祖上의 뿌리알기 및 우리 門中의 系譜
羅姓은 祝融의 후예인 匡正공이 羅國에 봉해지면서 得姓하게 되었고 한고조 때 羅珠공이 豫章땅 영주가 되면서 豫章羅氏 始祖가 되었으며 中國의 羅氏는 本이 하나이다.
당태종 때(660년경) 尙書左僕射로 있던 羅至强공이 高句麗 征伐論을 反對하고 豫章에서 只今의 羅州로 亡命하였으며 그 後 統一新羅朝廷에 출사하여 左丞相에 이르렀고 子孫들은 10여대가 羅州地方에 居住하였다.
至强공은 우리나라에 定着한 最初의 始祖이나 後孫이 統一新羅에서 벼슬을 하고 살았지만 當時에는 族譜가 없어 댓수가 不分明하여 王建을 도와서 高麗를 開國한 三韓功臣 大匡錦城府院君 羅聰禮공을 始祖로 하였다.
* 羅聰禮(1세) - 恩誥(2세) - 含憲(3세) - 成佐(4세) - 廷胥(5세) -國英(6세)-
仁謙(7세) - 孝全(8세) - 得璜(9세) - 裕(10세) - 益禧(11세) - 英傑(12세) -
금성나씨 대동보를 20세를 기준으로 하여 분석해 보면 약 50여개의 크고 작은 문중이 있으나 크게 나누면 7세에서 仁謙公(장남) 守謙公(차남)으로 나누어지며
* 仁謙公( 7 세)의 후손은 文奎公(13세), 龜奎公(13세)이며
* 文奎公( 13 세)의 후손은 侍郞公 (純 장남, 14세), 翰林公(奉 4남, 14세)이며
* 侍郞公 (純 장남, 14세)의 후손은 奉禮公(仲浩 장남, 15세), 光佑(2남, 수성나씨 15세), 進士公 (明佑 3남, 15세), 松都公(仲貴 4남, 15세)이며
* 奉禮公(仲浩 장남, 15세)의 후손은 節制使公 (紩 장남, 16세), 永慕處士公(結 2남, 16세), 司直公(繼 3남, 16세)이며
* 司直公(繼 3남, 16세)의 후손은 淸白吏公(殷制 장남, 17세), 殷治, 殷造, 殷武이며
* 淸白吏公(殷制 장남, 17 세)의 후손은 少尹公(郁 장남, 18세), 生員公(謙 2남, 18세), 參判公(彬 3남, 18세), 均(4남,世訪公門中), 淑(5남)이며
* 彬公( 18 세)의 후손은 監察公( 世緝 장남, 19세), 松齊公(世纘 2남, 19세)이며
* 監察공( 世緝 장남, 19세)의 후손은 恒, 慄(20세)이며
* 慄(차남, 20세)의 후손은 南崗公(德用 21세), 德修, 德弘, 德健, 德宣이다.
* 南崗公(21세)의 후손은 茂松(장남 22세), 茂春(차남 22세), 茂桂(3남 22세)이며
* 茂春(차남 22세)의 후손은 緯文, 緯奎이며
* 緯文(23세)의 후손은 以麟, 以麒, 以鳳, 以鵬, 以熊이며
* 以麟(24세)의 후손은 載亨, 載鳴, 載挺, 載震이며
* 載亨(25세)의 후손은 景來이며
* 景來(26세)의 후손은 宅佐, 英佐(庶子)이며
* 宅佐(27세)의 후손은 得句, 得純, 得紀이며
* 得句(28세)의 후손은 廷煥, 廷郁이며
* 廷煥(29세)의 후손은 學成, 潤成, 義成이며
* 學成(30세)의 후손은 漢箕, 漢斗이며
* 漢斗(31세)의 후손은 顯彩, 台運이며
* 顯彩(32세)의 후손은 承五, 承南이며
* 承五(33세)의 후손은 喆柱, 祿柱, 麒柱, 鳳柱이며
* 祿柱(34세)의 후손은 炳會이며
* 炳會(35세)의 후손은 允埰, 柾埰, 宗埰이며
* 允埰(36세)의 후손은 元昶, 元鏞이다.
三十一世 漢斗(5대조) - 석채는 그 분의 6세손
三十二世 顯彩(4대조) - 석채는 그 분의 5세손
三十三世 承五(3대조) - 석채는 그 분의 4세손
三十四世 喆柱(2대조) - 석채는 그 분의 3세손
三十五世 炳根(字는 열홍), 열옥,
三十六世 석채, 용채, 명채, 길채, 충오
三十四世 八錄(2대조) - 나(윤채)는 그 분의 3세손
三十五世 炳會
三十六世 윤채, 정채, 종채
三十四世 八麒(2대조) - 환채는 그 분의 3세손
三十五世 병남, 병석, 병연
三十六世 환채, 선채, 방채, 국채
三十四世 玉鳳(2대조) - 쌍채는 그 분의 3세손
三十五世 병곤, 병홍, 병용
三十六世 쌍채, 강채, 준채
※ 계산법 : 36세(나) - 31세(漢斗) = 5대조(漢斗할아버지는 나로부터 5代祖이시다.)
5대조 + 1 = 6세손(나는 韓斗할아버지의 6世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