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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불사 세 성인을 영원히 사모하며 (내불삼성영사집 來佛三聖永思集) 18
제10장. 몸과 마음 내려놓으니, 모두가 원만하고 밝네 (身心放下皆圓明)
인영印榮법사
2007년, 저는 남양시 남소현南召縣에서 출가 스승님 한 분을 호지護持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하루, 불칠佛七법회를 원만하게 마친 후 정공노법사께 정례하였습니다. 저는 두 번째 절을 할 때, 정공사부상인께서 지혜가 있고 식견이 있는 스승님과 순수하고 바른 정종도량을 찾을 수 있도록 가피를 주신다면, 제가 그곳에 가서 오로지 수행에만 전념하겠다고 발원하였습니다.
그리고 난 후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떤 한 선지식께서 저에게 사기현에 있는 래불사에 가서 육신보살님께 예배하라고 소개해주셨습니다. 래불사에 도착한 후, 행운이 있어 해현노화상님을 뵈었습니다. 노화상님을 뵈는 순간 저는 한없는 기쁜 마음이 일어나 그 자리에서 바로 노화상님께 절하면서 철없는 저를 제자로 거두어주시기를 청하였습니다. 노화상님 역시 저의 청을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3일이 지난 후, 노화상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시길, “관음보살님께서 나에게 제자 하나가 올 것이라 말씀하셨는데, 그리고 나서 바로 자네가 왔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들었어도 마음에 두지 않았으며, 노화상님께서 공연한 말씀을 하시는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옆에 있던 마을사람이 말하길, “이 노화상님은 진짜 보통 분이 아니십니다! 한 번은 마을에서 우물을 파고 있었는데, 여러 날 팠는데도 물이 도무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요. 노화상님께서 가서 살펴보시고는 지팡이로 한 곳을 가리키시면서 ‘여기부터 파게나, 이곳에 좋은 물이 있네.’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래서 그들이 노화상님께서 일러주신 곳을 파니, 과연 금방 물이 나왔어요.”
2008년 초 여름, 문천汶川지역에서 지진이 발생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다시 남방의 어느 지역에 곧 큰 지진이 날 것이라는 뜬소문이 돌아 한때 사람들의 마음을 불안에 떨게 하였습니다. 하루는 아침에 노화상께서 저에게 말씀하시길, “아무 일도 없을게야. 천신이 《무량수경》을 바로잡아 놓으셨네.” 저는 그 말씀을 듣고는 얼떨떨하였으며, 노화상께서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지 몰랐습니다. 노화상께서는 제가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는 분명하게 설명하시길, “어느 방향에 재난이 있으면, 나는 곧 바로 《무량수경》이 그쪽으로 넘어지는 것을 보네. 어제 저녁 꿈속에서 어떤 한 천신이 넘어져 있는 《무량수경》을 바로잡아 일으켜놓으신 것을 보았지. 그래서 나는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어.”
같은 해 여름, 어떤 한 농부가 사원 문 앞에서 농작물을 수확하는 데 쓰는 수활기收割機로 잘게 부순 밀짚에 불을 붙이는 바람에 순식간에 사원이 온통 짙은 연기로 가득차서 사람들이 숨이 막혀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사원에서 뛰쳐나와서 한창 일하고 계시는 노화상님께 이 일을 알려드렸으며, 뜰 안에 연기가 너무 자욱하여 숨이 막혀 경전을 독송할 수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노화상님께서는 제 말을 들으신 후, 손 가는대로 땅에서 낡아서 못 쓰게 된 비닐봉지를 하나 주워 올리시더니, 남쪽을 향해 몇 번 흔드셨으며, 입속으로 “저쪽으로 가거라! …… ”고 하면서 여러 번 반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신기한 일이지만, 저는 이 짙은 연기가 정말로 모두 고개를 돌려 남쪽으로 나부끼며 날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너무 감격하여 노화상께 한 번 정례한 후 뜰 안으로 돌아가 계속해서 《무량수경》을 독송하였습니다.
또 한 번은 노화상께서 저에게 마당 한가운데에 있는 채소밭에 배수구排水溝를 파라고 시키셨습니다. 그때는 날씨가 여러 날 동안 계속 기온이 높아 심어놓은 채소들이 모두 말라 시들시들하였으며, 사원 문 앞에서 보리를 말리고 있는 마을 사람들 역시 텔레비전에서 며칠 동안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예보했다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매우 갑갑하게 느껴졌으며, 마음속으로 채소들도 모두 곧 말라서 죽을 판인데, 노화상께서는 어째서 나에게 배수구를 파라고 시키시는 것일까 라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노화상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저는 즉시 삽을 들고 배수구를 파기 시작하였습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들 제가 너무 어리석은 탓에 노화상의 터무니없는 말씀을 듣고 시키는 대로 그대로 한다고 웃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예상이나 하였겠습니까? 그 다음 날 오전에 장대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으며, 여러 시간 동안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퍼부어댔습니다. 이렇게 큰 비가 내리기 전에 미리 방비하였기 때문에, 채소밭과 사원에 모두 물이 고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당시에 이 일에 대해 여전히 완전히 간파할 수 없었지만, 그러나 마음속으로 노화상에 대해 오히려 더욱 더 공경하고 감복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해 초가을에 장씨라는 성을 가진 노부인이 래불사에 노화상을 뵈려고 왔다가 돌아가지 않고 두 세 달 동안 머물러 지내셨습니다. 노부인은 이미 88세의 고령이 되셨고, 게다가 당뇨병이 있어 하루에 밥을 일곱 번에서 여덟 번 드셔야 했습니다. 노화상은 저에게 노부인을 잘 보살피라고 특별히 당부하셨습니다. 노부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노부인의 부친은 노화상보다 연세가 두 살이 더 많으시며, 노화상의 어렸을 때의 동무이시며, 노부인이 태어나신 그 해에 바로 노화상께서 출가하셨다고 합니다. 노화상이 출가하신 후에도 노부인의 부친은 평생 동안 꾸준하게 노화상과 연락하며 관계를 유지하셨습니다. ― 저는 당시에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속으로 대단히 강렬한 전율을 느꼈습니다. 모두가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백일 동안 붉게 피는 꽃은 없으며, 아무리 사이가 좋은 사람이라도 천 일 동안 사이가 좋은 사람은 없다.”(花無百日紅,人無千日好)고 말들을 하지만, 그러나 노화상의 옛 벗은 오히려 한 번의 사귐이 자신의 일생에만 그치지 않고 자신의 자식에게까지 이어지게 하셨습니다!
스승님께서는 아침에 공부하는 공과功課와 저녁에 공부하는 공과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자비하신 마음으로 매일 여러 번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저에게 아침저녁 두 차례의 “공과를 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비록 이처럼 지극히 평범한 말씀이었지만, 오히려 늘 제가 용감하게 위를 향해 정진할 수 있도록 독려하셨습니다. 지금도 저는 제 자신이 조금이라도 나태해질 때마다 언제나 마치 스승님께서 여전히 저에게 “공과는 했느냐?”라고 물으시는 것 같은 말씀을 듣습니다.
2009년 그 해가 끝나갈 무렵, 저는 혼자서 여러 해 동안 황폐한 채로 그대로 방치되어 있던 원명사의 옛 도량에 왔습니다. 당시 저는 원명사의 황량하고 쇠락해진 모습을 보자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 순간 바로 도량을 옛 모습으로 회복하고 이곳에서 정토법문을 널리 펼 것을 발심하였습니다.
원명사는 래불사와는 거리가 100킬로미터나 떨어진 먼 곳에 있으며, 게다가 단지 출가자인 저 한 사람과 밥을 지어주는 노보살만이 있을 뿐이어서 자주 노화상께 문안하러 갈 수가 없었습니다. 스승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저는 세월이 좀 지나서야 어르신을 원명사로 모셔와 잠시 지내시게 할 수 있었습니다. 노화상이 오셔서 층집에서 지내시게 되면 화장실에 가시기가 불편하실 거라는 생각이 들어, 저는 특별히 노화상을 위해 한 칸짜리 작은 방을 지었으며, 방안에는 좌변기를 놓아드렸습니다.
노화상께서는 아침에는 언제나 일찌감치 잠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절하고 염불하는 것을 견지하셨으며, 원명사에서도 똑같이 행하셨습니다. 저희들이 아침 공과를 하기 전에 어르신의 작은 방에는 매일 언제나 이미 등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곧 이어서 노화상께서 뜰에서 “아미타불”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던 일이 아직도 마음속에 깊이 남아있습니다. 본래 노화상께서는 금강지金剛持에 익숙하시어 소리를 내어 염불하는 시간은 언제나 길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원명사에서는 오히려 매일 아침 뜰에서 천천히 걸으시면서 매우 긴 시간 동안 염불하시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주)금강지金剛持:금강지염불법金剛持念佛法: 큰소리가 아닌 약간의 소리가 치아와 입술사이에서 돌도록 염불하는 법으로 소리도 내고 기운도 돋우는 수행법을 금강지라 함. 청정한 곳에서는 금강지 혹은 더 작은 소리로 하는 염불도 가능함. (정공스님 말씀에서)
매일 아침을 드신 후에는 노화상께서는 일거리를 찾아서 일하시기 시작하셨으며, 늘 한 번 일을 하셨다 하면 보통 몇 시간 동안 하셨습니다. 제가 일을 하려고 할 때마다 노화상께서는 언제나 말씀하시길, “자네는 일 하지 말고, 가서 염불이나 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길, “스승님! 연세가 백 살이 넘으신 어르신에게 일을 하시게 하고서 저희같이 젊은 사람이 도리어 일을 피하고서 한가하게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노화상께서 말씀하시길, “자네는 염불했어도 공부가 될 정도로 염불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이 염불해야 하네. 일정한 경지에 이를 때까지 염불해야 하며, 어느 때를 막론하고 늘 염불하고 있어야 해. ― 나는 일 하는 것이 염불에 지장을 주지 않아!”라고 하셨습니다.
2012년 여름, 낯선 사람 몇몇이 사원에 와서 괘단掛單하려고 하였는데, 그때 마침 노화상께서는 침상에 누워 쉬고 계셨습니다. 그들은 백 살이 넘으신 고승이라는 말을 듣고는 노화상의 방에 가서 참배하려고 하였습니다. 노화상께서는 그곳에 누워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으신 채, 입속으로 말씀하시길, “내 나이가 이미 많고, 이 사원에는 단지 인영 한 사람과 또 여자거사뿐이기 때문에, 우리 이곳은 손님을 좋아하지 않으니, 머물 수가 없소이다.” 저는 당시에 대단히 의아하게 생각하였습니다! 만약 평소의 노화상님이라면 틀림없이 매우 기뻐하시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손님에게 아는 체를 하셨을 분인데, 오늘은 어째서 사람을 대하는 것이 이렇게 냉담하실 수 있으며, 게다가 이렇게 기괴한 말씀을 하실 수 있을까? 후에 그 내막을 잘 아는 한 거사가 저에게 그들은 다름 아닌 삿된 가르침을 전파하는 사람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주)괘단掛單:불교술어로, 행각승이 사원에 가서 투숙하는 것을 말한다. 單은 승당 안의 명단을 가리키고, 행각승이 자신의 옷을 명단 아래에 걸기 때문에 괘단掛單이라 칭한다.
봄․여름․가을․겨울 상관없이 노화상께서는 사원에서 늘 언제나 일거리를 찾아 일하셨습니다. 바로 노화상께서 왕생하시기 한 달 전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여전히 원명사에서 장작을 패고 또 나무 위로 올라가 나뭇가지를 베셨습니다. 게다가 대전 옆에 있는 큰 돌 위에 무게가 천 근이나 되는 석조(石條: 가늘고 긴 돌)를 올려놓으셨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입니다. 백 살이 넘으신 노인은 말할 것도 없고, 설사 건장한 젊은 사람에게 그 무거운 석조를 올려놓으라고 시킬지라도 들어서 올려놓기가 어렵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고령의 노화상께서 도대체 어떻게 그 무거운 석조를 올려놓으신 것입니까?
노화상께서 마지막으로 원명사에 오셨다가 돌아가실 때 주장자와 옷 한 벌을 그대로 놓아두셨기에, 제가 노화상께 가지고 가시라고 말씀드리자, 노화상께서는 저를 향해 손을 저으시며 말씀하시길, “필요 없어, 이젠 쓰고 싶지 않아졌네.”
(인연생거사)
나무아미타불! 고덕께서 말씀하시길, “종은 치지 않으면 소리가 울리지 않으며, 북은 때리지 않으면 소리가 울리지 않는다. 보살이 신통을 나타내 보여주지 않으면, 범부는 공경하여 앙모할 줄을 모른다.”(鐘不敲不鳴, 鼓不打不響. 菩薩不顯神通, 凡夫不知敬仰.)고 하였습니다. 말은 비록 이러할지라도, 그러나 복덕만으로는 윤회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우며, 신통은 생사윤회를 그치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불보살님께서는 신통으로 사람을 제도하지 않으십니다.
《능엄경》에서 말하길, “만약 만물을 변화시킬 수 있으면, 여래와 똑같으며, 몸과 마음이 원만하고 밝다.”(若能轉物, 則同如來. 身心圓明.)고 하였습니다. 원명사는 금나라 때(1115~1234년)에 창건된 사원으로, 지금까지 거의 8백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명대(1368~1644년), 청대(1616~1912년), 민국시기(1912~1949년)에 모두 중수한 적이 있습니다. 노화상께서 80여 년 전에 원명사에 참학하려고 오셨을 때만 해도 도량은 대단히 번창하였고, 상주한 승려대중이 200여 명이나 계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원명사는 문화대혁명 시기에 파괴된 이후로 줄곧 학교가 점거하여 사용하였습니다. 당초에 인영법사께서 도량을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키겠다고 발심하셨지만, 쉽지 않았던 일들을 말학이 일찍이 제 눈으로 직접 보았기에 잘 알고 있습니다.
인영법사는 근검절약하고, 진실로 닦고 진실로 행하셨습니다. 말학이 2012년 여름에 원명사에 노화상을 찾아뵈러 갔을 때, 제 눈으로 직접 노화상께서 단석斷石을 담장 밑까지 옮겨 놓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인영법사께서 서술하신 일들은 전부 분명히 실제로 있었던 일이며, 시방의 어진 이들께서 소중하게 여겨 선용善用하시기를 바랍니다!
남양 의오義烏염불당의 유봉지劉鳳芝거사가 한 번은 현공에 관한 옛날 일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어느 날 하루는 아침에 유거사가 향로 속에 향 개비들이 수북이 쌓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아침밥을 먹을 때 호기심이 나서 노화상께 어째서 이렇게 많은 향을 태우셨느냐고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노화상께서 대답하시길, “천기는 누설해서는 안 되네.” 그 말씀에 유거사는 더욱 호기심이 발동하여 노화상을 귀찮게 하면서 반드시 자신에게 말씀해 주셔야 하며, 또한 절대로 외부에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노화상께서 그때서야 유거사에게 말씀하시길, “내가 허공에 가득 온통 아미타 부처님뿐인 것을 보았거든!”(我看到滿天都是阿彌陀佛啊)라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학에게 현공의 신통과 감응한 일들을 들려주었지만, 말학은 일체 수록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신통에 관해 많이 언급하는 것은 이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혜를 드러내려고 하면 도리어 마치 요괴에 가까워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말학은 모든 이들에게 현공께서 나타내 보여주신 신통유희神通遊戲에 너무 지나치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으며, 노화상의 덕행과 지혜를 배우는데 마땅히 더욱 더 힘써야 한다는 것을 환기시킵니다. 당나라 때의 대덕이신 중국의 유마힐거사라 불리는 방온龐蘊거사는 자신이 지은 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용궁을 알지 못하면 구슬을 말하지 말지니, (未識龍宮莫說珠)
구슬을 아는 것이 그대와 다르다고 말하리라. (識珠言說與君殊)
빈주먹은 단지 어린아이만이 믿을 뿐이니, (空拳只是嬰兒信)
어찌 장차 늙은이를 속일 수 있으랴! (豈得將來誑老夫!)
18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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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감사합니다 _()_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