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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퍼드의 삽화. 간결하고 단순한 선이 특징이다. |
- 런던 출생 극작가인 저자
- 아들 장난감 놀이 모습 보고
- 작가인 아내 힘입어 집필
- 능청스러운 주인공 큰 인기
- 작품 인용한 교양서도 출간
1920년대 영국에서 새로운 판타지 작품으로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는데 앨런 알렉산더 밀른의 '곰돌이 푸우(위니 더 푸우)'가 그것이다. 장난감 동물 인형을 판타지화한 것이다. 케니스 그레이엄의 '버드나무에서 부는 바람', 밸런타인의 '명견 크루소', 애니 슈웰의 '검정말 뷰티', 로버츠의 '붉은 여우' 등 동물 판타지는 수없이 많지만, 장난감 동물 인형을 판타지화한 동화는 밀른과 동시대에 활동한 윌리엄스 비앙코의 '벨벳 토끼'(1922년)가 처음이었다.
'세균 덩어리'라는 비난을 받으며 버려진 벨벳 토끼가 요정에 의해 진짜 토끼로 변한다는 어리둥절한 결말은 주의를 끄는 데 실패했다. 극작가이자 시인이었던 밀른은 아들 크리스토퍼 로빈이 자기 방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고 동화에 대한 영감을 얻는다. 로빈의 장난감에 생명을 주자고 한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아내 도로시 드 세린코트였다. 그녀는 당시 이름 있는 여류작가였다. 이렇게 해서 쓰인 것이 '곰돌이 푸우'(1926년)와 '골목에 있는 푸우네 집'(1928년)이다.
아들 크리스토퍼 로빈에게 들려주는 일련의 에피소드 형식의 '곰돌이 푸우'는 곰 인형이 주인공이다. 푸우는 로빈의 친구인 동물들과 넓은 숲 속에서 살고 있다. 푸우는 머리가 좋지는 않지만, 친구가 어려움에 빠지면 지혜를 짜내 응원해주고, 시인이기도 해 노래를 만들어 부르며 혼자서 기뻐하기도 한다.
푸우의 가장 큰 매력은 무심함에서 배어 나오는 애교다. 날씬해지려고 열심히 미용체조를 하고, 눈 위의 찍힌 자기 발자국을 다른 짐승의 발자국인 줄 알고 열심히 쫓아가는가 하면, 좋아하는 벌꿀이 먹고 싶어도 말을 못하고 머뭇거리기도 하고, 로빈에게서 칭찬이라도 들으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순진파이다. 로빈의 동물 친구들은 모두 살아있는 인격체로 겁쟁이면서도 강한 척하는 꼬마 돼지 피글릿, 착한 것 같지만 경박하고 활달한 호랑이 티그, 음울하고 비뚤어진 성격의 당나귀 이요르, 수다스럽지만 완벽주의자인 토끼 래빗, 푸우와 티거의 친구인 캥거루 루, 착하고 따스하지만 잔소리를 달고 다니는 루의 엄마 캥거, 그 밖에도 자기가 파놓은 굴속으로 자주 굴러떨어지는 땅다람쥐 고퍼, 어떻게든 유식한 것을 자랑하려 하는 박학다식의 올빼미 할아버지 아울 등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다운 친구들이다. 그들의 연이은 실패는 유쾌한 웃음을 선사한다. 푸우에게 곰의 특징이 있다면 딱 한 가지 벌꿀을 좋아한다는 것뿐이다.
밀른은 1882년 런던에서 출생, 케임브리지에 있는 트리니티 대학에서 수학했다. 1906년 풍자 잡지 '펀치'의 부편집장으로 이 잡지에 시, 평론, 수필 등을 발표하여 명성을 얻었다. 1913년 세린코트와 결혼했다. 그는 한동안 성공적인 성인용 극작가로 활동하다가 1956년에 세상을 떠났다. '곰돌이 푸우'의 모델이 된 다섯 살 아들 로빈이 가지고 있던 인형들은 현재 뉴욕 공공 도서관에 전시되어 있다. '곰돌이 푸우'의 삽화는 어니스트 하워드 셰퍼드가 그렸는데, 그의 원본 삽화 한 점이 2008년 11월 4일 런던에서 3만1200파운드(6300만 원)에 전화로 참여한 독일인 수집가에게 낙찰되었으며, 같은 해 12월 17일 소더비 경매에서는 또 다른 삽화 한 점이 11만5250파운드(2억3200만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곰돌이 푸우'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것은 역시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덕분이었다. 1960년대 월트 디즈니가 이 책을 읽고 귀여운 장난감 캐릭터에 흠뻑 빠진 나머지 1961년 판권을 확보하고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에 나섰다. 1966년 '곰돌이 푸우'와 1968년 '곰돌이 푸우-폭풍우 치던 날', 1974년 '곰돌이 푸와 티거' 세 편을 시리즈로 개봉했다. 1960년까지 미국에서는 무명이나 다름없던 '곰돌이 푸우'는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 중 하나가 되었다.
월트 디즈니사는 상업적으로도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으며, 유엔은 '곰돌이 푸우'를 우정의 대사로 위촉하기도 했다. 월트 디즈니는 '곰돌이 푸우-폭풍우 치던 날'을 촬영하던 1966년 12월 25일 폐암으로 사망했다. 밀른의 아들 크리스토퍼 로빈은 자라면서 자신이 아버지의 소설과 연관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고 하는데 이유는 전해지지 않는다.
'곰돌이 푸우'는 밀른의 독특하고 예리한 인간 관찰 능력과 개성 있는 유머 감각이 낳은 작품으로 세상의 어떤 것보다 숨은 의미가 전혀 없는, 뚱뚱하고 운 좋은 곰 푸우의 일차원적인 이야기다. 미국의 크루즈 교수는 '쩔쩔매는 푸우'(1963)에서 푸우 이야기를 학자들의 업적을 풍자하는 도구로 사용했으며, 밴저민 호프의 '푸우의 도와 피글릿의 덕'(2001), 제닛 마셜의 '곰돌이 푸우에게 배우는 삶의 지혜'(2005) 등 푸우를 인용한 교양서들이 출판되기도 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