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미르 고원으로 향하는 길은 처음부터 범상치 않았다.
카라코람 하이웨이의 굴곡진 포장도로는 세상의 지붕을 향해 끝없이 고도를 높여갔고,
차창 밖으로는 붉은 흙먼지와 메마른 자갈밭이 지평선까지 이어졌다.
숨이 조금씩 가빠오고 귀가 먹먹해질 무렵, 대지의 끝에서 무언가가 솟아올랐다.
처음에는 대지 위로 피어오른 거대한 뭉게구름인가 했다.
그러나 그것은 멈추어 있는 구름, 아니 지평선을 압도하며 솟구친 순백의 거대한 얼음 벽이었다.
하늘과 땅 사이, 그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자리에 무즈타그 아타(Muztagh Ata)가 서 있었다.
'얼음 산의 아버지.' 위구르어로 그렇게 불리는 이 산은 해발 7,546미터, 파미르의 영산(靈山)이다.
그러나 숫자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어떤 경이로움은 언어 이전의 자리에 있어서, 보는 순간 가슴이 먼저 알아채고 뒤늦게 이성이 따라온다.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섰을 때,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거대한 거인은 수천만 년 전 인도 대륙과 아시아 대륙이 격렬하게 충돌하며 땅을 밀어 올린,
지구의 치열한 진통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산의 꼭대기 부분이 양옆으로 천천히 벌어지는 '지각 확장' 현상 때문에
산은 뾰족하기보다 거대한 흰색 돔처럼 부드럽고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정상부를 뒤덮은 만년설은 수천 년의 세월이 압축된 채 눈이 시리도록 하얗게 빛나고 있었고,
능선 사이를 흐르는 빙하의 줄기는 마치 우리가 살아오며 마음에 새긴 깊은 연륜의 주름살처럼
오랜 시간의 권위를 고요히 품고 있었다.
그 거대한 침묵 속에서 문득 발밑이 눈에 들어왔다.
황량한 자갈밭 어딘가, 땅굴 입구 옆에 마못 두 마리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통통한 몸집에 짧은 다리로, 빙하의 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이 작은 생명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하게 볕을 쬐고 있었다.
거대한 것 곁에서 작은 것이 조용히 살아가는 풍경.
그 모습을 보며 어쩌면 삶이란 거대한 운명의 무게를 묵묵히 견뎌내는 거창한 일이 아니라,
그 곁에서 나만의 작은 볕을 온전히 누리는 소박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못의 의연한 몸짓을 뒤로하고, 다시 길을 따라 한참을 이동했다.
거대한 설산의 자락을 따라 아득한 거리감을 느끼며 한참을 달렸을까.
시야가 탁 트이며 이번에는 저 멀리 완전히 다른 기상의 거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해발 7,649미터의 공구루산(꽁구르산)이었다.
앞서 보았던 무즈타그 아타의 둥글고 넉넉한 부드러움을 거쳐 마주한 공구루의 자태는 서늘할 정도로 날카로웠다.
대륙 충돌의 격렬함을 온몸으로 웅변하듯 칼날처럼 가파른 암벽들이 만년설 아래로 우뚝 솟아 있었고,
그 산자락 아래로 푸른 거울 같은 카라쿨 호수가 넓게 주단을 깔고 있었다.
이 차가운 얼음 산과 호수의 품에는 키르기스 유목민들이 대대로 전해온 애절한 전설이 흐른다.
아주 먼 옛날, 이 고원에는 '무즈타그'라는 늠름한 청년과
인근 공구루산에 사는 '아타'라는 아름다운 처녀가 깊은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순수한 사랑을 시기한 얼음의 신이 잔혹한 폭풍우를 내려 두 사람을 영원히 갈라놓았다.
슬픔을 이기지 못한 청년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거대한 얼음 산(무즈타그 아타)이 되었고,
연인을 잃은 아타의 눈물은 산자락 아래 흘러내려 푸르고 깊은 '카라쿨 호수'가 되었다.
지금도 무즈타그 아타의 정상부를 늘 무겁게 감싸고 있는 어두운 모자구름은
연인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맴도는 아타의 영혼이며,
서늘한 기상으로 호수를 내려다보는 공구루산은 그들의 슬픈 운명을 지켜보는 증인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낭만적인 전설 뒤로 시선을 돌리면, 이 척박한 고원에서 삶을 이어온 인간의 엄숙한 현실이 교차한다.
오랜 세월 이곳의 주인인 키르기스족들은 희박한 공기 속에서 야크를 치며 치열한 생존의 터전을 일구어왔다.
최근 이들의 삶은 중국 정부의 대대적인 '빈곤 퇴치' 및 '유목민 정착 정책'에 따라 큰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낡은 흙집을 떠나 현대식 정착촌으로 이주하면서 삶은 안전하고 편리해졌지만,
오랜 세월 자유롭게 고원을 누비던 전통의 표정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제 호숫가의 유르트들은 유목민의 정체성을 지키며 관광객을 맞이하는 새로운 생존의 공간이 되었다.
호숫가를 따라 길게 뻗은 현대적인 나무 데크길을 천천히 걸었다.
편리하게 잘 닦인 데크길 덕분에 여행자인 나는 안전하게 이 비경을 감상하고 있지만,
동시에 이 구조물이 대자연과 유목민들의 옛 삶의 경계를 단호하게 갈라놓은 것 같아 묘한 감정이 휩싸였다.
옛 실크로드의 상인들과 승려들,
어쩌면 서역으로 향하던 《서유기》 속 삼장법사 일행도
이 거대하고 하얀 나침반들을 보며 길을 찾고 경외감을 느꼈을 것이다.
태고의 설산들은 그대로인데,
그 아래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삶은 거대한 현대화의 파도 아래 그 어떤 지질학적 변화보다 빠르게 변해간다.
카메라를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렌즈 속에 담기지 않는 신화와 현실이 파미르에 있었다.
무즈타그 아타의 넉넉함과 공구루산이 내뿜는 묵직한 고요 앞에서
내가 가진 작은 고민들은 고원의 바람 속으로 가볍게 흩어졌다.
산이 특별히 위로의 말을 건넨 것은 아니었다. 그저 거기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으로 충분했다.
고원의 햇빛이 기울며 만년설 위에 옅은 장밋빛을 얹기 시작했다.
그 빛깔은 잠깐이었지만 오래 기억될 것 같았다.
다시 차에 올라 하이웨이를 따라 내려가면서도 백미러 속의 설산들은 한참 동안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비록 100년도 채 되지 않는 유한한 삶을 살아가지만,
매 순간을 산보다 뜨겁게 사랑하고 살아내야 하는 우리네 인생에 대하여,
파미르의 거인들은 떠나는 자의 등 뒤에서 말없이 고요한 응원을 건네고 있었다.
마실정회동
첫댓글 멋진 感想입니다.뭉클하네요.파미르의 거인을 만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