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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캐나다 여행> 후당 고광창
1994년 전남교육연수원 재직 시
중앙교육연수원 주관, 교수요원 재교육 4주 중, 2주는 이론교육, 2주는 해외 연수
해외연수 기간 ; ‘94. 7월 2일~ 7월 13일(11박 12일)
미국, 캐나다 - 내가 처음 본 모습이고 나로서는 가장 최근에 본 모습이다. (그 후로는 가보지 못했으니까--) 교육연수원에 근무한 덕분에 다녀온 해외 연수다. 지금도 고맙게 생각한다.
28년이 지나는 동안 세월이라는 풍파에 枝葉은 다 떨어져 나가고 앙상한 몸체만이 아직까지 내 머리 속에 남아 있는 미국과 캐나다 모습이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아직까지도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28년 전 미국, 캐나다 모습을 찾아보러 떠나 볼까 한다.
출발 전 공부를 못하고 갔기 때문에 가서 보기만 했지 이해를 잘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돌아와서 뒤늦게 ‘찾아보기 공부’를 해야 만 했다.
北美에는 현재 캐나다와 미국 2개 나라가 있는데 이들 나라는 영국, 프랑스 등 유럽지역에서 이주해온 이주민들이 세운 나라다.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독립해서 영어 생활권이고 캐나다는 프랑스와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독립해서 영어와 프랑스어가 공용어인 생활권이 되었다.
經濟 富國, 軍事 强國, 共産勢力 沮止에 앞장서는 나라
미국(U.S.A)
뉴욕, 와싱톤을 중심으로
o 국가 공식명칭 : 미합중국, U.S.A U.S
o 역사 ; 1763 영국이, 미국 땅에 13개 식민지 건설
1775 영국 의회 과다한 세금 부과 - 13개 주 강력 반발, 독립전쟁 벌임
1776. 7. 4 독립선언
o 국토넓이 ; 9,883,634㎢
o 정치 형태 : 대통령제, 연방공화제, 양원제
o 인구 ; 3억 3,200만 인구밀도 35/㎢
o 민족구성 ; 백인 70.6%. 흑인 13.2%, 아시아계 5.4%
o 행정수도 ; 와싱톤
o 화폐 ; 달러, US, $
미국 달러는 기축통화로 세계 어느 지역에서나 사용할 수 있음.
※ 기축통화란?
① 국제무역 결재에 사용되는 통화
② 환율 평가 시의 지표가 되는 통화
③ 대외준비 자산으로 보유되는 통화
우리나라는 ③번 대외준비 자산을 보유하지 못해 IMF를 맞았다.
기축통화국은 미국 달러, 유럽 유로화, 영국 파운드, 일본 옌, 캐나다 달러, 스위스 프랑, 맥시코 폐소, 중국 위안 등이다. 우리가 IMF를 맞은 것은 일본이 옌화를 일시에 빼갔기 때문임
o 종교 ; 개신교 52%, 로마카토릭 24%, 기타 다양한 종교
※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4개국 모두 한때 영국의 식민이었는데 미국을 제외한 3개국은 영국의회가 모두 자율권을 인정해서 독립하도록 했는데 왜 미국은 자율권을 인정하지 않아 독립운동을 펼치도록 했을까하는 의문이 생겨 여행에서 돌아와서 ‘찾아보기 공부’를 해 보았다.
※ 미국 독립전쟁
산업혁명 후 유럽에서는 식민지 쟁탈전이 벌어졌다. 북아메리카는 영국과 프랑스 개척자들이 들어와 세력을 확대하고 있었는데 영국 프랑스 영유권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이 미국 동해안에 13개 식민지를 건설하여 본국에서 죄수들의 유배지로 활용했던 곳이었다. 영국은 프랑스와 전쟁에서 입은 재정적 손실을 식민지에서 걷은 세금으로 해결 할 계획으로 미국에 있는 13개 식민지에 여러 가지 이름으로 세금을 부과하게 되자 그동안 영국 정부의 가혹한 지배에 시달려 왔던 터라 이 지배에서서 벗어나고자 13개 식민지가 힘을 모아 벌인 전투가 미국 독립전쟁이다. 13개 지역 대표가 모여 1776년 7월 4일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13개 지역 군총사령관으로 조지 와싱톤 장군을 지명하였으나 식민지 주민들은 독립을 지지하는 개혁파, 독립을 반대하고 그대로 영국의 식민지로 남아 있자는 왕정파(이 왕정파는 미국 독립전쟁이 일어나자 캐나다로 옮겨갔다), 또 중도파 등으로 나뉘어지고 또 군인들도 정규군이 아닌 민병대인데다가 무기도 재래식 무기여서 어려움이 많았는데 天佑神助라 해야 할까? 프랑스, 스페인, 네덜랜드 등 그동안 영국의 피해를 보아 영국에 한을 품고 있었던 유럽 일부 국가가 독립군을 적극 도와주었다. 프랑스는 캐나다 퀘백 주, 스페인은 풀로리다 주, 네덜랜드는 뉴욕 주를 영국에 빼앗겼었다. 특히 프랑스가 1778년 영국에 선전포고를 하고 영국 본토에서 뉴욕으로 탄약, 식량 등 전략 물자와 병력을 실어 나르던 영국 보급함을 프랑스 함대가 격파해 버렸다. 영국 본토에서 미국 동부지역까지 보급선이 2개월 정도 항해해야 도달한다는데 이 보급선이 갑자기 프랑스 함대에 격파당해 버리자 영국은 할 수 없이 항복하고 말았다. 1776. 7. 4 독립을 선언서를 발표하고도 7년이나 끌었던 미국 독립전쟁은 1783.9 파리조약(영국, 프랑스, 스페인, 네덜랜드 참석)으로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인정받았다. 영국이 식민지에 대한 욕심이 지나쳐 유럽 여러 나라들의 원성을 샀기 때문에 이 전쟁에서 실패한 것이다. 미국 성조기에 그려진 빨강 줄 13개는 당시 13개 식민지를 나타내고 별 50개는 현재 50개 주를 나타낸다고 하는데 성조기에는 ‘오랜 영광’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고 한다.
<미국이란 나라?>
o 경제 ; 지하자원풍부, 산업발달, 식량수출국 - 경제富國
o 군사 ; 최첨단무기 보유 - 군사强國
o 공산세력 저지에 앞장서는 자유민주주의의 지도적 역할
o 우리나라와 관계 ; 6•25 전쟁 시, 유엔안보리 소집 UN군 참전결의, 연인원 180만 여명 파병, 사망자 36,000여 명, 인천상륙작전 수행, 휴전 후 경제지원,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주한미군 주둔
(1) 뉴욕(New York) 시티
7월 2일 PM 18;00 인천공항출발 - 날짜 변경선 통과, 새벽 3시경 해뜨기 시작 -
7월 2일 AM 7:00 (뉴욕 시각) 존 F 케네디 공항도착 (비행시간 13시간)
7월 2일 오후 인천을 출발해서 13시간 왔으니까 7월 3일이 되어야 하는데 미국이 우리보다 13시간 늦게 가니까 달력상으로 다시 7월 2일이 된다. (시간 차 13시간)
뉴욕(NewYork)의 어원 - 영국과 네덜란드 전쟁에서 영국요크(York) 공작(다음 조지 6세 왕이자 엘리자베스여왕 아버지)이 보낸 함대가 네덜랜드군을 함락시킴. 요크(York)공작의 이름을 따서 뉴욕(NewYork)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說이 있다.
뉴욕 시티 위치는 허드슨강 어귀다. 5개의 독립자치구로 나뉘어 있는데 1개 지역만 육지이고 나머지 4개 지역은 모두 섬이다. 지역마다 자연경관, 문화, 스포츠, 쇼핑 등 개성있는 특색을 모두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호텔에 들어갔는데 호텔 지배인이 우리를 모아 놓고 일장 연설을 한다. 핵심은 ‘수돗물을 아껴 쓰라’는 것인데 이곳 뉴욕시 사람들은 수도요금을 내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록펠러재단’에서 은행에 거금을 예금시켜 놓고 그 이자로 뉴욕시민들 수도요금을 대납해 주고 있기 때문이란다. 우리에게 당부하고픈 이야기는 은행이자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수돗물을 너무 많이 사용하면 후손들이 수도요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으니 아껴 쓰라는 것이다. 어제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졸음이 왔는데 그 말을 들으니 잠이 번쩍 깬다. 미국은 부러운 나라다 록펠러와 같이 돈을 쓸 줄 아는 부자가 있으니까---
<뉴욕 길거리 모습>
잠을 자고 싶은 우리의 바램은 아랑곳 하지 않고 시차 적응을 해야 한다며 시내 관광한답시고 우리를 끌고 다니는 인내원이 미웠지만 졸린 눈 비벼가며 따라 다닐 수밖에 없었다.
시내를 나와 길거리 사람들을 보고 첫 느낌은 이곳은 ‘세계인종 박람회장’이구나 였다.
피부색깔, 생긴 모습이 모두 다른 인종이 섞여 사는 다인종 사회였다. 옷차림, 말투도 다르지만 침도 내 뱉고 담배꽁초도 함부로 버리는 사람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사회, 다문화 사회였다. 한편에서는 쓰레기 줍는 흑인 노인의 모습도 보였다.
안내원에게 이곳에서는 담배꽁초를 길거리에 함부로 버려도 괜찮느냐고 물으니 안내원의 답은 이렇다. 서로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사는데 미국법에 의해 잘못을 지적하면 여행객들이 불편해 하니 여행객 마음대로 행동하도록 놓아두고 그 대신 쓰레기 줍는 사람을 지정해 둔단다. 그러면 여행객들도 마음 편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고 쓰레기 줍는 사람 일 자리도 마련해 주는 등 1석 2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싱가포르’를 여행 다녀 온 사람 말을 들으면 그곳에서는 길거리에 침을 뱉거나 담배꽁초를 버리면 벌금을 문다던데 이곳 뉴욕은 참 별난 세상이다. 미국답다고 해야 하나?
<자유 여신상>
‘자유 여신상’은 뉴욕의 상징으로 미국 독립 100주년 기념으로 프랑스에서 보낸 선물이란다.
‘리버티’ 섬에 위치해 있고, 높이 34m, 오른손에는 횃불, 왼손에는 독립선언서를 들고 있다.
멀리서 안내원의 설명을 듣고 사진만 찍고 왔다.
※ 프랑스가 영국과의 7년 전쟁에서 패배하여 영유권을 할 수 없이 영국에게 물려주었는데, 그 앙갚음으로 미국 독립전쟁 때는 미국편을 들어 주고 미국 독립 100주년 기념 선물로 자유여신상을 보내 준 것이라 한다.
<코골이 룸메이트>
뉴욕에서 첫날밤이다. 비행기에서 제대로 잠을 못자고 와서 일찍 잠을 자려고 하는데 내 룸메이트가 대전 사람인데 밤에 잘 때 자기가 코를 좀 고니까 그 점 양해 부탁드린다고 한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나는 눈 감았다 뜨면 아침이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하고 잤다.
그런데 자다가 화장실 가려고 보니 옆 자리가 비었다. 이상하게 생각하고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유 깜짝이야! 내 룸메이트가 욕조에 들어가서 누워서 자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코고는 소리가 보통이 아니었다. 아주 요란했다. 도저히 옆에서 잘 수 없는 상황이다. 깨울수도 없고 해서 용변만 보고 나왔다. 내가 잠 잘 때는 몰랐었는데 이제는 코고는 소리가 방에까지 크게 들려 잠을 자려고 해도 잠을 잘 수가 없다. 왜 하필 내가 코골이와 룸메이트가 되었나 하고 내 운명을 원망하기도 했으나 나보다 3~4살 수상이신 것 같고 나도 앞으로 살다가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니 이것도 하나의 인연이고 먼 훗날 즐거운 추억거리가 될지도 모르니 더 다정하게 대해주자고 마음을 고쳐먹으니 한결 편해졌다. ‘一體唯心造’ 모든 게 내 마음 먹기에 달렸으니 --
<맨해튼 Manhattan>
뉴욕시티의 상징인 맨해튼 Manhattan은 가장 번화가인데 인디언語로 ‘바위 섬’이란 뜻이란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비롯하여 빽빽이 들어선 초고층빌딩들이 빌딩 숲을 이룬 마천루는 모두 단단한 巖盤위에 지어진 고층건물인 셈이다. 맨해튼은 우리나라 여의도처럼 남북이 길쭉한 모양의 섬인데 면적 87.5㎢에 많은 인구가 모여 사는 인구 초과밀지역이다.
‘타임 스퀘어’는 맨해튼의 상업중심지로서 거리는 낮이나 밤이나 인파로 넘실거리고 밤에는 네온사인과 광고판의 불빛이 불야성을 이루어 야경이 무척 아름다운 곳이다. 밤에 야경을 구경하러 나갔는데 반짝이는 네온사인 때문에 눈동자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102층, 381m로 뉴욕의 상징이다. 년 중 35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고 한다. 엘리베이터가 90층 까지 운행되는데 운행속도가 무척 빨랐다. 90층에서 창밖으로 바라본 뉴욕의 하늘은 그렇게 맑지는 못했다. 잠깐 동안 시내를 내려다보다가 바로 내려와야 했다. 다음 관광객을 위해 자리를 비워줘야 한단다.
※ 2001년 9.11 테러로 붕괴된 110층 쌍둥이 빌딩 세계무역센터와 같은 지역에 있다. 9.11테러는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 주도한 만행으로 3,000여 명이 사망하고, 25,000여명이 부상을 당하는 등 미국을 큰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다.
‘웰스트레이트’는 일명 ‘웰街’ 라고도 하는데 맨해튼 남부지역의 번화가로 증권거래소가 밀집해 있어 ‘금융의 거리’라 일컫는 곳이다
‘UN본부는 ’세계의 정부‘라고 부르는 곳으로 설립목적은 ’국제 평화의 유지와 안전‘이며, 지역간 종교간 분쟁과 마약 질병 등 국제적 난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기관이다. 6•25 전쟁 시 UN군 지원을 결정해 준 곳으로 우리로서는 고마움을 결코 잊을 수 없는 곳이다. 가입국 국기게양대 앞에서 다녀갔다는 인증샷을 하고 왔다.
‘센트럴파크’(Centralpark)는 맨해튼 한 가운데에 있는 도심공원인데 무척 넓었다. 뉴욕시 허파역할을 한다고 한다, 아람드리 수목과 청결한 호수가 인상적이다. 산책로에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주변에 편의시설이 군데군데 있어 휴식공간으로 적합한 곳이다. 뉴욕에서는 이곳이 도심 한복판으로 금싸라기 땅일 텐데 이렇게 큰 공원을 조성해 놓았으니 참 대단하다는 느낌이 든다.
<흑인 슬럼가>
시내에서 좀 떨어진 할렘지구는 흑인 밀집지역인데 지역 입구 도로에 바리케이트가 놓여 있다. 이곳 건물들은 검정색인데 유리창은 파괴된 모습 그대로다. 안내원이 바리게이트 부군 접근을 하지 말라고 경고 한다. 건물 어디엔가 이쪽을 보고 총을 겨누고 있는 흑인이 있다는 것이다. 이곳이 흑인 범죄자들의 은신처로 경찰이 이곳에 수색 나오면 경찰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총을 쏜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아찔해서 한 걸음씩 물러섰다.
<초등학교 방문>
시내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50대 후반 여교장이 나와서 학교 현황을 소개했다. 짧게짧게 말을 해야 통역이 가능한데 교장 이야기는 너무 길고 안내원 이야기는 너무 짧다. 초등학교 교장답게 Basic education(기초교육)에 중점을 둔다는 말을 몇 차례 강조하는 것 같았다.
어떤 회원이 교육과정(curriculum)에 대해서 물어보니. 교장의 대답은 ‘학급담임이 작성한 교육과정을 교장과 협의 후 확정해서, 교장과 담임이 각 1부씩 보관 한다’이다. 의사소통이 잘 안 되다보니 愚問賢答인지, 賢問愚答인지 모르겠다.
교실을 둘러보러 갔는데 현관에 있는 사물함 보관소를 보여 준다. 학생이 학교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이곳에 들러 공부하는데 직접 필요한 것만 챙겨들고 나머지는 이곳 개인 사물함에 보관했다가 하교할 때 찾아 간다고 한다, 예를 들면, 우산, 모자, 외투, 큰 장갑 등등,
그 다음 간 곳은 바로 옆에 있는 자료실이다. 자료가 영역별, 학년별로 분류되고 누구나 찾기 쉽게 진열해 놓았단다. 학급 단위로 대여해 주기도 하고 개인이 원하면 개인에게도 빌려준단다. 담당 직원이 하루 종일 근무하고 있다는 말을 덧붙인다.
교장은 한 손에 열쇠꾸러미, 다른 손에 워키토키(Walkie Tolkie 휴대용 송신기) 들고 보여 준다. 관리자로서 열쇠꾸러미와 워키토키를 들고 교내를 순시한다는 뜻인 것 같다.
교실을 한 번 보고 싶은데 교장은 우리에게 잘 가라고 인사를 한다. 수업 참관은 학교와 이야기가 안 된 것 같다. 학교 가서 교장 말만 듣고 겉만 보고 왔기 때문에 보고 느낀 것도 없다. 뭘 보라고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왔을까?
※뉴욕시티는 미국에서 제일 큰 도시, 세계적인 도시, 다인종 다문화도시, 번화가, 슬럼가, 마천루, 범죄자 집단. 도심공원 등 ‘千의 얼굴을 가진 도시’라는 느낌이 들었다.
(2) 와싱톤(Washington) D.C
와싱톤(Washington) D.C는 행정구역상으로는 ‘컬럼비아 특별구’에 속한다. 미국 독립운동 당시 군 총사령관이었고 초대 대통령이 된 와싱톤의 이름을 따서 지은 도시 이름이다. 와싱톤은 미국의 행정 수도로서 ‘관광지’라기보다는 백악관, 국회의사당 등 행정적 시설과 기념관 등이 있는 곳이다.
<와싱톤 기념탑>
와싱톤 기념탑은 높이 170m의 거대한 석조물이고 주변은 넓은 공간에 잔디가 심어져 휴식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워싱톤 D.C에서는 더 높은 건물 못 짓게 법으로 규정해 놓았단다.
<링컨 기념관(Lincoln Memorial)>
건물이 그리스 신전 스타일이다. 링컨 좌상 왼쪽에 유명한 게티스버그 연설문(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이 조각되어 있다. 1862년에 노예해방선언을 하고 1865년에 남북전쟁에서 승리하여 노예제도를 폐지했는데 남북전쟁에서 승리한 몇 달 후 저격당함. 기념관의 36개 기둥에는 당시 36개 주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안내원의 말에 의하면 이 기념관은 미국 흑인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나에게 꿈이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명연설을 한 곳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기념관 아래쪽에 한국전참전 기념공원이 있었다. 우리가 가끔 영상으로 보았던 눈에 익은 광경이다. 판초우의를 입은 동상이 잔디 밭 위에 서 있다. 미군 전사자 3만 6634명과 카투사 전사자 7174의 명복을 기리는 기념공원이다. 연간 400만 명 정도가 기념공원을 찾는다고 한다. 한국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국가의 부름에 응했다가 전사한 사람들이다. 고개가 숙여진다.
그 부근에 ‘홀로코스트 기념관’이 있었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을 주제로 나치의 만행을 기록한 기념관이다.
<백악관(White house)>
하얀색의 대통령 관저다, 울타리가 쳐져있어 접근은 금지되어 있고 길 건너편에서만 볼 수 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백악관 앞 팬스 밖에서는 자기주장을 대자보로 만들고 거기에 사진을 곁들여 붙여 놓고 농성 시위하는 사람이 3명이나 있었다. 이곳은 농성 시위를 허용하는 지역인 것 같았다. 안내원의 말에 의하면 이곳에서 시위를 하면 경찰이 신변을 보호해 준다고 한다. 그만큼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뜻일까? 이곳에 ‘농성 시위 허용지역’ 이란 푯말을 써 붙여야 할 것 같다.
<미국 국회의사당>
캐피털 힐 공원의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흰색의 우아한 신 고전주의 양식의 건물이다.
미국을 상징하는 건물로 88m 높이의 원형 돔의 꼭대기에 6m 높이의 자유 여신상을 새긴 동상이 올려져 있다고 한다. 이곳 와싱톤에서는 13층 이상 건물은 짓지 못하도록 한다고 한다. 시내 어디에서나 꼭대기 자유 여신상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
안내원의 말에 따르면 1814년 영국군이 의사당 건물을 파괴하여 5년 동안 수리를 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영국이 전쟁에서 지고 파리회담에서 미국독립을 확인까지 해 준지가 30년도 넘었는데 영국이 군인들을 시켜서 미국 국회의사당 건물을 파괴하다니 이유는 모르겠으나 영국답지 못한 행동을 했다고 생각한다. 국회의사당도 가까이 접근을 할 수 없고 길 건너편에서 만 볼 수 있다.
의사당에서는 독립기념일 기념식, 대통령 취임식, 영웅이나 정치인 등의 장례식이 열린단다.
<알링턴(Arington) 국립묘지>
40만 명 이상의 전사 장병 묘지에 하얀 십자가를 세원 놓은 묘비가 줄지어 있었다.
존. F. 케네디(Kennedy) 대통령 묘지는 하루 종일 가스 불이 켜져 있다. 재임 중 ‘베르린 봉쇄 반대’ ‘소련 군함 쿠바행 봉쇄’ ‘핵실험 금지 조약’등 굵직한 문제를 해결해 미국 국민들이 케네디의 뉴프론티어(New Frontie 새로운 개혁정책) 정신을 높이 샀는데 1965년 델라스에서 차량 시위 중 갑자기 저격당해 사망하자 미국 국민들이 그의 죽음을 매우 안타까워 한 모양이다. 그의 묘지에 하루 종일 가스 불이 켜져 있는 걸 보니 --
※ 케네디 대통령 시절 우리나라와의 관계
케네디 대통령이 1960년 선거에서 대통령이 되고 우리나라에서는 1961년 5.16군사형명이 있었다. 당시 군사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의장이 경제지원 요청을 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하려 했으나 케네디 대통령은 국민의 선거를 통하지 않은 정권은 정부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하면서 박정희 의장의 미국 방문을 허락하지 않았고 2년 후 서독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을 초청하였을 때 타고 갈 비행기가 없어서 미국 비행기를 빌려서 타고 가려했으나 그 때도 케네디 대통령이 반대하여 비행기를 빌리지 못했다. 부당한 방법으로 정권을 잡은 정부는 인정할 수 없다고 --
얼마 후 케네디 대통령은 저격당해 결국 케네디와 박정희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목사 기념관>
킹 목사는 침례교 목사로서 미국 인권 운동가, 흑인 해방 운동가, 흑인 비폭력 투쟁 지도자 등의 업적으로 1964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흑인 인권 운동을 위하여 강의를 다니던 중 1968년 인종차별주의자의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미국인들은 그를 ‘미국 인권 평등의 아버지’라 한다고 하며, 그의 기념관은 유일한 흑인 기념관이고 대통령이 아닌 사람 기념관이라 하니 미국 인권, 흑인 인권에 대한 그의 공적을 높이 사고 있다는 뜻인 것 같다.
<와싱톤의 밤거리>
와싱톤은 미국 행정수도로서 입법 사법 행정 기관이 모두 이곳에 있고 외국 100개 국 이상의 대사관이 있는 곳이다. 외국 국가 원수나 장관, 국회의원, 사절단 등이 드나드는 아주 중요한 한 곳이다. 그런데 와싱톤 시의 중심에는 사무실과 가게뿐이고 주택지는 시 외곽에 있다고 하는데 퇴근 시간이 되면 근무자들은 서둘러 퇴근을 하고 흑인이 운영하는 가게를 제외한 대분의 가게는 문을 닫는다고 한다. 밤이 되면 흑인 폭력배들은 술 마시고 길거리에서 큰 소리로 노래도 부르면서 자기들끼리 싸우기도 하는 등 흑인 폭력배들의 무법천지가 된단다. 밤에는 경찰도 단속하지 않는다고 하고 --
세계 1등 국가인 미국의 행정수도에서 밤에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도 믿기지도 않는다. 그런데 밤이 되니 호텔측에서 투숙객이 밖으로 못 나가게 문을 걸어 잠궈 버린다.
세상에 이런 일이 어떻게 이곳 미국에서 ---
5泊 동안의 미국 여행을 마치고 캐내다 토론토로 향했다.
<미국의 과제>
1, <인종 차별>
‘링컨’ 대통령이 1862년 노예해방 선언을 했고 노예해방의 갈등 때문에 남북 전쟁(1867년)을 해서 노예해방 주창자인 링컨 대통령이 승리했다. 그후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흑인 인권 운동을 전개해서 1964년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고 그동안 인종 차별에 대한 미국국민들 인식도 많이 변했다. 하지만 지금도 미국 일부지역에서는 버스나 식당 화장실에서 인종 차별을 하고 있는 등 인종 차별로 인한 갈등과 폭력이 완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일부 백인종들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그러나 ’조금 다르다’는 생각과 ‘버스, 식당, 화장실에서의 차별은 ’차별이 아니라 구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미국에서 흑인들은 미국 스포츠계를 주름잡고 있다. 또 강한 힘이 요구되는 곳에서 일하고 있다. 하지만 폭력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세계는 점차 다인종 다민족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데 인종 차별이 없어지지 않으면 세계평화, 인류 평화는 언제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을 지금 인종차별로 속앓이를 하고 있는 미국이 내 놓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2. <총기 개인 소유>
미국은 개인의 무기 소유가 인정된 국가로 총기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총기 개인 소유를 법으로 금지하면 간단히 끝날 일인데 왜 못하고 있을까? 그 이유를 알고 보면 미국 속사정이 복잡하다. 미국은 세계에서 최신 무기를 가장 많이 보유한 군사강국이다. 이들 무기는 무기(총기) 생산 업체에서 생산하고 무기 판매는 미국 정부가 담당한다. 최신 무기를 아무 나라에나 팔수도 없지만 정부간 협의를 거쳐 무기를 팔아야 많은 양을 팔 수 있기 때문이다. 무기 생산 업체는 미국 정부에서 기존에 개발했던 무기를 팔아주니까 또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 낼 수 있고, 미국 정부는 무기를 팔아 생긴 이득금의 일부로 무기를 구입해 준 국가나 다른 개발도상국들을 도와줄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 정부와 무기 생산 업체가 고리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총기 개인소유를 금지 시킬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무기 생산업체는 미국 정계 여야를 막론하고 막대한 정치자금을 뿌리고 있다고 하니 미국은 여야를 막론하고 어느 당에서 총기 소유를 막는 법을 만들 수 없다고 한다. 또 미국 정부는 세계 어느 곳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자국 내에 있는 낡은 무기를 소비하려고 머리를 쓴다고 하니 지구상에 전쟁의 총성이 멈출 날이 언제 돌아올지 알 수가 없다.
영어와 프랑스어를 공용하는 나라, 붉은 단풍잎이 상징하는 나라
캐나다(Canada)
토론토, 오타와, 몬트리올을 중심으로
o 국명 ; 인디언 원주민 언어 Kanata(‘마을’, ‘정착’ ‘물속의 숲’의 뜻)에서 유래
o 독립 : 1869. 7. 1 영국 의회 캐나다 자치권 인정 - 독립 -영국 연방국
o 국토 면적 ; 9,984,670㎢ (러시아에 이어 세계 2번째) 내륙 분지가 80%차지
o 인구 ; 3,800여만 명(영국계 28%, 프랑스계 23%, 이민족 30%, 원주민, 에스키모인)
※인구밀도 ; 4명/㎢
아메리칸 인디언과 ‘이누이트’족이 살고 있었으나 17C 중반 영국 프랑스 사람들이 대서양 해안에 정착하여, 세력을 확장하면서 지배권 쟁탈 7년 전쟁(프렌치 인디언 전쟁)에서 영국군 승리로 영국이 지배권 확보하여 영국의 식민지가 됨
o 정치 형태 - 영국식 의원 내각제(국가 대표- 영국 여왕, 정부 수반 -총리)
호주나 뉴질랜드는 영국 여왕이 형식상 국가 대표이지만 캐나다에서는 영국 여왕이 공식적인 君主다.
o 행정수도 ; 오타와
o 언어 ; 영어 프랑스어 공용
o 국경 : 미국과 8,890㎞의 가장 긴 국경을 가지고 있으나 국경 순찰대는 없음
o 국기 ; 양쪽 빨강색은 대서양과 태평양 또 영국을 상징하고, 가운데 하얀색은 프랑스를 상 징한다. 가운데 단풍 모양은 캐나다의 國花인 ‘사탕단풍’을 상징한다.
o 종교 : 로마 카토릭 43%, 개신교 23%
o 동부 대서양 해안지역이 발달 - 유럽인들이 대서양을 건너와 정착하여 개발함
o 프랑스어권 퀘백주 분리 국민 투표 1980년, 1995년 실시했으나 기각 됨
영어 생활권인 토론토에 지지 않기 위해서 퀘백주에서도 이민을 많이 받아들였는데 이민자 대부분이 분리 독립을 반대함
o 우리나라와의 관계 : 6.25 전쟁 시 영연방국으로 참전, 파병 25,600여 명, 전사자 262명
<토론토 Toronto>
o 위치 ; 온타리오湖 북쪽 연안(미국 뉴욕주와 마주보고 있음)
o 온타리오 주도, 캐나다 제1의 도시, 19세기까지 캐나다 행정수도
o 영국이 원주민으로부터 구입한 땅으로 처음에는 지명을 York라고 했다가 Toronto로 바뀜
o 인구 : 행정수도를 지키기 위해서 이민을 대단위로 받아들였다. 50~60년대 유럽계, 70~80년대 아시아계, 서인도계 이민을 받아들여 영국계 인구는 1/2도 못되는 다인종이 섞여 사는 이주민의 도시가 되었다.
o 언어 : 영어, 프랑스어(영어를 더 많이 사용)
o 특징 : 금융도시
수출항구- 온티리오 호를 이용 미국과 대서양으로 캐나다 상품 수출하는 무역항구
공업도시 - 토론토 주변에서 캐나다 공산품 절반 이상 생산,
o 시내구경 :
CN타워 - 토론토의 상징, 높이 553m, 라디오 TV송출탑, 관광객을 위한 전망대가 있음
다목적 돔경기장 로저스센터- 메이져리그 프로야구팀 토론토블루레이스 홈경기장.
MLB 아메리칸 리그 미국 동부지구에 속함. 지금은 우리나라 류현진 선수가 소속된 팀이다.
※ 로즈데일 지역 - 가로수가 많은 훌륭한 저택 단지다, 정원수 심어지고 빨간 지붕에 마당에 파란 잔디 깔린 전원주택이 사람 사는 집 같은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 아파트는 집 없는 사람들이 집구할 때까지 임시로 사는 거주지란다. 집 주인은 시간 나는 대로 잔디 깎기 작업을 하고 잔디 깎지 않은 집은 환경 훼손으로 고발한다고 --
나도 한 번 이런 곳에서 살아보았으면 ---
누가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을 꼽으라면 이곳이 제일 먼저 떠오를 것 같은 깊은 인상을 받았다.
o 식당 - 우리교포가 운영하는 식당에 토론토 한인회원 명단 비치 - 성명, 전화번호
o 한국일보 - 원판을 서울에서 전송으로 받아 토론토에서 인쇄해서 배부함으로 타 신문사보다 모국 소식 신속보도 하고 있다고 함
※ 이곳에서 북한 김일성 주석 사망 소식을 접했다. (1994. 7. 8 )
※ <나이아가라(Niagara) 폭포>
미국 5대호 중 이리(Erie)호에서 온타리오(Ontario)호로 물이 흘러가는 도중에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다. 세계3대 폭포 중 하나이며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자연경관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이리호는 해발 174m이고 온타리오호는 해발 75m로 두 호수 높이 차이가 100m나 되기 때문에 지형 절벽이 생겨 폭포가 되었다. 폭포는 모두 3개인데 캐나다쪽 폭포는 말굽폭포로 높이 53m, 폭 670m이고, 미국쪽 폭포 2개는 높이 21~30m , 폭 260m정도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려면 캐나다 쪽 말굽폭포를 보는 게 좋다. 말발굽 폭포는 높고 폭도 넓을 뿐만 물줄기가 부서지는 천둥 같은 굉음과 물안개로 숨이 멎을 듯한 광경이 폭포의 백미이고 물안개가 빚어내는 오색 무지개 모습 또한 장관이다. 유람선을 타고 비옷을 입고 폭포수 아래까지 접근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당시 내가 찍은 폭포 사진에 무지개가 들어 있어 그걸 확대해서 기념으로 보관하고 있다.
<오타와 Ottawa>
o 1858년 캐나다 행정수도 지정 (토론토와 몬트리올이 행정수도 문제로 갈등을 빚자 두 도시 중간 지점에 있는 오타와로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지정했다고 함)
※행정수도 문제 ; 퀘백(프랑스어 생활권)과 토론토(영어 생활권)가 번갈아 가면서 행정수도를 맡았는데 토론토에 있었던 행정 수도를 이번에는 몬트리올(프랑스어 생활권)이 가져가려고 하고 토론토는 뺏기지 않으려고 하면서 문제가 생김)
o 지명 - 인디언 부족語
<국회의사당>
거의 대부분 나라들이 국회의사당은 일반 방문객들에게 개방하지 않는데 이곳은 마침 휴회중이고 의사당 방문이 허용되는 나라였다. 의사당 문을 들어서면 정면에는 의장석과 발언대가 보이고 통로를 중심으로 여야 간 의석이 서로 마주 보는 특이한 형태로 좌석이 배치되었다.
※ 안내자의 설명에 따르면 의원들 몸싸움을 방지하기 위해서 좌석을 좌우로 배치했다고 함
우리나라 국회의원만 멱살잡이를 하는 줄 알았더니 캐나다도 비슷한 상항인가? 서로 마주보고 상대편을 손가락질 하면서 말다툼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ㅎㅎㅎ
안내자가 알려주는 당시의 여야 간 의석비율은 여당인 여왕폐하 자유당이 43%정도, 제1야댱인 여왕폐하 보수당이 40%정도, 퀘백당 9%, 기타 8% 정도라고 한다. 黨名에 ‘여왕폐하’란 말이 앞에 붙는다니 참 희한하기도 하다. 여왕폐하 자유당과 여왕폐하 보수당은 어떻게 다른 가 물어보니 안내자의 대답은 이렇다. 캐나다 국민들은 여당인 자유당은 국제관계에서 무조건 영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정당이고. 제1야당은 영국의 입장을 지지하되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결정을 달리하는 정당이라고 생각하고 있단다. 黨名에 여왕폐하란 말이 붙어 있으니 알만했다.
미국 독립전쟁 때, 독립을 반대하고 그대로 영국의 식민지로 남아있기를 원하는 왕당파들이 대거 이곳 캐나다로 넘어온 것을 감안하면 캐나다 국민들 중에는 독립하지 않고 영국의 우산 밑에 있기를 원하는 DNA를 가진 국민들이 상당수 있는 것 같다. 정당 이름이 여왕폐하당인 걸 보면 ---
캐나다가 G7에 들어가는 걸 보면 경제적 선진국임에는 틀림없지만 정치적인 면에서는 지금도 영국에 너무 의존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도 영국 여왕 젖을 떼지 못했다고나 할까?
<중학교 방문>
한 중학교를 갔는데 교장이나 교감이 아닌 교육청 연구사가 나와서 설명한다,
캐나다 교육의 슬로건은 ‘교육으로 미국 따라 잡기(Catch up america)’라고 한다. 한국가의 교육 슬로건에 ‘따라 잡기’라는 말이 어울리지도 않고 어색하다. 애들 이야기도 아니고 --
우리에게 부탁은 캐나다로 유학이나 어학연수 많이 보내주라는 것이다. 아세아에서 중국이나 일본은 학생들을 조금 보내주는데 한국에서는 거의 안 보내준단다. 진짜 英語를 배우려면 미국이 아닌 캐나다로 와야 한단다. 미국에서 하는 美語는 영어가 아니고 영어의 미국쪽 방언(dialect)에 불과하다 등 미국 공격 발언에 대부분 차지한다. 美語를 英語의 方言이라고?
이건 미국을 모독하는 말인데--- 연구사의 失言이 너무 지나친 것 같다. 영어가 세계 공용어가 된 것은 당시 영국이 해가지지 않은 제국이라고 알려질 만큼 강대국이었기 때문이지만 오늘날은 미국이 강대국이므로 美國語가 공용어가 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데 ---
그리고 만약 캐나다교육의 슬로건이 ‘교육으로 미국을 따라 잡기’가 맞다면 어떻게 따라 잡을 것인가 그 방법을 제시해야 하는데 미국을 공격하는데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참 안타깝다. 그리고 캐나다로 유학이나 어학연수를 많이 올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여 그걸 제시해야 할 텐데 ---
이곳에서도 수업 참관이야기는 안 된 것 같다. 학교를 방문했는데 교장 교감은 나타나지도 않고 교육청 연구사가 나와서 설명하는 내용도 이해가 안 되고 -- 아까운 시간만 보낸 것 같다.
o 호텔식당 - 호텔식당이 지하 1층에 있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같이 탑승할 다른 승객이 없는가를 확인 후 그 승객이 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타인 배려 정신이 돋보였다.
<몬트리올 Montreal>
o 지명 유래 - 도심에 있는 세 봉우리의 ‘몽루아얄’산에서 유래
원주민語 ’물줄기가 만나는 곳’, ‘쉼터’
o 위치 ; 몬트리올은 퀘백(Quebec)주의 두 강 사이에 있는 섬
州都인 퀘백에서 서쪽 258㎞, 행정수도인 오타와에서 동쪽 196㎞지점
o 인구 : 캐나다 제2의 도시,
o 퀘백(Quebec)주는 1608년 프랑스 탐험가 ‘샹들램’이 상륙, 1642년 프랑스 식민지가 됨
o 1759년 영국 프랑스 영유권 전쟁(7년 전쟁)에서 영국에 패해, 1763 파리조약으로 영유권을 영국에 넘겨줄 때까지 120여 년 동안 퀘백주는 프랑스 식민지였음.
o ‘캐나다 속 프랑스’라 할 정도로 프랑스어 문화 생활권
프랑스식 건물, 프랑스 거리, 프랑스어 간판, 주민들 ‘우리는 캐나다 사람 아닌 퀘백 사람’
※ 몬트리올 주민 언어 사용 조사 ; 영어 23%, 프랑스어 61%, 기타 16%
o 교통 발달 - 5대호와 대서양 연결, 철도 교통 중심지,
<1976년 몬트리올 하계 올림픽 개최>
안내원의 설명에 의하면 중앙정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하계올림픽을 유치했는데 중앙정부의 지원이 없어 재정난으로 주 경기장을 완성 못한 채 올림픽 경기 진행했으나 10억 달러 빚더미를 떠안았고 경기장은 올림픽 11년 후 완공했으나 30년 동안 부채를 갚아야 했다고 함. 부채청산을 위해 퀘백 주민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여 모든 물건 값이 타 지역에 비해 비싸므로 이곳에서는 간단한 기념품만 사는 게 좋다고 안내원이 귀뜸을 해 준다.
이곳이 프랑스어 문화생활권이라고 하지만 올림픽은 캐나다에서 개최된 세계적인 체육행사인데 지원해주지 않고 부채를 갚는데도 도와주지도 않고 중앙정부에서 나 몰라라했다면 큰 잘못이다. 올림픽 주 경기장 상징물인 주탑이 우리가 갔을 때까지 완성되지 못한 채 서 있는 걸 보니 짠한 마음이 든다. 이렇게 감정의 골이 깊은데 같은 나라 국민이라 할 수 있을까?
※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레슬링 ‘양정모’ 선수가 금메달을 그리고 유도 장은경 선수가 은메달을 획득했다.
<시내구경>
토론토에서 몬트리올에 오니 아주 딴 니라에 온 느낌이다. 건물이나 거리 모습이 프랑스에 온 느낌이다. 더구나 언어까지 프랑스어를 사용하니까 ---
물건 값이 비싸므로 ‘사지말라’는 말을 안내원으로부터 여러 차례 들은 터라 눈 쇼핑만 했다.
점심은 프랑스식 거리 카폐에서 훈제 오리고기에 포도주 한 잔씩으로 간단히 했다.
샹들램 동상(프랑스 최초 퀘백 탐험가)
노트르담 대성당,
장 탈롱(Jean talon) 마켓 - 캐나다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이라 한다.
새벽에는 잠깐 벼룩시장이 선다고 함.
※ <캐나다 과제> ; 영어 생활권과 프랑스어 생활권 갈등 해소
캐나다 동쪽 퀘백(Quebec)지역은 120년 동안 프랑스 식민지이었을 정도로 프랑스계 주민이 많이 살고 있었던 곳이다. 온타리오湖 주변은 미국 독립전쟁 때 독립을 반대하고 영국왕실에 대한 충성을 다짐했던 이른바 왕당파들이 캐나다로 이주해 와 살고있는데 이들을 편의상 영국계라 부른다. 프랑스계와 영국계가 세력을 확장해가는 과정에서 자주 부딪치고 있어 오늘날 캐나다 정부에 큰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캐나다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시절에 여왕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은 나라다. 영국 정부에서 범죄자가 발생하면 미국으로 유배를 보냈는데 미국이 독립한 후에는 범죄자를 가까이 있는 캐나다로 보내지 않고 멀리 떨어진 뉴질랜드나 호주로 보냈다. 미국처럼 독립하려고 애쓰지 않았는데도 1869년 영국의회에서 자율권을 인정하여 독립하도록 해 주었다. 호주보다는 30년, 뉴질랜드 보다는 40년이나 앞서 독립을 허락해 준 것이다. 이런 것들이 모두 빅토리아 여왕시절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고마움으로 세계에서는 유일하게 빅토리아 day를 운영하고 있는 나라다.
매년 5월 23일 전후해서 캐나다에서는 ‘빅토리아 데이’(Victoria day) 라 해서 빅토리아 여왕 탄생일 기념행사를 하는데 이날은 공휴일이다. 관공서는 물론 길거리 가게까지 문을 닫고 쉬니까 과거 프랑스 식민지였던 퀘백(Quebec)지역에서는 빅토리아 day가 아닌 내셔날 페트리어츠(National patriot's day 애국자의 날) 라는 이름으로 쉰다. 빅토리아 여왕은 캐나다에 직접 오지는 않았지만 총독을 두어 지배했다고 한다.
※빅토리아 여왕(1837~1901) - 64년간 영국을 통치한 군주로 많은 식민지를 확보하여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하고 빠른 산업화를 이루는 등 영국 최고의 번성기를 이룬 여왕이다.
이때 영국의 침략을 받아 식민지가 된 나라에서는 빅토리아 여왕을 어떻게 생각할까? 또 승리를 나타내는 Victory와 Victoria 여왕 이름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캐나다가 정치적인 면에서는 영국에 너무 의존적이다 보니 프랑스 식민지였던 퀘백지역과는 갈등의 골이 깊어만 지고, 퀘백(Quebec)지역 사람들은 자기들은 캐나다 사람이 아니고 퀘백 사람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하면서 프랑스식 생활문화를 고집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
‘한 지붕 두 가족’이란 말이 있는데 캐나다를 두고 한 말일까?
하지만 우리는 두 나라 모두 6•25전쟁 때 우리를 도와준 고마운 우방국임으로 사이좋게 지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몬트리올에서는 우리나라 인천공항으로 직항 로선이 없기 때문에 토론토에 와서 인천행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 속에서 空想의 나래를 펴보았다. 16세기까지 세계를 주름잡던 영국의 세력이 18세기에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왔다. 지금 미국이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데 언젠가는 미국의 세력도 태평양을 건너 동아시아로 올 것이므로 미국의 배턴을 받기 위해 우리 한국, 일본, 중국이 준비하고 있다. 과연 다음 배턴 주자는 누가 될 것인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언가들은 하나같이 다음 주자는 한국’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
그동안 많이 변했을 미국과 캐나다 모습도 다시 한 번 보고 싶은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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