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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1월 22일 수요일. 맑음 저녁에 비
아침 식사는 삶은 계란 3개와 버터 고추장 그리고 삶은 토마토로 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브샤리 마을이다. 레바논 백향목과 칼릴 지브란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백향목 숲(The Forest of Cedars of God)과 세계적인 명상가 칼릴 지브란의 고향 브샤리(브샤레 Bsharri)가 있다는 사실은 여행자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책이나 사진에서 보고 듣던 곳을 직접 내 눈으로 볼 생각을 하니 소풍가기 전날 밤 아이처럼 설레었다. 함라 거리에 있는 작은 환전소가 아침 일직 문을 열었다.
50달러를 환전했다. 1달러에 2,000파운드를 준다. 시계는 오전 8시를 가리키고 있다. 시간을 좀 넉넉히 사용하려고 도라 터미널 까지는 택시를 타기로 했다. 택시는 곳곳에 많이 정차되어 있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가격을 흥정해서 7,000파운드(4200원)에 가기로 했다. 도라 터미널에서 브샤리로 가는 버스가 있는 곳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브샤리 행 버스는 미니버스보다 좀 더 큰 25인승 버스였다. 요금은 7,000파운드다. 오전 8시 35분에 출발했다. 낯익은 고속도로를 달려간다.
가면서 종종 사람을 내려주고 태우기도 한다. 비블로스를 지나고 트리폴리로 가기 전에 우리는 갈라져 오른쪽으로 바다를 등지고 올라간다. 여기서부터 레바논 북부 산악지대로 성자의 계곡이라고 불리는 카디샤(Kadisha, Qadisha Vally)계곡이 시작된다. 험준한 지형으로 이루어진 이곳에는 오래된 수도원이 많다. 버스가 갈림길을 돌아들어 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좁고 구불구불한 길이 시작되었다. 커브를 틀 때 마다 펼쳐지는 절경에 과장 없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길 한 쪽은 깎아지른 절벽이라 스릴이 있었다. 계곡 위에 얹혀 있는 듯한 마을이 나타난다. 까마득한 절벽아래 세워진 수도원도 보인다. 쉽게 외워지지 않는 이름 카디샤 벨리. 뜻을 알고 나면 신기하게도 이름이 입에 착 달라붙는다. Kadisha는 아람어로 ‘성스러운’이라는 뜻이다. 아람어(셈족어)는 고대 중동 지역에서 널리 사용되던 공용어이며 예수님이 사용했던 언어란다. 카디샤 벨리는 거룩한 계곡이라고도 한다. 이곳은 중동 지역의 가장 오래된 기독교 수도 공동체 터전이라 할 수 있다.
카디샤 강에 의해 나뉜 가파른 계곡에는 풍화작용으로 생겨난 천연동굴이 수없이 많단다. 해발 1천 미터 이상에 위치한 동굴은 쉽게 접근하기 어려워서 기독교에 대한 박해를 피해 온 수도사들과 수도 공동체를 위한 은신처로 제격이었을 것이다. 카디샤 벨리의 랜드 마크라 할 정도로 아름다운 수도원 마 리샤(Mar Lisa) 또는 성 엘리샤 수도원(Deir Mar Elisha)은 수직 절벽을 벽 삼아 지어진 2층 구조로 된 수도원 건물이 인상적이다. 수도원이 언제 세워졌는지 명확하지는 않다.
문헌에 처음으로 언급된 것은 14세기란다. 수도원 내에는 시리아어의 고어인 에스트란젤로 문자가 새겨진 검은색 돌 판이 있다. 12세기 이전에 시리아의 수도사가 가져온 것으로 추정된다. 수도사들이 살았던 주거 공간이 여러 개 보인다. 우물을 비롯해 그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32년 동안 수도생활을 한 앙뚜 타라바이 수도사가 유명하다. 그의 무덤과 동상이 있고 커다란 생전의 모습 사진이 있다. 검소하고 사랑을 실천했던 그를 많은 사람들이 존경했단다.
‘내가 살아있어서 고통과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죽어서 이런 고통조차 느낄 수 없는 것보다 행복하다’고 말했단다. 우리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을 때 고통이 있을 수 있지만 이 고통은 우리를 정화하고 더 높은 곳에 이르게 하는 것이란다. 데이르 칸누빈(Deir Qannoubine) 수도원은 마론파 대주교들이 기거했던 곳이란다. 절벽 위에서 구르는 돌의 위험을 피해 예배 장소가 동굴 안쪽에 지어진 수도원이다. 프레스코화가 아직도 남아있는데 그중에 성모의 대관식 장면이 압권이다.
백향목도 그림 중에 볼 수 있다. 17명의 마론파 대주교들이 이 수도원 근처에 매장되어있는데 고대 시리아어로 그들의 이름이 새겨진 묘비가 남아있단다. 계곡에는 100개 이상의 천연동굴이 있다고 한다. 수도원이 이 계곡에는 10여개가 존재한다. 수도사나 은둔자적 삶을 원하는 사람들이 기도와 수행하기에 카디샤 벨리 절벽에 있는 동굴만큼 적합한 장소는 없을 것 같다. 수도원 밖에는 좁은 테라스 모양의 밭도 있다. 수도 공동체에서 척박한 땅을 개간하여 올리브와 포도나무 그리고 곡식을 심어 자급자족 해왔단다.
계곡에 물이 있었기에 그들의 삶이 가능했으리라. 가장 알려진 수도원은 마 안토니오스 쿠자야 수도원(Mar Anthonios Qozhaya)이란다. 이 수도원은 규모가 크다. 유명한 이유가 또 하나 있다. 1610년 중동지역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인쇄기가 이 수도원에 있다. 당시에는 시리아 문자를 사용하였으며 아랍어를 인쇄한 최초의 인쇄기란다. 레바논 최초로 신문을 인쇄한 곳이다. 레바논의 정치와 종교는 매우 복잡하다. 상식정도로 알아두면 도움이 되는 것은 마로나이트(Maronites)다. 우리나라에서 크리스천이라면 대개 개신교 신자를 먼저 떠올린다.
레바논에서는 크리스천 다음으로 이어지는 단어가 바로 마로나이트였다. 마로나이트(마론파)는 3세기경 시리아의 수도자였던 마론의 이름을 딴 기독교의 한 분파이다. 다시 넓게 말하면 레바논 정교회라고 할 수 있다. 마론파는 예수님이 인성과 신성 두 가지 본성을 가진 분이 아니라 인성이 신성에 흡수되어 하나의 본성만 가졌다는 단성론자였다. 이는 당시 로마 카톨릭의 인정을 받을 수 없었다. 7세기 후반 레반트 지역에 이슬람이 전파되자 마론파는 레바논 산맥으로 피했다.
십자군 전쟁 때 마론파는 이슬람에 맞서 십자군 측에 합류하였고, 오랫동안 로마교회와 소원했던 마론파는 십자군 전쟁의 기여를 인정받아 로마 카톨릭의 일원이 되었다. 정교회 교리를 갖고 있지만 지금은 카톨릭에 속해 있다. 마론파는 중동지역의 무슬림으로부터 지속적인 박해를 받았고, 프랑스가 오스만 투르크 제국 내의 기독교 집단을 보호하겠다고 나섰다. 1차 대전 이후 프랑스 위임통치를 거쳐 1943년 레바논은 독립하게된다. 이때 인구의 51%를 차지했던 마론파에서 대통령을 선출하고 그다음으로 많은 이슬람 수니파에서 총리를 선출한다는 협약이 맺어졌다.
그러나 1970년대 마론파는 1/3 정도의 비율로 축소되었다. 마론파가 차지한 권력에 대한 이슬람교도의 불만이 커졌고, 위기를 느낀 마론파는 이슬람교도에 대응할 민병대를 조직하였다. 이러한 긴장과 분쟁이 도화선이 되어 수많은 사상자를 낸 레바논 내전이 발발하게 된다. 4세기경부터 수행과 은둔생활을 위해 험준한 카디샤 벨리에 정착한 마로나이트, 레바논은 역사적으로 기독교도가 많지만 중동지역에서 기독교 중심국가로 이어올 수 있었던 건 높은 레바논 산맥에 위치한 카디샤 벨리 덕분인 것 같다. 성자의 계곡을 찾아오는 자는 누구든지 고귀해 지는 것 같다.
여행조차도 경건한 마음이 들어 절로 마음을 다잡게 된다. 달리는 버스에서 처음 눈에 들어온 광경은 초록색 울창한 산 위에 하얀 눈이 덮인 설산이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대비되는 하얀 산이 정말 감동이었다. 육중한 절벽 위에 얹힌 집들이 편안해 보였다. 레바논의 집값은 높을수록 비싸단다. 수직으로 세워진 절벽이 병풍처럼 이어진다. 하얀 눈으로 덮인 산자락이 이제는 눈에 들어온다. 운전기사도 운전을 하면서 눈 덮인 마을과 산등성이를 핸드폰으로 촬영한다.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며 오른쪽으로 돌았다가 왼쪽으로 틀기를 여러 번 하더니 에덴이라는 간판이 붙은 마을을 지난다.
여기가 지상 낙원 에덴이란 말인가, 이름이 재미있다. 우리는 드디어 브샤리 마을에 도착했다. 도착 시간이 11시 10분이니 거의 2시간이 걸린 셈이다. 백향목 숲이 있다는 곳까지는 거의 8km를 올라가야 한다. 걸어서 갈까를 몇 번 망설이다가 우리는 먼저 택시를 타고 올라가기로 했다. 택시는 12,000파운드(7,200원)를 주고 가기로 했다. 얼굴이 핼쑥하고 긴 아저씨는 자기 아들을 태우고 간다. 걸어서 내려올 것을 생각해서 주변을 잘 살펴보았다.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길은 눈밭으로 바뀌었다. 주변이 온통 눈으로 가득하다. 힘들게 올라가 드디어 우리의 목적지에 내렸다.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문을 연 기념품 가게가 하나 있고 눈을 치우는 사람들이 몇 명 보인다. 기념품 가게는 나무로 만들어진 여러 가지 물건들이 있는데 모두 백향목 모양이다. 십자가도 있고 수도사 모형도 있고 벽걸이용 목재도 있다. 바로 건너편에 백향목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는데 눈이 너무 많이 쌓여 입구도 사라지고 한 발자국도 들어갈 수 없었다. 입구에서 보이는 백향목 숲은 눈으로 가득한 백향목들의 형체만 우리에게 보였다. 크리스마스트리를 해 놓은 것처럼 하얀 눈이 무겁게 가득 쌓여 있다. 길가에 있는 작은 교회당에도 눈이 가득하다.
마당에 들어가 사진을 찍으려니 허벅지까지 눈이 빠진다. 정말 눈이 너무도 포근하고 멋지게 쌓였다. 파란 하늘은 정말 보석 같다. 가끔 흰 구름이 하얀 산을 넘어간다. 숲을 구경하고 싶어 왔는데 눈만 가득 품고 있다. 눈 때문에 보이는 백향목들은 아래 기둥은 보이지 않고 눈을 이고 있는 가지들만 보인다.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 벽에는 Enterance라는 작은 표지가 붙어있다. 직원인 듯한 아저씨 둘이 열심히 눈을 치우는데 꼭 아이들이 눈을 가지고 장난 치는 것 같다.
Dear Vistors of the Forest of Cedars of God. Do not forget to ask for postal cards or Reciept in the amount of your donation. Thank you. 라는 글이 보인다. 안으로 들어갈 엄두도 못 내고 밖에서 사진만 찍어댔다. 아내의 빨간 점퍼가 하얀 눈과 대비되어 잘 어울린다. 거리로 나와 있는 백향목 나무를 보니 처음 보는 나무다. 백향목이라 불리는 레바논 삼나무(Cedrus libani)는 레바논 동부 지중해 산에 서식하는 삼나무 종이다. 구약성서에만 74번이나 등장하는 귀한 나무로 수목의 왕이라 불렸다. ‘튼튼하게 뿌리를 뻗은 강인한 수목’이란 뜻의 아랍어가 어원이다.
레바논 삼나무는 레바논 국가 상징이며 레바논의 국기와 레바논의 국장에 표시된다. 또 레바논의 국적 항공사인 중동 항공의 로고이다. 높이가 40m에 달하는 상록침엽교목으로 직경이 최대 2.5m에 이른다. 오래된 나무의 줄기는 보통 몇 개의 크고 똑바른 가지로 갈라진다. 거칠고 비늘이 있는 껍질은 짙은 회색에서 검은 갈색을 띤다. 1차 가지는 어린나무에서 오름차순으로 크며 그들은 거대한 크기로 자라고 수평으로 넓게 퍼진다. 울창한 숲에서 자라는 나무는 피라미드 모양을 유지한다. 잎은 바늘 모양이며 나선 모양으로 배열되어 있다. 가시 같은 짧은 잎이 15~35개가 무리지어 있다.
페니키아인들은 삼나무를 사용하여 배를 만들었고, 이집트인들은 종이를 만들었으며, 로마인과 터키인도 삼림을 이용했다. 솔로몬은 나무를 사용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세웠다. 현대 역사에서 삼나무는 빅토리아 여왕의 보호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속 남용되었다. 1 차 세계 대전 동안 영국 군인들은 철도를 위해 나무 개체 수를 크게 줄였다. 오늘날 삼나무 삼림지대는 레바논산맥에 있다. 유네스코가 세계 유산으로 지정한 곳으로, 이 지역은 잘 보호되고 있다. 백향목인 레바논 삼나무는 레바논, 시리아, 터키의 동부 지중해 지역의 고산에 자란다.
나무는 바위가 많고 북쪽과 서쪽을 향한 경사면과 산마루에서 배수가 잘되는 석회질 지역에 자라며 햇볕이 잘 드는 풍부한 양토 또는 모래 점토에서 자란다. 자연 서식지의 일기는 따뜻하고 건조한 여름과 시원하고 습한 겨울이 특징이며, 연간 강수량은 1,000~1,500mm 지역으로, 높은 고도에서는 눈이 많이 쌓인다. 레바논에서는 고도 1,300~3,000m에서 가장 많다. 성경에는 성전을 지은 가장 고귀한 나무이다. “그가 레바논 나무로 왕궁을 지었으니 길이가 백 규빗이요 너비가 오십 규빗이요 높이가 삼십 규빗이라 백향목 기둥이 네 줄이요 기둥 위에 백향목 들보가 있으며” (열왕기상 7:2).
“백향목 널판으로 성전의 안벽 곧 성전 마루에서 천장까지의 벽에 입히고 또 잣나무 널판으로 성전 마루를 놓고” (열왕기상 6:15). “우리 집은 백향목 들보, 잣나무 서까래로구나” (아가 1:17). “솔로몬의 모든 원대로 백향목 재목과 잣나무 재목을 주매” (열왕기상 5:10). 1년에 1cm씩만 자라고 40m 까지도 자란다고 한다. 백향목 솔방울을 사라고 들고 오는 아저씨도 있다. 모양이 우리 솔방울과 다르다. 전체적으로 둥글다. 돌아서기 아쉬웠지만 한참을 구경하다가 내려간다. 내려갈 때는 걸어가기로 했다. 눈이 치워진 길은 양 옆에 쌓여 벽을 이루고 있다.
내려가며 뒤돌아 보는 백향목 숲은 정말 멋지고 풍성해 보인다. 언덕 위에[ 쌓인 눈은 곡선미를 자랑하고 있다. 파란 하늘과 흰구름이 하얀 언덕 위에 걸려있다. 사람들은 없고 아내만 옆에서 걸어간다. 가끔 차들이 싸늘하게 지나간다. 눈 속에 파 묻힌 집들은 형채만 알아볼 수 있다. 전봇대는 제자리를 지키고 있고 잎이 없는 미류나무 가로수는 하늘로 향해 줄지어 서 있다. 눈을 치우는 커다란 트랙터가 보인다. 커다란 바퀴에 체인을 튼튼하게 감고 있다. 호텔도 텅 비어있는 느낌이다. 호텔 지붕에 매달린 고드름이 유난히 길어 보여 불안해 보인다.
눈 위에서 타는 작은 전동카가 지나간다. 스키장 리프트가 보이는데 오래된 모양에 사람들은 하나도 없고 하얀 언덕만 외롭게 지키고 있다. 길을 따라 걷다보니 아래에 깊은 계곡이 보인다. 계곡 가운데는 어둡다. 눈을 이고 있는 예쁜 집이 보인다. 눈은 아내의 키 만큼 쌓여있다. 간판이 하나보인다. Becharre, Altitude 1500m, Tripoli 58km, Beyrouth 130km. 길을 돌아서니 왼쪽에 산 중턱이 보인다. 흰색으로 덮여 있지만 집 모양도 구분이 되고 계단 모양의 긴 선이 주룸살처럼 펼쳐져 있다. 초록색이라면 라이스 테라스라고 해야할까?
하얀눈에 검은 선들이 수묵화 같은데 과수 테라스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계곡을 향에 있는 언덕 꼭데기에는 주황색 교회 지붕이 눈에 들어온다. 아주 예쁜 광경이다. 바로 옆 언덕 위에는 하얀 십자가 탑이 솟아있다. 경사면을 자세히 살펴보니 나무들이 가득 심어져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사과나무들이다. 과수 테라스, 온통 펼쳐져 만들어진 과수 테라스에 모두 사과나무라고 생각하니 그 넓이가 엄청 넓다. 고급스런 방갈로 숙소에는 입구에서 눈을 치우는 가족이 보인다. 아이들과 아빠가 부지런히 눈을 치우는데 그 모습이 무척 즐거워 보인다.
작은 십자가 모형집이 눈 위에 외로워 보인다. 왼손에 성경을 들고 있는 수도사의 동상도 무릎까지 눈에 빠져있다. 코너를 돌아설떼마다 눈 아래 펼쳐지는 경치는 정말 멋지다. 눈 덮힌 집과 그 옆에 갇힌 승용차는 정겨워 보인다. 십자가 3개를 이고 있는 작은 모형집이 반갑다. 돌들을 쌓아 만들어진 과수 테라스는 엄청 길고 높다. 아직도 매달려 있는 몇 개의 사과는 얼어버린 연두색이다. 드디어 우리가 버스에서 내린 브리샤 마을이 보인다. 솟은 언덕 위에 주황색 교회 지붕과 종탑이 선명하다. 산은 높을수록 하얗고 계곡은 깊을수록 어둡다.
브리샤 마을 입구에서 백향목 나무 두 그루를 만났다. 솔방울이 달려있어 반가웠다. 떨어진 솔방울 하나와 달린 솔방울 하나를 따서 양 손에 들었다. 너무 소중해 보였다. 냄새를 맡아보니 약간 솔 향기가 난다. 가방에 넣었다. 기념품으로 들고 가기로 했다. Grotte de Kadicha라는 글귀가 보인다. Grotte는 동굴이라는 뜻이다. 주변에 동굴이 있나보다. 그 아래 Gebran Museum이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지브란이라는 반가운 글씨다. 우리는 박물관을 찾아가기로 했다. 갈림길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헤매고 있는데 집에서 나오는 모녀를 만났다.
우리는 지브란 박물관을 물었다. 설명 하기에는 좀 멀어보였는지 자기 차를 타란다. 우리는 아주머니 딸과 함께 차를 타고 간다. 브샤리 마을을 지나 언덕을 좀 내려가니 바로 박물관 표지가 있다. 아주머니 덕분에 쉽게 박물관을 찾았다. 드디어 그리던 칼릴 지브란을 만나게 되었다. 브샤리는 칼리 지브란의 고향이자 카디샤 벨리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마을이다. 인근에 자리한 삼나무 숲도 갔었기에 시의 내용이 마치 눈앞에 그려진다. 세계적인 인물이 어떤 고장에서 나고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궁금했다.
출간된 지 백년이 다 되도록 단 한 번도 절판된 적이 없이 베스트셀러 자리를 꾸준히 지킬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안겨주는 글의 힘이 어디서 오는지도 알고 싶었다. 그의 유명한 저서 ‘예언자’는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란다. 시인이자 작가이자 철학자이자 화가였던 칼릴 지브란. 오솔길을 돌아 약간 올라가니 지브란 박물관이 보인다. 입구에는 칼릴 지브란의 흉상이 커다랗게 검은 돌로 아주 섬세하게 만들어져 있다.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고양이도 그 앞에서 사진을 찍어달란다. 더 올라가 박물관을 마주했다.
7세기부터 수도원이었던 곳을 개조하여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단다. 내부는 사진 촬영 금지, 지브란이 세상을 떠난 후 뉴욕의 지브란 스튜디오에서 옮겨온 가구, 개인 소지품, 서재, 440여개의 컬렉션이 전시되어있다. 그가 그린 그림은 처음이다. 전체적으로 몽환적인 느낌이다. 본인의 자화상과 그가 교류했던 친구 에이츠, 카를 융, 로댕의 초상화도 있다. 지하묘지도 있다. 그는 수도자가 수행을 하던 지하 동굴에 잠들어있다. 지브란이 그의 묘지에 써달라고 했다는 글이 있다. “나는 당신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고, 당신 곁에 있습니다.
눈을 감고 주위를 둘러보면 당신 앞에 있는 나를 보게될 것입니다.”박물관은 답답해 보였다. 기념품도 팔고 있다. 지브란은 1883년에 레바논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드로잉에 열정을 보였으며 집에 종이가 없으면 바깥에 나가 하얀 눈 위에 몇시간이고 스케치를 했단다. 6살 때 엄마가 준 다빈치의 그림에 매료되었으며 화가가 되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집에 있는 책에서 그의 글을 몇 개 빌려왔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함께 서 있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서 자랄 수 없으니,-예언자 중에서
그대들은 오직 침묵의 강물을 마실 때에야 비로소 참으로 노래하게 되리라.
그대들은 산꼭대기에 이르렀을 대에야 비로소 산을 오르기 시작하게 되리라.
대지가 그대들의 사지를 삼킬 때에야 비로소 그들은 참으로 춤추게 되리라.
-예언자 중에서
인류애는 광명의 강줄기이다
영원 이전으로부터 영원으로 흐른다.
사랑과 죽음만이 모든 것을 변하게 한다.
레바논이 내 조국이 아니었다면
나는 레바논을 내 조국으로 만들었을 것이다.-예언자 중에서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오려니 무척 아쉬웠다. 지그시 눈을 감은 지브란의 흉상이 깊이 머릿속에 남는다. 입구의 붉은색 열매 나무가 무척이나 강렬했다. 피라칸사스 나무 같다. 마을 언덕을 걸어오다가 오른쪽 떨어지는 폭포를 만났다. Bcharri is the dwelling of my heart라는 글귀가 지브란 얼굴과 함께 있다. St Charbel 수도사의 동상이 보인다. 사각형으로 지어진 아주 작은 교회에도 십자가가 보인다. 우리는 브샤리 마을에 들어섰다. 이 마을은 아주 역사가 오래된 마을이다. 은둔자의 마을로 알려져 있다. 중동의 알프라고 불리는 설산을 갖고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아랍 특유의 전통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레바논의 깔끔함을 겸비하고 고운 붉은색 지붕의 빛깔이 인상적인 교회도 두 개 있다. 마론파 기독교인들의 집결지이고 지브란이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이 있고 그 후예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그 중심에는 Saint Saba Cathedral이 있다. 우리는 먼저 지브란이 살던 집(Maison Gibran)을 찾았다. 마을 중심에 있다. Free Visit다. 관리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입구를 들어서니 마당에 있는 그의 작은 흉상이 세워져 있다. 흉상 밑에는 다빈치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오른편에는 그 가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이다. 들어가 보았다.
당시의 침대 주방 기구, 거실과 작은 가구가 있다. 아주 소박해 보이는 모양새다. 추워 보인다. “한겨울에도 움트는 봄이 있는가 하면 밤의 장막 뒤에도 미소 짓는 새벽이 있다”는 그의 말이 생각난다. 언덕 위에는 Our Lady of Bsharri Church가 있다. 집을 둘러보고 내려와서 무거운 문을 밀고 Saint Saba Cathedral로 들어갔다. 깔끔하고 질서가 있는 분위기다. 고딕식의 현대적인 분위기는 경건함을 갖게 한다. 잠시 교회에 앉아 있다가 나왔다. 오래된 딱정벌레 모양의 자동차가 힘든 세월을 견디고 있는 것 같다.
성 요셉 카르멜회 수사들의 수도원(Saint Joseph Carmelites friars Monastery) 건물은 문이 굳게 닫혀있다. 한참을 돌아다녔더니 배가 고프다. 식당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작은 구멍가게만 보인다. 들어가서 빵을 사서 먹었다. 무척 달다. 이제 베이루트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버스 정류장에 가보았지만 아직 버스는 보이지 않았다. 작은 사무실이 있다. 추우니 들어오라는 키 작고 통통한 아주머니가 우리를 반겨준다. 철재로 만들어진 난로에는 아직도 열기를 내고 있다. 우리도 난로 가에 앉았다. 우리를 태워 준 택시 기사가 들어왔다.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이름은 일리(Elie)라고 알려준다. 환영합니다는 ‘아흘란“, 인사는 ’살렘‘ 이란다. 아저씨의 환한 미소에서 지브란이 겹쳐진다. 지브란이 추구한 사랑은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은 한 가족이라고 한다. 우리는 지구 위를 걷고 있는 여행자이고 각자 걷고 있는 이 길은 결국 지구라는 하나의 별에 속한 것이리라. 훈훈한 정이 흐르는 것 같다. 우리가 탈 버스가 왔다고 알려 주고 아주머니는 사무실 문을 닫고 종종 걸음으로 사라지셨다. 오후 4시 30분이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베이루트로 가는 마지막 버스란다.
가는 길을 유심히 살펴보니 올라왔던 길로 내려가지 않고 빙 둘러서 다른 길로 내려간다. 계곡을 내려다보며 손님들을 태우고 또 태우며 우리 버스는 이제 계곡을 벗어나 고속도로를 달린다. 어두워진 오후 7시가 되어서야 우리는 도라 터미널에 내렸다. 함라 행 미니버스를 탔다. 샤를 헬루 터미널을 지나서 4번 미니버스로 갈아탔다. 비는 그쳤으나 어둡다. 슈퍼에 들러서 계란과 소고기와 버터를 샀다. 저녁은 숙소에서 계란을 삶아서 버터와 토마토를 먹었다. 여기서 이틀을 또 묵었으니 숙소를 바꿔 보기로 했다. 인터넷을 검색해서 숙소를 찾았다. 이번에는 비둘기 바위가 있는 바닷가 근처에 있는 호텔(City Suite Hotel)을 예약했다.
1월 22일 경비- 택시비 19,000, 버스비 32,000, 빵 2,300, 입장료 30,000, 슈퍼 14,200
계 97,500*0.6=58,500원
누계2,824,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