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에 대한 감상
최동훈은 역시 대중을 너무 잘 아는 감독이다.
스토리 라인은 약간 복잡한 듯 보이지만 권선징악의 기본 룰을 벗어나지 않는다. 친일 문제만큼은 우리나라에서 민감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기도 하겠지만 이정재가 왜 갑자기 변절을 했는지, 그 와중에 느낀 갈등 따윈 없다. 그냥 나쁜 놈은 나쁜 놈일 뿐이다. 친일을 옹호하려는 게 아니다. 영화도 예술장르의 하나로 본다면 악인에게도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실존인물보다는 상상 속 인물이 좋다.) 권선징악이라는 단선구조가 한국적인 정서라고 볼 수 없고 오히려 웃픈 상황이 해학으로 승화될 때 한국적 한이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웃픈 상황은 여러 나라에 존재하지만 우리에게 있어 해학은 한의 정서와 맞닿아 있어서 깊이가 다르다.
이런 점에서 중국의 ‘색계’가 주는 심리 묘사는 영화에 예술성을 가미해준다. 약간 무간도의 느낌이랄까. 양조위가 연기한 친일파는 나쁜 놈이기도 하고 또 쪼잔 해보이기도 (이 부분에서 인간적이기까지 함) 하지만 자신의 사랑 앞에서 무너지기도 한다. 경계선에서 느끼는 고뇌나 자기 아픔도 있다. 물론 양조위가 연기를 잘한 탓도 있겠지만 이정재가 연기로 커버하기엔 대본이 너무 부족하다. 변절하는 사람의 고뇌까지도 그려야 예술이다. 사실 고증대로 한다면 김구가 염석진(이정재)을 의심하는 부분에서의 김구의 모습이 너무 유하게 보인다. 친일청산이라면 피도 눈물도 없던 사람이 바로 김구였다. 실제로 김구는 안부 차 상해에 들렀던 처남이 의심스러운 태도를 보이자 바로 압록강으로 끌고 가 자백을 받은 뒤 그대로 강물에 빠뜨렸다고 한다. 영화에서 굳이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실존인물을 데려왔을 때에는 그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이유를 굳이 따지자면 김원봉(조승우)의 말대로 너무 많은 희생을 하고서도 스스로 독립하지 못한 안타까움 정도랄까?(그도 잘 살리진 못했다.)
약간 독특한 캐릭터라면 여성이면서도 직접 총을 들고 싸운 안옥윤(전지현). 여성 독립운동가라면 유관순정도 떠오르겠지만 안옥윤을 떠오르게 하는 남자현이라는 실존 인물도 있었다고 하니 쌍둥이라는 드라마틱한 플롯보다는 개성 강한 여성 독립운동가로 안옥윤(전지현)을 내세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좀 남는다.
민족주의를 너무 앞세우는 것도 이젠 불편하다. 왜냐하면 그래서? 나라꼴이 이 모양된 걸 어쩌라고? 그럼에도 대중은 선악을 구분 짓고 싶어 하는 것이 현실이고 특히 한일문제는 더욱 그러하다. 매우 민감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최동훈은 약간 비겁한 결론을 내렸다. 왜 염석진(이정재)에게 변명할 여지를 주지 않았나? 독립이 될지 몰랐다는 뻔한 대답 말고 그냥 고뇌(혹은 자조)하는 모습정도 보여줄 수 없었나? 변절의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우리 대중이 원하지 않는다면 양조위처럼 사랑문제로 치환할 수도 있었는데 그것도 못하고 무게감도 없고, 원래 악역이 무게감이 있을 때 영화가 무게 있어진다. 레옹도 그렇지 않은가.
조진웅이 연기 잘한 거 빼고는 그냥 애국심 고취영화. 원래 목적도 거기서 그렇게 벗어나진 않을 것이 분명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