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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과 낭만이 있는 섬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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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체험 스크랩 [Healing in Life]니 탓 내 탓
강쇄 추천 0 조회 76 13.01.29 08:4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Healing in Life]니 탓 내 탓
 
 작년 한 해 열네 살 사내 아이 때문에 가족이 다들 힘들었다.  다시 그 한 해를 살라고 하면 목뼈가 부러지도록 도리질을 하고 싶을 정도로 어려운 한 해였다.
 초등학교 마지막 겨울 방학부터 컴퓨터 게임에 맛을 들인 아이는 그 방학을 온통 엄마와의 전쟁으로 보냈었다. 게임을 규제하는 엄마와 그 규제를 교묘하게 피해가며 제 욕심을 채우는 아이의 갈등으로 집안은 늘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내아이들은 대개 그렇게 크는 것이라는 관대함으로 아빠는 아이의 엇나감을 묵인했다. 거짓말의 횟수가 늘어나고 아빠의 지갑에서 돈이 없어지고 엄마에게 욕을 심하게 하고 급기야 학교를 빠지는 일이 생길 때 즈음, 생각보다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곧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는 부모가 상상하는 일탈의 범위와 그 범위에 이르는 시간을 모두 비웃으며 가히 16배 속으로 돌리는 영화처럼 그렇게 빨리, 그리고 아주 멀리 붕괴되며 달아나고 있었다. 교문 앞까지 데려다 준 아이는 뒷문으로 빠져나갔고, 이미 엄마의 힘으로는 제압이 불가능한 아이를 잡으러 아빠는 출근 대신 동네 피씨방을 돌아다녀야 했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중독 캠프부터 국토 대장정, 드럼 배우기, 개인 상담 등 남들이 권하는 수많은 것들을 체험하게 했으나 아이는 급기야 가출까지 할 정도로 자신의 방황을 멈추지 않았다.
 
 
                       

        JTBC 김수현 드라마 '무자식 상팔자' 중에서

  
 
 
 아내의 한숨이 깊어지고 모범생이었던 큰 딸이 동생 때문에 신경증적인 스트레스 반응을 보일 때, 나는 비로소 이 사건을 중(重)하게 받아들였다. 무엇보다도 집안에 흐르는 이상한 기류가 나를 “번쩍” 정신 들게 했다. 처음 아이가 속을 썩이기 시작했을 때, 부부의 시선은 온전히 아이에게만 향해있었다. 예민함과 둔감함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두 사람은 모두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부부의 눈은 서로를 향해 있었다. 그것도 애정이 아닌 원망의 눈빛으로, 당당하게 서로를 응시하기 보다는 곁눈질과 눈 흘김으로 그렇게 서로를 보고 있었다.  서로는 서로의 속마음을 다 읽고 있었다. 남편은 아내에게 이렇게 속말을 하고 있었다. “ 밖에서 일만 하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아이까지 내가 이렇게 신경을 써야 하는 거야?  도대체 아이를 어떻게 키웠기에 애가 이 모양이 되고 있는 거냐고?” 발화되지 못한 채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 아내의 언어는 이런 것이었다. “사내아이는 아빠가 키워야 잘 큰다고 하는데 주말이면 자기 혼자 산으로, 강으로 돌아다니고 그러니 아이가 저렇게 엇나가는 거 아냐? 아이 데리고 캠핑도 가고 아빠가 계속 놀아주면 얼마나 좋아. 그저 뒷짐만 지고 서 있다가 아이가 잘되면 자기 탓, 못되면 마누라 탓이니 너무 한 것 아니냐고”
 
 살아가면서 운명의 이름으로 다가오는 첫 번째 화살은 어쩔 수 없이 맞더라도, 두 번째 화살부터는 맞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 지혜라고 생각해왔다. 예상치 못한 아이의 성장통이 첫 번째 화살이라면 그 화살만 맞으면 그만이다. 내가 아내에게 두 번째 화살을 쏘고, 아내가 나에게 세 번째 화살을 쏘며, 자신을 향해 책망과 자책의 네 번째, 다섯 번째 화살을 쏘는 짓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를 부부는 잘 알고 있었다. 화살 이야기를 한 그날 밤, 부부는 진지하게 합의했다. 오로지 아이에게만 관심을 집중하자고. 아이로 인해 그 어떤 나쁜 바이러스도 집안으로 가지고 오지 말자고. 작은 아이 때문에 큰 아이를 힘들게 하지 말자고. 무엇보다도 부부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바보짓은 절대 하지 말자고 우리는 약속했던 것이다. 그날 이후 아이는 아이의 방식대로 자신의 삶을 살았고, 부모는 아이를 지켜보면서도 집안의 중심을 지켜나갔다.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면 아이가 마음의 아픔을 겪은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가족 중 어느 한 사람도 “누구 때문에 내가 이만큼 희생하고 포기한 시간을 보냈어” 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부부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일을 함께 겪는다. 좋은 일도 함께 겪고 힘든 일도 함께 치른다. 특히 성장하는 아이를 키우는 것은 세상의 그 어떤 사업보다 어렵고 고난스러우며 예측하기 힘든 거대한 과업이다. 품 안의 자식이 세상을 향해 발을 딛는 순간, 아이는 ‘가롯 유다’보다 더 가혹하게 부모를 배신할 수 있고, ‘식스 센스’보다 더 충격적으로 반전을 반복할 수 있다. 이때 믿을 수 있는 것은 부부 밖에 없다. 둘 사이가 좋든, 그렇지 않든, 두 사람이 만든 합작품이 딴 짓을 할 때는 일단 남편과 아내는 ‘ 영희 철수 크로스!’ 를 외쳐야 한다. 그리고 아이를 괴롭히는 나쁜 시간과 지치지 않고 용감하게 싸워야한다.  니탓, 내 탓은 그 싸움에 승리하고 나서 총정리 시간에 해도 늦지 않다. 우선은 화살의 과녁을 시련이라는 놈에게 맞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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