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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어제 이어서 천수경 법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아 계수관음대비주하는 부분입니다. 법문이 시작되는 부분이죠.
계수관음대비주 계수(稽首)하면 머리조아릴 계자고 머리수자입니다.
머리를 조아린다. 이런 뜻이구요. 계수 어디를 머리를 조아리느냐하면
관음대비주 관세보살님의 대비주 즉 신묘장구대다라니라고 하는
관음보살님 대비주에 머리 조아려 절합니다 하는 뜻이지요. 그래서 계수관음대비주
원력홍심상호신(願力弘深相好身) 원력이 아주 넓고 넓다하는 뚯인데요.
그 보살이 지니고 있는 원을 홍원이라고 부릅니다.
넓고 큰 원이라고 해서 홍원이라고 불러서 관세음보살님의 원력이 아주 높고 깊으시다는 이야기죠.
그래서 우리들은 중생들은 원력으로서 살아가기 보다는
자신의 욕망과 자신의 소망 원하는바 집착 이런것을 가지고 살아가죠.
보통 이제 중생들이 사는 원동력이 집착과 욕망이라면
보살이 살아가는 원동력은 개인적인 어떤 집착과 욕망이 아니라, 원력이라고 합니다.
이게 원력과 개인적인 소원의 차이가 뭐냐면
개인적인 소원은 아상이 기반을 한 내가 원하는것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라면
보살의 원력은 나라는 아상이 완전히 없는분들이 보살이기 때문에
나라는 개인이 잘되기 위해서 어떤 일을 행하는것이 아니라,
일체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어떤 원력의 마음 그것을 가지고 행을 한다말이죠.
그래서 일체 중생의 가지고 있지 보살님들이 가지고 있는 원력을 홍원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원력홍심 원력이 아주 깊고 드넓고 깊고 깊다라는 얘기고
그래서 중생들처럼 개인적인 욕망이나 집착을 가지고 있으면 집착대로 하려고 하니까
얼굴이 모습이 어떻겠어요 집착이 많고 막 욕심이 많고 사람들의 얼굴에 나타나잖아요
얼굴에서 부터 편안하지 못하고 뭐 이렇게 뭔가 막 잘해야된다는 욕망과 집착이 가득한 사람
이런 사람들을 보면 막 어떨때 보면 얼굴에 독기가 서려있을 정도로 그냥 앞으로만 달려가고
그 집착심이 몸과 마음에 그대로 드러난다 말이죠.
그런데 이 개인적인 욕심과 집착을 내려높고 원력을 가지고 있게 되면
원력을 가지고 있게 되면 나 개인이 잘되야지 하는 이런것이 아니기 때문에
원력이 홍심이 이루어지게 되면 즉 보살님들처럼 크나큰 중생을 향한 원력이 무르익게 되면
원력이 몸과 마음에 드러난다 말이예요. 원력이 몸으로 드러나니까,
우리가 보기만 해도 그분을 보기만 해도 평화롭고 내 마음이 고요해지고
저절로 마음이 정화가 되는 그런 어떤 모습을 띤다는거죠.
그래서 그러한 원력으로서 원력이 가득한 분들 그런 분들은
몸이 어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육신의 모습을 띠는것이 아니라,
상호가 원만한 상호신의 모습을 띤다는것이죠.
그래서 원력이 홍심이 이루어지면 상호신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원력이 광대하고 드넓었을때 상호가 원만하다.
여기서 말한 상호가 뭐냐하면 우리가 야 이사람은 상호가 좋다 하는것이
부처님의 32상 80종호에서 상 80종호 했을때 거기서 상자와 호자를 떼어서 상호라고 불러요.
그래서 이 상호신이라는 상호가 원만한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바로 불보살님이 32상 80종호를 가지고 있는 그런것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우리 중생들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죠. 그 대표적인것이 서른두가지가 있고,
그것을 세부적으로 나누면 팔십여가지의 어떤 우리들과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그럽니다.
그것이 다겁생동안 쌓아 왔던 어떤 선업과 보살행 보살원력 그런것들이 모여서 몸으로 이렇게 이루어진것이죠.
그래서 그렇게 길상을 가지고 있다고 그러는데 부처님과 불보살님과 전륜성왕들이 그런 32상 80종호를 가지고 있다는데
얘기는 많이 들어보셨을텐데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를 잘모르실것 같은데
제가 약간 특이한 부분이나 몇가지만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32상 혹은 32상대인상 혹은 또 32상대장부상 이렇게 부르는데요.
이를테면 족하안평립상이라고 해서 발바닥이 평평하다 그러구요.
또 발바닥에 두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이제 바퀴라는것은 전륜성왕의 바퀴를 얘기하죠.
보통 우리 종단에 무늬를 보면 동그랗고 원이 세개 삼보 무늬가 되있잖요.
그 동그란것이 크기로 봐서 바퀴를 상징하고 우리 군종 장교의 마크도 병과마크라 그러는데
법사스님들의 병과마크가 보통 기독교는 십자가인데 불교는 만자일것 같은데 만자가 아니라 법륜마크입니다.
수레바퀴 법의 수레바퀴를 돌려라 라는 전법의 수레바퀴를 돌리라는 의미에서 전법의 어떤것를 상징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 법을 전하는 수레바퀴의 모양이 발바닥에 딱 찍혀있다.
그래서 제가 지난번에 보여드렸었는데 제가 인도의 부처님 성지에 가서 찍어온 사진에 보면
부처님의 발바닥의 모습이 있고 그안의 전륜성왕의 바퀴의 모양이 그려져있는 모습을 볼수가 있어요.
그래서 인도에 가면 발바닥 두개가 있고 거기에 바퀴 모양이 그려져있는 발바닥이 막 여기저기에 가면 있어요.
이게 뭐지 싶은데 이게 32상을 아는 사람은 아 부처님의 발바닥이라는 어떤 표시구나 그렇게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손가락도 길다고 그러구요. 또 이것이 좀 특이한데요.
손가락과 발가락사이에 비단같은 막이 있다 이렇게 얘기하구요.
팔을 펴면 손이 무릎까지 내려간다고 그럽니다.
그리고 몸이 금빛을 띠고 있다. 그리고 몸에서 나오는 빛이 주변을 두루 비춘다.
그리고 좀 특이한것이 치아가 마흔개나 그렇게 나와요. 신체가 크고 곧고, 어깨가 원만하고
치아가 가지런하고, 혀가 크고, 음성이 맑고, 눈동자가 검푸르고, 속눈썹이 소와 같고, 두눈썹 사이에 흰털이 있다.
이걸 백호라고 하는 두눈썹사이에 흰털이 있다. 이런것이 이제 32상에 속하는 것이고.
80종호는 그 32상보다 좀더 세부적인데, 모습뿐아니라 성격이나 음성 행동에까지 언급한것이 특징입니다.
80종호는 몸이 깨끗하다. 좀 단순한것들이 많습니다. 몸이 유연하다. 손가락이 길고, 섬세하다.
손금이 장엄하다. 또 복사뼈가 보이지 않는다. 몸이 윤택하다. 또 몸과 정신이 스스로 갖추어져있다.
위의 구족하다. 또 위엄스럽다. 또 얼굴 크기가 적당하다. 몸 크지가 너무 작지도 않다. 용모가 단정하다. 초등학생들 이런데
또 입술이 붉다. 목소리가 깊다. 또 터럭이 오른쪽으로 선회하다. 부처님 터럭있잖아요 오른쪽으로 선회한다.
손금이 분명하고 곧다. 또 손금이 연속된다. 또 보면 즐거워진다. 넓고 둥근 얼굴을 가지고 있다.
또 터럭 구멍에서 향기가 난다. 입에서 향기가 난다. 또 나아감과 물러남이 코끼리와 같다. 또 음성이 구족하다.
또 배가 나오지 않았다. 배꼽이 나오지 않았다. 기울지 않은 신체를 가지고 계시다. 신체가 묵중하고 장대하다.
또 정결하다. 신체 주위에 빛이 비친다. 또 빛이 몸에 비친다. 중생을 평등하게 본다. 중생을 가볍게 보지 않는다.
또 중생에 맞는 설법을 한다. 중생의 언어로 대답한다. 또 차례로 인연에 따라 설법한다. 또 보는이가 싫증을 느끼지 않는다.
또 머리칼이 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구요. 덕스러운 손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런식으로 팔십여가지의 부처님의 특상 특징과 상호가 있습니다. 이정도 하구요.
그 다음에 보면요. 천비장엄보호지(千臂莊嚴普護持) 천비 팔비자죠. 천수와 같은 의미입니다.
천개의 팔로 장엄한다. 일체 중생들을 천개의 팔로 장엄을 한다. 그래서 장엄하고 보호하고 지켜준다. 이런뜻이예요.
아 ~ 이런 천수경이나 관세음보살님의 이런 가르침들 이런것들을 보면 사람들이 궁금하게 여겨요.
관세음보살님이 실존인물이냐 아니냐 역사적으로 학자들 같으면
관세음보살님 석가모니부처님은 석가모니부처님 전생의 보살이라고 했었을뿐이지,
이렇게 대승의 보살들 관세음보살이나 대세지보살이나 지장보살이나 이런것들을 석가모니부처님은
얘기하지 않았는데, 대승불교에만 있는것이 허구의 가상인물이 아니냐
어 뭐랄까. 언밀히 말하면 가상의 인물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상징적인 인물일수 있습니다.
물론 이분이 상징적인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 실존적 어떤 우리가 쉽게 얘기하면 어떤분일수도 있다 말이죠.
인격적인 어떤분일수도 있는 가능성을 무시할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좀 쉽게 표현한다면, 하나의 상징적인 어떤 인물입니다. 관세음보살이라고 말하는 인물은
불교에서 말하는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수없이 말하는 불보살님들이 계시는데 그분들이 정말 있느냐
그분의 일대기를 알수가 있느냐 그분들 어떻게 태어나서 어디서 살다가 어떻게 죽었느냐
이런걸 케묻고 이런게 중요하지 않는 이유는 뭐냐하면 그것은 하나의 상징이기 때문에 그래요.
즉 그런 역할을 하는 우리가 생각하는 분이라고 할만한 인격적인 분일수도 있고,
그러나 우리의 이해로는 이해를 뛰어넘는 어떤 인격적인 존재가 아닐수도 있단 말이죠.
어떠한 진리의 모습일수도 있구요. 근원적인 어떤 진리의 본질 자체를 얘기 할수도 있구요.
혹은 다차원적으로 무한한 어떤 진리가 우리를 품어주고 있는 원리일수도 있습니다.
혹은 화엄성중 호법선신 같은 분들로서 불보살님들이 끊임없이 나투는 것일수도 있고
또 다르게는 내자식으로 내남편으로 날 도와주는 어떤 누군가로 혹은 나를 힘들게 하는 누군가로,
무한한 방법으로서 나를 깨닫게 해주고자 나툰 내주변에 있는 어떤 인물일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한정된 틀안에 어떤 보살님을 가둬 넣었선 안된다.
가둬가지고 이런 분은 어떤분일까 머리로 굴리려고 하고 상상하려하고 그리려해서는
그분의 어떤 위력 위덕 이런것들을 다 헤아려 알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차원에서 보살님들을 생각하시면 되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천수경은요 놀라운 어떤 삶의 비밀 우주적인 이치의 비밀을 담고 있습니다.
아주 놀라운 어떤 의미을 담고 있는 책이예요.
다시 말해서... 보세요. 관세음보살이라고 하는 알려져 있는 우리가 우리가 쉽게 부르기 위해서
그 제일의제라는 진제 속제라는게 있는데 진리 그 자체가 있고 그 진리 자체를 어쩔수 없이 설해야 되다 보니까
말로 표현하는 방편이 있단 말이예요. 방편의 말이 있어요. 방편의 말이 세속제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관세음보살님이라는 어떤 그 위덕과 그 위력을 말로써 다 설명을 할수가 없습니다. 도리?가 없어요.
진리의 세계를 말로서 설명할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부득이하게 말로는 설명을 해야되요.
그래서 말로써 설명해 놓은것이 관세음보살하고 이렇게 이름을 지었단 말이죠.
이건 어디까지나 세속제지. 관세음보살이라는 이름, 우리가 알고 있는
하얗게 옷을 입고 이런 여성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이런분이 관세음보살의 전부가 아니다.
그러니까 관세음보살님의 모습은 그런 백의관음만 있는게 아니라,
뭐 저 얼굴이 막 서른두개가 되어 있는 32응신 33화신으로 나타나는 그런 보살의 모습도 있고.
다양한 모습의 관세음보살님이 있지 않습니까? 수월관음도 있고...
이런것이 그렇게 한가지 모습으로 한정된 제한된 분이 관세음보살님의 실체가 아니란 얘기입니다.
무한한 가지로 천백억 화신으로 석가모니부처님이 나투는것처럼
수도 없이 많은 모습으로 내주변을 나투는분이 바로 관세음보살이다.
그말은 우리말로 제한할수가 없다는 얘기예요.
즉 그러한 모습으로써 관음보살님은 우리주변에 나투어서
일체중생들을 무한히 돌봐주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즉 관세음보살은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보살은 뭐냐면
부처님께서 나툰거거든요 보살로서 즉 부처님과 다르지 않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와 좀더 가까이서 우리 가까이서 나투어서
우리를 직접적으로 도와주는 분이 관세음보살님이란 말이죠.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즉 이 우주법계의 법신부처님이라고 하는
근원적인 진리가 보살로 나투었단 말이예요.
보살로 나투어서 우리들 돌보고 계신다. 무한한 자비로써 돌봐주고 있다.
어떻게 하고 있느냐면요. 보세요.
천비장엄보호지 천개의 손으로써 우리를 언제나 장엄해주고 있다.
우리의 삶을 원만구족하게 장엄해주고 있다는 겁니다.
장엄하고 있다는건 웅장하고 위엄있고 엄숙하게 우리를 돌봐주고 있다.
즉 부처님의 도량에 가서 너무 아름답고 멋있는 모습을 볼때는 우리는 야 참 장엄하다 그러지 않습니까
사실은 우리의 삶 자체가 장엄하다는 겁니다.
부처님께서는 보살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삶을
그 순간에 언제나 완벽하게 장엄한 모습으로써 나타내고 있다는겁니다.
우리가 봤을때는 우리의 중생적인 생각과 해석과 분별로서 봤을때는
괴로운일이 생기고 나쁜일이 생기고 힘든일이 생기고 답답한 일이 생기지만
그렇게 답답한 일인것처럼 보이는 일이 벌어지고,
힘든 일인것처럼 보이는 일이 벌어진것뿐이지,
꿈속에서 벌어지듯이 사실은 그렇게 보이는것 뿐이지
사실은 그 본질은 무한한 장엄함이 우리의 삶을 주춧돌처럼 딱 중심잡고 있단 말이죠.
그것을 관세음보살님이 천개의 팔로 우리를 언제나
장엄하면서 보호지 보호하고 지켜주고 계신다 말입니다. 장엄하게
그러니까 우리가 저 만화영화같은데 보면 어린이들 만화영화같은데 보면요 정말 놀라운것들이 많아요.
어른들은 그걸 안 믿으니까 어른들 영화에는 그런걸 안써요. 저 무슨 미래에 뭐 영화에나 한번씩 쓰지
어린이 영화에는 일상적으로 그런걸 씁니다. 왜냐하면 어린이들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니까.
어린이 만화영화에는 보면은 뭐가 나오냐면요.
이를테면 무슨 화엄성중이나 호법선신이나 수호천사같이 우리들을 돌봐주는 요정들이 나타나서 막 돌봐줍니다.
그러면 그 아이가 힘든일이 생겼을때 요정같이 생긴게 탁 나타나서
이 아이가 넘어졌을때 사뿐하게 이렇게 감싸줘서 덜 다치게 해주고요.
교통사고가 났을때 갑자기 나타나 가지고 교통사고가 조금만 나게 돌봐주고요.
이런 어떤 놀라운 작용들이 만화영화에는 일상적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을 여러분은 믿습니까 안믿습니까
그런게 실제로 있단말이예요.
실제로 그런일들은 우리삶에 일상적으로 작용하고 있단 말이예요.
그걸 불교에서 옆에다가 신중단하고 만들어 놓지 않았습니까?
신중단하고 만들어 놓은 이유가 그거예요.
그렇게 신중님들이 우리를 지켜주는 화엄성중들이 언제나 우리를 돌봐주고 계신다.
신중님보다 조금 더 위에서 돌봐주는 분이 쉽게 말해 보살님이란 말이예요.
그 근원에 있는 분이 부처님이고,
이렇게 다차원적인 어떤 모습으로써 우리를 돌봐주는 어떤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이 있단 말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우리는 돌봄을 당하고 있다.
언제나 돌봄을 당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항상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겁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하고 하는 이유가 언제나 부처님 감사합니다 하고 하는 이유가
언제나 우리는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으로 항상 우리를 바라보면서 언제 어떻게 도와줘야 될지를
그냥 옆에서 하나의 만화 영화의 한장이라면 수도 없이 많은 구름떼 같은 천신들이 우리 주변에 이렇게 모여 있다가
우리가 기도하고 수행할때 환희심내고 찬탄하면서 옆에서 환희스런 마음으로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다가
우리가 다칠것 같으면 옆에 와서 이렇게 안아주고 도와주는 그런 분들이 계신다.
제가 그 재작년에 작년 그작년이네요. 그작년에
일월 일인지 이일인지, 그 첫번째 일요일날 빙판길에 우리 운전병이 운전을 하고 제가 뒤에 앉았었죠.
그 친구가 병장이였었죠. 그래서 병장이 운전병이니까 잘하겠지 하고 또 아이들한테 너무 잔소리를 하면
안되지 않겠나 싶어서 애들이 운전을 심하게 해도 어지간히 그냥 내버려두는 편이였습니다.
너무 이렇게 잔소리를 하면 안되겠다 싶어서 그때 그날은 비좁은 그런 빙판길인데 엄청난 빙판길인데
누가봐도 이건 그냥 빙판이였어요 빙판 그리고 강원도 산길이다 보니까 빙판을 보면 옆에는 이렇게 낭떠러지였다 말이죠.
이렇게 구불구불한 길이예요 또 그런데 얘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빠른거예요.
이 상태로 가다가는 돌다가 분명히 떨어질게 분명한겁니다.
그래서 얘기를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야 이건 얘기해야될것 같은 생각이 딱 일어났지만
아 병장쯤 됐는데 이런것 하나 하나 잔소리하면 되겠나 그래가지고 나이들면 잔소리 없어져야된다는데
하는 얘기를 우리 어르신들한테 하잖아요. 그런데 나부터가 애들 한테 잔소리를 하면 애들 고생하지 않겠나
이런 그런 생각이 들어서 냅두자 하고 생각하던차에 갑자기 우당탕거리면서 낭떠러지로 돌아가지고
이게 정말로 차가 이렇게 삼백육십도 완전히 돌아가지고 옆으로 굴러가지고
밑부분에 나무가 큰게 하나 있었는데 탁 걸려서 제자리에 딱 앉았어요.
삼백육십도 돌아서 눈을 딱 떠보니까 제자리에 서 있어요.
그래가지고 문을 열고 나가보니까 그 밑에 있는 나무에 걸려가지고
그나마 좀 덜 다쳤는데 아이한테 괜찮으냐고 물어봤더니 멀쩡한거예요. 괜찮고,
저도 멀쩡하고 둘다 너무 멀쩡한거예요. 한바퀴 돌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할만큼
그래서 병원가서 그래도 찍어봐라. 그래서 데리고 가서 찍고 했는데,
그 친구나 저나 아무 아무렇지도 않더라구요. 차는 바로 폐차를 시켰습니다.
그래서 차가 우리 저 군대차는 어지간해서는 폐차 잘 안시키고 고치는데.
차를 폐차 시켰을정도로 우당탕 그렇으니까 그런데 우리 둘다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때 차마 말을 못했지만 저는 안전벨트도 안하고 있었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우리 참 둘다 멀쩡하다는게 정말 신기하더라구요.
그런데 저는 그때 이제 마음에서 나오면서 저절로 제 입에서 그냥 저절로 아이한테 괜찮으냐고 물어보고 나서는
저절로 그냥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하는 마음이 말이 저절로 막 튀어나오더라
그러니까 제가 마음속에서는 그런게 있습니다.
누구에게 뭐 이렇게 이런걸 말로 얘기는 하지 않지만 정말 그렇게 우당탕 거리는 그 순간에 그 순간에
정말 나를 도와주시는 일천팔로 거두시는 관세음보살님이 또 수없이 많은 신중님의 도움이
그 순간에 있지 않고서는 분명히 있을수 밖에 없다 라고 생각을 하고
또 그렇게 굳게 믿는 사람에게는 그러한 법계의 도움이 더욱 강력하게 작용을 합니다.
그런데 내가 그런것 없어 하고 믿는 사람에게는 이 존재들이 도움을 줄수가 없어요.
도움을 주는데 내가 안 받으면 본인이 거부하는 사람은 가서 도울수가 없단 말이죠.
그러니까 무한한 가능성에 우리는 마음을 활짝 열고 있어야 됩니다.
야 그런거 다 미신이야. 애들이나 믿는거야 하고 그렇게 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란 말이죠.
그래서 그런 어떤 무한한 신비스러운 도움들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경전에 경전에 이렇게 관세음보살님이 천비장엄보호지한다고 했는데
이걸 불자들이 안믿는다면 말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이것은 꼭 관세음보살님이 그런 어떤것을 한다 이런것도 있지만
더나아가서 무한한 어떤 차원에서 우리를 늘 이렇게 돕고 있는 무한한 자비의 손길들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언제나 안심해도 됩니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장엄스럽게 보호받고 있고 지켜주고 있단 말이예요. 무한한 자비속에서
괴로운일이 벌어지는 그 순간조차 우리를 돕기 위해서 그런 일이 벌어졌구나.
정말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되고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게 되면
모든것이 더욱더 무한한 도움을 받게 되요. 더욱더.
그리고 천안광명변관조(千眼光明便觀照) 천개의 팔로 거두시고 장엄하고 보호하고 지켜주는것 뿐아니라
천개의 눈으로 광명을 놓아서 우리에게 광명을 놓아서 광명이란 빛 광자, 밝은 명자
빛이란 자체가 밝은명을 의미합니다.
즉 밝다는것은 불교에서 뭘 의미하냐면 밝다 혹은 빛 이런건 뭘 의미하냐면
우리가 어두운곳에서는 안보이잖아요. 눈으로 안보이는데 빛을 비추어야지만 보이지 않습니까
이래서 불교에서 말하는 빛이나 빛광자나 밝은명자 이런것들은 전부다 지혜를 상징합니다.
여러분들 예를들어 여러분 법명에 무슨 광자가 들어갔다. 밝은 명자가 들어갔다.
이런것들은 전부다 아 지혜를 상징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되요.
그래서 지혜를 상징하는 밝은 명자는 빛을 상징하는데 이게 아주 오묘합니다.
어두울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 후레쉬를 켜서 빛을 딱 비추면 환히 보이잖아요.
그러면 두렵지 않게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어두울때는 두렵단 말이예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빛을 비추면 빛을 비추는 순간 환히 보이게 되고 모르는걸 알게 되요.
어두울때는 모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빛을 비추는 순간 보는 순간 알게 된다 말이예요.
이게 뭐냐하면 우리가 무지몽매할때 어리석을때 이 우주진리를 모르는 상태를 무명이라고 합니다.
명이 없다. 밝음이 없는 상태 그런데 어떻게 해야 밝아져요? 빛을 비춰야 밝아지죠. 그죠
빛을 비추어야지만 볼수있단 말입니다. 봐야지만 알수있고 깨달을수 있단 말이죠.
즉 우리가 관하라는게 그겁니다.
관하는건 보라는거잖아요. 보라는거
왜 봐야됩니까? 왜 봐야되냐면?
어두운곳에는 보이지 않는데 빛이 있는곳에서 볼수 있고 봐야지만 알수 있으니까.
우리가 관찰을 해야지만 깨달을수가 있는겁니다.
삶의 지혜를 이치를 깨달을수가 있는겁니다.
관찰하지 않으면 깨달을수가 없고 관찰했을때 빛이 비치게 되고
그랬을때 어둠 무명이 명으로 바뀌게 됩니다.
어둠이 거쳐지고 밝은 지혜가 비춰지고 거기에 광명이 비치고
광명이 비쳤을때 우리가 모르는것을 알게 된다 말이죠.
이렇게 관세음보살님은 천안으로써 광명을 놓아서 두루두루 관조하신다.
그런데 이말은 관세음보살님만 이 관세음보살님은 아까 상징적인 의미라고 했는데
내밖의 어떤 절대자여서 어떤 위대한 분이여서 우리를 이렇게 봐라보고 있다가
늘 도와주기만 하는 이런 분이기시만 하느냐 그게 아니다.
제가 다차원적인 이유라고 말씀드린 이유가 안팎에 언제나 구족하고 계신다.
밖에만 계시는게 아니라 내 내면에도 관세음보살님이 계신다 말이죠
우리가 처음에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 했듯이
제신들도 수많은 성중들도 내외에 다 계시듯이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도 내안과 밖의 둘이 아니게 같이 계시는거예요.
진리는 안팎이 따로 없기 때문에,
그래서 관세음보살님이 천안으로서 두루두루 광명을 놓아서 관조한다는건 뭘 의미하냐면
이렇게 우리도 이렇게 관세음보살님의 이러한 가피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됩니까
관찰을 해야된다말이예요.
광명을 놓아서 지켜봐야 된다는 얘기입니다.
대비주를 독송할때도 그냥 맹목적으로 독송하는게 아니라,
독송하면서 내가 독송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지켜보고 그 독송하는 소리를 똑똑하게 내귀로 듣고
그러므로써 분명히 보았을때만이 그 광명의 지혜를 받을수가 있고
돌봄을 더욱 더 직접적으로 강력하게 받을수가 있게 되는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관세음보살과 내가 하나가 되기 위해선 이렇게 관세음보살님이 하시듯이
우리 또한 이근원통을 얻기 위해서 이렇게 천안광명으로써 변관조 모든것들을 관조해야한다.
관조할때 비로소 광명이 열린다. 지혜가 열린다 이런 말이예요.
이렇게 천안광명변관조 또 천비장엄보호지를 더욱더 강력하게 받으려면 관찰을 해야되는데,
여기 천수경에서는 즉 관세음보살님의 본심이 담긴 비책이 담긴 쉽게 말해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려면 관세음보살님의 무한한 도움을 받고
무한한 지혜 광명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되느냐?
중생들이 모르잖아요. 부처님께서는 관찰하라고 이랬단 말이예요.
초기불교에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관조해라 이랬단 말입니다.
위빠사나 하라 그랬단 말이예요. 사념처하라 그랬어요. 관찰해라.
그랬는데 중생들이 관찰하라고 하니까 잘 관찰못하겠습니다.
어떻게 관찰해야되겠습니까? 잘 안됩니다.
걸으면서 관찰하고 호흡을 관찰하고 온갖 마음을 관찰하고 신수심법을 관찰해라
몸과 느낌과 마음과 법을 관찰해라
그런데도 중생들이 잘못하는거예요.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한단 말이예요.
그러니까 대승불교에 와서 관세음보살님이라는 친근한 우리 곁에서 이렇게 도와주고 계시는
관세음보살님을 경전에 등장을 시키면서 조금더 관세음보살님을 통해서
부처님은 근본을 얘기했지만 직관을 하라고 근본을 얘기 했지만
관세음보살님은 방편을 얘기한겁니다.
그래 너희들이 직관하기가 어렵다 말이야 관찰하기가 어렵다 말이야
그러면 좀더 쉬운 방법을 알려줄께 그래서 나온게 바로 천수경이예요.
그래서 관세음보살님이 나왔고 그 관세음보살님이 밝히신 쉬운방법이 뭐냐면 대비주독송입니다.
어떻게 하면 관찰할수 있느냐?
여러분 관찰해라 그러면 잘 관찰이 안되요.
그런데 대비주를 독송하면서 독송하면 독송하고 있는 내 자신이 분명히 느껴지죠. 알아차려지죠. 관찰해지죠.
말안하고 있을때보다는 말을하고 있을때 그 말하는것이 관찰되듯이
대비주를 입으로 독송하게 될때 앉아서 대비주를 독송하게 되면서
내가 대비주를 독송하고 있구나를 알아차릴수 있게됩니다.
그리고 대비주 독송하는 그 소리를 귀로 똑똑히 관찰할수 있게 되고 들을수 있게 되고
그래서 대비주란 신묘장구대다라니라는 좋은 방편의 수행방법을 설해주면서
그것을 독송함으로써 관찰해라.
그것이 바로 천비장엄보호지와 천안광명변관조의 가피를 받을수 있는 방법으로
수행방법으로 천수경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자비광명을 받아들이는 그 수행방법이 바로 그 대비주독송이다.
어 ~ 어떻게 할까요? 조금 더 할까요? 밥을 먹으로 갈까요?
조금만 더 하겠습니다 그럼은요.
어 그 다음에 네가지 그다음에 나오는 진실어중선밀어(眞實語中宣密語)부터 네가지 게송은
관세음보살님과 관세음보살 대비주가 가지고 있는 공덕이 어떤 공덕인지를 설하고 있는데요.
진실어중선밀어 이제 이렇게 설해놓았고 그 다음에 무어라고 설해놓았냐면
진실어중선밀어 진실한 말들이 불교 경전에 나오지 않습니까
진실한 말이라는것이 불교 경전입니다.
부처님께서 여태까지 해놓으신 경전의 가르침입니다.
그게 다 진실한 말이잖아요.
그런 진실한 말 지금까지 석가모니부처님께 아함경과 니까야에서 설하신 진실한 말
진실한 법의 가르침 그 진실어 경전의 말씀 가운데에, 가운데서도 선 베풀 선자 베풀었습니다.
뭘 베풀었냐면 밀어를 베풀었다. 비밀스런 말을 베풀었단 이겁니다.
즉 지금까지 경전이 있지만 경전을 이미 설해 놨지만 경전으로 사람들이 중생들이 깨닫지 못하니까,
조금 더 쉽고 조금 더 중생들이 알아들을수 있는 그런 조금 좀 비밀스런
이런 말 하나 던져줄테니까, 수행의 재료를 줄테니까,
그 재료를 우리에게 베풀어 줬다 이 소리입니다.
진실어중선밀어 진실한말 그 경전들 말 가운데도 밀어를 베푸셨다.
그래서 신묘장구대다라니가 밀어이기 때문에
다라니인겁니다. 해석하지 않는 해석하지 않는거니까 밀어죠.
그런데 밀어를 굳이 해석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밀어라는 비밀스런 어떤 언어로써 그 자체를 독송하는것으로써 공덕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진실한 말 가운데 선밀어 밀어를 베풀었어요. 그게 신묘장구대다라니라고 했고
무위심내기비심(無爲心內起悲心)
부처님께서 진리의 본질에서 즉 관음보살께서 무위심이였단말이예요.
무위 즉 함이 없는 어떤 의도가 없고 자비가 없는 무위심 즉 함이 없는
어떤 본질의 마음이라는 거예요.
어떤 중생의 마음 일체 이런 어떤 유위의 작용이 있는것이 아니다.
함이 있는 작용이 아니다. 의도적이거나 어떤 집착이 담겨있거나 그런 마음이 아니다.
텅빈 마음이라는 말이예요. 완전히 텅빈 마음 무위심이 있었는데
그 무위심을 무위심에서 무위심안에서 기 일으켰어요 뭘 비심 자비심을 일으켰읍니다.
즉 무위심의 부처님께서 진리라는 무위라는 말이죠.
무위의 마음 텅빈 마음에서 자비심을 일으켜서 방편의 수행 밀어 대비주를 보내줬단 말입니다.
그래서 대비주를 보내는 그 이유는 뭐냐 바로 그 자비심때문이다.
부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도 자비롭게 생각하시기 때문에
이런 방편의 다라니 수행을 보내 주셨다하는 겁니다.
그래서 속령만족제희구(速令滿足諸希求)
속히 령 뭐를 하게하여 지이다.라는 뜻이예요.
속히 만족하게 하여지이다. 뭐가 만족하게 하여지이다냐면 제희구
제는 모두 제자죠. 모든 희구 모든 바라고 구하는것들
우리가 바라고 구하는 모든것들 속히 만족스럽게 이루어지이다. 이루어지게 발원하나이다. 이런 뜻이죠.
그래서 무위심 가운데서 공한 텅빈 무위심 가운데서 자비심을 일으켜서
진실한말 그 경전의 말 가운데서도 더 비밀스런 대비주를 밝혀 주셨으니
그 대비주를 독송하게 되면 온갖 그 대비주를 우리가 독송하게 된다면
온갖 우리들이 바라는바 희구하는바를 모두 만족스럽게 이루어 주시기를 발원하옵니다라고 말 하는겁니다.
그래서 영사멸제제죄업(永使滅除諸罪業)
중생들의 모든 죄업들이 영원히 사라지게 하여지이다. 사라지게 하여 주소서 해서
이렇게 대비주를 독송하게 되면 이렇게 원하는바들이 다 이루어질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죄업들이 낱낱이 소멸되어진다. 하는 겁니다.
즉 대비주 독송을 하면 이렇게 원하는것이 이루어질뿐 아니라,
이루어지는 어떤 뭐든지 이루어낼수 있는 어떤 힘을 가진 대비주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일체 모든 죄업장들을 소멸시켜주는 공덕이 있는 것이다. 하는 얘기입니다.
여기까지 오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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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래서 대비주를 보내는 그 이유는 뭐냐 바로 그 자비심때문이다."
우리를 돌봐주시는 부처님 관세음보살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천수경 강의 감동입니다. 법우님들도 새롭게 듣고 읽고 보셔요.
참 좋네요.
집착이 많고 막 욕심이 많고 사람들의 얼굴에 나타나잖아요
원력이 몸으로 드러나니까,
우리가 보기만 해도 그분을 보기만 해도 평화롭고 내 마음이 고요해지고
저절로 마음이 정화가 되는 그런 어떤 모습을 띤다는거죠.
그런데 내가 그런것 없어 하고 믿는 사람에게는 이 존재들이 도움을 줄수가 없어요.
도움을 주는데 내가 안 받으면 본인이 거부하는 사람은 가서 도울수가 없단 말이죠.
불교에서 말하는 빛이나 빛광자나 밝은명자 이런것들은 전부다 지혜를 상징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입으로만 천수경을 달달외기면했는데 천수경을 다시한번 공부하면서 집착과 욕망을 내려놓고 깊고 드넓고 깊고깊은 원력으로 나의 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언제나 돌봄을 당하고 있으니 부처님께 항상 고맙고 감사함에 살겠습니다 정말 감동적인 천수경강의 올려주셔서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복 만땅 받으소서~^^~
와~너무 길어서 댓글 부터 씁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향광심 법우님!
이렇게 좋은 법문 녹취록 올려주셔서 넘넘 감사해요~~^^
새롭게 천수경 공부 해 갑니다~~
천수경의 "신묘장구대다라니" 더 깊은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위의 텅빈마음에서 방편수행으로 주신 자비의 밀어 다라니 ...
무한한 관세음보살님의 자비심에 마음모아 봅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길지만..자세하게 설명하고 계시니까 이해가 많이 된답니다
감사합니다~()-^^
향광심 법우님!
어렵게 녹취해서 올려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선 댓글후 ~~꼼꼼히 읽어보겠습니다
福 많이 받으십시요
'즉 무위심의 부처님께서 진리라는 무위라는 말이죠.
무위의 마음 텅빈 마음에서 자비심을 일으켜서 방편의 수행 밀어 대비주를 보내줬단 말입니다.
그래서 대비주를 보내는 그 이유는 뭐냐 바로 그 자비심때문이다.
부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도 자비롭게 생각하시기 때문에
이런 방편의 다라니 수행을 보내 주셨다하는 겁니다.'
다라니수행에 대한 어쭙잖은 분별심을 내려놓았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향광심 법우님!
향광심 법우님고맙고 감사합니다.사랑합니다_()_
정말 감사드립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