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14:1-15,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22.4.27, 박홍섭 목사
여호수아는 이제 제사장 엘르아살과 각 지파의 족장들과 함께 요단강 서편에서 이스라엘이 점령한 땅을 분배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서 받은 기업 곧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족장들이 분배한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각 지파에게 가나안 땅을 분배할 때 어떻게 분배합니까? 제비뽑아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들의 기업을 제비 뽑아 아홉 지파와 반 지파에게 주었으니” (2절) 하나님은 왜 제비를 뽑아서 땅을 분배하게 했을까요?
아시다시피 땅을 분배하는 것은 매우 민감하고 어려운 부분입니다. 어떤 면에서 땅의 정복보다 분배가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비옥한 정도나 정복의 난이도가 각각 다릅니다. 주관적으로는 남의 떡이 더 크게 보일 수 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땅 분배 과정과 분배 후에 불평과 원망과 시비와 다툼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땅 분배에 어떤 다툼이나 불평이 없도록 제비를 뽑아 분배하라고 하십니다.
한편 제비뽑기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과 섭리를 인정하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성경이 아직 완성되기 전에 하나님은 사울 왕을 뽑을 때, 아이 성에서 아간의 범죄를 잡아낼 때, 폭풍의 원인인 요나의 불순종을 발각할 때도 제비를 뽑아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제비뽑기를 통해 약속의 땅을 분배한 것은 이 분배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과 섭리가 반영되어 있음을 알고 기쁨과 감사로 주어진 땅에서 최선을 다해 믿음으로 살라는 의미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삶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와 인도를 인정한다면 불평과 원망이 아니라 감사와 기쁨으로 주어진 삶을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한다는 말은 운명론과 다릅니다. 운명론은 자신의 현실에 대해 비관적이고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지만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인정함은 오히려 주어진 현실에 불평과 원망을 거두고 최선을 다해 믿음으로 살게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잘 인정하는 저와 여러분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제비를 뽑아 각 지파의 땅을 기업으로 분배하기 전에 6절부터 유다 지파의 갈렙이 등장합니다. 갈렙은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와 45년 전 가데스 바네아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가나안을 정탐했던 일을 상기시킵니다. 그때 모세를 통해서 발로 밟는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들었고 지금도 그것을 기억하고 있으니 그때 그 산지를 달라고 구합니다. 그냥 산지가 아니라,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라고 합니다. 이 말은 그가 지금까지 45년 전에 들었던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살아왔다는 뜻입니다.
9절에는 모세의 약속을 그가 기억했다고 하고, 10절에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12절에는 지금까지 그 믿음으로 살아왔으니 자신에게 그 산지를 주기만 하면 그 지역의 아낙 자손들이 아무리 강대하여도 ‘여호와가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낼 것이라고 합니다. 갈렙의 이 말은 단순한 용기가 아니라 믿음입니다. 그가 요구한 헤브론 산지는 아브라함이 사라의 무덤으로 샀던 막벨라 굴이 있었던 곳이요 야곱이 묻힌 곳으로 가나안 중에도 가장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땅입니다. 견고한 성읍 중 하나였고, 거기에는 이스라엘이 그토록 두려워하던 아낙 자손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합니다.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10-12)
왜 제비를 뽑기 전에 갈렙의 이런 태도를 먼저 언급할까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시는 자세가 이런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갈렙이 요구하는 헤브론은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은 원하지 않는 지역입니다. 누가 장대한 아낙 자손의 거인이 사는 정복하기 힘든 산지를 자신들의 기업으로 원하겠습니까? 이 산지는 요구할 대상이라기보다는 기피하고 싶은 대상입니다. 그러므로 갈렙이 이 산지를 내게 달라는 요구는 일종의 희생이고 모범입니다. 어떻게 나이 많은 갈렙이 모두 싫어하는 헤브론 산지를 달라고 할 수 있었을까요? 그가 붙든 하나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민 14:24을 보십시오.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지금까지 갈렙은 45년 전에 하나님이 주신 말씀 붙들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때가 되어 하나님이 그 약속을 성취하려고 할 때 믿음으로 자원하고 나서 이 산지를 내게 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가 요구한 땅은 풍요롭고 아름다운 땅이 아니라 산지였습니다. 거인 아낙 자손이 버티고 있는 정복하기 힘든 땅입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 배워온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말씀을 따라 그 산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런 갈렙을 축북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으로 삼게 합니다(13). 마침내 갈렙은 아낙 사람 가운데 가장 큰 사람이고 전쟁의 영웅이었던 아르바를 물리치고 헤브론을 점령하여 그 땅을 기업으로 차지합니다(14-15).
갈렙이 요구한 헤브론 산지는 개인의 자격이 아닙니다. 6절을 보면 유다 지파의 대표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15장에 보면 유다 지파가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베다니, 갈보리 감람원 등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산실이 되는 중요한 지역들을 다 분배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땅을 주고 자손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핵심은 유다 지파를 통해서 나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땅을 지금 유다 지파의 갈렙이 가장 먼저 믿음으로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갈렙이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요구한 본문의 내용은 45년 동안 간직해온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의 요구로 단순히 눈에 보이는 부동산에 대한 요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업으로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예표하는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업으로 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생명의 분깃으로 누리는 일은 그렇게 쉽고 빠르게 되지 않습니다. 힘들다고 모두가 눈치 보고 있을 때 믿음으로 자원하여 힘든 길을 선택한 갈렙에게 하나님은 헤브론의 산지를 기업으로 주시고 약속대로 승리를 주셨습니다. 갈렙은 모두가 편한 길만 가려고 할 때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하면서 좁은 길을 갔습니다. 그는 지난 45년 동안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나머지 정탐꾼들은 약속을 붙들지 않고 그냥 광야만 돌다가 죽었지만 갈렙은 말씀을 붙들고 45년을 견디고 그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소망을 더욱 키워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되어 이 산지를 내게 달라는 믿음의 절정을 모든 지파들 앞에서 보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건강 주시고 살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점점 사회가 어려워지고, 바이러스와 여러 사회적 재앙이 우리 주변에 늘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오래 살고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리는 것이 예수 믿는 우리의 소망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산지는 하나님을 기업으로 누리는 일상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그 소망의 약속을 붙들고 믿음으로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