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지금 나는 전남대 간호학과 1학년에 재학중이다.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내 과에 대해서 과연 후회는 없는가? 그리고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본다.
한달 전쯤 내가 본 영화가 있다. 그 영화 속 남자 주인공은 간호사이다. 그는 의사가 될 수 있는 시험에서 수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간호사 길로 들어섰다. 남자가 간호사를 한다며 주위의 시선과 비웃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밀고 나간다. 의사보단 환자와 있는 시간이 많은 간호사를 함으로써 그들에게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투자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여자의 아버지가 간호사라며 결혼을 반대해도 자신의 선택에 대한 흔들림은 없다. 물론 그의 선택이 100%옳다고 확신하며 전부 받아들이기란 무리일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 그리고 환자에 대한 사랑은 마음속 깊이 전해짐을 느낄 수 있다.
간호는 전문적인 간호사에 의한 간호가 전부가 아니다. 선사시대부터 가족을 보호하거나 가까운 사람을 보살펴 주는 것부터 시작했다. 인류의 시작과 동시에 발생된 간호는 전문지식인들만 할 수 있는 딱딱한 것이 아니다. 똑똑한 간호사보단 따뜻한 간호사가 환자에겐 더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의사가 환자에 대한 객관적 잣대를 가지고 몸 속의 병을 치료해 준다면 간호사는 환자의 마음속 상처를 치료해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뜻한 마음과 정성은 간호의 가장 밑바탕이다. 그리고 그 위에 전문성이 다져질 때 간호가 한 단계 올라설 수 있다고 본다.
나는 내 자신에게 묻곤 한다. 진정 왜 이 길을 택했는가? 사람을 간호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닌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수능을 보고 점수에 쫓겨오지는 않았는가? 아직까지 뚜렷한 답을 내릴 수는 없는 것 같다. 다만 한가지 내가 택한 이 길에 후회는 없다는 것이다. 분명 아픈 누군가를 보살피고 간호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아픈 이들을 보면서 더없이 마음 아플 것이고 밤낮 간호하면서 몸 또한 많이 지칠지도 모른다. 그런 힘든 일 앞에 두려움과 주눅보단 알 수 없는 힘과 용기가 생긴다. 100%환자를 위해 내 자신을 바친다라는 그런 말을 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만은 내 자신과 약속하고 싶다.
극과 극 24기 이진화
극과 극이라고 하면 아주 오래 전 쇼 프로그램이 생각난다.『좋은친구들』中 극과 극...오락시설에서 음식까지...최고의 비용과 최소의 비용을 비교하는 것이다.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인간의 사고에서도 극과 극이 있다.
한 친구가 나에게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건넸었다. 한 큰 은행나무를 보며..."참 웅장하다. 이 나무가 바로 그 영화 속에 나오는 유명한 나무지?" 라고 하지만, 이에 극이 되는 말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아무 말 못하고 조용히 있던 내게, "저 나무를 지탱하는 땅 아래에 큰 뿌리는 얼마나 많은 다른 나무들을 살 수 없게 만들고 있을까?".......ㅋㅋ "아~!" 오랜만에 나오는 탄성이다.^^....이렇게 극과 극의 사고를 하면 좀더 머릿속이 유연해 질 거라고 이야기해주었다.
더 많은 극과 극을 생각하기 전에, 내 사고의 시작은 이것이었다. 여느 화요일이 그런 것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서예학원을 향한다. 어렸을 때 잡은 붓이 올해 4월 다시 나에게 왔기에...히히...오늘 서예는 안 했지만 금석학 공부나 석고문의 글자들을 2시간 이상을 보다가 내 책상에 어그러진 수학책을 본다. 무한의 신비, 수리철학의 기초 등...여기서 뭔가가 떠올라 머릿속은 스쳐 지나가는 것들에 의해 혼란스럽다.
나의 얕은 지식으로 생각할 때, 두 학문은 극과 극의 감각기관(물론 굳이 따지면 극과 극은 아니지만..)을 사용하지만 서로 그들만의 독특한 센스와 끈질긴 정도의 인내를 요하는데 오는 느낌이 어딘가 비슷한 점이 있다. 서예에서 먹내음은 나를 더욱 서예에 더욱 취하게 하고 날카로운 붓이 주인의 손에 익어갈 때....더욱 서예에 신비함을 느끼고 빠져드는 것 같다.
한편, 3차원 이상 세계의 학문인 듯한 수학의 신비는... 오늘도 나로 하여금 친구하기에 부담을 준다. 비록 복잡한 문자와 수식으로 되어 있어 내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들지만, 어딘가 모르게 나를 끌어당겨 빠지게 만드는 신비함이 있다. 전혀 이질적일 것 같은 두 학문의 (억지라고 해도 상관없지만...)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상에서 극과 극을 찾아 비교하는 것보다 전혀 같은 점을 찾아볼 수 없는 것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진정한 극과 극의 사고가 아닐까 한다...
내가 5세 때부터 한시를 지은 김삿갓은 못 되어도, 6세에 이미 무한의 의미를 깨달은 오래된 어느 수학자는 아니어도...나는 오늘도 극과 극일 것 같은 두 학문을 오간다......
겨울에 대하여... 24기 박소정
11월에 겨울을 생각한다는 게 어딘가 이상한 기분이 든다.
내 머리 속의 상식으로는 11월이란 늦가을이라는 생각이 깊이 박혀 있어서 그런가 보다.
하긴 절기 상으로는 입동 지난지도 꽤 되었고, 첫 눈도 내렸는데....
나만 겨울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나 보다.
글쎄.. 겨울이라~~~
여지껏 수많은(?) 겨울을 보냈지만 별다르게 생각한 적이 없어서...
그리고 여름에 태어난 탓인지 그리 겨울을 좋아하지 않기에 겨울하면 그냥 눈 내리고 춥다는 생각만 떠오른다.
하지만 이번에 이 주제를 받고 겨울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겨울을 색으로 표현해 보고자 한다.
먼저 겨울을 상징하는 색 중 대표적인 색은 아무래도 '흰색'이겠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누구나 하늘에서 내리는 순백이 눈을 보고 싫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4계절 흔히 볼 수 없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겠지~~
또한 겨울의 추위와 흰색의 창백함만큼 잘 어울리는 것도 없을 것 같다.
겨울의 또 다른 색은 '빨간색'이다.
'이 추운 겨울에 왠 느닷없는 빨간색...?' 이라고 의아해할 사람도 있겠지만 겨울만큼 따뜻한 계절도 없을 것이다. 구세군의 냄비, 사랑의 열매... 그리고 첫사랑을 이루고자 하는 소망이 담긴 손톱 끝에 살짝 남은 봉숭아물까지...
다른 계절에 비해 이웃을 생각하고 사랑의 마음이 진해지는 계절이기에 겨울의 색은 빨간색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겨울은 '노랑색'이다.
새해가 되면 환히 떠오르는 둥근 해를 보며 새해 소원을 빌고, 올해보다는 더 희망차기를 바라는 모습들... 다음 해에 대한 기대를 갖는 겨울이기에 '희망, 소원, 설레임'의 노랑색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모두 웃어요~스마일~
1)사실 나는.....
어느 미혼모가 산부인과에서 애를 낳았다.
애를 키울 형편이 안 되어서 의사 선생님한테
애를 부탁하고 떠났다.
마침, 어떤 남자가 배가 너무 아파서 산부인과에 들어왔다.
의사는 간단한 수술을 해 주고,
마취에서 깨어난 남자에게 애를 갖다대며,
"보시오, 당신이 낳은 애요." 했다.
순진한 남자는 애를 데려다 뼈빠지게 고생하면서 키웠다.
10년이 흐른 후, 남자가 조용히 애를 불러 놓고는
"아들아, 내가 너한테 할 말이 있다."
"사실은 내가 네 애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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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네 에미다....."
2)나에게 쓰는 편지
정신병원 간호사가 입원 치료중인 영구에게 물었다.
간호사 : "어머. 편지를 쓰시는군요. 누구한테 쓰는 거예요?"
영구 : "흐흐흐. 몰라요."
간호사 : "에이. 누구한테 쓰는데요."
영구 : "그냥 심심해서 나한테 쓰는 거예요."
간호사 : "그래요? 그럼 내용이 뭔데요?"
그러자 영구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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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 "이런 바보!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편지를 받아봐야 알지."
신고합니다! 24기 배세진
내가 학당에 들어 온지...이제 5주가 넘었네요...
처음의 떨리던 마음은 온데 간데 없고....이젠 학당 생활에 적응됐나봐요..
첫 수업이 생각나네요....
얼마나 걱정했었던지 전날 잠도 제대로 못하고...
준비한 자료를 읽고 또 읽었답니다...(물론 대부분의 선배님들께서도 경험하셨겠지만..)
그런데...요즘에는 준비도 대충하는 것 같고 수업에도 덜 충실해 진 것 같네요..
"이러면 안되는데"..."열심히 하자!"....라며 매일매일 다짐하는데...
어~휴....제 자신이 너무나 한심스럽네요...맨날 큰 소리만 뻥뻥 치구..^^;
이렇게 처음으로 "연지 골 메아리"에 글을 쓰면서....많은 걸 생각하게 되었네요...
비록 아직 어리고 세상은 잘 모르지만...
제 미래...맡은 바에 최선을 다할게요...인생 한번 멋지게 살아보렵니다~!!
부족한 점은 옆에서 충고와 격려로 채워주시고 인생에 대해서도 많이 이야기 해주셔요
다시 한번....신고합니다!! 이제 이등병이 된 배세진입니다!! 앞으로 정말 자~알 부탁드립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
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이 시는 제목부터 나의 관심을 끌었고 요즘처럼 특별한 의식을 갖지 않고 살고 있는 나에게 시인의 처절한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은 나를 질책하고 부끄럽게 만들었다. 어느덧 나와 같은 세대들에게 민주주의는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그것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살아온 선배들의 공헌도 잊혀져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공기가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감사히 여기지 않는 것처럼 지금의 젊은 대학생들은 독재정권 시절 피나는 투쟁의 결과 얻어낸 민주주의를 그리 감사해 하지 않는 것 같다.
이 시는 70년대를 감옥에서 보낸 시인이 민주주의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그리고 있다.
시인은 민주주의라는 단어도 아무도 보지 않는 새벽에 몰래 써야하는 상황에 있으며 이 부분에서 그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마 시인은 이 시를 쓰면서 대부분 사람들이 침묵하고 있을 때 용감하게 지식인으로서 권위적인 사회에 직접적으로 대응하려고 했던 것 같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숨죽이면서 시를 읽어야 할 것 같아 긴장감마저 감돈다.
시인은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갈망하고 있으며 민주주의를 "너"라고 하면서 사람처럼 대하고 있다. 시인은 암울한 상황에서도 현실에 굴하지 않고 끌려가든 벗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분노의 마음자세로 민주주의를 판자에 쓰며 더군다나 그 분노는 격정적으로 폭발하며 시인의 마음 속 깊은 한과 비장함을 보여준다. 이처럼 이 시는 비극적 서정성으로 사회, 역사적 상황에 대한 비판과 분노를 진지하게 보여주고 비장한 자기 다짐에서 한의 나약함보다는 강건함을 보여준다.
이 시는 70년대 사회적 배경과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고 그만큼의 시의 절실성이나 감동이 덜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시가 요즘에도 독자들에게 읽혀지고 사랑 받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직도 우리에게 가장 이상적인 제도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에게 그 시대의 상황을 제시해 줄 수 있기 때문인 듯 싶다.
24기 곽상훈...
연지 소식
11월 9일 (토)에 전대 정문 앞 '걸어서 하늘까지'에서 일일호프 있었습니다.
(참석해 주신 선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김초연 형제분께서 새로 연지야학과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
학당에 새로 난로와 컴퓨터를 구입했습니다. (이번 겨울은 춥지 않게 보낼 수 있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