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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5일 (목) |
삼백스물다섯 번째
이야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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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총명은 모든 것을 비추어 볼 수 있으면서도 그 총명함을 다 발휘하지 않은 채 반드시 안으로 거두어 모르는 척하고, 참된 용맹은
모든 일을 과감하게 할 수 있으면서도 그 용맹함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않은 채 반드시 나약한 듯이 처리한다.
明固無不照。然而明有所不可盡。必斂之以晦焉。 명고무불조
연이명유소불가진 필렴지이회언
勇固無不果。然而勇有所不可窮。必濟之以懦焉。 용고무불과
연이용유소불가궁 필제지이나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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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張維,
1587∼1638), 『계곡집(谿谷集)』 권8 「용졸당기(用拙堂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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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인조
때의 문신 민성휘(閔聖徽)가 부여 남쪽 남당강(南塘江) 가에 용졸당(用拙堂)이라는 별장을 한 채 지었습니다. 자신이 관직에서 물러나 말년을 보낼
터전을 마련한 것입니다. 그러고는 계곡(谿谷) 장유(張維)에게 기문(記文)을 청하였습니다. 계곡 선생이 글을 지으려는데, 어떤 사람이 문제를
제기합니다.
“민공(閔公)
같은 이는 재주와 지혜가 뛰어나 지방에 나가 수령이나 감사로 있든 내직(內職)으로 들어와 임금 곁에서 보좌를 하든 항상 일처리를 시원스럽게
잘하여 임금이나 동료들이 모두 그의 뛰어난 능력을 인정하고 있는데, 스스로 어리숙한 사람으로 자처하니 누가 인정하겠습니까? 이것은 이름과 실상이
너무 동떨어진 것 아닙니까?” |
민성휘의
아버지는 양졸(養拙), 백형(伯兄)과 막내아우는 수졸(守拙)과 지졸(趾拙)이란 자호(自號)를 썼으니, ‘졸렬하다, 어리숙하다’는 뜻의
‘졸(拙)’ 자는 이 집안에 내려오는 전통이었나 봅니다. 어떤 사람이 여기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지요. 계곡 선생의 답변은 이렇습니다.
“졸(拙)에
대해 그대가 논하는 것은 참으로 천박하군요. 졸(拙) 자의 반대는 교(巧) 자인데, 그대는 세상의 교묘한 자들이 어떻게 처신하는지 보지
못했습니까? 말은 어물쩍 넘겨버리기 일쑤이고, 행동은 늘 유약하며, 언제나 자신의 안전만을 추구하고, 신명을 바쳐 일하는 사람들을 비웃으며
지내는 것이 교묘한 자들의 행태인데, 민공에게 이런 점이 하나라도 있던가요? 그는 남들이 쓰다고 뱉는 것을 혼자 꿀꺽 삼키며, 죽도록 일을
시켜도 자신만 고생한다고 조금도 유감을 품지 않는 사람이니, 교묘한 자들의 행태와는 어느 일 하나 상반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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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세계 경제를 흔들어놓았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미국에서 발생했을 때, 그 사태를 촉발시킨 온갖 금융 파생상품을 만들었던 사람들이 모두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을 나온, 이른바 ‘교묘한 자(?)’들이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자주 목도하는 대형 비리의 주인공들도 대부분 좋은 학벌
출신이 아니던가요? 그렇다면 오늘날 대부분의 부모들이 온갖 노력을 기울여 자식들을 그렇게 ‘재주 있는’ 사람으로만 키우려고 하는 데에는 과연
문제가 없을까요? 계곡 선생의 말씀에 따르면,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사람은 재주만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 재주를 드러내지 않고 어리숙하게 살
줄도 아는 사람이랍니다. |
글쓴이이규옥(李圭玉)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
주요
저·역서
- 『홍재전서』,
『임하필기』와 『태조실록』, 『인조실록』 ,『정조실록』 등 조선왕조실록, 『일성록』, 『승정원일기』 번역에 참여
- 『史筆
사론(史論)으로 본
조선왕조실록』(공저), 한국고전번역원,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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