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책읽기21/이름을 훔친 소년/이꽃님/주니어김영사/2015
나는 두려웠다. 이제 전단이 뿌려졌으니 순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연루된 사람들을 찾아다닐 게 뻔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이 끌려가고, 울부짖고, 되돌아오지 못하는 일들이 다시 반복될 터엿다. 그깟 이름 때문에, 뭐라고 부르든 아무 상관도 없는 그깟 이름 때문에.
‘아니, 이름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거야.’(153)
“이름은 너 자신이오, 그 자체다. 그러니 그걸 잃을 순 없지 않겠니.”
“그게 무슨…….”
“무서운 건 길들여지는 게지. 가만히 있도록 길들여지고, 폭력에 길들여지고, 삶을 잃는 것에 길들여지는 거지.”(156~157)
“그럼 넌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일본 놈들이 시키는 대로 이름을 팔라고 하면 팔고, 일본을 위해 총알받이가 되라면 되고, 때리면 때리는 대로, 죽이면 죽이는 대로 당하면서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어? 그래, 그렇게 살 수도 있겠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변하든, 내가 어떤 삶을 살든, 눈 감고 모른 척 살 수도 있겠지. 그렇게 산다고 한들, 세상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데, 그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169)
“이미 태어난 땅이 길들여진 곳이면요? 태어나 눈을 떠 보니 식민지 조선이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부모에게 버려져 있었어요. 저는 그렇게 자랐어요. 가족도, 장래도, 아무것도 없이 그렇게 자랐다고요.”
세상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빼앗기만 하는 세상에서 견디기 위해 훔치라고, 맞설 수 없는 폭력에 도망치는 법을, 숨어 있는 법을, 견디는 법을 가르쳤다.(173)
그렇다. 누구나 잊히는 것을 두려워한다. 짧든 길든 한 생을 살았으니 누군가는 기억해 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잊지 않기 위해 이름을 기억한다. 이름은 저마다의 생이자. 그 사람의 전부를 표현하는 일이니까.(199)
---최용은 청계천 거지촌에 버려졌다. 언제, 어떻게 버려졌는지 모른다. 꿈속에서 누군가가 이름을 잊지 말라하고 멀어져 가는 모습만 재현될 뿐이다. 여관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사는 최용이 어느 날 가방을 소매치기 한다. 가방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긴박감이 깊은 몰입을 준다.
기영이형과 박씨 아저씨, 누렁이, 딱지, 주학의 인물이 일제강점기의 처세를 보여준다. 작가는 당시의 청소년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며 무엇을 고민했는지에서 이 작품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자기가 원하지 않던, 태어나 보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세상에서 그들은 어떤 삶을 바랐던가를 조금이나마 살펴볼 수 있는 동화다.
강제적으로 창씨개명을 해야만 하던 시대적 아픔을 인물들은 어떤 모습으로 받아들이고 저항했는지를 보여준다. 이름이 갖는 의미를 되새기며 주인공 최용의 성장과 일제강점기의 시대적 사명이 어떻게 결합되는지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