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가까워져서야 집에 돌아와,
미리 챙겨둔 짐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나니 어느새 한시.
잠깐이라도 눈을 붙여야 했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어린 시절 소풍 전날의 설렘 같은 기분일까.
아니면 다소 무리하게 잡은 일정에 대한 부담 때문일까,
함께하는 일행들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 때문이었을까.
뒤척이다 보니 어느새 공항으로 나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내팔 현지의 날씨를 확인하니 며칠간은 맑음.
하지만 고산지대로 올라가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들 부지런하기도 하지.
정시에 도착했는데도 일행은 긴 대기줄 저 앞에 서 있다.
공항은 한산한데, 타이항공 테이블만 인산인해다.
"사발통"님이 나타나 순간 어리둥절.
도깨비가 따로 없네.
엉뚱하고, 부산하고.
여하튼 반가웠수.
탑승권을 받고 검색 구역에 들어섰는데,
메스컴에서 말하던 것과는 달리 절차가 꽤 수월하게 진행된다.
다만 자동 출국심사대에서 조금 지체되는데 유인 출국심사대는 대부분 운영하지 않고 있으니…
이럴 거면 자동심사대를 더 늘려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일행의 눈을 피해 쉴 곳을 찾아 이동했다.
두시간 정도 잠을 잘 수 있는 곳으로.
다행히 배정받은 탑승구 근처가 한산해서,
큰 화분이 놓인 전망 좋은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잠을 못자 비몽사몽한 상태로 눈을 붙이려는 참에 오 대표한테서 전화가 온다.
밥 먹으러 오라고…
이미 먹고 왔다고 하고 취침 모드.
어떻든 이동 중에 체력을 보충해 둬야
네팔 도착 즉시 시작될 트레킹을 버틸 수 있을 일이다.
주변의 소란스러움에 잠이 깼다.
한 시간도 채 못 잔 것 같다.
근처 탑승구에서 승객들이 탑승하는 모양이다.
아직 탑승 시간까지 한 시간 남짓.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 모처로 가서 필수 성분을 보충한 뒤,
옆 면세점을 둘러보다가 뜨악하고 말았다.
달러로 표시된 가격은 그대로인데, 환율을 따져보니 담배값이 비면세와 별 차이가 없다.
뭐, 다른 상품들도 다 마찬가지겠지만.
어느 분이 사단을 내서 환율이 급등한 덕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제길..
우리나라 공항 면세점은 왜 가격을 달러로 표기하는 걸까?
요즈음 면세점 사업자들, 거의 환치기 수준 아닌가 싶다.
6,000원 짜리 담배가 면세점에서 5,400원이면 … 안산다!!
우씨… 성질나는 걸 핑계로 담배 두 대를 연이어 태우며 욕을 실컷 퍼부어줬다.
"평생 감방에서 살아라… 같이."
원래 욕은 질퍽하게 내질러야 제맛인데, 이건 좀 아쉽다.
일행들의 얼굴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하는 걸 보니, 탑승 시간이 가까워진 모양이다.
꽤 큰 비행기인데도 만석이다.
기내식을 먹고 잠깐 눈을 붙였더니, 어느새 비행기는 방콕 공항에 내려앉는다.
일행을 따라 한참을 휘적휘적 걸어 환승 게이트로 향한다.
“유가수로"신화를 모티브로 한 화려한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신들이 불사의 영약, 암리타를 얻기 위해 우유 바다를 휘젓는 과정에서 줄다리기를 벌인다.
만다라 산을 교반봉으로 삼고, 바수키 용을 밧줄 삼아, 신과 악마가 각각 양쪽에서 잡아당기며 바다를 휘젓는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보물과 존재들이 나오고, 그중 암리타도 등장하여 결국 신들이 이를 차지하게 된다는 이야기.
이 신화는 선과 악의 대립, 균형, 협력, 그리고 희생을 상징하는 중요한 힌두교 신화로, 여러 면에서 깊은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꼬리 부분쪽이 불리한거 아닌가. 시작부터 불공정게임이네.
어쨌든 힌두교와 불교가 융합된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 하다.
다시 일행의 눈치를 살피며 슬쩍 한 구석을 차지하고 침잠.
인솔이 아니니 이런 호사도 누릴 수 있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다시 카트만두행 비행기를 타고,
기내식을 먹고 한잠 자고 나니, 굉음과 함께 비행기가 착륙한다.
복잡하던 입국 심사대가 많이 정비되어 깔끔해지고, 수속도 훨씬 빨라졌다.
공항 시설도 꽤 확장되어, 출발 통로와 도착 통로가 나뉘어 있었다.
도착 통로 끝에서 기다리고 있던 현지 여행사 사장과 이번 트래킹 가이드인 쌍계가 넉넉한 미소를 지으며,
마리골드꽃으로 만든 꽤 튼실한 말라를 걸어준다.
네팔에서 환영의 의미로 걸어주는 꽃목걸이는 보통 '말라'라고 불린다.
말라는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데, 환영과 존경의 표시로
귀한 손님이나 여행객, 행사에 초대된 사람에게 꽃목걸이를 걸어준다.
하와이에서 레이를 걸어 주는 것과 비슷하다.
또한, 행운과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도 지니고 있어 결혼식이나 종교 행사에서
신에게 바치거나 중요한 사람에게 걸어주는 경우가 많다.
네팔은 힌두교와 불교 문화가 강한 나라로, 꽃 자체가 신성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금잔화(마리골드)는 신에게 바치는 꽃으로, 순수한 마음과 좋은 기운을 상징한다.
따라서 네팔에서 받는 마리골드 말라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환영, 존경, 축복, 행운의 의미를 담고 있는 소중한 선물이다.
두툼한 말리에서 풍기는 마리골드향을 느끼며 밖으로 나오니, 네팔 고유의 향취가 온몸을 덮쳐온다.
호객꾼들의 소란스러움과 차량, 오토바이가 뒤섞여 내는 경적 소리, 그리고 변함없는 먼지.
그리워하던 이 곳에 다시 왔다는 것을 실감한다.
기존 공항에 있던 주차장 아래, 널찍한 새로운 주차장을 만들어 놓았는데,
복잡한 건 예전과 별 다를 바 없는 것이 신기하다.
대형버스에 짐을 싣고 어둠이 깊은 복잡한 도심을 지나 타멜로 이동한다.
공항을 나서면 보이는 바티마트 강변에 파슈파티나트에서 흰 연기 서너 기둥이 검은 하늘을 향해 오르고 있다.
"옴 마니 반메 흠."
늦은 시간이라 도심은 한산하고, 덕분에 오래지 않아 타멜 외곽에 있는 타멜파크 호텔에 도착한다.
길고 긴 이동을 마치고, 이제야 잠시 쉬어갈 시간이 온다.
마실정회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