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최숙자의 이름을 기억한다면 꽤나 연배가 있는 장년층일 것이다. 50년대에 데뷔해 주목받았고 60년대를 풍미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던 최숙자는 ‘눈물의 연평도’ 등을 히트시킨 신민요 가수로 서민들의 사랑을 뜸뿍받았다.
1977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던 그녀가 지난 9일 오전 2시 미국 캘리포니아주 세크라멘토시에 소재한 한 병원에서 지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향년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평소 고혈압을 앓았던 그녀는 지난 해 25일 뇌졸중으로 입원해 결국 사망했다.
최숙자가 어느 정도의 인기가수였는지에 대해 극명하게 입증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1964년 발표된 영화주제가 ‘동백아가씨’는 말이 필요 없는 국민가수 이미자의 출세작이자 대표곡이다. 그런데 이 노래를 원래 취입하기로 내정되었던 가수는 이미자가 아닌 최숙자였다.
‘동백아가씨’ 음반을 제작한 지구레코드는 훗날 메이저 레이블로 성장했지만 당시에는 미도파에서 갓 독립한 신생사로 보따리장수 수준의 레이블에 불과했다. 그래서 당대의 인기가수 최숙자에게 노래를 취입하고 싶었지만 지불할 거금이 부담스러워 취입을 포기하고 상대적으로 헐값에 취입이 가능했던 유망주 이미자를 대타로 내세워 녹음을 했었다.
당시 임신 중이었던 이미자는 자신에게 찾아온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박을 터뜨리면서 성장의 원동력을 마련했었다. 당시 똑같이 임신 중에 영화주제가 ‘떠날 때는 말없이’를 비슷한 시기에 취입했던 현미 또한 대박을 터뜨리자 가요계에는 히트곡을 내려면 임신 중에 취입을 해야된다는 속설까지 나돌았었다.
최숙자는 유성기 시절부터 수많은 곡을 발표하며 대표적인 신민요 가수로 군림했는데 백설희, 박재란, 황정자 정도가 그녀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던 당대 최고의 신민요 여가수들이었다. 여하튼 최숙자는 '눈물의 연평도', '개나리 처녀'등 무수한 히트곡을 발표하며 승승장구했었다.
또한 60년대 당시 신인 신민요 가수로 막 데뷔했던 김세레나와 함께 부른 '갑돌이와 갑순이' 또한 공전의 히트가 되며 김세레나를 인기가수로 성장하게 만들었고 그녀 또한 최 절정기를 구가했었다. 그러니까 지금은 김세레나의 대표곡으로 알려져 있는 갑돌이와 갑순이는 원래 솔로 곡이 아닌 프로젝트 여성 듀엣 곡이란 이야기다.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기 전까지 가수활동을 계속했던 그녀의 부고 기사를 보면 이미자와 라이벌 관계였다는 기사가 대부분인데 사실 '동백아가씨' 노래가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이미자에게 최숙자는 비교대상이 될 수 없는 당대 최고의 스타가수였다.
'동백아가씨'가 40여주 이상 차트 정상을 강타하는 신드롬을 일으킨 이후 승승장구하며 최고의 트로트 여성가수로 등극한 이미자는 70년대 들어 인기가 시들어진 선배 최숙자와 함께 프로젝트 음반을 여러 장 발표했었다. 이는 이미자와 최숙자는 서로 경쟁이 치열했던 라이벌 관계라기보다는 서로를 인정해주고 챙겨주었던 사이좋았던 선후배사이로 보는 것이 적절한 시각일 것 같다.
최숙자선생의 유족으로는 남편과 1남3녀가 있다고 한다. 발인은 미국 현지에서 7일장으로 15일 오전 11시에 치러질 예정이다. 비록 최숙자선생의 노래에 열광했던 기억은 내게 없지만 그녀의 음반은 60년대 대중가요 음반 중에서는 꽤 세련된 디자인이었고 당시로는 아무나 낼 수 없었던 독집 음반도 다수였던 인기가수로 기억한다. 기억 속에서 완벽하게 사라졌던 선생님의
악극단 가수였던 그녀(이민자)는 남편(신영균)이 징용에 나간 후 소식이 끊어지자 딸, 옥희(태현실)을 데리고 술집을 전전하여 다니며 노래를 한다. 그런 어느 날 그녀는 남편을 만나게 되나, 이미 남편은 다른 여자와 결혼하여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었기에 딸 옥희를 맡기는데...
당시 인기 있었던 대중음악과 대중가수들의 노래와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통속 드라마. 저음의 가수로 유명한 남일해는 직접 출연하여 연기와 함께 노래도 선보이는데 그 당시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았던 가수였다고 한다. 강찬우 감독은 <산천도 울었다>처럼 많은 통속 드라마를 만들었는데 이 영화가 만들어기지 한 해 전에 <피리불던 모녀고개>(1963)가 히트하자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영화는 개성파 배우 이민자의 모습, 그리고 그 당시 대중가요와 이미자, 남일해 등 가수들의 모습과 목소리, 그리고 악극단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원로 가수 남일해의 증언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영화보다는 대중음악사의 귀중한 사료로서 가치가 더 있는 영화인지도 모른다.
■ Oct Roman-
악극단을 이리저리 떠돌며 하나 밖에 없는 딸을 위해 하루하루 기타와 함께 살아가는 그녀의 가슴아픈 엘레지. 얼마전 이 영화를 EBS를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전에도 이 노래는 알고 있었지만, 정말 너무나 옛날의 예의 그 '지루한 뽕짝' 정도로만 생각을 해오던 터였어요.아예 제 귀에는 전혀 들어오질 않는 그런 구닥다리 노래였죠.
그러니, 노래를 부른 가수가 누구인지에 대해 알아볼리 역시 만무했습니다.이 영화를 보신 분들도 계실테지만,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이민자 씨와 태현실 씨 등이 주연을 하고 그 외에도 실제 당시 기라성 같은 가수들이 함께 열연해 화제가 되었던 영화입니다. 이민자 씨에 대한 아련한 기억은 보통, 우리가 옛날의 계몽CF 등을 연상하면 퍼뜩 떠오르는 그런 류의 CF 등에서 가끔 볼 수 있었다는 것과, 왠지 코미디언 이순주 씨가 떠오르곤 한다는 것입니다.
아마, 저 보다 인생을 조금 더 살아오신 분들이시라면 기억이 좀 더 선명하시겠죠. 그리고 이 노래를 부른 가수 최숙자 씨가 바로 제 어머님의 18번 '개나리 처녀' 를 부른 가수였다는 것도 근래에 들어 알게 되었습니다. 최숙자 씨에 대한 자료가 더 많이 모아지면 다시 한번 그녀의 노래를 올릴 요량이지만, 아마 제 짐작이 맞다면 50년~60년대 당시 그녀의 인기가 아마 이미자 씨보다도 많았을 것이라는 추측입니다. 내일 역시 50~60년대의 노래를 올릴 예정인데, 노랫말들이 참 재미있기도 하며, 당시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노랫말이 많아 흥미롭더군요. 강찬우 감독의 메가폰을 잡은 영화 모녀키타의 OST 최숙자 씨가 노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