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오늘은 연중 마지막 주일이며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Domini Nostri Jesu Christi, Regis Universorum Solemnitas)입니다. 1925년 교황 비오 11세는 니체아 공의회(325년) 개최 1600주년을 맞아 회칙 Quas Primas를 통해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제정하셨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아 무참하게 파괴된 참담한 세계상을 니체아 신경을 바탕으로 다시 세우고자 한 비오 11세 교황은 당시 팽배했던 민족주의, 반성직주의, 세속주의, 허무주의, 상대주의에 길일 잃고 헤매던 세상에, 세상의 영원한 살아 있는 중심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임을 장엄하게 선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임금’으로 고백한다는 말은 곧 우리가 그분이 다스리시는 나라의 시민임을 뜻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온 누리의 임금’으로 고백하는 오늘, 요한 복음사가가 전하는 그분의 수난을 소개합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온 누리의 임금이신 예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수난하시는 임금, 당신의 생명까지 내어주시는 임금, 심지어 죽기까지 인간을 사랑하시는 임금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공관복음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하느님 나라’(‘ἡ βασιλεία τοῦ θεοῦ’), 곧 ‘하느님의 다스림’에 대한 언급이 요한복음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두 번 언급되기는 하지만(3,3.5), 요한복음은 십자가라는 왕위에 오르시는 예수님을 강조하며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통치권을 드러내는 것에 보다 초점을 맞춥니다.
또한, 공관복음에서 강조하는 하느님 나라는 미래의 일이지만 이미 현재에서 실현되는 것으로 그려지는 반면(‘이미와 아직 아니’: Already but not yet), 요한복음에서는 시간적 표현보다는 공간적 표현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진리와 사랑이 머무는 하느님의 나라는 ‘위’로, 어둠과 거짓, 미움이 지배하는 영력은 ‘아래’, 흔히 ‘이 세상’으로 표현됩니다. 이 두 세계는 공존하지만 서로 다른 가치의 의미를 지녔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라는 문장 속 ‘당신의 나라’를 ‘어디에 있는’ 장소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당신의 나라가 ‘어떤 것’인지 본질에 대한 말씀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로마 총독인 빌라도에게서 재판을 받으십니다. 그런데 재판받는 사람이 빌라도인지 아니면 예수님인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재판하는 빌라도는 피고인(被告人) 예수님의 죄목을 알지 못합니다. 도리어 유다인의 고발로 자신 앞에서 있는 예수님께 “당신은 무슨 일을 저질렀소?”라는 질문을 던지기까지 합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신원과 그분이 하신 일에 관한 두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먼저,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σὺ εἶ ὁ βασιλεὺς τῶν Ἰουδαίων;”)라는 질문으로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알고 싶어 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세 번이나 동일한 질문(요한 18,33.37; 19,39)을 반복할 정도로 빌라도의 관심은 온통 그것에 몰두해 있습니다. 이 질문으로 인해 ‘예수님의 왕권’이라는 주제가 재판 전체의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의 질문에 대한 답을 정치적 의미가 아닌 신학적 의미로 풀어내십니다. 직접적인 답변보다는 질문을 되돌려주는 방식을 택하여 빌라도가 자신이 한 말의 진실성을 바라보도록 하십니다. “그것은 네 생각으로 하는 말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관하여 너에게 말해 준 것이냐?”(요한 18,34) 이렇듯 죄수가 재판장을 신문하는 묘한 아이러니가 질문과 뒤엉켜 인상적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제 빌라도는 신원에 대한 질문에서 그분이 하신 일로 질문을 바꿉니다. “당신은 무슨 일을 저질렀소?” 이 질문은 독자에게 그분이 주신 생명의 가르침과 생명의 활동을 반추하도록 이끄는 역할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이 처벌받아야 할 범죄가 아니라 사랑의 행위였음을 독자가 스스로 깨닫도록 만듭니다. 최고 정치 권력을 대변하는 상징적 인물인 빌라도를 통하여 예수님의 진정한 본성과 그분의 사명이 생생하게 계시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명패에 쓰인 ‘유다인의 임금 나자렛 예수’(INRI: Iesus Nazarenus Rex Iudaeorum) 역시 그분의 신원을 드러냅니다.
마지막으로 빌라도는 자신이 하였던 첫 번째 질문을 다시 한번 반복합니다. “아무튼 당신이 임금이라는 말 아니오?”(요한 18,37) 요한복음 저자는 이 구절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언어로 왕이신 예수님의 신원과 그분의 사명을 강력히 피력합니다. 그와 동시에 빌라도를 단죄하고 있습니다.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요한 18,37)
온 누리의 임금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는지, 그리고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지 묻고 계십니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그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입니다.
성서 주간을 시작하는 오늘, 말씀 안에 머물며 다양한 목소리로 우리를 지배하는 거짓 왕들을 몰아내고 참 왕이신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