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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ades6669님의 플래닛입니다. 원문보기 글쓴이: 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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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강릉이 거(하)슬라주라고 합니다.桓(환)檀(단)이 아르타 이라면,, 알타라는 말씀이군요. 그럼 알타고기네요. 아즈마[東]는 한어 '아침'이란 말은, 일본에서는 다른뜻으로 사용됐을겁니다. ^^
산동반도에는 래이,우이,도이,풍이,양이가 있었는데, 이중에서 東夷(도이)가 한국을거쳐 일본으로 넘어가서 남이인의 한 분파로 볼수있는 구주 이남의 조몽인들에게 가르치고 쓰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말인데, 백제나 신라의 도이인들이 넘어가서, 부여,백제,신라의 이두어로 한자를 가차해서 쓰기시작한 언어입니다.
東 (아즈마) > 이말은 원래 도이가 넘어가서 현지 조몽인들에서 쓸때는 "도와주마 !~" 라는 말이었는데,
도이인이 한자를 이두어로 가차해서 표기한것이고,현지인들은 후에 東 을쓰고나서 와주마~를 아즈마라고 표기하고는 그 뜻을 東 과 분리해서 아즈마(일본 관동지방 에도(가마쿠라)지역에 사는사람을 말함)라고 토를 단것인데, 명치이후 언어 대개정때 많이 변한것입니다.
아즈마라는 뜻은 원래 아줌마인데, 아즈마앞에 東을 붙이고 東 (아즈마)라고 말하면, 도와주마! 라는 뜻이고,
고대이후로는 관동지방 에도지역에 사는 사람을 일컫는말이 된것입니다.
즉 산동의 도이족(동이족)과 반도/고구려/발해의 동이족이 일본 동경 관동지방(에도)으로 많이 넘어갔다는 반증입니다.( 동이끼리 도와주는 아줌마라는 소리를 보고듣고나서, 현지인들은 아즈마라고 부르고 東 이란말로 대신한것입니다.그래서 東이란 말은 아줌마를 뜻하는 말이된것으로 봅니다.)
東夷를 일본 중부의 교토(京都)지방 사람들이 동경 관동지방 사람들을 동쪽 오랑캐라는 말로 경멸하며 부르던말이지만,,, 이말은 고대부터 사용된 말로 보이고, 고대이전 원래뜻은 도이족>동이족을 말하는것입니다.
도이족이 도래해서 교토/오사카인들에게 쓰기 시작한 말의 실례를 들어보면,
東=아즈마. 吾妻.吾儒 = (아즈마 ) = 도와주마! ~ 놓쳐~ 어휴~ > 이말을 쓰고 사는 사람들을 쿄토/오사카에 사는 사람들이 관동 토쿄에 사는 사람을 지칭할때쓰는 말이 된것입니다.
일본에서의 東의 의미는 도이(동이)를 말하는 것이고, 아줌마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볼수있습니다.
(위의 오처,오유라는 말도 동과 같은 의미의 말로 썼습니다.)
또, 東 아즈마 遊 아소비 = 도와주마!~ 아서(라)~ 베(어)~ 이말은 平安(헤이안)시대 가무의 일종으로
(큰칼을차고 벛꽃을 관에 꽃은 4~6명의 남자가 피리,왜금등의 반주에 맞춰 추는춤)으로 변했는데,
도이족이 하는 행위를 명치 대개정때 바꿔 버린것입니다.
平安(헤이안)을 부여,백제,신라 이두로 풀어보면 펴라(펴 !~야! ~) 인데, 혹 평양(삐알랑)은 아닌지,,^^
(백제,고구려 멸망후 넘어간 사람들이 쓰던 평양을 현지 왜인들이 平安으로 쓰고는 후에 헤이안으로 발음)
東아즈마 男 오또고 니 京女 쿄오 온나 == 도와주마!~ 나 어떻해~ 니 건너 겨~온나(니 기어온나~)
>> 이말이 전혀다른 " 남자는 우람한 관동사나이, 여자는 우아한 경도 여인을 이르는 왜말로 변하였습니다. ^^
'욱일승천기(旭日昇天旗)에서 旭日아사히는 '[朝日]아사히로 변하게되는데,
[旭]아사히 라는말의 고대 풀이 우와~ 싸이~(싸여)~ >> 물건을 팔때 싸다고 외치는 말.
또 사창가등에서 몸파는 여인이 질안에 사정하면 안되니 와 !~ 싸요?(싸는거요?)라고 화내는말.
또, 아사히 朝日,旭 >> 어서해~ 조이(여~)~ 우~ ㅠ,ㅠ (성행위나 물건,씨름등 격투,일하면서 조이는 행동)
>> 이말이 후에 旭日(아사히)가 욱일승천기로 정복의 상징으로 변했고, 朝 는 아스/아사로 욱일이전부터
고대에 있었던 말입니다.(조아~ 사! ~ > 여인이나 물건을 사겠다는말.^^)
朝 아사 >조아~ 사(라)!~ 달라~(매춘이나 상행위시 사고파는 행위)
원래 이말이 중앙아에서는 후에 아사> 아사탈라 >아스탈라> 아스타나로 변하면서 전혀 다른뜻으로
왕이있는 수도나, 삐알랑등으로 변한것으로 봅니다.
이동하면서 현지인과 사고파는 상업행위를 하던것이 훗날에 지명이나 수도, 다른 상징으로
변한것입니다. ^^
변하기전의 시대 이전에는 계급의식이 없었으나, 그이후에 계급의식이 생겨나게된 이후로 전혀 다른말로
변한것으로 보여집니다.
韓(한)을 일본에서는 から (카라/까라/가라)라고 부르는데, 한인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韓から > 백제 이두어로 풀이하면, "하 까라!~ (즉 하나라를 까라~)라는 이야기 입니다. ㅠㅠ
한종족을 까라는 소리입니다.
이것은 후대에 만들어진 말이고 원래는 辛(唐)을 까라는말이 나중에 韓을 까라는말로
변해버린것입니다.
唐から > 백제 이두어로 풀이하면, "다 까라! ~ (즉, 다 까라~ )라는 말입니다.
唐 = 漢 > 이말도 백제 이두어로 풀이하면, "하~ 까라 ~(하나라를 까라~)라는 뜻으로
사용되었고, 대표적인 외국을 상징하는 말이었습니다.
任那 미마나 > 이말을 백제 이두말로 풀어보면 " 이남이 많아? (즉 9이족중 이족중 이남이 많아?)
이말이 임나가 된것입니다.
가라 미마나 > 가람이 많아 ~ > 강과 물이 많은데서 사는 종족을 표현한것이 가라가된듯~.
담로 미마나 > 다놈(단놈/담놈/처마가 붙을정도로 이웃하며 사는종족)이 많아?
백제 담로인들이 왜지역으로 피해서 적과 싸우거나 대치하면서 왜인과 연합하면서 하던말을
왜인들이 보고듣고, 전파된후 기록한말이된다.
담로인들에의해서 따놈/떼놈이라는말이 나온것으로 보인다.
百濟 구다라 > 이말을 백제 이두말로 풀어보면 " 배째고 달라(그래~) 입니다.
이말을 현지인들이 백제를 이르던 말인데 후에 백제를 상징하는 말이 된것입니다. ^^
백제 이주민들이 원주민들에게 가서 빼앗을까 빌어볼까 망설이는 말입니다.
아스카 飛鳥 > 앗으까 비조> (빼)앗을까 ? (가서) 빌죠(빌어보죠!)~ 이말을 가야계 정권이
무너지고 훗날에 일본화 되면서 아스카 (飛鳥 )문화로 알려지게 된것이다.
가야 백제계가 처음 열도로 이주해서 선주민인 남방 조몬인과 아이누,그리고 선주민
부여인과 신국인들을보고 빼앗을까 빌죠~ , 이말이 아스카의 상징이 된것이다. ^^
일본은 기원전 3세기경부터 반도를통해 부여계가 지속적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여,
기원후에는 가야계가 구주지역 백제계가 중부의 오사카,나라 ,교토(경도)로
신라계가 서부해안과 오사카로 들어오면서 백제계를 밀어내자 백제계는 오사카에서
나라로 수도를 옮기고 후에 경도로 옮기게된다.
반도백제가 강성할때는 응신 백제계가 주도했으나 신라계가 후에 흥하게되자 자연스럽게
신라 천일창의 후손계인 신공황후계가 왜정권을 장악하게된다.
백제계 일부가 동경(에도)관동지역으로 옮겨가고 후에 고구려계가 관동(에도/동경)지역을
근거지로 오사카를 장악하고 에도막부시대를 열게된다.
중부의 오사카/경도등 중부 사람들이 동경(에도)의 관동사람들을 동이 오랑캐라며
비아냥거리는 말로 동이(東夷)라는말을 사용하였다.
일본에서는 여자( 女 )를 온나 라고 한다. 처녀, 아줌마를 통칭해서 "온나"라고한다.
더 분화된 말로는 여자(女)를 오미나 라고 말한다.
시집안간 처녀를 나타낼때는 女(娘(아씨낭) 孃(계집애양) 무수매 라고 말한다.
한국어 어머나의 변천은 >애미나>오매나>오모나>오미나> 가 된것이다.
女 온나 > 녀오나>녀옷나>녀웠나(시집보냈냐? 라고 묻는말임) 에서 이두에서 따온 말인데
후에 女(계집녀)자가 붙어있으므로, 여자,여인을 나타내는말로 변하였다.
女 무수매孃 > 녀 무숫매? > 고구려/발해 지역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녀뭇슴매? >
시집보냈냐고 물어보는 소리이다.
또 그이전에는 ~어여~ 무수(무우)매라~ 야 ~ 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을수도 있다.
이말이 시집안간 처녀를 나타내는말로 변한것이다.
무수매의 매는 뫼에서 나왔다. 뫼는 山을 말하고, 묏/메/멧을 말하며, 山은 산속에있는
사찰을 말한다. 인공적으로 조성된 상록수나무가 있고 가꾸어진 신당을 말한다.
그 신당을 관리하고 천제를 지내는 제실녀를 말함이다.즉 女 제사장(신녀)을 나타낸다.
신녀는 처녀때 되어서 독신으로 살아서 나온듯하다.
산에있는 신당을 뫼신다고해서 뫼시다가 나왔고, 산을 뫼신다는말이 나왔다.
아침을 나타내는 東아즈마> 도와주마 !~ 라는 말이 아줌마>아짐마>아즈마로변하여,
전혀다른 관동(에도/동경)사람들을 뜻하는 말로 변한것은 설명한바가 있다.(고구려 이주계)
동경지역 선주민은 아이누>부여>백제임.후에 고구려망인들 대거 이주함.
어떤 연구기록에 의하면 일본인 전체 이주민은 8:2로 이주민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한다.
일본에서는 唐國이나 辛國을 가라쿠니라고 말한다.
이말은 신나라(ad8~23) 멸망후 반도로 피해왔던 신나라인들의 일부가 왜로 넘어가기전, 이미
기원전 220년경 진나라 망인들의 일부도 넘어가서 조몽인들과 섞여있었다는 반증이기도하다.
진망인들과 신나라의 망인들은 반도에 정착했을때, 마한정부에서 그들의 왕이될 왕족과 신하들을
파견하여 그들을 다스렸다는 사서나 정사의 기록이 있다.
여기서 정쟁등으로 문제가되어 넘어간 사람들이 있었다.
기원전 3세기경부터 부여인들이 소수 이주하기 시작한이래, 진망인과, 신나라 망인들도
넘어간것을 알수가있다.
그들사이에서 다툰흔적들이 언어에서 나타난다.
新羅를 시라기 라고 부른다.
신라를 시라기라고 부르기 이전에 白木(시라키(끼)라고 불렀다.
이말은 신라 성립이전후의 신나라인들이 경상도 동남으로 들어왔다가, 정쟁에서 밀려난
일파가 왜로 넘어갔다는 이야기이다.
辛國(신국)을 白木(시라키/끼) 이라고 불렀다.
신국은 산동반도에있었던 신나라와 투국을 말하고 白木은 신나라인의 조상이 소호금천씨이고,
소호금천의 부친은 황제헌원이다.
황제헌원은 백민씨에서 나왔고, 백민씨 원래조상은 백두산 바로 아래에있던 백민국에서
나왔다. 함경남도지방이 백민국의 근원지이다.
그곳에 원평과 천원,고원이라는 지명이 있다.
그래서 신국을 백목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부여나 백제,가야계가 넘어가서 신국/신라와 싸운 흔적이 언어에 나타난다.
시라끼 白木 造 쯔꾸리 神殿> 신라기(깃발) 베모 조찌꾸리. 즉
(신국) 기(깃발) 베면(뵈면/보이면) 조지구려~
(조져 버려라~)신전을~.
신전문제로 불교사찰건립파와 단군신사파와의 싸움을 이두식으로 현지인들에게 말한것이,
훗날에 반도와 언어가 격리되면서 한문속뜻언어로 변해버린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