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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매일 매일 삶의 이슈 바꾸기>의 줄거리:
이슈가 바뀐다는 것은 곧 삶이 진행중이라는 싸인이며 변화하고 성장한다는 증거입니다. 불신앙에서 신앙으로의 전환은 반드시 삶의 현장에서 이슈바꾸기로 표현됩니다. 일상에서 이슈바꾸기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아직 신앙의 세계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매일 매일 삶의 이슈 바꾸기
(마11:12-24)
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13.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14.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15.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16.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17.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18.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19.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매일 매일 삶의 이슈 바꾸기>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날마다 삶의 이슈 바꾸기’가 신앙을 갖고 삶을 살아간다는 싸인이 된다는 뜻의 제목입니다.
독일에 공부하러 갔을 때, 여러 가지 우리나라와는 다른 문화, 그리고 선진국이 갖고 있는 면모들을 접하면서 인상적인 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독일대학교의 인기학과를 알고서 깜짝 놀란 일입니다.
고등학교에서 공부한 성적을 토대로 해서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진학을 하는데, 여러분 생각에는 독일의 대학에서 -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겠어요, 1990년대였으니까 벌써 20년 전이에요 - 최고로 인기가 있는 학과가 어느 학과라고 여겨집니까?
우리나라는 여전히 의대, 법대, 전자공학과, 상대, 이렇게 인기가 있습니까? 잘은 모르겠지만.
깜짝 놀랐어요, 고등학교 때 공부를 제일 잘하는 우수한 그룹의 학생들이 지원하는 과가 임학과라고 해요, 임학과.
왜 그런가 하고 살펴봤더니, 당시 1990년대의 독일사회에서의 핫이슈는 ‘자연환경’이었습니다.
아마 지금도 그 나라는 그럴지 모르겠어요.
철저합니다.
거의 모든 대학생들이 자기의 컵을 갖고 다닙니다.
이 종이컵이 자원의 손실이고, 공해를 일으키는 요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산속에서 산책하다가 길거리에 핀 꽃 한 송이를 뜯다가 자전거 타고 가던 여학생에게 얼마나 야단을 맞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친구 목사님은 - 우리 보통 아침에 오래된 차들은 예열한다고 그러잖아요? 미리 엔진을 틀어놓습니다, 그랬다가 같은 아파트에 사시는 할머니 한 분이 나와 가지고 ‘당신 차가 중요하냐, 자연환경이 중요하냐?’며 난리치시는 바람에 혼이 났다고 합니다.
자, 60년 70년대 우리나라 전역을 휘감았던 핫이슈가 뭐였습니까?
‘잘 살아 보세’ 그 ‘잘 살아보세’라는 뜻이 뭐예요? 흰밥에 고깃국 먹는 거죠, 좋은 옷 입고 등 따숩게 하고 배부르게 사는 것, 이것이 이슈였습니다.
이제는 우리나라가 그런 이슈를 갖고 사는 사람이 없어요,
절대빈곤층이 여전히 있습니다만 매스컴을 통해서 드러나는 핫이슈는 그런 것들이 아니에요, 많이 변했습니다.
60년 70년대에 이미 독일과 벤츠와 BMW 자동차가 있었고, 미국의 핫이슈는 다이어트였습니다, 다이어트, 이미 그때.
어떻게 과다하게 섭취하는 열량으로 인해서 찐 살을 없앨 것이고 건강을 유지할 것이냐?
우리나라의 지금 이슈가 웰빙으로 변했습니다.
이제는 IT 산업이 이슈가 되고, 증권이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이슈는 변합니다, 이슈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성장이 멈췄다는 것이고, 발전이 멈췄다는 뜻입니다.
살아있다면 이슈가 바뀌어야 돼요.
그래서 공자도 논어 위정(爲政)편에서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삼십에 뜻을 확고하게 정했으며, 사십에 불혹(不惑)의 경지에 이르렀고, 오십에 지천명(知天命), 육십에 이순(耳順) - 어떤 얘기를 들어도 이치를 깨닫게 되는 상태, 그리고 칠십에 종심(從心) - 내 마음을 따라 행해도 도와 예에서 어긋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이렇게 이슈가 변하는 거예요.
열다섯에는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40에는 명예나 부귀나 그 어떤 이 세상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가 세운 뜻을 관철해 나가는 것, 그런데 오십이 되어서야 자기의 뜻이 문제가 아니라 하늘의 뜻이 문제이다, 지천명(知天命). 이슈가 바뀌어가는 겁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인격이 성장하니까, 변화하니까.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이슈가 바뀐다는 걸 말합니다.
우리가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게 있어요.
죄인 됨이라든지, 이 세상에 대한 애착이라든지, 사랑이라든지, 이런 것이 변하지 않고 계속해서 발생합니다.
그런데 신앙을 갖게 되면서 나타나는 변화는 날마다 이슈를 바꿔간다는 거예요.
매일매일 삶에서 우리가 이슈를 바꾸는 것이 바로 신앙을 가졌다고 하는 싸인이 된다는 겁니다.
신앙을 가졌는데도 이슈가 바뀌지 않아요, 돈을 열심히 버는 것이 인생의 최고의 목적으로 알고 돈 이야기가 핫이슈였습니다.
그런데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돈 이야기가 핫이슈입니다.
이건 신앙을 가진 게 아니죠.
이슈가 바뀌지 않으면 신앙을 가진 게 아닙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은 어제에 이어서,
지금 세례요한이 불행하게도 헤롯왕의 잘못된 행위를 지적하다가 감옥에 들어간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 어두운 감옥에서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째깍째깍 보내는 동안에 세례요한의 마음이 흔들립니다.
메시아라고 생각했던 예수님의 행동은 시간이 지나도 특별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지를 않습니다, 그냥 여전히 병고치고, 소경을 보게 하시고, 앉은뱅이를 걷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데, 힘이 규합이 되질 않고 계속 분산이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례요한이 ‘혹시 메시아가 아닌 것을 아닐까? 더 기다려야 되나?’ 하는 의심이 마음에 생긴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 질문을 접하신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의 마음을 아시고 ‘나로 인해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고, 오늘 본문 12절에 갑자기 너무나 문맥상 맞지 않는다고 느껴질 만큼 뜬금없이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이슈를 바꾸시는 겁니다.
세례요한의 마음의 관심, 세례요한의 마음을 사로잡은 핫이슈는 뭐냐 하면 ‘이제 메시아가 오셨으므로 이 땅에 정의와 공의가 하수같이 흐르는 새로운 사회가 건설될 것이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천국의 비전이 없는 상태에서는 어떠한 열의와 충성심을 갖고 있더라도 사람의 마음의 관심은 세계 내의 경계 안으로 머물 수밖에 없지요, 세계 내 경계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주님께서 천국을 갖고 오신 것을 세례요한이 천국이라는 개념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에서 ‘광야에 꽃이 피고…’ 이런 상징적인 구약언어적인 의미에서 천국의 개념이 있었지만, 이 세상 경계 바깥에 있는 실제의 세계에 대해서 아직 안목이 명확히 떠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세계 내에서 머물고 있는 이슈를 바꿔버립니다.
이제 세례요한을 기점으로 어떤 차이가 있게 되는가 하면, 세례요한까지 구약과 모든 율법과 선지자의 역할과 기능이 끝이 나고 세례요한 이후부터 이슈가 바뀐다는 겁니다.
어떻게 바뀝니까?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핫이슈가 천국으로 바뀐다는 거예요.
이 세계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가 내 마음을 사로잡을 때 신앙이란 무엇인가?
돈 문제가 주어질 때 돈 문제에 가있는 이슈를 천국으로 바꾸는 겁니다.
돈 문제를 돈 문제 그 상태대로 보지 않고 천국이 와서 붙어있는 상태에서의 돈 문제로 봅니다.
그러므로 돈 문제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도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에서 보기 위해서라도 우선적인 내 마음의 이슈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자식문제가 이슈가 됩니다, 이때 신앙이란 무엇이냐?
자식문제가 이슈가 되는 그 순간에 이슈를 바꾸는 겁니다, ‘어떻게 내가 천국으로 들어갈 것이며, 내 자식도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인도할 것이냐?’로 이슈를 바꿔버리는 겁니다.
이게 되지 않으면 신앙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 싸인을 보일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즘 교회들의 이슈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답하지 않아도 여러분들이 다 답할 수 있을 겁니다.
설교를 가만히 들어보면 지금 목사님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핫이슈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성경말씀만 그대로 얘기를 하시는데도 이 세상 내의 핫이슈에 사로잡혀서 그 이슈가 성경말씀의 이해를 주도해 갈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이슈를 바꾼다는 것은 마음이 완전히 떠나는 것을 말합니다.
12절 말씀,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 이 침노를 당한다는 말 때문에 성경을 해석하는 분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여러 가지 의견이 나타납니다,
침노를 당한다는 말이 수동태로 쓰이고, 또 헬라어에 있는 중간태라고 하는 문법적 용어로 쓰여 진 말이에요.
그런데 무슨 뜻인가 하면, 아주 강력한 힘에 의해서 강제로 점령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좋은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냥 헤롯왕이나 열심당원, 아니면 유대지도자들에 의해서 박해받는 상황을 얘기하는 것이라고도 말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천국은 이 세상의 그 어떠한 난폭한 자들의 강력한 힘에 의해서도 빼앗겨지는 것이 아니에요.
심지어는 그토록 혹심한 박해상황에서도 천국이 빼앗겨지는 법은 없었습니다.
단지 내 신앙이 제대로 돼있지 않기 때문에 천국을 상실할 수는 있지만 천국 자체가 침노를 당할 수는 없어요, 이 세상에 어떤 난폭한 힘이 있더라도.
주님에게 임한 천국을 빌라도가 빼앗을 수 없고 가롯유다가 빼앗을 수 없었습니다.
스테반에게 임하는 천국을 헬라파 유대인들이 돌로 쳐 죽이는 가운데서도 뺏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뺏긴다는 말이 아니에요.
이것은 내가 천국을 갖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내가 천국에 들어가는 이야기를 침노 당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마치 강도가 남의 물건을 빼앗기 위해 힘을 가하는 것 같은 느낌의 단어로 분위기를 묘사했을까요?
우리가 천국을 갖는다는 것이 강도가 남의 물건을 강탈하는 것과 비슷할 정도로 우리는 천국에 어울리지 않는 극악무도한 죄인들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제 이슈가 뭐냐?
‘여기서 돈 잘 버는 사람, 공부 잘해서 출세하는 사람, 명예를 얻는 사람,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사람, 이게 이슈가 아니다.’
‘너희는 도저히 강도 같고 어울리지도 않고, 허락받을 수도 없는 존재들인데 그런 존재들이 천국을 갖게 되었다는 이게 바로 이슈다’라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돈 벌 수 없는 무능한 사람의 상태에서 어떻게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사람으로 자기 계발할 것이냐?
어떻게 사람들이 인정하는 - 요새 안철수, 박원순 시장, 이 재야에 묻혀있던 사람들이 정치권으로 급부상하면서 야단이지 않습니까? - 이렇게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만한 사람이 되느냐?
이런 게 내게 이슈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안철수 씨는 서울대 교수님이신데 정치권과는 전혀 관계가 없던 분이 대권주자로까지 언급이 됩니다. 이렇게 어울려 가는 거예요, 맞아 들어가는 거죠.
그리고 가난하게 살던 사람이 로또에 당첨되어 100억을 받았다, 큰 부자로 맞아 들어가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엉뚱하게 맞아 들어가는 것은 아예 비교도 안 될 만큼 엉뚱하고 어울리지 않는 일이 있는데, 그게 바로 ‘너희가 천국을 갖게 될 것이다’는 거예요.
침노하는 자는 천국을 갖게 된다는 겁니다.
이게 이슈가 돼야 된다는 겁니다.
누가 돈을 많이 버느냐, 적게 버느냐, 어떻게 공부를 잘해서 이 땅 위에서 훌륭한 사람이 되느냐? 이런 게 이슈가 되는 게 아니고, ‘지금 얼토당토않은 어울리지도 않고 상상도 않고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형편없는 사람들이 천국을 갖게 된다’라고 하는 것, 이게 이슈라는 겁니다.
매일 매일 이슈를 바꾸라는 것이에요.
그러면 어떻게 천국을 침노해 들어갑니까?
오늘 본문말씀에 20절에서 24절까지, 예수님이 권능을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않은 것에 대해 예수님께서 아주 안타까워하시면서 책망을 하십니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그런 정도의 권능을 행했다면 그들은 벌써 회개해서 구원을 받았으리라’
그 정도로 권능을 많이 행했는데도 회개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회개는 무엇을 회개하는 것입니까?
그리고 이 고라신이라든지 벳새다가 그렇게 많은 권능을 보면서도 왜 회개하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권능을 행하신다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이 육체를 입은 인간으로 사시는 동안에 그 마음이 하늘나라 안에 들어가 있다고 하는 하늘나라 티를 내시는 거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예수님의 기적을 대하면 옆에서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게 될 때에 ‘나도 저렇게 해결하지 못한 이 세상의 문제들을 해결 받아야 되겠다’라고 볼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 하나님이 들어와 계시고 천국이 들어와 있구나!’ 하고 나도 어떡하면 저렇게 천국이 들어오고 하나님이 안에 들어와 하나님아버지와 연합해서 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을 봐야 되는데, 그렇게 연합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를 보면서 더욱 더 이 세계 내에서 자기의 삶을 더 멋지게 꾸며가고 싶다는 경영자의 입장을 강화시켜 나갔다는 겁니다.
‘아! 내가 잘못 살았구나, 내가 내 인생을 경영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 안에 하나님이 들어오시고 천국이 들어와서 나타나는 것처럼 나도 이제는 내 의지가 표현되고 내 꿈이 표현될 것이 아니라, 하나님아버지가 들어오고 천국이 들어와서 나를 통해 표현되어야 되겠구나!’
이렇게 생각해야 될 것을 ‘내가 내 인생을 꾸려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능력이 꼭 필요하구나!’ 요 따위로 받아들이게 됐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회개는 무엇인가 하면, 앞에서 말씀드린 것으로 인용해서 말씀드리자면, 육체의 앞잡이노릇 하는 것을 중단하는 것입니다.
육체가 있음으로 이 세계 내에서 우리는 꿈과 계획을 갖고 뜻을 품고, 무엇을 하려고 애를 쓰게 됩니다.
그것이 육체에 식민지화 된 마음상태라는 걸 모르고 내가 움직이는 거라고 착각하고 내가 주체가 된 거라고 착각하는 노예라는 거예요.
노예로써 육체의 앞잡이노릇을 하고 있는 상태를 중단하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 육체를 중심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이 세계 내의 삶에 대해서 내 마음이 떠나는 것, 이것이 회개라는 거예요, 세계에 대해 죽는 것이.
그리고 하나님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 이게 바로 하나님 사랑이고, 세계 내에 머물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세상 사랑이요, 육체 사랑이요, 육체를 통해서 내 인생을 꽃피우고 싶어 하는 탐욕이고 죄라는 겁니다.
그러면 이 세상은 어떻게 하나?
이 세상의 삶은 하나님께 이슈가 됩니다.
내 육체를 통하여 이루어진 이 땅의 삶은 언제나 하나님과 주님과 성령님께서 의논하시면서 이끌어 가시는 이슈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신다고 그랬죠, 나는 세상을 사랑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게 아주 죄 중의 죄라는 거죠.
그래서 회개라는 것은 이 몸에 마음이 식민지화 되어 있으면서 이 몸의 앞잡이노릇을 하고 있는 상태를 중단해서 내 마음이 이제는 다가온 천국으로 들어가야 되는 거예요.
세상에 대해 죽어야 된다는 거죠.
이것이 이슈가 돼야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 참 장사가 안 되지요?
요즘 돈이 있는 사람들은 난리가 났어요.
우리나라 보세요! 조선업 세계 1등이죠, 자동차 미국 유럽에서 날리고 있죠, 가전제품 10년 전에 일본이 전 세계를 뒤덮었듯이 우리가 뒤덮고 있지요, IT산업은 종주국이 되었지요,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빈곤층이 더 많아지고 전세값은 우리 이명박 장로님께서 대통령 하시는 동안에 53%가 증가되었습니다, 월세는 33%가 늘었습니다.
그 많은 돈, 5천 년 역사 속에 무역흑자가 최대이고 GNP 가 최대고 경제발전이 최대한인데, 그 많은 돈은 다 어디 갔고, 주변을 보면 다들 전전긍긍하고 있어요.
그리고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게 옛날에는 사업을 위해서 집을 장만하기 위해서 대출을 했었는데 요즘은 생계형 대출이 많다고 합니다.
생계형 대출이라는 것은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빌린다는 거예요, 사업하기 위해 투자하기 위해 돈을 빌리는 게 아니라… 오천년 역사 속에서 제일 돈이 많을 때에.
그 돈 다 어디로 간 겁니까?
그리고 서민들은 왜 그렇게 힘들어 하는 겁니까?
자 이때,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처럼 있는 자들에게서 돈을 강탈해 빼앗아야 됩니까?
아니죠, 이슈를 바꿔야 돼요.
있는 사람들이 세금을 좀 더 많이 내고 좀 덜 가지면서 없는 사람들과 나누어서 같이 살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나눠 쓰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쟁점으로 이슈로 삼는다면 그건 신앙인이 아니죠.
어떤 때는 그런 생각까지 들기도 해요.
하도 이 나라가 흥청망청 잘 먹고 잘사니까 아예 하나님께서 돈을 몇 사람에게 퍼부어 주시는 겁니다.
쓰레기 매각장을 만들어서 그 쓰레기 매각장에 돈을 버리시는 거예요.
왜냐? 돈이라는 것은 있을 때보다 없을 때 영적으로 훨씬 유리하니까.
내가 이슈를 이 세상의 문제로부터 하늘나라로 바꾸기가 훨씬 더 쉬우니까.
돈이 있는 사람들은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게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만큼 어려운 것처럼 돈이라는 이슈에서 떠나기가 힘들어요.
없어서 버둥거리며 근심하다가도 아예 없으면 훨씬 더 돈이라는 이슈로부터 떠나기 쉽지 않겠습니까?
돈은 썩게 만드는 겁니다.
몇 사람 정해가지고 거기에다가 난지도처럼 돈을 버리시는 거라고 저는 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 사업하면서 수 십 조를 갖다가 퍼부었습니다.
그 돈을 서민들을 위해 썼으면 모든 서민이 다 잘 먹고 잘살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나는 하나님이 걷어 가셔서 강바닥에 버리신 거라고 보는 겁니다.
너무 잘 먹고 잘사는 거예요,
돈이 없어서 생계까지도 근심이 되는 상황까지 갈 필요도 있어요.
천국으로 이슈를 바꾸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몇 사람이 돈 많이 갖고 가는 것, 부러워 할 것 없습니다.
그들을 난지도로 생각하셔서 돈을 주시는 걸 수도 있다는 겁니다.
돈을 다 거기에 모아서 버리시는 거죠, 너무 흥청망청 잘 먹고 잘사니까.
긴장하고 마음을 조이라고…
감사하지요.
그러니까 재벌들이 욕심스럽게, 어떤 재벌회사들은 중고차 시장까지 다 끼어들어 왔답니다.
그것 좀 서민들이 하게 내버려 두면 안 돼요? 거기에 왜 끼어들어요?
동네 슈퍼까지 다 잡아먹어 가요.
그거 놔두자고요, 거기가 난지도입니다, 난지도.
돈이라는 사람 썩게 만드는 쓰레기, 온갖 똥파리 다 생기는 쓰레기를 부으시는 겁니다.
그거 부러워할 것 하나도 없고, 하나님 사랑 감사하면서 이슈를 바꿔 가자고요.
죽으면 죽읍시다, 하나님께서 초대교인들도 주님도 사도들도 다 죽게 하셨어요.
자연사 한 게 아니라 다 핍박 받아 죽게 하셨어요.
그 이유가 있는 거예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은 자신이 있으신 겁니다, 천국을 갖고 계시고 알고 계시는 하나님 입장에서는 이 땅에서 핍박 받아서 죽는 것, 하나도 아쉬울 것이 없고 우리를 향해서 미안할 것도 없고 거리끼실 것이 없어요, 천국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것인데 뭘?
그러니까 가난하게 허락하시면 가난하게 살고 재벌들이 돈을 다 빨아들여서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겁니다, 그거 원망할 것도 없어요.
그리고 오히려 이슈를 바꿔서 천국을 가진 자로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자리에까지 가자 이겁니다.
이게 바로 돈 없어서 쪼들릴 때, 공산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로 빠져나가는 세상 사람들과 다른 길 아닙니까?
돈이 문제인 세상에서 이슈를 바꾸자 이거예요.
‘천국을 갖자! 누가 더 천국을 많이 깊이 느끼나? 돈이 이슈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누가 더 감사하고 기뻐하냐?’ 이걸 이슈로 삼자는 겁니다.
매일 매일 삶에서 이슈 바꾸기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삶을 신앙인으로 사는 게 아니죠.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주님의 십자가를 마음이 기억하며 이 세계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핫이슈, 그것들을 다 ‘천국을 갖자, 천국으로 들어가자, 천국을 소유하고 느끼자!’라는 이슈로 바꾸며 살아갈 수 있게 하여 주시고, 우리 육체의 이 삶의 현실은 하나님께 이슈가 됨을 알고 하나님의 판단과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사랑의 인도하심에 전적으로 맡겨서 가난하건 부하건 천국 가진 자로 감사 기뻐하며, 갖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늘 중보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