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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길고 긴 태양이 이제 서서히 서산너머로 기울어가고 있었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한여름의 폭염은 가뜩이나 허기지고 지친 부곡민들에게 있어선 고된 노역보다도 어쩌면 더 견뎌내기 힘든 역경이 아닐 수 없었다. 여타 다른 날의 세 곱절은 될 것 같은 길고 긴 하루가 마침내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부축하면서 느린 걸음으로 부곡으로 돌아 고고 있었던 것이다. 짧은 여름밤을 그나마 찬이슬을 피하며 쉴 수 있는 그들만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실개천이 흐르는 너른 습지의 공터에 마을이 들어서 있었다.
청해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부곡이었다.
말이 마을이지 사실은 허름한 곳간들을 얼기설기 길게 늘어트려 놓은 너른 창고 터 같았다. 서너 채의 억새를 역어 지붕을 얹은 초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거의 움막의 형태라 보아도 무방하다 싶었다. 천 이백여 명에 달하는 청해진의 유민들이 이곳에 집단거주하고 있었다. 노약자와 아이들은 마을을 지키고, 부녀자와 일부의 사람들은 그들에게 허락된 개척지에서 농사도 짖고 땔감도 마련해야만 했다. 한정된 지역에서 스스로 자급자족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고 나니 건장한 남정네들을 포함한 거의 절반의 유민들이 매일매일 노역장에 나가 부역을 하며 모진 사람을 영위해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마을을 삥 둘러친 싸리담장은 분명 이곳이 특별하게 설정되고 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허울뿐 그저 명색이 엄정한 관리대상임을 표기하고 있을 뿐 실제로 여기저기 드러나고 있는 현실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부곡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통나무로 문짝도 없는 아주 커다란 대문을 만들어 놓았고 항시 두 명의 창을 든 군사가 번을 서며 드나드는 사람들의 숫자를 세고 있는 것이 전부였던 것이다.
하긴 이곳으로 이주 된 것이 십 사년이 되어가는 이 부곡을 더 이상 특별히 관리 감시해야 할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이 현실이었다. 처음에는 사뭇 엄중하게 감시를 하였었으나, 지금에야 사방으로 드넓은 평원일 뿐 한참을 가야 겨우 마을이라고 나타나고, 부곡민의 초라하고 옹색한 꼴은 누가 보아도 한 눈에 노역자임을 알아보게 되었으며, 이곳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고 보니 어디로 어떻게 달아나 볼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김제를 벗어나는 길목마다엔 벽골제를 관리하는 군사들이 진을 치고 지키고 있기까지 하였다. 거기에 노역장에 강제로 끌려온 같은 처지의 부역인 처지에도 다른 부곡민들의 이곳 청해진 부곡민들에 대한 이유 없는 질시와 감시는 이들의 운신의 폭을 더욱 좁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성황당은 부곡을 둘러 싼 싸리담장 너머 커다란 느티나무 여섯 구루가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의 한 가운데 언덕에 있었다. 부곡으로 흘러들어가는 실개천이 처음 싸리담장 아래로 흘러들어가는 지점이었다. 성황당 옆에 서서 싸리담장 안을 들여다보면 거의 부곡의 절반가량이 한 눈에 들어왔다.
노역을 마친 사람들이 부곡 안으로 들어섰다.
온 마을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저만치 아래쪽의 마을 가운데 실개천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고 있었다. 물을 긷고 씻고 땀에 젖은 옷을 빨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성황당 앞쪽의 마을에도 분명 많은 사람들이 노역을 마치고 들어오는 것이 보였음에도 이곳의 실개천에는 강아지 한 마리조차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돌아오는 사람들은 분명 있었는데, 여타의 지역처럼 너도나도 앞 다투어 물을 찾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였다.
왜소하고 가냘픈 노인 하나가 손에 낫을 하나 들고 실개천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나타난 노인은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그대로 걸음을 옮겨 실개천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초입에 자라난 풀을 잘라 버리고 개천의 이곳저곳을 세심하게 살폈다. 한참을 살피던 노인은 떠내려 온 풀무더기와 나뭇가지들을 건져 인근의 수풀 속으로 던졌다. 실개천 초입의 싸리담장까지 다가와 살피던 노인은 눈을 들어 주변을 살피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노인의 시선은 계속 성황당 주변을 살폈다.
“도령께서 그곳에 계시옵니까?”
성황당 담장 뒤에 숨어서 살피고 있던 승평은 나타난 노인이 낮에 다가와 이야기를 전하고 사라진 이창진(李昌珍) 부장의 부친이라는 것을 알아보았고, 노인의 물음에 헛기침 소리로 답했다. 노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실개천 주면을 정리하면서 겨우 들릴듯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이제 잠시 후 소인이 들어가고 나면 아가씨께서 이곳에 오실 것입니다. 아가씨께서 아이들과 부녀자들을 데리고 오셔서 씻고 물을 긷고 나셔야 그 후에 남정네들이 여기 개울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저들의 감시도 있고 또 저희의 처지로도 아가씨의 안위가 염려되어 이러는 것이랍니다. 이제 오래된 전통처럼 저희들 몸에 배어있는 습관 같은 것이겠지요. 도령께서 느티나무 위로 몸을 깊숙이 숨기시고 계시면 잠시나마 아가씨를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심하셔야 합니다. 자칫 잘못되면 모두에게 커다란 화가 미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땅거미가 내려앉을 때 까지만 기다려 주십시오. 어두워지면 제가 빠져나가 도령을 다시 뵈올 것입니다. 그럼..........”
말을 마친 노인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대로 돌아서서 실개천을 벗어나 마을로 사라져갔다.
어디선가 아이들 재잘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내아이랑 계집아이들이 몰려나왔다. 흥에 겨운 아이들은 그대로 개천으로 뛰어들어 물장구를 치며 놀기 시작했다. 뒤이어 저마다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있는 부녀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무리의 한가운데에 그녀가 있었다.
분명 청해진의 옥란아씨가 틀림없었다.
이렇게 지척에 숨어서 지극히 일상적인 여인네의 모습을 훔쳐보고 있는 처지이기는 하였으나 좀 더 솔직 하자면 적지 않게 어떤 설레임에 가슴이 곤두방망이질을 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햇볕에 그을린 까맣게 변한 피부의 중년여인이었으나 굳이 깊게 살피지 않아도 어린 시절의 그 아리따운 표정이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었다. 다른 부녀자들처럼 여인은 실개천의 상류인 울타리부근까지 다가와서 처음 흘러드는 깨끗한 물을 물동이에 길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개울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허벅지쯤 차오르는 깊이에서 두 손을 들어 얼굴을 씻었다. 물에 젖은 손으로 흘러내리는 긴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그리고는 옆에서 물장구에 여념이 없는 아이들을 하나씩 불러 세수를 시키고 등을 밀어주었다. 자신의 낡고 허름한 옷이 젖는 것에는 아예 염두도 두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런 모습들을 마냥 바라볼 수만은 없었다. 일체의 이런 모습들은 지극히 짧은 순간처럼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부녀자들과 여인들이 저마다 물동이 하나씩을 머리에 이고 마을 안으로 사라졌던 것이다. 그리고 조금 지나자 이번엔 마을을 남정네들이 모조리 쏟아져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아쉬움과 쓸쓸한 여운이 슬며시 가슴속을 채우고 있었다.
노인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어둠이 어느 정도 내려앉은 다음이었다. 소리 없이 개울을 거슬러 올라와 싸리 울타리를 들추고 곧장 성황당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십 사년여의 시간이 흘렀는데 그새 할아버지께서는 무탈하셨습니까?”
“도령께서도 이미 그간의 일들에 대해 아시고 계실 터인데 무탈이 무슨 무탈이겠습니까? 장군께서 돌아가신 다음부터는 온전한 것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우리네들 삶이었을 뿐이지요. 하늘도 무심하시지.......... 미력한 제 아들놈이라도 그 때 제대로 성공을 했더라면 이렇게 아씨나 청해진의 일가들이 지금처럼 저렇게 참혹한 꼴을 하며 살아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여......... 그 업보를 어쩌지 못하고 죽지 못해 하루하루를 겨우 이어가고 있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늙은 몸이랍니다. 그저 바라기는.......... 우리 아씨께서.............”
“부장님의 일은 들은 바 있었습니다만........... 그래도 참으로 훌륭한 아드님을 두셨던 것입니다. 장보고 장군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깝기는 그때 아가씨를 미리미리 보내드리지 못한 것이랍니다. 그랬더라면 지금의 저런 험악한 삶은 모면할 수 있으셨을 것인데...........”
이창진(李昌珍)은 청해진대사 장보고(張保皐) 휘하에서 부장(副將)으로 활약하였었다. 장보고가 염장(閻長)에게 암살당하자, 당시 부장이었던 이창진은 사방에 퍼져있던 청해진(靑海鎭)의 남은세력을 규합하여 계속 중앙정부에 반항하였다. 비록 장보고는 비명에 횡사하였으나, 남겨진 세력들의 노력으로 그 환난후로도 한동안 청해진의 위세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휘하인 이충(李忠)·양원(楊圓) 등에게 무역선을 주어 일본과 교역하게 함으로써 장보고가 죽은 뒤에도 독자적인 청해진세력을 계속 유지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를 마냥 두고 볼 수 없었던 신라 정부에서는 무주별가(武州別駕) 염장을 또다시 보내어 청해진을 공격하게 하였는데, 국력을 총동원하다시피 한 신라의 맹공 앞에 이창진 등이 분투하였으나 마침내 패배함으로써 청해진이 함락되었다. 그와 동시에 청해진은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모두 천민으로 전락하여 노역에 동원되다가 수년 후 벽골제로 강제 이주되었던 것이다.
“그때 저희는 아가씨를 어디 먼 곳으로 보낼 계획을 세웠었습니다. 이충과 양원이 그 계획을 맡았었지요. 하지만 아가씨가 너무 어리셔서 여러모로 좀 더 많은 준비를 갖추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었지요. 이충 일행의 교역선이 왜국(일본)에서 돌아오는 대로 아가씨를 양주(揚州)로 모시고 가기로 계획을 했었습니다. 나머지는 그곳 당나라에 살며 청해진에 의지했던 사람들이 아가씨를 어른이 되실 때까지 잘 모시기로 하였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교역선이 왜국에서 돌아오기도 전에 염장이 대군을 이끌고 들이닥친 것이지요................”
“그랬군요....... 헌데, 아녀자이신 아씨께서 어찌하여 남자들의 노역장에 계신단 말씀이십니까? 가족들은 모두 어쩌시고요?”
“십사 년 전 장군께서 염장의 손에 돌아가신 날부터 아씨께선 혈혈단신 혼자가 되셨지요. 그 날부터 변하셨습니다. 아씨에게서 여자라는 의미도 함께 장군의 무덤에 묻어버린 것이지요. 그날부터 남녀 구별 없이 다른 모든 사람들과 똑 같이 먹고 자고 생활하시며 오늘까지 오셨습니다.”
“그 후로 이제껏 혼자 지내셨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무리 그래도 본시 귀하신 분이셨습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으셨습니까?”
“속죄를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장군께서 끝까지 청해진 사람들을 돌보지 못한 그 업보를 대신 지고 평생을 살아가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장군의 업보라니요?”
“도령께서도 이미 알고 계실 것이라 하셨던 기억이 나는데요. 모르고 계셨나요?”
“저는 아씨께 그런 이야기를 한 기억이 없습니다. 물론 들어본 적도요.”
“청해진이 변을 당하기 전이었지요. 도령의 양부께서 청해진에 감찰을 내려오셨을 때........ 하루는 장군님과 도령의 양부께서 해안가 벼랑에서 청해진의 앞날에 대해 걱정하는 이야기들을 나누시던 일을 도령께서는 기억하십니까?”
“아니 할아버지께서 그 일을 어찌...............?”
“두 분이 심하게 다투셨다지요? 청해진의 장래에 대해서요. 지금도 기억하고 계시는지요?”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온데 어떻게 할아버지께서 그 일을..........”
“기억하고 계시다니 이해가 좀 수월하겠습니다. 만약에 그 때에 장군께서 도령의 양부께서 하시는 말씀에 좀 더 귀를 기울이셨다면 그 후로 어떻게 되었을까 여쭙고 싶습니다.”
“거기까지는 더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헌데 어떻게 할아버지께서 그 일을 알고 계신단 말씀이십니까? 그리고 아씨께서 장군님의 업보를 지고 사신다는 말씀은 또 무엇입니까?”
“도령께서는 그 이상을 깊게 생각해 보신 적이 없으셨군요. 하지만 어떤 한 분께서는 그 이상을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더 되뇌이며 깊게 깊게 생각해 보셨습니다.”
“그게 누굽니까? 그 자리에 있던 장군도 제 양부도 모두 돌아가셨고, 저는 더 이상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그렇다면 혹시..............”
“바로 아씨께서도 그날 그 자리에 계셨던것이지요. 해안을 따라 돌아다니는 도령을 뒤쫓았다가 우연히 바위고랑 틈에 숨어서 그날의 이야기들을 모두 들으셨다고 합니다. 두 분이 자리를 떠나시고 도령께서도 떠나신 후에야 바위틈에서 나왔기에, 그 자리에 도령께서 계셨던 것을 아씨는 아시지만, 아씨께서 계신 것을 도령은 모르실거라 하셨습니다,”
“세상에나........... 그 이유로.......... 어른들께서 나누시던 그 이야기로 하여 지금껏 아씨께서........... 장군의 업보라 자청하셔서 저 같은 노역장의 수난을 그대로 당하고 계신단 말씀이십니까?”
“노역장뿐이 아닙니다. 부곡민들에게 주어지는 힘들고 고된 일에는 항상 가장 앞쪽에 아씨께서 굳건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계셔왔습니다. 부곡민들에 대한 무한한 헌신과 희생이 아씨께서 지금껏 살아가실 수 있는 책무이자 전부입니다. 하여 부곡민들이 이 엄청난 압제와 고난 속에서도 힘을 내어 버틸 수 있게 만드는 정신적 지주이십니다. 아씨께서요.”
“아무리 그렇기로........... 장군께서 선택하셨던 그 일이 어찌 따님에게 업보일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본인께서 스스로 선택하신 길입니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그 무엇인가가 솟구쳐 올라왔다. 승평은 차마 한 동안 말문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무엇인가 생각을 정리해야만 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지만, 그럴수록 점점 정신이 혼미해지고 있는 것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언제 떠나십니까? 아씨께는 도령을 뵈었다고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이 시간이 지나면 곧장 떠나야 하겠습니다.”
“살아계시면 의당 서라벌에 계실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이곳에 나타나시게 되었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오랜 가뭄으로 피해가 심해 남악산에 기우제를 지내고자 일행을 모시고 왔던 길이었습니다. 제를 지내기도 전에 뜻밖의 폭우로 인해 여기 벽골제 제방이 염려되어 살피고자 왔던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아가씨를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아가씨께서 여기 계신 것을 알고 계셨습니까?”
“그........ 그것은........ 알지 못하다가........... 우연히 이번에 들었습니다..............”
“우연히 이번에 겨우 알게 되었는데 이렇게 곧장 찾아 오셨군요?”
“글쎄 그것이............ 그러니까............”
“낮에 감독관과 대화를 듣자니 사정부의 관리가 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관리라 할 것도.......... 지금은 중사라는 한직에 있습니다.”
“관직에 계신 분께서 한 여인의 소식을 알았다 해서 느닷없이 먼 곳까지 출타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대단히 중요한 일이 되겠다 싶기에 실례를 무릎 쓰고 단도직입적으로 여쭙겠습니다. 아씨를 찾아오신 것입니까?”
“할아버지 그게 말씀입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지금 이 늙은이의 목숨을 내놓고 여쭙고 있는 것입니다. 아씨를 찾아오셨습니까?”
“아씨를 만나고자 찾아 온 것은 아니고........... 어떻게 살고 계신지 살펴보고자 왔습니다,”
“도련님 개인적인 생각에 궁금해서 찾아오신 것입니까?”
“그........ 그것이...........”
“이번까지 아씨에 대한 소식을 모르셨다고 방금 전에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시면 혹시.......... 다른 누군가가 아씨의 소식을 궁금해 해서 대신 알아보러 오셨습니까?”
순간 ‘아! 마침내 올 것이 오고 말았구나.’하는 무거운 절망감이 사정없이 가슴을 짓누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가슴이 콱 하고 막혀왔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가며 텅 비어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렇군요. 그 분의 명을 받고 갑자기 찾아오신 것이었군요. 하긴 오랜 세월이 지나서도 확실하게 모습을 알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분 중의 한 분이실 테니까요.”
승평은 부정도 긍정도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덧 저절로 부서져 내려앉은 어둠이 여기 숲속을 더 어둡게 만들어 주고 있었으나, 턱 밑까지 다가선 노인의 예리한 눈초리는 벌겋게 달아오른 승평의 당황해 하는 낌새를 이미 모두 들여다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씨의 모습을 살피셨으니 이제 돌아가시면 혹여 아씨의 안위에 변화가 있겠습니까?”
“어찌 그런 말씀을...........”
“십 수 년이 지난 시점에서 갑자기 찾으셨으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냥 궁금해서 한 번 찾아보라고 보내시진 않으셨지 않겠습니까? 아씨 신변에 변화가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찾아보니 이미 죽었더라고 보고 드리진 못하시질 않겠습니까?”
“어찌 자꾸만 그런 말씀을..............”
“예감이 좋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 옛날의 그때도 이런 예감이 들었었거든요?”
“별다른 일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도령께서 문득 잊고 계시던 아씨가 생각이 나서 먼 길을 마다않고 찾아오신 것이라면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반겨 환영했을 것입니다. 헌데 지금의 상황은 아니질 않습니까? 그 지엄하신 분께서 왜 갑자기 아씨가 궁금해 지셨다는 말씀입니까?”
“그것까지 제가 어찌...........”
“이 늙은이가 하찮겠지만 쓸모없는 저의 목숨을 내어 놓고 한가지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어찌 자꾸만 그런 말씀을...........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말씀만 하세요.”
“우리 아씨가......... 어린 시절 도령의 동무였던 우리 아씨가 이제껏 겪은 고초만도 입이 열 개라도 설명하기가 어려울 정도인데.......... 나머지 생을 조금만 더 편하게 살 수 있도록 도령께서 좀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어찌 안 되겠습니까? 제가 돕겠습니다. 무엇이든 돕고 싶습니다.”
“그러시면......... 그러시면 도령께서 좀 도와주십시오.”
“무엇이든 돕겠습니다.”
“아씨께서 이곳에서 아무런 변고 없이 한동안만 잘 지내실 수 있도록...........”
“그럼요. 아무런 탈 없이 잘 지내시도록 살피겠습니다.”
“한가위 까지만.......... 아니 늦어도 찬바람 불 때 까지만 아무 탈 없이 여기에서 이대로 지내시도록............”
“무슨 말씀이십니까? 한가위는 무엇이며 찬바람은 또 무엇입니까? 할아버지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군요? 무슨 일 입니까? 말씀해 주세요. 제가 알아야 도와 드리지 않겠습니까?”
할아버지는 더는 북받치는 설움을 참기 어려웠던지 기어코 참던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혹여 누구에게라도 들키면 안 되는 만남이었기에 속으로 삼키며 삭이며 울고 있는 노인의 모습은 더 슬프고 가슴이 메어져 왔다.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노인은 목이 메어 잠겨드는 목소리로 그간의 쌓아둔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었다.
십사 년 전에 벽란도에서 옥란아씨를 구출하려던 책임자 이충(李忠)은 임종을 맞이하기 까지 그 때의 일을 잊지 못하였다. 하여 지난해 이충이 죽으면서 그의 아들들에게 자신이 못 다 마친 그 때의 일을 성사시켜 줄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하여 지난 일 년 여 동안 이충의 후손들은 왜국(일본)과 당나라 양주와 산둥반도(山東半島)와 장쑤성(江蘇省) 일대에 흩어져 기반을 닦고 살아가고 있는 지난날의 청해진 세력들을 찾아가 설득하고 하나로 다시 뭉치게 하였던 것이다. 청해진의 변란 당시 타국으로 교역을 떠났던 무역선들이 살아남아 그동안 보전되어 왔기에 상당한 재산도 마련된 상태였다. 그들의 최우선 목표는 일단 장보고의 유일한 핏줄인 옥란아씨를 벽골제에서 구출하여 적산의 법화원(赤山法華院) 근처에 거처를 마련하여 여생을 편안하게 살게 하는 것이었다, 적산의 법화원이라면 장보고 장군에 의하여 생겨났고 지금까지도 장군을 추앙하는 사람들이 주로 모여 사는 곳이라 가히 최적의 장소라 꼽을 만 했다. 그러고 나서 다음으로는 직간접으로 벽골제에 은밀하게 물품과 금품을 들여보내 부곡민들의 생활 향상에 기여하며. 구출하거나 도망 나오는 부곡민들을 안전하게 바다를 건너게 주선하는 일이 다음 목표였다.
하여 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철저한 준비하에 은밀하게 계획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하여 벽골제와 법화원 사이에 은밀하게 사람이 오고 가면서 차곡차곡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한여름은 장마와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태풍을 일단은 피하여야만 했다. 하여 한가위라는 특별한 시기의 특수를 노린 당나라의 상선 하나가 그 시기에 맞춰 벽란도에 도착을 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이 명절분위기를 탄 약간은 느슨한 감시의 눈을 피해 부곡에서 옥란아씨를 빼 돌리기로 한 것이다. 벽골제에서 벗어나면서부터 벽란도에 이르기까지의 도피 과장에 대해서도 철저한 계획 하에 이미 실제 사람이 오가면서 예비 시행까지를 마친 상태였다. 여기에 벌어질 수 있는 여러 가지 변수에 대해서도 나름 철저하게 준비를 했다. 모든 것은 한가위에 맞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만약 부득이한 경우의 수가 생긴다 해도 찬바람이 부는 겨울이 오기 전까지는 무사히 마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여름이 지나면 산둥에서 배가 뜨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단, 만약을 대비하여 그간의 모든 일에 대해서 당사자이자 본인인 옥란 아가씨에게만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오고 있었다.
“도령께서 살펴 도와주십시오. 옛정으로 라도 정녕 아가씨께서 행복하시기를 바라신다면, 부디 그 때까지만 아씨께서 이곳에서 아무 일 없이 지금처럼 지내실 수 있게만 도와주십시오. 이번에만은 기필코 성공하여서 아가씨를 구출해 낼 것입니다.”
“저라고 어찌 아가씨의 행복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당장 아씨를 어디로 데려가시고자 도령께서 오신 것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게 마음이 놓입니다. 그나저나 이제 돌아가시면 아무때고 또 뵈올 수 있겠습니까?”
“제가 다시 나타나지 않고 돌아서서 모두 잊고 사는 것이 아씨나 할아버지께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이 상황에서 무엇이 있겠습니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나서서 도울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것도 도울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돌아가면 여기의 정황에 대해 나름 보고를 드리고 나서......... 서라벌을 멀리 하고 한동안 떠날까 합니다. 모두 잊겠습니다. 이 순간 할아버지를 만난 기억도 나눈 이야기도 모두 기억에서 지우고 그냥 떠날까 합니다. 그것이 아씨와 할아버지를 돕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의 간절한 바램대로 모든 일이 무사히 잘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저의 마음만은 두고 가겠습니다. 부디 오래오래 강녕하십시오.”
“혹여........ 모든 일이 잘 되어서, 아씨께서 배에 오르는 날에는 도령께서 다녀가셨다는 말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승평은 어둠 속에서 노인의 표정을 살폈다.
삶을 달관하고도 남았을 그 연세의 찌든 표정에서 더 할 수 없는 비장함과 긴장감이 여실히 느껴져 왔다. 잠시 노인의 주름 가득한 뼈만 남은 손을 꼭 잡아 본다. 그리고는 무심한 듯 발걸음을 돌렸다.
승평은 끝내 노인의 마지막 물음엔 답을 하지 못했다.
벽골제를 살피고 온 승평이 남원의 행궁에 돌아왔을 때, 불과 나흘 전에 이곳을 떠날 때와는 여러 가지로 상황이 변해있었다.
우선은 상당수의 진골과 6두품 이하의 관리들은 물론 따라온 가족들의 대다수가 단계별로 나뉘어져 서라벌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곳으로 집결했던 상당수의 군사들도 제 위치로 돌려보내고 있었다. 왕이 궁성을 떠나 멀리까지 나오게 된 데에 대한 정신적 부담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안정을 되찾았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또한 혹심한 무더위 속에서 갑자기 모여든 수많은 관리과 가족들과 군사들까지 먹이고 돌보는데 있어서 한 지방의 작은 관아로서는 경제적으로나 지리적으로 한계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문제가 대두되었던 것이다. 하여 단계별로 귀성을 시키기는 하였으나, 극심한 무더위속의 행렬이다 보니 동원된 대다수의 원성이 드높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으로는 이곳의 관할권을 가지고 있던 무주별가(武州別駕) 소속의 군사들이 행궁을 지키고 있었으며 도독이었던 염장(閻長)이 지척에서 직접 왕을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돌아오던 날 밤이 깊어 왕의 부름을 받은 승평은 왕과 독대했다.
왕이 주로 많은 질문을 했고 승평은 그에 대해 짧게 대답을 했다.
대화가 끝날 쯤에 왕은 깊은 고뇌에 잠겨 있었다.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승평은 왕에게 지병을 핑계로 한동안 서라벌에 먼저 돌아가고자 하는 휴직을 청하였고 왕은 이를 흔쾌히 윤허하였다.
그 길로 형인 수경을 찾아가 왕께서 휴직을 허락하셔서 날이 밝는 대로 서라벌의 집으로 먼저 돌아가겠노라고 전하는 중에도, 두 형제는 서로 어색하게 쳐다보고만 있을 뿐 더 이상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형 수경은 동생 승평의 표정에서 커다란 고뇌를 읽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 길로 승평은 서라벌로 혼자 먼저 돌아왔으며, 집에서 애만 태우고 있던 소향으로서는 남의 속도 모른 채 그저 작은 오빠가 돌아왔다는 사실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런 소향의 기쁨과는 반대로 승평은 뜻 모를 허망함의 깊은 심연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그날부터 승평은 술독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런 오빠의 속을 알 길이 없는 소향으로서는 연일 눈시울을 적실 수밖에 없었으나, 승평은 아랑곳 하지 않고 눈을 뜨면 술을 찾았고, 술에 취하면 잠에 골아 떨어졌다. 하루하루가 거의 똑같다 시피하게 반복 되풀이되는 와중에서 저절로 시일이 지나더니 보름쯤 더 지나서 왕의 행차가 마침내 서라벌의 궁성으로 되돌아 왔다.
당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던 아찬 원홍(元弘)이 귀국하겠다는 서신을 보내왔었는데, 기우제를 핑계로 출타했던 남원의 행궁에서 귀성을 차일피일 미루며 불경과 부처의 치아를 가지고 돌아온다는 사신 원홍을 맞아 함께 궁궐로 돌아가겠다는 핑계로 이제껏 귀성을 미뤄오던 처지였던 것이었다.
왕의 귀성으로 온 서라벌이 다시 바쁘게 술렁이던 여름날 저녁 무렵이었다.
서라벌 구정교 옆 박석골의 오동나무가 흐드러지듯 기세 좋게 늘어서 있는 대저택의 문을 누군가가 요란하게 두드리고 있었다.
일전부터 이 댁에 곧잘 드나들던 금위군(禁衛軍) 소속의 김명해(金明海)임을 알아 본 이 댁의 하인은 망설이지 않고 대문을 열어주었다. 이 댁의 식구들과 평소 스스럼없이 지내온 사람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아마 작은 공자를 찾아와 무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너른 마당에서 작은 공자가 시범을 보여주기도 하고 연습 대련도 하면서 세상살이와 궁궐의 이야기도 나누면서 가볍게 술잔을 나누던 친근한 사이였던 것이다. 소싯적부터 온 서라벌 장안에 자자하게 빼어난 검술솜씨로 정평이 난 작은 공자는 지금 찾아 온 명해 공자를 끔찍이도 아끼면서 여러 가지 보법과 검법을 가르쳐주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하인이 짐작하기에 오늘만은 이 명해공자의 방문이 헛걸음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번 여러 날 동안의 출타에서 보름쯤 전에 돌아온 이후로 작은 공자는 심하게 망가져 있었던 것이다. 오늘도 아침나절에 눈을 뜨자마자 부터 술독에 빠지더니 기어코 해가 중천에 걸리기도 전부터 사랑채의 문을 모조리 열어 놓은 채 웃통마저 훌훌 벗어버리고는 대자로 뻗어 코를 골며 잠들어 있었다. 중참을 드시라 아무리 흔들어 깨워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도무지 그 원인을 알지 못하였기에 울며불며 매달리던 소향아씨는 작은 오빠의 그런 모습에 차마 더 견뎌내지 못하고 인근의 사찰로 불공을 드리러 올라가신 참이었다. 어서 왕이 귀성하셔서 작은 공자가 하늘처럼 어려워하시는 이 댁은 주인인 큰 공자께서 서둘러 돌아오시기만을 기다릴 밖에 달리 길이 없어보이던 처지였다. 한데 오늘 낮에 왕께서 궁성으로 돌아오셨다니 어찌 다행이라하지 않을수가 있었겠는가. 이제 곧 큰공자가 돌아오셔서 작은 공자를 혼내주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명해 공자가 사랑채에 들어 작은 공자를 아무리 흔들어 깨웠지만 소용이 없었다. 한참을 지나서야 마침내 명해공자도 손을 들고만 모양이었다.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있는 작은 공자를 포기한 채 섬돌아래 벗어놓았던 가죽신을 다시 신고 있었다.
“소용이 없으시지요? 벌써 보름이 가깝도록 맨 날 저 모양 이십니다. 도무지 까닭을 모르겠사옵니다.”
“보름이나 되었다는 말씀이신가?”
“지난 번 출타에서 돌아오시던 날부터였습니다. 이제 왕께서도 돌아오셨으니 큰 나리께서도 돌아오실 터인데, 아무래도 저러시다가는 큰 사단이 나도 단단히 날 것 같사옵니다.”
“아씨께서도 안 보이시는구나?”
“작은 공자께서 연날 저러시니 아씨 속이 오죽하셨겠습니까? 아침 내내 눈물을 참지 못하시다가 부처님께 도움이라도 청해보실 요량으로 절간에 가셨습니다. 오실 때가 되었지요.”
“그러신가? 아무래도 내가 오늘은 헛걸음을 했는가 보네. 연유를 모르겠으니 답답하긴 하지만 근일 내로 내가 다시 들른다고 깨어나시면 형님께 전하여 주시게.”
아쉬운 듯 사랑채 안을 돌아다보며 명해공자가 섬돌아래 내려섰다.
그때였다.
--------------- 다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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