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컴퓨터.
1992년 여름, 용산 전자상가에서 샀던 486 컴퓨터.
컴퓨터로 작업하면 신세계가 열릴 거라는 남친의 꼬드김에 넘어가서 샀는데...
책상에 모셔 놓고 며칠을 바라만 보았다.
어느 날 전원을 켰고, 침을 삼켜가면서 작업을 했는데 갑자기 화면이 어두워지는 것이었다. 뭔일일까? 모니터를 바라보았다가 본체를 만져 보았다가, 혼잣말을 하면서...
두런거렸는데... 결국, 전원을 다시 켰다.
뭐라뭐라, 어쩌구저쩌구... 화면에 영어로 글자들이 지나갔다.
작업을 하면 다시 화면이 어두워지길 반복했다.
젠장. 큰돈 주고 샀는데 시집살이가 고약하군. 두런두런.
그것이 절전모드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고.
소설 한 편을 날려버리기도 했었다.
한밤중에 곡을 했던 기억이 난다.
대청소를 하다가... 베란다에 모셔놓았던 컴을 발견했다.
버리지 않았다. 버릴 수 없었다.
창고에 넣어둔 타자기도.
침대 때문이었다.
소파를 버렸고 옷과 책을 버렸다. 식기장을 뒤집어 놓았고 옷장까지.
다 버렸고 이것을 찾아서 거실 탁자에 올려놓았다.
작은딸이 전동타자기로 숙제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먹끈을 사야한다고 대답했다....
타자기 사용 방법을 설명해주었다.
에이포 용지 한 장에 글을 쓰면 수정을 할 수 없고 출력을 여러 장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필름 카메라를 찾았다. 그놈으로 사진을 찍어야겠다.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과 디지털 사진기나 폰카로 찍은 사진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진관에서 현상해서 사집첩에 꽂아둔다는 것과 컴에 저장하는 차이.
먼지 쌓인 턴테이블과 엘피 판 그리고 카세트테이프를 찾아냈다.
난 이제부터 뒤로가는 삶을 살아야겠다.
느리게 아주 느리게. 속이 터질 정도로 느리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