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 중요한 공통점은 둘 다 ‘반지’를 소재로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반지는 둘 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절대 권력을 상징합니다. 그렇다면 이 ‘반지’라고 하는 모티브가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는 공감대를 형성한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인간의 지배욕(control ideal)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지배하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이 권력에 대한 집착을 둘러싸고 모든 갈등과 싸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양자간에 차이점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두 작품의 결론이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반지의 제왕>은 악과 어둠의 세력이 결국 멸망함을 보여 주는 반면에 <니벨룽의 반지>는 마지막에 신(神)들도 모두 멸망하고 사랑에 의한 인간중심의 새로운 세계가 탄생하는 이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전자가 Tolkien의 신앙적 확신을 표현한다면 후자는 Wagner의 인본주의적 이상을 구현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성경에도 반지가 나옵니다. 오늘 본문에는 ‘절대반지’같은 것도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사실 ‘반지’외에도 ‘가락지’ 또는 한자로 ‘지환(指環)’이라는 단어들도 나옵니다. 원래 반지는 장신용구의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반지에는 보통 인장이 부착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그 반지를 가진 사람의 권위를 상징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특별히 ‘인장반지’라고 합니다. 신약시대에도 이러한 인장반지는 그 효용(效用)을 증인(證印)또는 봉인(封印)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롬 4:11; 고전 9:2; 딤후 2:19; 계 5:1-, 6:1-, 7:2, 8:1, 9:4).
나아가 성경에 보면 이러한 반지를 받은 사람도 있고 빼앗긴 사람도 있습니다. 반지를 받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대표적인 몇 사람만 생각해 보십시다. 먼저 애굽의 국무총리가 된 요셉을 들 수 있습니다. 창 41:41-43에 보시면 바로가 요셉으로 하여금 애굽 온 땅을 다스리게 하면서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웁니다. 그리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목에 걸고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웁니다. 그러자 모든 무리들이 그 앞에서 엎드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다음으로 애굽의 최고의 권력자가 된 것이지요.
그 다음은 에스더의 삼촌 모르드개입니다. 사실 구약에서 ‘반지’라는 모티브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책은 에스더서입니다. 3:12에 보시면 “정월 십 삼일에 왕의 서기관이 소집되어 하만의 명을 따라 왕의 대신과 각 도 방백과 각 민족의 관원에게 아하수에로왕의 이름으로 조서를 쓰되 곧 각 도의 문자와 각 민족의 방언대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치니라.” 모든 유대인을 없애려고 하는 하만의 계략을 알지 못한 왕이 이것을 인정하는 조서가 효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하만의 계략이 수포로 돌아간 후 8:2에 보시면 “왕이 하만에게 거둔 반지를 빼어 모르드개에게 준지라 에스더가 모르드개로 하만의 집을 주관하게 하니라” 말씀합니다. 유대민족이 억울하게 몰살당할 위기에서 벗어나 왕의 인정을 받는 영광을 누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신약의 눅 15:22에 보시면 돌아온 탕자에게 아버지는 손에 반지를 끼워 줍니다.왜 반지를 끼웁니까? 아버지의 아들로 그 지위를 회복시켜 주는 것이지요. ‘너는 더 이상 죄인도 아니고 탕자도 아니다 너는 내 아들이다’라고 공적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도 그 분의 반지를 끼워 주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이제 내 자녀다.’ 바로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이요 특권이지요?
반면에 이 반지를 빼앗긴 대표적인 두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에스더서에 나오는 하만과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먼저 하만은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교만한 마음으로 악한 계획을 세워 유대인들을 말살시키려고 하였지요. 아하수에로 왕이 처음에는 그를 신임하여 그에게 인장반지를 주었습니다. 에 3:10에 보시면 왕이 반지를 손에서 빼어 유대인의 대적 곧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에게 주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의 음모가 드러나자 그 반지를 빼앗아 오히려 모르드개에게 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유다가 멸망하기 직전 여호야김 왕의 아들 고니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렘 22:24-25에 보시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너 고니야가 나의 오른손의 인장반지라 할지라도 내가 빼어 네 생명을 찾는 자의 손과 너의 두려워하는 자의 손 곧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갈대아인의 손에 줄 것이라” 말씀합니다. 아무리 왕자라 할지라도 그가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면 그 반지는 빼앗기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보통 언제 반지를 낍니까? 결혼할 때 서로 교환하지요? 무슨 뜻입니까? 서로 사랑하며 살겠다는 언약의 상징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맺은 언약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만 온전히 섬기며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사랑하면 그 분의 반지는 우리의 것이 되지만 우리가 우상을 섬기며 그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주신 반지도 거두어 가심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역사속의 반지
손가락에 끼어 손을 예쁘게 꾸며주는 반지, 동양과 서양, 문명 사회나 미개 사회 어디에서나, 아주 오랜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장신구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도 반지의 역사는 매우 오래다. 석기 시대 사람들의 생활 유적지인 패총에서 반지로 여겨지는 물건이 발견된 바 있다. 손가락에 낄 수 있도록 가운데에 구멍을 뚫은 작은 조개 껍질과 예쁜 돌이 그것이다.
또한 약 4,000년 전에 씌어진 중국 문헌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동이들이 혼인을 하면서 서로 약속을 한다는 뜻에서 반지를 선사한다."
여기서 동이란 우리 민족을 이르는 말이다. 결혼 예물로 반지를 주고 받는 일이 우리 고유의 풍속이었다니 놀랍다. 약속을 할 때 보통 새끼손가락을 건다. 그런데 손가락에 끼는 반지에도 약속, 맹세의 의미가 담겨있다. 그래서 혼인 예물로 쓰임은 물론, 이별하는 사람들 사이에 변함없는 마음을 약속하며 반지를 나누어 가졌다.
신라의 화랑들이 그들 간의 맹세의 표시로 반지를 끼었으며 로마의 기사단도 같은 뜻에서 반지를 끼었다. 로마인들은 반지를 즐겨 끼었을 뿐만 아니라 그 종류도 여러 가지였다.
신분을 나타내는 반지를 관리들이 끼었으며, 공을 세운 신하에게는 메달이나 훈장 대신 반지가 수여되기도 했다. 결혼한 여자들은 집의 문을 잠그고 열기 위해 열쇠 반지를 지녔다. 그런가 하면 비밀 무기라 할 수 있는 독반지도 있었다.
독약이 담긴 작은 물약병과 화려한 뚜껑으로 되어 있는 독반지는 적의 술잔에 몰래 독을 넣을 때 자주 이용했다고 한다. 또한, 반지에 가문의 무늬를 새긴 인장 반지도 있었다. 그런데 이 인장 반지를 가장 쓸모있게 사용한 사람들은 중세 독일의 기사였다.
예나 지금이나 많은 돈을 몸에 지니고 먼 길을 가는 것은 위험하다. 도둑을 만나거나, 잃어버릴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의 기사들은 돈 대신 인장이 새겨진 반지만을 끼고 여행길에 올랐다. 그리고 여인숙에 묵게 되면 숙박비 대신 인장 반지로 도장을 찍어주었다. 여인숙 주인은 그것을 모아두었다가 뒷날 숙박비를 청구할 수 있었다. 반지가 오늘날의 신용 카드 구실을 했던 셈이다.
반지가 영혼의 활동을 방해하는 힘을 가졌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메카를 순례하는 회교도들은 반지를 끼지 않았다. 카르파투스 섬 사람들은 죽을 때 끼고 있던 반지를 뺐는데, 그것은 반지 때문에 영혼이 하늘로 오르지 못할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반지에는 복을 비는 마음이 담겨 있다. 반지에 박쥐 무늬를 새겼는데, 박쥐는 하늘의 사자로서 복을 가져다준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가 태어나면 백일이나 돌에 금반지를 선물했다. 금에는 병에 걸리지 않고 오래 살게 해주는 힘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노인들께 금반지를 선물하는 게 큰 효도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