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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 사찰제보 스크랩 우리나라 수많은 절 중에 으뜸으로 경내가 아름답다는 절 `직지사`
靑光 추천 0 조회 106 14.01.26 13:0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오래전에 이곳 직지사를 다녀간 적이 있었다

그때 느꼈던 숲 속의 오솔길을 걷는 느낌을 다시 만나고 싶어 찾아간 직지사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다시 걸어보는 숲길은

여전히 아름답고 1,600년의 역사를 가진 직지사를 자세히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일주문을 지나 나타나는 넓은 사찰의 경내는 가슴이 시원해짐을 느낄 수 있어서

더없이 기분 좋고 호젓함을 느껴보는 시간이었다.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 울음소리와

어디선가 들려오는 맑은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기분이 무척 상쾌했다.

 

 

 

1,600년이란 세월 동안 수많은 고승 대덕을 배출하였고

우리 가슴속에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심어온 직지사는

수많은 절 중에서 으뜸으로 경내가 아름답다고 한다

실지로 돌아보면서 참 절이 아름답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그 오래전 신라 초기 눌지왕 때 신라에 불법의 가르침을 전하러 온 고구려의 승려 아도화상이

황악산의 깊은 계곡을 가리키며 거대한 사찰이 자리 잡을 곳이라 예언하였고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이라 하여 직지라는 이름을 가진 절로

아도화상의 예언대로 동국 제일의 가람이라는 칭송을 받는 사찰이 된 것이란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일주문과 비로전을 제외하고 모두 전소하였던 절 직지사는

삼국시대의 본래 모습은 찾기 어렵지만

그중에서도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는 여러 보물과 성보박물관을 갖추고 있는 절이다.

 

 

 

 

만세루 주변에 키가 큰 나무가 즐비하여 더욱 멋스럽던 풍경이었고

정말 절 규모가 대단히 크다는 것을 경내를 돌아보면 더 느끼게 된다.

 

 

 

 

 

 

 

 

직지사 대웅전 앞 삼층석탑 (보물 제606호)

이 두 탑은 통일신라 말기(9세기)의 석탑이다

비로전 앞 삼층석탑과 함께 원래는 경북 문경군 산북면 서중리의 도천사터에

쓰러져 있던 것인데 1974년 이곳으로 옮겼다

이 탑들은 대체로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양식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삼층석탑에서 보이는 이중기단이 아니라 단층기단인 것이 특이하다

기단에는 면마다 안기둥과 귀기둥을 돋을 새김하였을 뿐 다른 장식은 없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기 하나의 돌로만들었는데

몸돌에는 다른 장식 없이 귀기둥모양만 돋을새김하였다

지붕돌에는 수평을 이룬 처마선 아래로 1층부터 차례로 5.5.4단의 처마받침을 두었으며

1층 지붕돌에는 추녀 끝마다 풍경을 달았던 구멍이 뚫려져 있다

상륜부는 1976년에 추정 복원한 것이다

이 탑들은 단층기단인데다가 1층 몸돌이 유난히 길게 올라가 있어서 시원한 상승감이 돋보인다.

-안내문-

 

 

 

 

 

직지사 대웅전(보물 제1576호)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건물이다

직지사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불과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다

조선전기에는 대웅대광명전이란 건물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려 선조 35년에 대웅전을 새로 지었다

이후 인조 27년(1649)에 중영이 있었고, 영조 11년에 다시 중창하였다

건물의 규모는 앞면 5칸 옆면 3칸이며 지붕 형식은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직지사의 중심 법당답게 크고 짜임새가 있으며 높은 천장에 화려하면서

절제된 장식은 종교적인 장엄함을 더한다

세 분의 부처님을 모신 수미단은 효종 2년(1651)에 조성된 것으로

용, 물고기. 개구리, 연꽃 등 여러 무늬들을 소박하게 조각하였다

폭이 9m에 이르는 후불벽 뒤에는 활달한 필치로 그린 관음도가 있으며

다른 벽면도 화려한 벽화들로 장식 하였다.

-안내문-

 

 

직지사 대웅전엔 보물 제670호인 삼존불탱화가 있다

불상 뒷벽에는 각 부처들의 설법 장면을 그린 석가모니후불탱, 약사후불탱, 아미타후불탱 등

3폭의 불화가 걸려있다. 비단 바탕에 그린 이 불화들은 모두 길이 6m가 넘는 거작으로

영조 20년에 직지사의 세관 스님을 비롯한 16명의 화승들이 그린 것이다

각 폭마다 여래를 중심으로 보살. 나한. 천황. 신장 등을 배치하였고

적색. 녹색. 황색을 주조색으로 채색하였다

짜임새 있는 구도, 각 존상에 표현에 보이는 뛰어난 묘사력, 차분한 색조와 조화로운 배색

화려하고 셈세한 세부 표현 등이 어우러져 장엄한 불교회화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직지사 삼존불탱화는 작품성과 규모에 있어 18세기 불화를 대표하는 우수한 작품이다.

-안내문-

 

 

 

 

어디를 둘러봐도 절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곳곳에 예쁜 꽃들이 피어 아름다웠고

새소리, 물소리, 그리고 고요히 흘러나오던 절에서만 들을 수 있는 목탁소리....

 

 

 

 

 

정말 숲길을 걷는 느낌이 좋았다.

 

 

 

담 밑에 심어진 봉숭아꽃이 어여쁘게 피어 있는 모습에

이 절에 계시는 스님의 마음을 엿 보는것 같아 흐뭇하고...

 

 

 

 

 황악루앞에 있는 나무 한 그루는

고 박정희 대통령이 어릴 적 타고 놀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직지사는 돌아보면 울창한 나무 숲이 많아서 거니는 느낌이 무척 좋았다.

 

 

 

 

비로전

일명 천불전이라 하는 이 건물은 고려 태조의 지원으로 능여

조사와 그의 제자 신홍. 혜안 등에 의하여 초창되었다

직지사내에서 임진왜란을 모면한 유일한 건물이며

현종 2년(1661) 인계대사가 중창하였고 숙종 28년(1702) 정행대사의 등의 중수와

함께 다시 1899년의 중수를 거쳐 1975년 주지 녹원화상이 중건하였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양식이며 총 51평이다

천불상은 고려시대 속리산의 경잠대사에 의하여 조성된 것으로 전한다

-안내문-

 

 

 

 

직지사 비로전 앞 삼층석탑(보물 제607호)

이 석탑은 통일신라 말기(9세기)의 석탑이다

대웅전 앞에 서 있는 2기의 삼층석탑과 함께 문경군 산북면 서중리

도천사터에 있던 3기의 석탑 주 하나이다

1974년 이곳으로 옮겨왔으며, 1976년 상륜부를 추정 복원하였다

이 탑은 대웅전 앞 삼층석탑과 크기나 양식, 세부가 모두 같다

이렇게 모든 면에서 동일한 3기의 석탑이 한 곳에 서 있는 경우는

그 밖의 예가 남아 있지 않아서 매우 특별한 경우에 속한다

또한 이 탑은 삼층석탑이면서도 이중기단이 아닌 단층기단 석탑으로서

이러한 예들이 문경. 상주. 선산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것으로 보아

이 지방의 특색으로 이해되고 있다.

-안내문-

 

 

특히 이곳 직지사에서 많은 관심을 갖는 곳이 바로 이곳 비로전이다

천 개의 불상이 모셔져 있는 비로전은

부처님 한 분 한 분이 모두 다르다고 한다

같은 불상이 하나도 없다고 하니 신비롭기만 했다

천 분의 부처님 중 한 분은 부처님의 탄생을 상징하는 탄생 불이라고 한다.

 

 

 

 청풍료는 직지사의 박물관이란다

 성보박물관에는 오래된 많은 보물을 전시하고 있었다

유물 보호를 위해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직지사 청풍료 앞 삼층석탑(보무 제1186호)

이 탑은 통일신라 말기(9세기)의 석탑으로

원래 구미시 선산읍 원동 낙동강 변 강락사터로 전해지는 절터에 무너져 있던 것이다

1968년 경북 선산군 군청 앞뜰로 옮겼다가 1980년 다시 이곳으로 옮겼으며

이때 상륜부를 추정 복원하였다

기단이 단층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양식을 고루 갖추고 있다

기단은 한 면을 두 장의 돌로 짜맞추었는데 안기둥과 귀기둥을 돋을새김 했을 뿐 별다른 장식은 없다

탑신을 이루는 몸돌과 지붕돌은 각기 하나의 돌로 만들었다

몸돌에는 다른 장식없이 귀기둥만 돋을새김하였으며

지붕돌에는 수평을 이룬 처마선 아래로 5단의 처마받침을 두었다

1층 몸돌의 높이가 2.3층에 비하여 성큼하게 높으면서도 지붕돌의 두께와 폭이 알맞아

단층기단의 탑이면서도 차분한 안정감과 경쾌한 균형감을 가지고 있다.

-안내문-

 

 

  

 

절에 가면 꼭 보게 되는 곳이 있다

스님이 수행 중이니 접근하지 말라는 문구와 함께

저런 풍경을 자주 보게 되는데, 이곳 직지사에서도 만나게 되는 풍경이었다.

 

 

 

 

 

 

 

직지사 사명각

사명각은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구한 호국대성 유정(1544~1610)

사명대사의 영탱을 봉안하여 대사의 유덕을 기리는 건물로서 조선 정조 11년(1787)에 창건되었다

대사의 속성은 임씨 자는 이환이며 법명은 유정 법호는 사명 또는 송운이다

1544년 10월 17일에 경남 밀양의 무안면 고나리에서 태어나 15세에는 황악산 아래 유촌 황여헌으로부터

유학을 수학하더니 곧 황악산 직지사로 출가하여 주지 신묵화상의 제자가 되었다

18세가 되는 명종 16년(1561)에는 선과에 합격하고, 30세인 선조 6년(1573)에는 직지사의 주지가 되었으며

49세가 되는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여 큰 공을 세웠다

특히 적의 전중에 여러 차례 드나들며 왜적을 설득하여 백성들의 화를 면하게 하더니

선조 37년에는 61세의 몸으로 일본에 건너가 억류되었던 포로 3천여 명을 데리고

귀국하므로 선조는 가의대부로삼아 어마를 하사하는 등 대우가 극진하였다

광해군 2년(1610) 67세를 일기로 가야산 해인사에서 입적하니 시호를 자통홍제존자라 하였다

-안내문-

 

 

사명각 안을 들여다보니

사명대사의 영탱을 봉안하여 대사의 유덕을 기리고자 함이란다.

 

 

 

 

 

 

 

 

 

 

 

 

직지사는 돌아보면 어쩐지 가슴이 넓어짐을 느끼게 된다

경주 불국사 같은 느낌도 들었던 것은

대웅전 앞에 나란히 서 있는 석탑 때문이었지 않나 생각이 들었고

넓은 터에 자리 잡은 직지사가 생각보다 규모가 크다는 점에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직지사는 울창한 나무와 함께하는 건물들이 운치 있었고

걷기에 정말 좋은 산책하러 다녀온 느낌 같은 포근함이 좋았다

조석으로 가을이 조금씩 느껴지는 걸 보면

가을이 우리 곁에 와 서성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낙엽 지는 어느 가을날 홀연히 직지사를 다시 다녀가고 싶은 마음을 놓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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