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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철학의 여러 단계들(1912),
브륑슈비크(1869-1944), P. 592.
제1부 구성의 시대 Période de constitution 01
제1권 산술학 Arithmétique. 03
제1장 인종지학과 초기 수의 조작들 L’ethnographie et ... 7
제2장 이집트 셈칙(셈법), Le calcul égyptien 26
제3장 셈법 과 피타고라스학자들 L’arithmétisme et Pythagoriciens 33-42
제2권 기하학 Géométrie 43
제4장플라톤학자들의 수학주의 Le mathématisme des platoniciens 43
단원 A, 플라톤 문제의 지위 Section A. La position du problème platonicien 43
단원 B 플라톤주의 방법La méthode platonicienne 49
단원 C. 형이상학의 뮈편과 뉘편Les livres M et N de Metaphysique 61
제5장 형식논리학의 탄생. La naissance de la logique fomelle 71
제6장 유클리드 기하학 La Géométrie euclidienne 84
제7장 분석 기하학 La Géométrie analytique 99
단원 A. 페르마 Fermat 100
단원 B. 데카르트의 보편수학과 물리학 La mathématique universelle de Descartes et la Physique 105
단원 C. 1637년의 기하학 - La Géométrie de 1637 - 113
제8장 데카르트학자들의 수학적 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es cartésiens 124
단원 A. 데카르트주의의 문제들 Les problemes du cartésienisme 124
단원 B. 말브랑쉬의 수학적 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e Malebrache 130
단원 C. 스피노자의 수학적 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e Spinoza 130
제3권 미분 분석 Analyse infinitésimale 153
제9장 미분계산의 발견 La découverte du calcul infinitésimal 153
단원 A. 고대 L’antiquité 153
단원 B. 나눌 수 없는 것들의 기하학과 라이프니츠의 연산법. 163
단원 C. 페르마로부터 뉴턴으로.De Fermat à Newton 177
제10장 라이프니츠의 수학 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e Leibniz 197-229.
단원 A. 토대 Le fondement 197
[1절] 문제의 제기: 논리학과 수학 Position du problème: Logique et mathématique 198.
[2절] 대수론과 분석론 L’algèbre et l’analyse 205
[3절] 지적인 역동론 Le dynamisme intellectuel 208
단원 B. 적용들 Les applications 211
[4절] 무한 과 길이[너비] l’infini et l’etendue 211
[5절] 무한소 계산과 기하학 Le calcul infinitésimal et la géométrie 213
[6절] 무한소 계산과 [정]역학 Le calcul infinitésimal et la mécanique 215
[[단원 C. “자연배후학”의 새로운 정초: 운동과 연속성의 사유: 심리학적 단위(l’unité).]]
[7절] 실체 La substance 219
[8절] 단자 La monade 222
[9절] 단자론 La monadologie 225
제11장 수학의 이상성과 형이상학의 실재론 L‘idéalité mathématique et le réalisme métapysique 230
[1절] 이상적인 것의 논리학 La logique de l’idéal. 231
[2절] 공간적 실재론 Le réalisme spatial 233
[3절] 현실역의 논리학 La logique de l’actuel 238
[4절] 이상역과 현실역의 충돌 Le conflict de logique de l’idéal et de l’actuel 240
[5절] 무한소 계산의 형이상학 - La “Metéphysique” du calcul infinitésimal 243
제2부 근대 시대 Période moderne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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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수학의 이상성과 형이상학의 실재론 L‘idéalité mathématique et le réalisme métapysique 230
§134. [라이프니츠의 철학에서 새로운 형식: 당대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라이프니츠의 수학적 철학은 우리 스스로 제안한 대상을 위하여, 중요한 관심을 제공한다. 근대 지성성이 어떤 빛살로 빛을 발할 수 있는지를 보기 위하여, 그것으로부터 진행방식을 따라야만 한다. 사람들은 수학주의를 기꺼이 자기 모습으로 만드는데, 그 수학주의가 사물들의 잡다한 국면들을 단일하고 단조로운 추상작업으로 환원하면서, 사실상 그 수학주의는 가장 정확하고 가장 깊이 있는 학문에게 호소한다. 그 학문은 그 구상[착상]에서 그 학문의 무한성의 근원에 있는 자연을 간파하려고하고, 또한 보편적 운동의 “거대한 미묘함”과 동등하려 한다. 라이프니츠는 지성이 본질적으로 운동이고 관점이라고 하는 스피노자주의의 원리로부터 영감을 받아서, 그리고 그 원리의 적용을 그의 수학적 천재의 발명들에 의해 새롭게 한다. 라이프니츠는 - 예상참여하기 위한 거꾸로 작업을 위하여 감당했던 규정작업 이래로, 신이 생각했었던 계산의 비밀에까지, - 철학이 마주칠 수 있는 문제의 총체성에 접근하고 그것을 해결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계산의 비밀에 의해 신은 창조의 도면[계획]들을 생각했고, 질서의 최대치(maximum)로부터 변이의 최대치(maximum)에 결합시키는 자를 선택했다. 제한[한계]들도 장애물들도 알지 못하는 형이상학적 사유의 과감함[무모함]은 기술적 발견물들의 유비에 비추어서 찬양할 만한 정확성과 천체성을 지지해 준다. 퓌타고라스주의와 플라톤주의 이후에, 그리고 데카르트학파의 체계들 이후에, 라이프니츠는 적잖이 풍부하고 적잖이 완전한 수학 철학의 새로운 형식을 제공한다. (230)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선 학설들에서도 도달하지 못했듯이, 새로운 철학이 라이프니츠의 수학철학에 이르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진리를 뒤따르는 세대들에게 부과하고자 하였다. 게다가 수학철학은 그 자체를 정의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고, 내속적 진리 속에서도 고정되지 못했던 것 같다. (230)
그러한 좌초의 이유들이 어떠한 것들인가? 즉 플라톤주의의 좌초가 고대철학에서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근대 철학에서도 좌초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 이유들이 어느 정도로 학설의 과학적 기초들에 연결되어 있었는가? 라이프니츠의 사변이 증거하는 예외적인 풍부함이 구조적 동질성의 손실에 돈으로 구매되지 않았겠는가? (231)
아마도 사람들이 라이프니츠가 사용했던 절차의 방식에 관해 반성하면서, 그 절차는 과학에서 형이상학적 문제들을 밝히는데 성공했는데, 사람들은 두 가지 논리적 동기들(deux motifs), 현실적인 것[현실역]의 동기(motifde l’actuel)와 이상적인 것[이상역]의 동기(motifde l’idéal)를 구별하는 데로 이끌렸다. 그런데 라이프니츠는 이 두 가지의 대립을 깔끔하게 표시[표현]했다. “In actualibus simplicia sunt anteriora aggregatis in idealibus totum est prius parte.” [현실적인 것 속에 단순한 요소들이 집적(복합)들 보다 앞서며, 이상적인 것 속에 모든 것[전체]이 부분에 앞선다.] - 그리고 또 아마도, 마치 그의 독창성과 꼭 마찬가지로, 체계의 본질적 난점이 이 두 동기들의 영속적 얽힘(l’enchevêtrement)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닌지를 거기에서 자문할 이유가 있다. (231)
1절, 이상적인 것의 논리학 La logique de l’idéal. 231
§135. [분수(la fraction)에서 작은 크기들의 단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이 작은 단위들은 산술학의 수도 기하학의 너비가 아니다. 그럼에도 실재하는 현실적인 부분이다. 이것이 현상의 기원(근원 또는 이유)이다. ]
현실적인 것(l’actuel, 현실역)의 논리학과 이상적인 것(l’idéal, 이상역)의 논리학 사이에 연관들이 어떤 것인가? 어떤 의미에서 후자는 전자보다 더 높은 질서로 되어 있다. 기본적인 산술학과 기본적인 기하학은 덧셈과 뺄셈의 통속적인 절차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분수들(les fractions)의 계산 또는 “무한 분석”에서 덕보고 있는 크기들에 대한 일반적 과학은 반대의 진행을 따른다. “Unitatemque esse principium numeri, si rationes spectes, seu prioritatem naturae, non si magnitudinem, nam habemus fractiones, unitate utique minores in infinitum.” [(내가 생각하기로) 만일 사람들이 크기를 고려하지 않고 연관들을 고려한다면, 단위는 수들의 원리이다. 왜냐하면 무한에서 단위보다 확실히 더 작은 분수들을 갖는다.] (231)
1695년의 「푸셰 씨의 반대들에 관한 논평들(Remarques sur les objections de M. Foucher)」속에서(실체들의 소통의 새로운 체계에 반대하여), 라이프니츠는 이상적 질서를 정확하게 묘사한다. “추상화된 1/2이란 수는 아주 단순한 연관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다른 분수들의 조성작업에 의해 전혀 형성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1/4 또는 1/8이 그것[1/2]의 부분들을 재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가장 작은 분수들에게로 이를 수 없고, 수를 마치 최종 요소들의 모입에 의해 형성된 전체처럼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전체를 마치 수처럼(생각할 수 있고), 사람들이 나눌(분할 할) 수 있는 선에 대해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거기서 생각할 수 있는 너비 또는 공간, 면적들, 선들, 점들은 … 조성하는 원리들이 아니고, 더욱이 수도 아니다.” (231)
따라서 수학의 발전은 연관들(rapports)의 발생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 연관들은 공상적 사물이 전혀 아니다. 이것들은 “영원한 진리들의 감금이며, 이런 진리들에 근거하여 자연의 현상들이 규제된다.”이상적인 것(l’idéal)은 감각적인 것의 형식, 실재적인 것의 기준이다. “무한 조성작업들에 너무나 큰 다수[크기]는, 수학들의 물리학에 적용들에서 만큼이나 잘 형이상학의 규칙들의 적용들에서, 우리가 스스로 상실한도 또는 결국에는 우리가 멈추어야만 한다고 진리에게 실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적용들은 결코 속이지 않는다. 그리고 정확한 추론 이후에 계산착오가 있을 때, 사람들이 그 사실을 충분히 껍질을 벗길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고, 가정 안에는 불완전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런 적용 안에서 더 멀리 갈 수 있는 것만큼이나,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무한에 대한 고려를 더 잘 다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의 마지막 방법들이 그것[무한]을 알려고 했던 것과 같다. 이리하여 수학적 성찰들이 이상적이라고 할지라도, 그러한 것은 성찰들의 유용성을 전혀 축소시키지 못한다. 왜냐하면 현실적 사물들은 이것들의 규칙들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사람들은, 그러한 것에는 사물들을 상상(des songes)로부터 구별하는 현상들의 실재성이 들어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런 이유로, 무한소 분석이 이용하는 관념들을 직관 속에서 실현하는 것이 무용하고 그리고 심지어는 불합리하다. “연속성의 원리는 … 진실한 철학 에서 여러 중요한 진리들에게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그 철학은 감관과 상상작용 그 위로 고양되어서 지적인 영역들 안에서 현상들의 기원을 탐구한다.” (232)
§136. [무한이란 용어의 다의성: 자연수와 선 무한은 (공간의) 분할인데 비해, 소수(la fraction)의 무한은 심성적이다. 그런데 소수의 무한성의 실재는 혼의 지속(시간)에 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모든 연속성은 이상적 사물이다”라고 주장할 수 있다. 이것을 약화시킴이 없이, 나는 무한소 계산의 내속적 가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계산의 형이상학적 이용방식의 범위를 말한다. 이 때문에 라이프니츠는, 그 자신의 의향에도 불구하고 또는 적어도 그의 기대(son attente)의 반대에도 불구하고,무한의 과학에게 영혼과 신체 사이의 통합의 비밀을 요구해야 마땅했다. 라이프니츠가 선제후 부인인 소피아에게 편지 쓰기를, “나의 근본적 성찰들은 두 가지 사물로, 즉 하나는 통일성(l’unité, 단위, 일자)으로 다른 하나는 무한(l’infini)으로 굴러간다. 영혼들은 단위들[일자들]이고, 신체들은 다자들(des multitudes)이다.”그런데 영혼이란 단위[일자]는 다자인 신체의 요소가 아니다. 반대로 너비 속에 펼쳐진 다자는 지각작용의 중심인 주체의 일자에게 상대적이다. (233)
이상역(l’idéal)의 논리학이 감관들과 물질의 질서를 모순이라고 하는 한에서, 이상역의 논리학이 일자로부터 다자로 가는 것이 아니라 다자로부터 일자로 가는 한에서, 따라서 이 논리학은 라이프니츠가 영혼과 신체 사이에서 연관들의 근본적 문제에게 부여한 해결책 속에 함축되어 있다. 이 논리학은 내적 삶의 연속성에 관한 모나드 이론에 토대를 세우는 것과 동시에 내부적 삶과 보편적 삶을 동등하게 하는 것을 허용한다. 공간은, 지적인 것이라기보다 실재적이다. 마치 데카르트가 그렇게 원했던 대로, 공간은 “진실하지만 이상적”사물이 된다. 공간이 실체의 자존심이라고 더 이상 주장할 수 없다. 공간은 “동시성의 질서”이며, 지각들의 총체의 반성에 의해 추출된 것이며, 모나드의 기원적 현존에 상대적이다. 그 모나드 안에는 우주가 포함되어 있다. 라이프니츠는 뉴턴이 유물론적 경향성을 선호한다고 의문시한다. 그래서 뉴턴의 실재론에 대해 라이프니츠는 공간의 이상성(l’idéalité)을 대립시키고, 이 이상성은, 마치 정신주의적 주장의 토대들처럼, 시간의 상호관련이 있다. “연속의 조성에 관한 우리의 황당함의 근원은, 물질적 사물들 그 자체는 규칙으로 잘 이루어진 현상들일 뿐이라는 것이 대신에, 우리가 물질과 공간을 마치 실체들처럼 생각한 것으로부터 온다. ‘공간은 정확히 공존의 질서이외 아무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시간은 현존의 질서이지 동시성이 아니다.’ 부분들이 효과적인 현상들에 의해 너비 속에서 표시되지 않는 한에서, 부분들은 가능성 속에서 만 있다. 그리고 마치 분수들이 단위 속에 있는 것만큼이나, 부분들이 선(線) 속에 있다.” (233)
2절 공간적 실재론 Le réalisme spatial 233
[공간 논의는 이상(상징)을 실재로 받아들임, 그리고 시간의 등장, 도형의 변환과 생명체의 변종: 린네와 뷔퐁 – 우리나라의 교육에서 일본영향으로 일방통행(봉상스)으로]
§137. [라이프니츠의 정신중의(영혼주의)의 토대, 포물곡선 위의 점. 점처럼 위치와 크기도 없는 각 모나드는 세계(전체)를 반영한다. 즉 전체 속의 부분(pars totalis)]
이리하여 이상역(l’idéal)의 논리학이 수학적 관념론(l’idéalisme, 이상론)에 상응할 만아니라 형이상학적 실재론에 상응한다. 라이프니츠는 원리들만큼이나 분명하게[깔끔하게] 후자의 귀결들을 깨달았다. 관념론의 혜택(bienfait, 선행)은, 문제들의 발언 자체가 시작되면서부터, 존재론적 실재론이 부딪혔던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멀리한다. 예를 들어 라이프니츠는 “클라크에 반대하는 넷째 글에서”에서 주목하기를 “만일 공간과 시간이 절대적인 어떤 것이었다면”, 왜 신은 그러한 방향 속에서 우주를 나가게 하는지를, 또는 왜 신은 그러한 시기에 우주를 창조했는지를 자문할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질문들은 “불가능한 허구들”에 상응할 것이고, 그리고 질문들은 스스로 사라진다. (234)
라이프니츠가 그의 생애 마지막에 클라크에 알림사항이 있다. 그는 가능한 한 자신의 계산(고려) 상으로 항상 그것을[우주를] 이해했던 것이 아니었다. 초기 철학적 글쓰기들에 영감을 주었던 야망에 충실했던 그는, 무한소 과정의 이상성[관념성] 속에서 일종의 부득이한 수단만을 보았다. 그럼에도 그 과정에 힘입어서 그는 예기치 않은 많은 발견들을 했다. “따로 있는 세계”처럼 생각된 그리고 그자체로 충분한 모나드의 이론으로부터 모나드의 체계로 즉 소위 말하는 단자론으로 이행에서, 그는 이상역(l’idéal)의 논리와 지적인 연관의 논리를 포기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덧셈과 공간의 병치로, 즉 현실역(l’actuel)의 논리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234)
라이프니츠는 스피노자에게서 실체의 정신적 개념작업을 빌려왔다. 마치 실체 밖에는 아무것도 주어져 있지 않은 것처럼 모나드 밖에 아무것도 주어져 있지 않았다.단지 스피노자의 명제는 진실로 궁극적 명제이다. 실체 저넘어가 없다. 반면에 라이프니츠에게서 모나드는, 특이한(singulier, 하나의) 현존인 한에서, 형이상학적 구성작업의 요소이며, 다수의 모나드들의 연관들을 규정하게 운명지워져 있다. “영혼들에 의해서, 마치 많은 거울들에 의해서처럼, 사물들의 주제자는 말하자면 우주 자체를 곱하기하는 수단을 찾았다. 다시 말하자면, 그것의 관점을 변하게 하는 수단을 찾았다. 이는 마치 동일한 도시가 사람들이 도시를 바라보는 다른 장소들에 따라서 달리 나타나는 것과 같다.” (234)
이때에, 라이프니츠의 정신주의의 토대였던 공간의 이런 이상성[관념성]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가? 공간은 모나드가 우주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상대적이었다. 여기서 이제 잡다한 모나드들의 잡다한 관점들은 동시적으로 주어진다. 관점들의 장소(un lieu des points de vue)가, 즉 공간적 질서가 현존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질서에 모나들은 상대적이다. 그리고 그 질서는 절대[자]에 대한 형이상학적 가치를 획득한다. “각 영혼은 축소된(en raccourci) 세계이며, 영혼을 동반하는 기관들에 따라서 혼동하기도 하고 구별하기도 하면서, 영혼의 관점에 따라서 바깥의사물들을 재현한다.” (235)
§138. [라이프니츠에서 수학적 점과 형이상학적 점. 상징의 점 대 실재의 점. 지성의 추리(연산) 대 생명의 에너지(혼, 기억, 지속).]
의심할 바 없이, 러셀의 신랄한 비판들이 여기에 가득 차 있지만,러셀이 이미 이것을 암시했듯이, 이 학설 속에서 라이프니츠 제1철학의 나머지를 보아야만 한다. 그 철학 속에서 영혼과 장소[신체]의 연결 작용은 불가분이기도 하고 비너비인 점(le point)의 중간 항(le moyen terme) 덕분에 조작된다. 라이프니츠는, 그가 공간의 이상성을 선언했던 철학 속에 공간의 실재성을 효과적으로 재도입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에게서는 실증적 조작[계산]작업이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공간의 객관적 실재성을, 즉 각 모나드의 관점들의 기하학적 장소를 증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단순하게 그는 공간적 용어들의 이상적 환원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않았다. 그는, 비유의 부드러운 형식 하에, 희미한 빛(la pénombre) 속에 영혼과 점의 이런 연결이 미끄러져 들어가게 남겨 두었다. 그런데 그는 영혼과 점의 연결에 대해 과학적 불충분함과 유물론적 성격을 깨닫고 있었고 또한 고발하기도 하였다. 1695년에 그가 쓰기를 “물리학적 점들은 겉보기에서만 분할 불가능하다. 그리고 수학적 점들은 정확하지만, 그것은 양상들일 뿐이다. 형이상학적 점들만 또는 실체의 점들만(형태들 또는 영혼들에 의해서 구성된), 즉 정확하고 실재적인 점들만 있다. 그리고 이들이 없다면 실재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진실한 단위들이 없다면 다자(multitude, 다수도)도 전혀 없을 것이다.” (235)
어째거나, 문제가 라이프니츠주의의 핵심에서 제기되었다는 것은 회피할 수 없다. 무한소 계산의 유비가 암시하는 과정들에서 분석학을 기하학에, 지적인 생성을 공간적 재현작업에 종속시키지 않고서, 어떻게 형이상학적 점들을 취급할 것인가? 그런데 우리가 이미 이것을 보았듯이, 실체와 모나드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수의 실체들과 다수의 모나드들을 설명하는 것이 제안되었을 때, 라이프니츠는 무한 계열들에 관한 그의 탐구방식들에게 상응(correspondance)과 관념과 표현(expression)의 관념을 빌려온다. 피조물들 사이에서 창조자[신]에 의한 확립된 조화는, 곡선들의 분석적 규정작업들의 연결 덕분에, 여러 다른[차이나는] 곡선들 사이에 확립된 조화와 동일한 질서이다. 모나드들은 신의 “섬광들(fulgurations)”이며, 섬광들은 모나드들 사이에 필연적으로 서로 상응한다. 왜냐하면 이 섬광들 모두들은, 마치 잡다한 투사작업들이 동일한 실측도(le géométral)를 재현하듯이, 동일한 실재성을 재현하기 때문이다. 틀림없이 라이프니츠는, 곡선들이 서로 접촉하는 듯한 방식으로, 곡선들 사이에 거리를 줄이려고 애쓴다. 그는 주어진 모든 양들보다 더 작은 두 모나드들 사이에 차이를 가정할 것이다. 다자(multitude)수의 모음은 내적 연속성의 외적인 겉보기일 것이다. 그러나 초기의 난점이 남아 있다. 항목들의 다수성(la plurailté)은, 항들을 다시 연결하도록 허락하는 분석 과정에 앞서 제기 되어야만 한다. 난점들은 동시성의 연관을 함축하고 있는데, 그 동시성은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이나 순화된 또한 숭고한 형식 하에서 그럼에도 공간성의 본질적 성격을 유지하고, 이어서 라이프니츠가 거기서 매우 강하게 강조하듯이, 동시성이 순수 지성성으로 환원할 수 없는 것으로 남아있다.
§139. [라이프니츠에서 이상성(이상역)에 시간(지속)의 도입으로 영혼을 설명하려 한다. 실체에 대한 논의는 영혼에 대한 논의이다. - 그러면 다음 §140은 신체 또는 물체의 논의일까? ]
만일 공간이 공현존의 질서 이라면, 창조는 공간 속에서만 상상될 뿐이다. “그런데, 창조된 실체들은 신에 의존하고, 신은 실체들을 보존하고, 심지어 신은 실체들을 연속적으로 유출(d’émanation)이라는 방식으로, 마치 우리가 우리 사유를 생산하듯이, 생산한다. 왜냐하면 신은, 현상들의 일반적 체계를 모든 측면으로 그리고 모든 방식으로 돌려보면서, 자신의 영광을 표출하기 위하여 현상들을 생산할 좋은 방식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은 가능한 모든 방식들로 세계의 모든 국면들을 바라보는데, 왜냐하면 자신의 전능을 회피하는 연관이 없기 때문이다. 우주의 각 관점의 결과는, 마치 어떤 장소에서 바라보았던 것처럼, 세계를 이 관점에 부합하여 표현하는 실체이다. 만일 신이 효과적인 자기 사유를 행고 그리고 이런 실체를 생산하기를 잘 한다면 말이다.” (236)
이때부터 라이프니츠의 정신주의(le spiritualisme) 전체는 공간의 이상성(관념성)에 연결되어 있으며, 독창적이고 일방적인 그의 기호작업으로 비워진(vidé) 체 있게 될 것이다. 일종의 숙명이 단자론의 저자에게 단죄하는데, 모나드의 비물질성과 자치에 관하여 그의 주제들 각각에 마주하여 직접적으로 반대주장을 하는 자리에 서게 한다. “각각의 영혼은, 영혼의 관점에 따라서 그리고 그의 신체의 연관에 의해서, 우주를 재현하면서 살아있는 거울이다.”그리고 신체 그 자체는, 우주의 일체와 우리의 개별적 상황들을 연대하게 하는 관계들의 체계에서 해결된다: “Etiam quae loco differunt, oportet locum suum, id est ambientia exprimere, atque adeo non tantum loco seu sola extrinseca demominatione distingui, ut vulgo talia concipiunt.” [장소에 의해 차이나는 사물들은 자기의 고유한 장소를, 말하자면 분위기(환경)을 표현해야 한다. 따라서 마치 어떤 사물들에 대해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단지 장소나 유일한 외적 명칭에 의해서만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237)
따라서 라이프니츠가 조작했다고 믿었던 환원은, 공간과 시간에서 외속적인 지명 작업에서 실체의 내속적 규정 작업들로 환원은, 착각이다. 개별적 실체를 깊이 파고 든다는 것, 그것은 거기서 보편적 조건들의 전체성을 재발견하는 것인데, 보편적 조건들은 외적인 강제를 실체 위에 공통으로 짓누른다. 그리고 그 조건들은 형이상학적 물질의 제한[한계작업]을 도입한다. 라이프니츠가 볼더에게 편지 쓰기를(1702년), “나는 다른 실체들의 각각의 완전성과 연관을 포함하지 않는 어떠한 실체가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영혼의 “완전한 자발성”은 “영혼 그 자체를 고려하건데”, “바깥의 사물들에게 완전한 순응”하는 조건에서(sous réserve) 이해되어야만 한다. “개별적인 각 실체의 개체성을 만드는 질서의 법칙은 다른 실체 속에서 그리고 우주 전체 속에서 일어나는 것과 정확한 연관을 갖는다.” (237)
3절, 현실적인 것(현실역)의 논리학 La logique de l’actuel 238
§140, [논리체계의 삼중성: 감성의 현실성, 지성의 이상성, 형이상학의 현실성. 이 현실적인 것의 이중성에서, 우리가 보기에 형이상학의 내재성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벩송과 들뢰즈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이로써 주어진 찰나에, 라이프니츠주의의 논리적 하부 구조 속에, 라이프니츠주의의 균형을 위태롭게 하는 리듬과 방향정립의 잡다성이 도입되는 것 같다. 이런 경우는, 우리에 따르면, 우주가 내적인 연속성과 이상성의 형식 하에서 투사되는 모나드의 관점을 제쳐두고, 라이프니츠가 스스로 단자론의 관점에 위치할 때이다. 이 단자론은 사람들이 모나드들에게 공존의 질서를 부여하기를 요구하며, 공존의 질서는 그 귀결로서 신 자체의 시선 앞에서 공간적 장소의 실재성을 함축하고 재정립한다. 이 찰나에 단위[모나드]는 너비와 지속의 이중 무한성을 표현하기를 그만둔다. 단위는 퓌타고라스와 데모크리토스의 단순한 요소를 다시 생성한다. 우주는 산술론과 원자론의 질서에 따라서 구성되어있다. (238)
단자론의 출판[프랑스어 판 1714년](라틴어로 번역은 1721년)은 체계의 대중적 특성들을 고정시켰다. “우리가 여기서 곧 말할 모나드는 단순한 실체와 다른 것이 아니다. 단순 실체는 복합적인 것들 속에 들어간다: ‘단순한’이란 말하자면 부분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복합적인 것들이 있기 때문에, 단순 실체들이 있었다고 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복합적인 것은 단순한 것들의 덩어리 또 집합체(aggregatum)와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런데 부분들이 전혀 없는 거기[모나드]에는 너비도, 도형도, 분할 가능성도 없다. 그리고 이 모나드들은 온자연의 진실한 원자들이고, 한마디로 사물들의 요소들이다.” (238)
형이상학적 상상작용은 마치 감각적 직관처럼 이상적인 것의 논리와 반대 방향으로 가려는 것 같다. 만일 푸셰(Foucher, 1644-1696)에 응답으로 쓴 「논평들」(1695) 속에서, 라이프니츠가 “이상적인 것과 실현적인 것의 혼동”을 고발했다면, 이것은 다음 같은 자들을 반박하기 위해서이며, 두 부류가 있다. “필요로 했던 것과 아주 다른 이상적인 사물들 또는 연관들 안에 제1요소들을 찾았던 점들의 선을 조성하는 자들뿐만 아니라”, 또한 “마치 수와 공간(가능한 공존적인 사물들의 질서 또는 연관을 포함하는 공간)같은 연관들이 점들의 모임들에 의해 형성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던 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대부분 실체적인 실재성들의 제1요소들을 부정하는 잘못을 범하는데, 마치 그 실재성들이 원초적 단위들을 갖지 못하는 것처럼 또는 마치 단순한 실체들이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238)
다른 용어로 말하면, 물질적 재현작업에 관한 지적인 연관들의 주도권은 지적 관계들이 이어서 조성작업의 요청들에 종속되게 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 이 조성작업은, 마치 그것이 마치 통속적 지각작용을 위해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절대적인 것의 영역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것이 1695년의 「논평들」의 결론일 것이다. “전체적인 1/2의 비례는 (스콜라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유의 기호(signe de la raison) 속에서) 부분적인 1/4의 비례에 앞선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이상적 질서를 고려하면서, 그것의 1/4에 이르는 것은 반의 재분할에 의해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선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선에서도 전체는 부분에 앞선다. 왜냐하면 이런 부분은 가능성이고 이상적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만들어진 분할작업들로 전체가 들어가는 실재성들 안에서, 전체는 마치 양들의 무리처럼 결과들, 즉 모임들일 뿐이다.”수학의 이상성은 감각적 재현작용의 뚜렷한 현실성을 해결할 수단을 제공했다. 현실성은 형이상학적 조성작업의 현실성에 의해 궁지에 몰렸다. 이상성은 모나드의 끝에 이른 인간의 산술학과 기하학을 넘어선다. 이상성은 신의 산술학과 기하학에 의해 넘어섰는데, 거기서 모나드는 요소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라이프니츠가 두 항목들의, 즉 감각적 현실성과 지성적 이상성의 앞에 있는 한에서, 그는 이상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의 충돌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체계는 이것들의 세 가지를, 즉 감각적 현실성, 지성적 이상성, 형이상학적 현실성을 요청한다. 그리고 이 때문에 혼동을 일소하기 위하여 시도된 노력은 학설의 빠져나올 수 없는 곤경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239)
4절, 이상역과 현실역 사이 논리학의 충돌 Le conflict de logique de l’idéal et de l’actuel 240
§141, [이상역과 현실역 사이에서 매개적 역할을 “자연배후학”의 과정론, 생성론이 할 것이다. - 라이프니츠는 이상역의 이중성을 알아챘다.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단위들이 있는가하면, 실재적이고 형이상학적 단위들도 있다. - 현대적 의미에서 방향이 다르다. 미분소와 무한소.]
논리학적 두 동기들의 대립이, 칸트의 이율배반(안티노미)들의 학설 속에서 마치 그의 역사적인 정당성을 발견하는 것처럼, 그의 확신을 발견하게 할 것이다. 현실역의 논리학은 테제들(주제들)에 착상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이상역의 논리학은 안티테제(반주제들)에 착상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리하여 이 둘 모두는 마치 인간 사유의 자연[본연]에서 동등하게 토대 지워진 요청들을 표현하는 것처럼 나타날 것이다. 이 둘이 철학적 비판의 진보를 위하여 서로 대치하면서, 둘은 이것들의 깊은 모순에 의하여, 개체적 정신에게 이루어졌던 조건들을 표출할 것이다. 정신인 한에서, 정신은 우주의 전체적 관념을 공간과 시간의 이중적 무한성을 통하여 스스로 형성할 수 있다. 개체인 한에서, 개체는 공간의 각 장소에 그리고 시간의 각 찰나에 묶여 있는 이중적 규정작업을 감당한다. 인간이 인식하는 우주는 인간 속에 있다. 그런데 인간은 그 우주 속에 산다.(240)
그러나 칸트가 철학적 반성의 방향잡기를 변하게 하기 위하여 거기에 지지를 받는 동안에, 모든 라이프니츠주의를 통하여 잠재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이상역과 현실역 사이의 충돌이 라이프니츠주의의 무매개적 성공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회피할 수 없었다. 한편으로라이프니츠로부터 요구했던 형이상학자들은 단자론의 학설들을 순수하게 논리적 합리주의의 틀들 속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을 임무로 삼았으며, 그리고 라이프니츠주의 사유의 효과적인 동일이었을 수학적 지성의 동역학과는 무매개적 접촉을 유지하지도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라이프니츠학파의 수학자들은, 무한소 분석에 영감을 주었었고 정당화할 수 있었던 철학적 원리들로부터, 불신에 의해서, 멀어졌는데, [오히려] 그 스승은 이상성에 대한 자기의 고유한 개념작업에 불신으로 타격을 입히려는 것에 개의치 않았다. (240)
여기서 우리는 역사에 대한 가장 큰 역설들 중의 하나에, 즉 근대인들에게서 수학적 철학의 진화 속에서 중심적인 파라독사에, 건드렸다[접촉하였다]. 어느 누구도 라이프니츠보다 더 잘 이해하지 못한다. 라이프니츠는 어떻게무한소의 과정에 대한 지성성[지식]이 “이미 형성된 크기들의 모방 작업으로 생각된, 크기의 사라진 상태 또는 시작의 상태를 무한히 작은 것에 의해서”이해하게 해주는지를 잘 알았고, [나아가] 라이프니츠는 새로운 분석의 합법성을 엄격하게 기초하였다. (240)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동일한 라이프니츠(1646-1716)가 스스로를 뉴턴(1642–1727)과 비교하면서, “제자들(disciples)로서 더욱 행복하였다”고 스스로 자랑하였고,그들에게 자신의 관념론[이상주의]의 비밀을 전달하는데, 그리고 그들이 무한소 계산의 합리성을 꿰뚫어 파악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요구되는 태도를 취하게 하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만일 그가 무한히 큼또는 무한히 작음의 상상작용에 반대하여 항의한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거기서 이상적 연관의 지성을 실재론적 직관의 요청들에게 종속시키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실재론의 원리를 단죄하지 않는다. 전혀 반대로 그는 무한을 현실화하는 것의 불가능성을 환기시킨다. 이는 자신이 하는 분석의 근본적 용어들을, 실재성의 명백한 조건들과 모순 자체이면서 내속적으로 일관성 없는 가설들의 서열에게로, 밀어 넣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 가설들은 이론적인 정확성이 결여되어 있어서, 적용의 성공에 의해서 정당화된다. 1702년 학자들의 신문(Journal des Savants)에 그가 발표한 바리뇽(Pierre Varignon, 1654-1722)의 편지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끝나지 않는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말할 수 있다: 모든 연속성은 일반적 사물이다. 그리고 완전히 일관성 있는 부분들을 갖는 자연 안에는 결코 아무것도 없다. 반면에 실재적인 것은 이상적인 것(이상계)과 추상적인 것(추상계)에 의해 완전히 지배당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실재적인 것이 있는 곳에서는, 유한의 규칙들이 무한 속에서 성공한다. 원자들이 없었을지라도 마치 원자들이 있었던 것처럼(말하자면 자연 속에 할당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있는 것처럼), 물질은 현실적으로 끝없이 (나누기의 나누기) 하부로 나누어질 수 있다. 거꾸로(vice versa) 무한의 규칙들은 유한 안에서 성공한다. 마치 무한히 형이상학적 작은 것들이 있었던 것처럼, 사람들이 그것을 필요하지 않을지라도, 그리고 물질의 분할은 무한히 작은 조각들(les parcelles)에 이르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241)
§142 [라이프니츠의 이상역(이상주의)에는, 물질에서 살아있는 힘이, 인식에서 작은 지각작용이 있다. 라이프니츠가 한계 안에서 학문을 넘어서 무한계 속에서 학문(이상성)을 세우다. 새로운 학문, 즉 생성과 살아있는 “자연배후학”을 만들고자 하였다. ].
라이프니츠의 언어는 여기서 버클리(1685-1753)의 언어와는 거의 약간만 다를 뿐이다. 라이프니츠의 이상주의(l’idéalisme)은 미분계산의 알고리듬을 암시했던 주지주의의 진지하고 풍부한 형식과는 거리가 멀다. 라이프니츠의 이상주의는 살아있는 힘(force vive)의 용어에 의해 동력학의 개선을, “작은 지각작용들”의 용어에 의해 심리학적 개선을 환기시켰다. 그의 이상주의는, 그가 그의 동시대인들에게 그것을 소개했던 대로, 사람들은 소동을 일으킨 것으로 생각했던 회의적 상대주의의 국면을 다룬다.
세상을 뜨기 몇 주 전에 쓴 편지에서, 라이프니츠는 이런 고려에서 한 가지 아주 교훈적인 이야기를 한다. “우리 친구들은 프랑스에서 토의를 할 때 … 나는 그들에게 증거 하기를, 진실로 무한히 큰 것들이 있다고도, 진실로 무한소가 있다고도 나는 믿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허구들(fictions)일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마치 √-1 과 같이 대수학에서 상상적인 제곱근[허수]들처럼, 요약하자면 또한 보편적으로 말하자면 유용한 허구들이 있다. 예를 들어 다음들을 생각해야 한다. 1) 모래알의 작은 요소의 직경, 2) 모래 알 자체의 직경, 3) 지구 공의 직경, 4) 우리로부터 고정된 것의 거리, 5) 고정된 것들의 전 체계의 크기. 이는 마치 다음과 같다. 1) 2차[함수]의 미분 [양], 2) 1차[함수]의 차이, 3) 할당 가능한 배열 선(線), 4) 무한한 선, 5) 무한히 무한한 선. 사람들이 이 차원들 사이에 비례 또는 간격 크기를 만들면 만들수록, 더욱더 사람들은 정확성에 접근할 것이고, 더욱더 사람들은 오류를 작게 할 수 있을 것이고, 심지어는 단번에 무한한 간격의 허구에 의해 해결할 것이며, 이는 아르키메데스의 증명하는 방식으로 항상 실현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치 로피딸(L'Hôpital, 1661-1704) 후작이 거기에서 내가 원인을 배반했다고 믿었던 것처럼, 그들은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기를 간청하였으며, 더욱이 내가 한 장소에서 라이프찌히의 ‘논총들’에 대해 말했던 것도 말하지 말기를 바랐다. 그들의 간청을 따르는 것은 나에게는 쉬운 것이었다.” (242?)
다음 해에(1717), 파리의 “과학들 아카데미”에서 퐁뜨넬이 발언했던 라이프니츠에 대한 찬사(l’Eloge)에서 퐁뜨넬은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여기에서 충분히 독특한 것을 감추지 않아야 한다. 만일 라이프니츠가, 뉴턴과 마찬가지로, 무한히 작은 것들의 체계의 발명자의 편에 있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무한히 그럴 리가 거의 없다. 라이프니츠는 항상 무한히 보다 더 작은 것들 서로 서로, 무한히 작은 것들의 무한한 질서들을 알았다. 가장 위대한 기하학자들은 아주 엄격하게 이런 관념을 채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음으로 그 자신이 두려워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는 무한히 작은 것들의 다른 질서들이, 극한에서 그것들이 동등하지 못하기 때문에, 비교할 수 없는(incomparables) 크기들이라는 것을 믿었던 것 같다. 이는 마치 모래 알과 지구 공을 비교할 수 없는, 또한 지구와 행성들을 포함하는 천구를, 등등이 비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런데 거기에는 거대한 비동등성이 있을 뿐이지만, 그러나 이것은 무한하지 않다. 이는 마치 사람들이 체계 속에 그것[비동등성]을 확립하는 것과 같다. 또한 그로부터 그것[비동등성]을 파악했던 학자들 자체도, 전체를 손상시킬 것 같은, 이런 경감(cet adoucissement, 완화)을 파악하지 못했다. 한 건축가는, 그 자신에 거기에 감히 거주할, 건물을 매우 과감하게 세웠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견고성에 대해 자기보다 더 신뢰하는 일상인들을 발견하며, 그들은 거기에 두려움 없이 살며, 우발사고 없이 더 잘 거기에 있다. 그러나 아마도 경감은 그 자들에게는 교만(une condescendance, 건방짐)일 뿐이다. 이 이자들의 상상작용은 혁명적이 될 것이다. 만일 기하학에서 진리를 완화(tempérer)한다면, 다른 재료들[학문들] 속에서 그것은 무엇이 될 것인가?” (243)
5절, 무한소 계산의 형이상학 - La “Metéphysique” du calcul infinitésimal 243
§143, [라이프니츠의 철학사(수학사)적 지위. 무한의 두 종류, 포물선의 끝에 대한 무한계열과 분수의 무한계열, 그런데 퐁뜨넬의 해석. 수의 무한(n)과 승수의 무한(n2).]
라이프니츠주의가 수학 철학의 진화에 차지하는 지위를 규정하기 위한 노력은 겉보기에 어리둥절한 결론에 이른다. 학설의 주도적 구상(le dessein)은 새로운 지적 방법의 발견 위에 철학적 사변의 갱신(le renouvellement)근거하게 하는 데 있다. 그런데, 마지막(최종) 숙명은, 방법자체들의 철학적 토대 위에서 의심을, 즉 거의 가치하락(le discrédit)을 던지고 있었다. 라이프니츠의 제자들은, 실재론적 편견에 대한 그들의 스승[라이프니츠]에 의해 해방되는 대신에, 무한소 요소들의 현존을 직관 속에서 정당화하도록 강제되었다고 믿었다. 이리하여 제자들은 출구 없는 형이상학의 모험들 속에 참여했다. 이런 모험들의 난해함들(les obscurités)과 모순들이, [논리적] 기술적 결과들의 견고성과 풍부성에 의해 훨씬 더 충격적이 되었으며, 18세기의 추문[소동]이 되었다. (243)
아마도 가장 놀라운 첫째 특징, 이 목록(ce tableau)의 특징은 이 동일한 퐁뜨넬이 다룬 작품에 의해 제공되었다. 라이프니츠가 [그 특징을] “양식 그 너머로 밀고가”지 않는다고 경고했는데, 동일한 퐁뜨넬은 라이프니츠의 진술들의 연약함들과 소심함들을 극복했다고 자화자찬 했다. 퐁뜨넬이 1727년에 쓰기 무한에 대한 기하학의 요소들(Eléments de la Géométrie de l’Infini, 1727)의 「머리글(Préface)」에 쓰기를. “발명에 반대하는 발명가[라이프니츠]의 권위가 어떤 무게[거추장스러움]로 되지 않아야 하는가? 이런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무한은 승리했으며, 또한 기하학자들의 모든 고상한 사색들을 사로잡았다. 모든 질서들 속에서 무한들, 즉 무한히 작은 것들은 오늘날 동등하게 정립되었다. 아카데미(학술원)안에는 두 파가 더 이상 없다. 만일 라이프니츠씨가 비틀거렸다면(망설였다고 할지라도), 사람들은 그로부터 유지해온 빛들을 그의 권위 자체보다 더 많이 신뢰하였다.” (243)
퐁뜨넬의 수학적 철학은 절대적 독단주의이다. “기하학은 완전히 지성적이고, 현실적 묘사로부터도 도형들의 현존으로부터도 독립적인데, 그런데 기하학이 그 도형들의 성질들을 발견했다. 기하학이 필연적이라고 생각한 모든 것은, 기하학이 그것의 대상 속에서 가정한 실재성의실재적(réel dela réalité)이다. 따라서 기하학이 증명해준 무한은 유한만큼실재적(aussi réel)이다. 그리고 기하학이 그것[실재성]으로부터 갖는 관념은 다른 모든 관념들 그 이상도 아니다. 편안한 할 뿐인 가정작업이란 관념은, 사람들이 그것을 사용한 이후로 사라져야 한다.” (244)
무한히 작은 것의 실재성은 무한히 큰 것의 실재성에 연결되어 있다. 후자의 실재성 그 자체는 완전수들의 “자연적 수열[계속](suite naturelle)”에 의해 무매개적으로 주어진다. “자연적 수열[계속] 속에서, 각 항은 1로부터 시작하여 자기 항을 포함하는 데까지 항들의 수와 동등하다. 따라서 왜냐하면 모든 항들의 수는 무한하기 때문에, 자연적 수열[계속](elle)은 이 동일한 무한으로부터 나온 마지막 항을 갖는다. 사람들은 그것[마지막 항]을 ∞라는 표기에 의해 표현한다.”무한으로 이행이 명석한 재현작용의 대상일 수 없다고 할지라도 결론은 명증하다. “어떻게 자연적 수열[계속]이 유한임(Fini)에서 무한임(Infini)으로 이행하는지를, 말하자면 어떻게 유한한 항들을 가지고 있는 이후에도 자연적 수열[계속]이 그것으로부터 무한을 갖기에 이르는지를 생각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것은 무한임의 관념 전체이어야 하고 또는 무한임의 관념 전체를 절대적으로 포기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러한 것은 그것의 이름을 발언하지 못한다. 이것은 수학들의 가장 큰 부분과 가장 고상한 부분을 상실하게 했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해할 수는 없을 지라도 거기에 분명한 사실이 있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나는 마땅히 무한이어야 하는 크기를, 마치 유한에서 무한으로 흐릿한 이행에 있었던 것처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치 전적으로 이것을 뛰어넘는 것처럼 다루고, 그리고 그 차원들(les degrés)이 어떤 것들이라 할지라도, 만일 이 차원들의 본연[자연]에 근거하여 어떤 빛을 가끔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라면, 필연적인 차원들을 통과해서 다룬다.” (244)
따라서 무한의 계산에 대한 분명한 모순들은, 무한으로 이행의 흐릿한 역동론과 무한의 정태적 관념에 내재하는 명석함 사이에 구별에 의하여, 해결될 것이다. 이리하여 이 첫째의 관점으로부터, a는 유한의 수이며, ∞ + a= ∞ 이라는 것은 진실이다.반면에 “반대의 이유에 의해서, 그리고 나아가 사물들의 자연 자체에 의해, ∞ + ∞ 또는 2∞ 라고 말할 수 있다.”마찬가지로 만일 내가 자연수들의 수열[계속] A를 고려한다면, 그리고 정방형의 수열 A2를 고려한다면, - 퐁뜨넬이 덧붙이기를 “A2[계열]도 A[계열] 만큼이나 많은 항들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 나는 인정해야 한다. 무한으로 이행이 A에도 오히려 A2에서도 이루어져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n2은 분명하게 n보다 무한으로부터 덜 멀리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규정할 수 없는 유한”의 계열이 있을 것이고, “규정할 수 없는 유한”의 정방형도 A2의 계열 속에서 무한이 될 것이다. (245)
§144. - [대수학적 두 무한성들, 두 종류의 양들에 대한 다음 세기에서 해결: 퐁뜨넬의 흐릿함을 오일러(1707-1783)가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라그랑쥬(1736-1813)가 당황했으나, 게오르크 칸토어(1845-1918)가 풀이한다.]
이런 무한의 계산에 대하여, 사람들은 르누비에(1815-1903)에 더불어 그것이 “일종의 우스꽝스런 도박과 닮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우리시대에 칸토어(Georg Cantor, 1845-1918)가 본질적인 점에 관하여 퐁뜨넬의 설명을 수정하면서 학설을 복원하지 않았다면,말이다. 사람들은 18세기의 과학자들이, 그 중에서 퐁뜨넬은 만장일치의 동의를 미리 기대하였다고 하더라도, 치유할 수 없는 모호성에 대한 많은 고백들로 이어지는 이런 초보적 보장에 미소 지었을 것이다. (245)
사실상, 만일 무한이 모든 유한한 크기 보다 더 큰 것이라 하더라도, 무한의 반대는 마치 유한한 크기로부터 구별되는 크기처럼 생각되는 무한히 작은 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퐁뜨넬에서 진실한 무한(l’infini)은 유한과 무한 사이에 이행 그 넘어(au delà) 있기 때문이며, 무한히 작은 것(l’infiniment petit)은 무한히 작은 것과 0, 제로(le zéro) 사이 이행 그 안에(en deça)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오일러(1707-1783)가 그의 미분 계산론에서 자신의 권위로 지지한 개념작업이다. “무한히 작은 양은 사라지는 양 이외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런 이유로 실재상으로 그 양은 0과 동등할 것이다.”그러나 무한히 작은 것들의 양들 사이에, 하나의 연관[비례]이 있다. 그 연관은 이 양들의 점진적 변양(變量)에 의해 규정된 한계(limite)에 접근한다. 양들 자체가 완전히 무화(anéanties)되었을 때, 한계는 엄밀하게 도달된다.이 변양들의 극한적 연관을 구성하는 이런 한계는 미분 계산의 진실한 대상이다.망지옹(Mansion, 1844-1919)의 재기 넘치는 정식에 따르면, “무한소 계산은, 본다는 이런 방식에서, 0들에 관한 계산이지만, 사람들이 말로 할 수 있다면 이것들의 흔적을 간직하는 0들이다(des zéros qui gardent la trace de leur origine).” (245)
이런 정식은 18세기의 수학자들이 오일러의 관념을 실현하면서 체험했던 당황함을 나타낸다. 라그랑쥬(Lagrange, 1736-1813)가 쓰기를 “사람들이 두 양들의 연관[비례]을, 양들이 유한인 한에서는, 그런대로 항상 잘 생각할지라도, 이 연관은 정신에게 명석하고 정확한 관념을 더 이상 제공하지 않으며, 그만큼이나 이 두 항목들은 서로 서로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 것이 된다.” (245)
§145. [무한히 작은 것이 양인지 무인지에 대해, 달랑베르가 선문답에 참여하다. - 사유의 이중성에서 오는 것이다. 자연주의(직관주의) 대 논리주의(지성주의) - 달랑베르는 기하학에 호소하고 라그랑쥬는 대수학에 도움을 청한다. ]
사람들은 18세기의 수학자들이 무한 계산을 내속적이고 자치적인(autonome, 자율적인) 원리들 위에 기초하는데 절망하면서, 기하학과 대수학의 보다 단순한 용어들에 굴복하였다(replier)는 것을 이해한다.
달랑베르는 한계에 대해 기하학적 이미지에 호소한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서 기하학의 언어를 정확하게 적용하는데 대한 어려움을 이외에도,사람들은 이런 용어들을 다루면서 노출되었는데, 마치 이 용어가, 적어도 모순은 아닐지라도 그것의 범위를 독특하게 약화하는 유보사항을 원리의 제시 속에 도입하는데 있어서, 상상작용에 의해 제시되는 것 같다. “분석이 무한을 생각하는 것과 같은 그런 무한은 소위말해서 유한의 한계(la limite, 극한)이며, 말하자면 유한이 거기(끝)에 결코 도달하지 못하나 항상 거기로 향하는 끝(마지막 항)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유한이 거기에 결코 도달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유한이 거기에 여전히 점점 더 접근한다고 가정할 수 있다.” (246)
§146. [달랑베르는 기하학에 호소하고, 1772년에 라그랑쥬는 대수학에 도움을 받다. 카르노(Lazare Carnot, 1753-1823)가 평결하고, 이와 같은 방향에서 연구가 테일러, 꼬쉬, 아벨 등에서 이어진다]
라그랑쥬는 대수학의 계산 작업들에 도움을 청한다. 테일러(Brook Taylor, 1685–1731)는 그의 순방향과 역방향의 증가방법(Methodus incrementorum directa et inversa, 1715)에서 동등성을 인식하게 해준다. 이 동등성은 사람들이 나중에 테일러 계열[수열], 발전이라 불리는 것을 제공한다. ξ(크시)는 변량 x의 증가함이며, 사람들은 표현으로 f (x + ξ) 를 쓴다:
f (x + ξ) = f(x) + 1/ξ f’(x) + 1.3/ξ2+ f”(x) + …
+ ξm-1/1.2… (m-1) fm-1(x) + ξm/1.2… m fm(x) + …
여기에서 x, f’ (x), f”(x) 등등의 계속적인 함수들은 (이 함수표기들에게 라그랑쥬는 1차도함수, 2차도함수 등등의 이름을 부여할 것이다.) 형성과정의 규칙적인 절차에 의해서 얻어진다. 그런데 함수 f’는 ξ(크시) =0로 삼는 분수 f(x+ξ)-f(x)/ξ의 극한 이외 다른 것이 아니다. 이 함수[함수 f’]는, 한 변량의 증가함에 연관하여 함수의 증가함의 극한을 표시한다. 달리 말하면 그 함수는 미분계수(quotient differentiel)이다. (246)
따라서 사람들은 대수학의 법칙들의 도움으로 무한소 분석의 근본적 계산작업을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1772년 베를린 과학아카데미(Académie des Sciences de Berlin)에서 발표한 논문(Mémoire), 즉 「변량들의 미분과 적분에 관한 새로운 종류의 계산에 관하여(Sur une nouvelle espèce de calcul relatif à la différenciation et à l’intégration des quantités variables, 1772)」에서 라그랑쥬는 쓰기를 “미분 계산, 그 계산의 일반성 전제에서 생각하건데, 직접적으로 또 단순하고 쉬운 절차들에 의해서, 함수들 p, p‘ p”,… q, q‘, q” 등등, r, r‘, r” 등등 함수들과 함수u의 도함수들을 발견한데 있다. 그리고 적분 계산은 마지막 함수들의 덕분으로 함수 u를 재발견하는데 있다. 미분 계산과 적분 계산의 이런 용어는 사람들이 여태껏 부여했던 가장 명석하고 가장 단순한 것으로 나에게 나타난다. 이 용어는 사람들이 아는 바대로, 모든 형이상학에 독립적이고, 무한히 작은 양들 또는 사라지는 양들의 이론 전체로부터 독립적이다.” (247)
1797년 라그랑쥬는 「분석적 함수들의 이론: 무한소 또는 사라지는 것에 대한 고찰로부터, 그리고 한계와 유율의 고찰로부터 분간해낸 그리고 유한한 양들의 대수학적 분석으로 환원된 미분 계산의 원리들(Théorie des fonctions analytiques contenant les principes du calcul différentiel, dégagés de toute considération d’infiniment petits ou d’évaouissants, de limites et de fluxions, et réduits à l’analyse algébrique des quantités finies, 1797)」를 출판했다. 이 작품에서 근대 수학자들은 “함수들이 실행해야 했던 역할의 예감에 찬사를 보낼 것이다. … 이 함수들은 승차들의 계열에 의해 또는 테일러(1685–1731)의수열[계열]에 의해재현된다.”그러나 근대 수학자들은 방법의 설득력 있는 가치에 관한 전체 유보사항들을 만들 것이고, 이어서 근본적 용어들의 확립이 뒤따를 것이다. “마치 무한으로 이어지는 어떤 계열[수열]이 다시 포함하고 있었을 항목들의 합을 규정되었던 것처럼 간주하면서,”라그랑쥬는 계열들의 수렴의 중요한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가정한다. 이 문제에 대하여 꼬쉬(Cauchy, 1789-1857)와 아벨(Abel, 1802-1829)은, 앞선 연구가 분석의 방법들의 엄격한 정당화를 위하여 필연적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247)
이렇게 이루어지고, 그리고 이런 결론은 분석적 역학(Mécanique Analytique, 1788)의 검토에 의해 확정될 것이고,라그랑쥬는 “실용적인(pragmatique)”관점에 위치하는 것 같다. 테일러 계열들의 발전은 단순하고 우아한 절차이며, 게다가 합법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알려진 모든 함수들에서 성공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분석적 함수들의 이론(Théorie des fonctions analytiques, 1797)」은 18세기에 당황하게 했던 난점들에게 그리고 불확실한 이론들에게 끝장을 낼 수 없었다. 반대로 그 이론은 수학자들에게 보완된 오류들(erreurs compensée)의 이론으로 회귀를 이해하게 하도록 완수했다. 이 보완된 오류들을 버클리(1685-1753)는 뉴턴의 사색들에 대립으로 상상했고, 또한 라이프니츠(1646-1716)는 이 보완된 오류들의 대중적 형식을 묘사했다. 카르노(Lazare Carnot, 1753-1823)의무한소 계산의 형이상학에 관한 반성들(Réflexions sur la métaphysique du calcul infinitésimal, 1797)은 그것의 고유한 진리를 직접적으로 증거 하는 의무로부터 무한소 분석을 면제해 주었고. 그리고 곧바로 과학적 탐구로부터 철학적 논쟁의 모든 위험을 멀리하게 했다. 이 작품의 반성들은 고전적인 한 작품의 권위를 정복했다. (248)
§147. [미분소의 세 갈래: 심리학적(기원) 갈래와 우주론적(원리) 갈래에서 부조리가 등장하였고, 이를 해소하려는 셋째 물리학적(경험적 법칙) 갈래에 두 길이 있다. 칸트의 선천적 종합(형이상학적 형식)과 꽁트의 분석적 역학(실증 과학) : 전자에서 추상 부분과 후자에서 자연에 적용.]
이 연구의 막바지에서 18세기의 과학이 소위 말하는 철학적 반성에 대한 기여는 다음처럼 나타난다는 것이 설명된다. 즉 수학자들 자신들이 명석판명한 관념들로서 제시하기를 거부했던 분석의 근본적 용어들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천문학과 물리학 현상들의 연구에 그것의 적용의 성공에서이다. 18세기의 위대한 기하학자들은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들에 의해서 그려진 프로그램을 채웠다. 그들은 원리들의 내속적 기호작용 안에서 고려되었던 이 원리들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경험의 통제에 복종하는 정식들에 참조하여 원리들을 검증하였다. 그들 덕분에, 뉴턴의 초기 독자들에게서 인간의 체계였던 것이, - 이 인간의 체계는 다른 인간의 체계에 마주하여 세워지기고 하고, 예를 들어 데카르트 같은 이 또는 라이프니츠 같은 이들의 형이상학적 개념작업들에 부딪히기도 하였지만, - 여러 세대들의 점진적 노력이 만장일치의 합의를 부여한 비인격적(impersonnelle, 공공적인, 공유적인, [자연적인]) 과학이 되었다. 볼테르(Voltaire, 1694-1778)가 클레로(Clairaut, 1713-1765)에게 편지 쓰기를, “나는, 당신이 뉴턴주의자들에 의해, 뉴턴의 발견들의 진리를 인정했던 자들을 지적한다는데 화가 난다. 진리는 당파의 이름이 아니다. 오류는 당파참여라는 단어들을 인정할 수 있다. 분파들은 이름들을 갖지만, 진리는 진리이다.”칸트는 합리적 심리학도 합리적 우주론도 인정하지 않았다. 칸트에게서 합리적 물리학은 탁월하게 합리적 과학이다. 순수이성 비판(1781)[재판 1787년]의 실증적 부분은 자연 과학의 형이상학적 제1원리들(Premiers Principes métaphysiques de la science de la nature, 1786)을 파생명제로 삼는다. 두 작품들은 동일한 목표를 향하여, [그의] 우주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 포장된 수학적 형식을 선천적으로 정당화하기로 하는 경향이 있다. 오귀스 꽁트에게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라그랑쥬(1736-1813)의 분석 역학(Mécanique analytique, 1788)은 역학을 수학들의 몸통(le corps)에 재통합되었고, 이에 반해 라플라스(Laplace, 1749-1827)의 천체 역학론(Traité de mécanique céleste, 1878-1904)은 실재적인 것의 영역 안에서 결정적으로 그것[수학들]의 성공을 확립했다. 역학과 천문학은 실증 과학의 성격들을 고정하기로 허용하였다. (249)
두 가지 거대한 분과학문들이 19세기의 고유한 국면 하에서 철학의 문제들을 제기하는데 기여했다. 즉 칸트주의와 실증주의는, 소위말해서 추상적이고 지적인 부분들에서가 아니라 자연에게 이 분과학들의 적용에서, 중력 중심을 찾는다. 이로부터 서로서로의 체계의 착상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수학 철학에게 새로운 성격이 기여한다. 수학철학은 순수이성비판에서와 마찬가지로 실증철학 강의에서도 또한제1 지위를 차지한다.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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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 퓌타고라스(Pythagore, Πυθαγόρας, 전580-495, 85 ans) 고대 그리스 철학자. 사모스섬 출생, 이탈리아 남부의 메타폰티온(Métaponte, Μεταπόντιον)에서 세상을 떴다. - 메템프쉬코시스(métempsychose, μετεμψύχωσις) 영혼의 이동, 이전, 윤회 사상을 가졌다.
460 데모크리토스(Démocrite d'Abdère, Δημόκριτος « choisi par le peuple », 전460-370년) 그리스 철학자. 유물론자, 우주는 원자들과 빈 것으로 되어 있다.
428 플라톤(Platon, Πλάτων, 전428-348) 고대 그리스 철학자. 폴리테이아(La République, Περὶ πολιτείας)
287 아르키메데스(Archimède de Syracuse, Ἀρχιμήδης, 전287경-212경), 고대 시실리의 물리학자, 천문학자, 수학자, 기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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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6 데까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 프랑스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1622 토마지우스(Jakob Thomasius, 1622-1684), 독일철학자, 법률가. 제자 중에 하나가 라이프니츠이다.
1623 니께스(Abbé Nicaise, 1623-1701) 프랑스 신부 / 라이프니츠는 니께즈 신부에게 보낸 편지를 동봉하여 팽송(Pinson, ?-?)에게 보낸 편지인데, 신부의 편지를 읽어도 좋다고 했다. 그런데 팽송에 대해서는 여러 곳을 서핑 해봐도 찾을 수 없다. 니께즈가 있는 수도원의 어린 수도승? - 기록상으로 카톨릭 신부 중에 Maurice Marie Pinson이 있다고 한다.
1630 소피아(Electress Sophia of Hanover, 1630-1714)[Electrice Sophie], 하노버 선제후 에르네스트 아우구스트의 배우자. 그녀는 하노버 궁정의 사서로 일하던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의 친구이자 숭배자가 되었다. 편지교환. [딸, 소피-샤를로트 (Sophie-Charlotte [de Hanovre], 1668-1705),]
1632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마흔다섯], 세파라드 유대인 공동체에서 온 포르투갈 출신 네델란드 철학자.
1642 뉴턴(Isaac Newton, 1642–1727) 영국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구화학자, 천문학자, 신학자.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들(Philosophiæ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 1687)(« Principes mathématiques de la philosophie naturelle »), 보편 산술학(Arithmetica universalis, 1707)(여러 수학적 개념들의 표기법들),
1643 볼더(Burchard de Volder, 1643–1709), 네덜란드 철학자, 수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 의학박사, 레이드 대학 학장, 라이프니츠 서신교환.
1644 푸셰(Simon Foucher, 1644-1696), 신부, 프랑스 철학자.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와 서신교환.
1646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 독일 철학자, 수학자, 논리학자, 외교관, 역사가, 사서. 문헌학자. Nouveaux Essais sur l'entendement humain, 1704(1765 출판)는 로크의 Essai sur l'entendement humain, 1689)에 대한 반박문이다.
1647 벨(Pierre Bayle, 1647–1706), 프랑스 철학자, 작가, 사전편찬자.
1654 바리뇽(Pierre Varignon, 1654-1722), 프랑스 제수이트 신부, 수학자. 정력학 및 힘들의 삼각정식화와 삼차원의 평형조건의 정식화에 기여했다. Nouvelles conjectures sur la pesanteur 1690, Nouvelle Mécanique ou Statique, dont le projet fut donné en 1687.
1657 퐁뜨넬(Bernard Le Bouyer de Fontenelle, 1657-1757), 프랑스 작가, 극작가, 과학자. 라이프니츠와 편지교환. 과학아카데미 비서(사무총장).
1661 로피딸/로스피딸 후작(Guillaume François Antoine de L'Hôpital, 1661-1704), marquis de L'Hospital, 프랑스 수학자. 과학아카데미 회원.
1664 당지꾸르(Pierre Dangicourt, (ou d'Angicourt), 1664-1727) 프랑스 루앙태생 베를린 별세. 프랑스 수학자. 프로테스탄트(위그로?) 1685년 낭뜨 칙령으로 프랑스 떠남, 프러시아 왕립 과학아카데미 회원.
1667 베루눌리/베르누이(Jean Bernoulli, Johann Bernoulli, 1667-1748), 스위스 수학자, 물리학자. 1694(스물일곱), 바젤에서 의학박사.
1668 보세스(Barthélemy Des Bosses, Bartholomäus des Bosses 1668–1738) 오스트리아 출신 철학자. 벨기에 제수이트. 라이프니츠 말년에 편지교환.
1671 그랑디(Luigi Guido Grandi, 1671-1742), 이탈리아 신부, 철학자, 수학자, 기술자.
1675 클라크(Samuel Clarke, 1675–1729), 영국철학자, 영국국교 목사. 로크와 버클리 사이 중요 인물. 라이프니츠와 서신교환은 주로 자연철학과 종교에 관한 것이다.
1677 콘티(Antonio Schinella Conti, 1677-1749), l’abbé Conti, “빛들세기” 전반세기에서 이탈리아 물리학자, 수학자, 역사가, 철학자. - 베니스 오라트리오 신부.
1678 레몽(Pierre Rémond de Montmort, 1678-1719)[Remond], 프랑스 수학자. 주사위놀이에 관한 분석시론Essai d'analyse sur les jeux de hasard (1708)
1685 버클리(George Berkeley, 1685-1753), 아일랜드의 철학자, 성공회 주교이다.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Esse est percipi).
1685 테일러(Brook Taylor, 1685–1731), 영국 수학자, 법정 변호사. 순방향과 역방향의 증가방법(Methodus incrementorum directa et inversa, 1715)
1694 볼떼르(Voltaire, François-Marie Arouet, 1694-1778) 프랑스 문필가, 철학자.
1707 오일러(Leonhard Euler, 1707-1783) 스위스 수학자, 물리학자. Introductio in analysin infinitorum 1748(Introduction à l’analyse des infiniment petits), Institutiones calculi differentialis 1755(Traité du calcul différentiel).
1713 끌레로(Alexis Claude Clairaut, 1713-1765), 프랑스 수학자. 과학아카데미 회원, Théorie des comètes (1760)
1717 달랑베르(Jean Le Rond d'Alembert, « Dalembert », 1717-1783) 프랑스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백과전서파.
1724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독일 계몽기(Aufklärung) 철학자.
1736 라그랑쥬(Joseph Louis de Lagrange, en it. Giuseppe Luigi Lagrangia, 1736-1813), 이탈리아 수학자, 역학자, 천문학자. 사르데냐 왕국 출신 프랑스 귀화. 1765 콜브뤀(Henry Thomas Colebrooke, 1765-1837) 영국 법관, 인도학자, 식물학자. Algebra with arithmetic and mensuration from the Sanskrit of Brahmegupta and Bhascara (1817)
1749 라플라스(Pierre-Simon de Laplace, marquis de Laplace, 1749-1827), 수학자, 천문학자, 물리학자, 정치가. Traité de mécanique céleste, 1878-1904
1789 꼬쉬(Augustin Louis, baron Cauchy, 1789-1857), 프랑스 수학자. 과학아카데미 회원, E.Pol 교수.
1802 아벨(Niels Henrik Abel, 1802-1829)[스물일곱], 결핵이었다. 노르웨이 수학자. 수학적 분석 전문가.
1804 뫄뇨(François Napoléon Marie Moigno, Abbé Moigno, 1804-1884), 프랑스 제수이트 신부, 수학자.
1809 구라우어(Georg Emanuel Guhrauer, Gottschalk Eduard Guhrauer, 1809–1854), 독일 문학사가, 라이프니츠 연구가[Gurhauer], G. W. v. Leibniz, eine Biographie (Breslau 1842, 2 Bde.; Nachträge 1846).
1815 르누비에(Charles Renouvier, 1815-1903) 프랑스 철학자. 철학사의 작품이 있다.
1819 세레(Joseph Serret, 1819-1885), 프랑스 수학자, 천문학자. 미분기하학 정식화.
1826 푸세 드 까레이(Louis-Alexandre Foucher de Careil, 1826-1891), 프랑스 작가, 외교관, 정치가. Réfutation inédite de Spinoza par Leibniz, Paris, 1854. Nouvelles lettres et opuscules inédits de Leibniz, précédés d'une introduction, Paris, 1857.
1838 마흐(Ernst Mach, 1838-1916),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인식론자. 의사이며 생리학자인 블뢰러(Josef Breuer, 1842-1925)처럼 6감을 의식의 방향정립으로 연구했다. 마흐가 유대계일 것 같은데, 그런 내용은 fr.Wiki에 없다. 영.위키에서는 그가 무신론자이며 사회주의자가 된 것은 불교 영향이라 하는데, 나로서 아닐 것이며 원자론자 입장의 네오칸트주의자에 해당한다. (59PKD).
1844 망지옹(Paul Mansion, 1844-1919). 벨기에 수학자, 과학사가. 벨기에 강대학 교수.
1845 칸토어(Georg Cantor, 1845-1918) 독일 수학자. 집합론의 창안자.
1856 삐카르(Charles Émile Picard, 1856-1941), 비단 제조집 아들, 에콜폴리테크니크 2등, ENS 1등 합격, 프랑스 수학자. 수학적 분석 전문가.
1859 비반티(Giulio Vivanti, 1859-1949), 이탈리아 수학자. Il concetto d'infinitesimo e la sua applicazione alla matematica, 1894.
1868 꾸뛰라(Louis Couturat, 1868-1914) 프랑스 철학자. 논리학자, 수학자. La Logique de Leibniz : d'après des documents inédits, Paris, Félix Alcan, 1901.
1868 도팽 므니에(Joseph Emile Dauphin Meunier, 1868-1927) 프랑스 역사가, 시인, 기자.
1870 레스티엔(Henri Lestienne, 1870–1915), 프랑스 신부. [다른 정보없음]
1872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 영국 철학자, 수학자, 논리학자.
1872 베르트랑(Émile Bertrand, 1872-1929), 벨기에 수학자, 물리학자.
1884 쟝 레(Jean Joseph Ray, 1884-1943), ENS 철학으로 교수자격, 프랑스 법률가, 철학자, 사회학자, 외교관.] Jean. Ray et Renée 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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