"江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이 "스페인 내전"으로 무려 100만이라는 엄청난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스페인 내전"은 여러가지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다.
이 영화는 "헤밍웨이"가 "스페인 內戰"에 잠시 참전(參戰)했던 당시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은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 제목은 "헤밍웨이"가 만든 것이 아니라고 한다.
영국의 "죤 던"(John Donne)이라는 시인(詩人)이 밤 늦도록 서재에 앉아 있었다.
그 때 성당(聖堂)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는 조종(弔鐘)이 울렸다.
시인(詩人)은 심부름 하는 아이를 깨워 누가 죽었는지 알아보라고 하였다.
잠시 후 아이가 옷을 입고 나가려 하자 시인(詩人)은 아이에게 그냥 들어 가라고 한다.
그 종소리가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고 바로 자신을 위한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시(詩)를 지었다고 한다.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땅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大陸)의 한 조각이며 대양(大洋)의 한 부분이다.
대륙(大陸)의 흙이 바닷물에 씻겨 나가면
대지(大地)는 그만큼 작아진다.
땅의 모래톱이 그러하듯
그대 친구들의 영토나
그대 자신의 영토나
모두가 마찬가지다.
나 자신이 인류에 포함되어 있기에
어떤 누구의 죽음도 나를 그만큼 감소시킨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는지 알고자 하지 말라.
그 종은 바로 나를 위해서 울리는 것이니-.
영화 제목은 바로 이 詩의 끝 부분을 인용하여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라고 하였다고 한다.
"어느 인민전선군 병사의 죽음"
이 사진은 "로버트 카파"라고 하는 사진기자가 찍은 사진으로 참호 밖으로 뛰어나와 앞으로 나가려던 순간 총탄을 맞은 것이다.
"로버트 카파"(Robert Capa) 는 두 적들이 대치하고 있는 전장터의 한 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사진은 나중에 조작된 것이라고 알려졌다고 한다.
"피카소"도 이에 대한 그림을 남겼다.
"피카소"의 "게르니카"(Guernica)라는 그림도 스페인 內戰의 참상을 알리는 그림이다.
점심을 먹은 후 다시 이 다리를 건너 "톨레도"(Toledo) 市內로 들어 간다.
다리 건너면 차 길 건너에 또 다른 성문(城門)이 있다.
門의 형태는 이슬람 문양(紋樣)을 하고 있다.
이 문으로 들어가 건물 외곽을 돌아 올라간다.
성 안으로 들어가면 길안내 없이는 가기 어려운 길을 지나가면,
옛 고도(古都)로 가는데 엉뚱하게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지상으로 올라오면 "추기경 병원"(樞機卿 病院)이 바로 눈앞에 들어온다.
좁은 길을 따라 얼마동안 올라가면 건물 사이로 "톨레도 大聖堂"(Toledo Cathedral)이 보인다.
"대성당"(大聖堂)을 끼고 앞쪽으로 돌아간다.
시청 광장(市廳 廣場 : Plaza Del Ayuntamiento)
성당(聖堂) 앞은 시청광장(市廳廣場)을 사이에 두고 성당(聖堂)과 시청(市廳)이 마주하고 있다.
톨레도 시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