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토론]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깨달음과 수행] <21> 이중표
“존재의 무상성 인식해야 새로운 삶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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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자연과 우주와 나는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서로 서로 인연이 되어 함께 존재한다. 그 인연이 흩어지면 죽음이 온다. 사진은 티베트에서 죽은 사람을 화장하는 의식의 한장면. |
깨달음은 매우 신비한 느낌을 준다. 깨달은 사람은 많은 신통력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와는 크게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은 무엇이고, 무엇을 깨닫는다는 것이며, 깨달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필자는 고등학생 시절에 깨달음을 찾아 출가한 적이 있다. 그 절은 선방이라서 매일 앉아 좌선만 했다. 화두만 깨치면 성불한다고 해서 화두를 들고 앉아만 있었다. 깨쳐서 부처가 되어야겠다는 환상을 가지고 부처가 되기 위해서 였다.
불교학을 전공하게 되어 불경을 읽어가면서 그 환상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근본경전 속에서 나는 환상이나 신화 속의 신비한 부처님이 아닌 역사 속의 인간 부처님을 만났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환상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모호하게 이야기하지도 않았다. 부처님은 무엇을 깨달았는가?
“나는 정각을 얻기 전에 홀로 선정 속에서 이와 같이 사유했다. 어떤 법이 있기 때문에 노사(老死)가 있는 것일까? 생(生)이 있기 때문에 노사(老死)가 있다. … 이와 같이 유(有), 취(取), 애(愛), 수(受), 촉(觸), 육입처(六入處), 명색(名色)이 있다. …
나는 그때 이렇게 생각했다. 어떤 법이 없으면 노사(老死)가 없고, 어떤 법이 사라지면 노사(老死)가 사라질까? 곧 정사유(正思惟)하니 생(生)이 없으면 노사(老死)가 없고, 생(生)이 사라지면 노사(老死)가 사라진다는 여실한 인식이 생겼다. …
나는 다시 이렇게 생각했다. 어떤 법이 없으면 행(行)이 없고, 어떤 법이 사라지면 행(行)이 사라질까? … 무명(無明)이 사라지면 행(行)이 사라지고, 행(行)이 사라지면 식(識)이 사라지고.… 생(生)이 사리지면 노사우비(老死憂悲) 고뇌(苦惱)가 사라진다. 이와 같이 큰 괴로움 덩어리가 사라진다.
나는 그때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옛 선인(仙人)이 걸어갔던 길과 발자취를 얻었다. 옛 선인은 이 발자취를 따라 갔다. 나는 이제 그 길을 따라가리라.…그 길은 팔정도(八聖道)로서 … 나는 그 길을 따라 노병사(老病死)와 노병사(老病死)의 집(集)과 멸(滅)과 멸도적(滅道跡)을 보았고,… 행(行)과 행(行)의 집(集)과 멸(滅)과 멸도적(滅道跡)을 보았으며, 나는 이 법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 정각(正覺)을 이루었다.” 〈잡아함경〉
부처님은 이 경전에서 자신이 깨달음을 얻은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부처님은 생로병사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출가했으며, 선정 속에서 사유를 통해 12연기와 사성제(四聖諦)를 그 해답으로 깨달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부처님이 이야기하는 생로병사의 문제란 무엇일까? 12연기를 깨달으면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는 말인가? 중생의 눈으로 볼 때 석가모니 부처님은 80세에 늙은 몸으로 돌아가셨다. 그렇다면 우리와 다름없이 태어나서 늙어 죽은 부처님이 해결했다고 하는 생사의 문제는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모두 자신을 태어나서 죽어 가는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과연 태어나서 죽어 가는 존재인가? 우리가 태어나서 죽는 존재라면 태어나는 ‘나’와 죽는 ‘나’가 있어야 하며, 태어나는 ‘나’와 죽는 ‘나’는 동일한 존재이어야 한다.
태어나는 ‘나’는 존재하는가? 태어나는 ‘나’가 존재한다면 그 ‘나’는 태어나기 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나’다. 즉 태어나기 전에 존재하고 있는 ‘나’가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미 존재하는 것이 태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죽는 ‘나’도 마찬가지다.
이와 같이 내가 태어나서 죽는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라는 존재가 태어나서 죽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12연기에서 生은 有가 있기 때문에 있다고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즉 ‘나의 존재’(有)가 있기 때문에 태어나서 죽는 것(生死)이 문제된다는 것이다.
만약에 태어나서 죽는 ‘나’의 존재가 실제로 자기동일성을 가지고 한평생을 살다가 죽는다면 우리는 결코 생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런데 부처님은 그러한 ‘나’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생사의 문제는 우리의 참된 모습에 무지하기 때문에 나타난, 즉 무명(無明)에서 비롯된 착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사실의 깨달음을 통해서 부처님은 생사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태어나서 죽어 가는 존재라고 알고 있는 우리의 참모습은 어떤 것인가?
"이법(二法)이 있다.… 안(眼)과 색(色)이 이법(二法)이다.… 안(眼)과 색(色)을 인연으로 안식(眼識)이 생기며, 안(眼), 색(色), 안식(眼識) 셋이 화합한 것이 촉(觸)이다. 촉(觸)에서 수(受), 상(想), 사(思)가 함께 생긴다. 이것들(眼識, 受, 想, 思)이 사무색음(四無色陰)이다. 안(眼)과 색(色) 그리고 이들 법(法: 四無色陰)을 사람이라고 하면서, 이들 법에서 사람이란 생각을 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눈으로 색을 보고, 내가 귀로 소리를 듣고, 내가 마음으로 법(法)을 인식한다.’ 또 이렇게 말한다. ‘이 존자의 이름은 이러하고, 성은 이러한데, 이렇게 살다가 이렇게 죽었다.’” 〈잡아함경〉
눈이나 귀로 사물을 인식하는 존재로서의 ‘나’, 태어나서 이름을 가지고 한평생을 살아가는 ‘나’는 십이입처(十二入處)와 촉입처(觸入處)에서 연기한 오온(五蘊)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오온은 무상(無常)하고 무아(無我)이다. 즉 삶을 통해 끊임없이 변해 가는 과정이며,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존속하는 존재가 아니다. 이러한 ‘나’는 시간적으로 존속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생사(生死)가 없다.
五蘊을 상주불변의 ‘나’로 착각하는데서 괴로움 싹터
팔정도 수행을 통해 오온을 소멸시키면 행복한 삶 얻어
이러한 생각은 부처님만의 생각은 아니다.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슈뢰딩거는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생물 화학적으로 생명의 구조와 실상을 면밀하게 살펴 본 후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 각자는, 자기 자신에 독특한 모든 경험과 기억을 통해 개성적인 그 무엇, 다른 누구와도 구별되는 그 무엇을 이루고 있다는 명확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우리 각자는 그것을 ‘나’라고 부른다. 그러면 대체 이 ‘나’는 무엇인가?
그것을 세밀하게 분석하면, 내가 생각하기에, 여러분은 그것이 경험과 기억이라는 개개 자료의 모임, 다시 말해 그러한 자료들을 모아 놓은 캔버스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은 철저히 자기성찰 함으로써 ‘나’의 진정한 뜻은 여러 가지 새로운 재료들이 쌓이는 바탕재료라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그렇지만 인생에는 단절이 없다. 삶 속의 죽음이란 없는 것이다.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것은 경험과 기억이 모여있는 상태이다.
부처님은 그것을 온(蘊)이라고 불렀고, 그것의 종류가 다섯 가지이기 때문에 오온(五蘊)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오온을 상주불변하는 ‘나’ 라고 착각하고(無明) 살아가는 삶이 괴로움(苦聖諦)이다. 오온은 삶을 통해 형성된 경험과 기억이 모임으로써 형성된 것(集聖諦)이다.
오온을 자기 존재로 착각함으로써 나타난 괴로움을 소멸하기 위해서는 자기 존재로 착각하고 있는 오온을 소멸(滅聖諦)시켜야 한다. 오온을 소멸하는 길은 태어나서 죽는 자기 존재가 없음을 바로 보고(正見) 살아가는 것(八正道)이다. 그렇게 하면 본래 생사(生死)가 없는 삶(涅槃)을 살게 된다는 것이 부처님이 깨달아 가르친 불교다.
이와 같이 부처님의 깨달음은 무아의 깨달음이다. 무아는 단순히 자기 존재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인연이 되어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자연과 우주와 나는 따로 뗄 수 없이 한 덩어리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을 떠나 따로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의미다. 이렇게 깨닫고 살아가는 삶이 생사가 없는 본래적인 삶이다. 그리고 본래적인 삶을 깨달아 살아가는 삶의 길이 팔정도(八正道다.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팔정도를 실천함으로써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초능력적인 신통력이 아니라 바른 삶, 행복한 삶이다.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은 칠불통계(七佛通戒)가 보여주듯이 바르고 착하게 살고, 악하고 그릇되게 살지 말라는 것이다.
이중표/ 전남대 철학과 교수
[출처 : 불교신문 2063호/ 9월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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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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