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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방장산 자연휴양림에서 백양사 IC로 이동하고 있다.
고속도로는 시원하게 소통되고 있다.
나주 혁신도시를 거쳐 전남 장흥 군 천관산
자연휴양림으로 이동하고있다.
모나코시 정경
코로나때문에 마스크는 필수품이 돼버렸네.
고통의 끝은 언제인가?
방장산 산행을 마치고 하산 하면서
구운 고구마를 배낭에서 꺼내
허기를 때우고 있다.
하지만
점심으로 대신할 수는 없었다.
허기가 가시지않았기때문이다.
시간은 오후 1시가 넘어서
2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점심 겸 저녁식사를 장흥 읍에서 해결해야 할 것 같다.
때마침 장흥 읍은 5일장이 개장 중에 있었다.
장터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도로 갓길은 승용차와 트럭이 주차돼 있어
혼란스럽고 무질서하다.
하지만 정감이 넘친 노점상인들의 어굴에 행복한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시골 장터는 오전 9시부터 12시 까지가 성황이다.
상인들 중에 철시 하려는 광경도 목격되고 있다.
오후 2시가 가까워오니 당연히 벌어지는 현상일 것이다.
대부분 할아버지와 할머니 들뿐이다.
젊은이 들은 가뭄에 콩나듯 한 두명 눈에 띠고있다.
상인들 일부가 좌판을 정리하고 있다.
물건을 상자에 넣고있거나 주변 사람들과 잡담 하면서
파안대소의 행복한 표정을 짓고있다.
5일장은 사교의 장소이자
친구와 소통의 장소이기도 하다.
요즘 시골에서 “70세가 청년이다” 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인지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4 ~50대 젊은 중장년들 처럼 농사 일에 적극적이고 활동적이다.
농가에서 오이와 상추, 갓 등 채소를 직접 재배 하기도 한다.
야채가 잘 자라서 윤기가 날 때면
힘이 솟구친다.
5일장에 나가 팔 수있는 기대감때문이다.
단잠을 설치고 새벽같이 일어나
열무를 보자기에 싸기시작했다.
그동안 야채를 재배 하느라 정성을 쏟았다.
노력의 댓가는 보상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크게 보상을 바라지 않았다.
막걸리 한잔과 국밥 한 그릇 정도의 소득 이면 만족했다.
파장시간은 이별의 아쉬움을 재회를 소망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정신력으로 버티고있다.
나는 이러한데 마스크를 벗어버린 사람을 만나면 욕이 나온다.
기다림의 인고는 황금 알이 될 수도 있다.
사람들로 가득했던 5일장의 풍성 함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열무 몇 포기 앞에 두고 기다림이 지속되고 있다.
마지막 고객이 열무를 지켜보고 있다.
지나칠 듯하다가
돌아서서 열무를 지켜보고 있다.
정오의 열기로 열무가 시들 기도 했다.
할머니는 앞에 있는 열무 몇 단을
그냥 주고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할머니는 더이상 참지못하고 열무를 떨이로 넘겨주고 말았다.
자식을 키울때와 같이 애지중지해 재배한 열무이다.
하지만 장돌뱅이처럼 타고난 인내심에 한계가 있었다.
할머니는 주민들과 더불어사는 것이 생활화 되어있었다.
돈 몇 백 원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 사이가 멀어질 이유가 없었다.
자신이 좋으면 상대도 좋은 것이다.
그것이 상부 상조이다.
해넘이가 가까워지자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자신들이 재배한
열무를 사준 것만으로도
기쁘고 행복했다.
덩실 덩실 춤을 추고싶었다.
많이 팔리면 좋고
안팔려도 좋았다.
지역 주민들과 동화,
이것은 삼한시대 부터
우리 조상들이 실행해온 두레라고 감히 생각해 보고있다.
일종의 품앗이 라고 할 수도 있고
공동 노동 이라고도 할 수 있다.
농촌의 강한 협동성과 순수성이 강하게 묻어나고 있다.
옛 미풍양속을 이곳에서 찾아볼 수 있어서 여행이 행복했다.
내가 인도에 갔을 때 남루한 옷을 걸친 걸인같은 사람을 보았다.
행색이 해지고 남루해서 거지일 것이라고 넘겨짚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평범한 사람같지 않았다.
나의 판단은 오판이었다.
그는 거지가 아니라 심오한 철학자였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인생의 최고 선배이기도 했다.
종교의 다양성에서 때문에
흔하게 목격할 수 있는 사람 중의 한명이었다.
농촌에서 거주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농사 일에 최고 경험 자이고
생활에 달관한 사람들이다.
인도에서 목격한 승려와 같은
자신의 직업에 초월한 사람들이다.
조선시대는 보부상 들이 5일장의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차 떼기차량 상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들이 현대판 보부상 들인 것이다.
오일장을 오가며
물건을 파는 현대판 보부상 들이
곳곳에서 진을 치고있다가
지금은 철수하려고 하고 있다.
농촌은 작물 외 소득이 별로 없다.
그래서 환금작물을 재배하여 자식들의 교육비와
생활비로 충당한다.
수입이 작지만 욕심이 없어 이것에도 행복해 한다.
자식이 행여 집에 오지않을까
하고 기다리는 마음은
소년과 소녀들 처럼 아름답기도 하다.
막걸리 한잔에 슬픔을 잊고
넋두리 하면서 너털웃음을 짓는 모습은 천진난만하다.
열무를 판 돈은 안 주머니에 꾸겨넣는 모습은
천사와 같다.
장흥 5일장은 어촌 과도 가까워 해산물도 풍부하다.
회진에 가면 개매기도 구경할 수 있다.
저녁 노을로 바다물이 빨갛게 물들어질 때
바구니에 고기를 주어담는 아낙의 모습은 한폭의 그림같다.
해산 물로는 즉석에서 회가 가능한 광어나 우럭 등이 있고
운이 좋으면 문어도 잡을 수 있는 곳이다.
썰물 일때 갯벌에 드러나는 김 밭 위를 갈매기가 날아들고
밀물일 때 장정과 아낙이 김을 뜯는다.
인생은 어차피 “give and |take”다.
상인들은 주고 받는 것에서 이윤을 추구한다.
내가 덕을 배풀어야 덕을 돌려 받는을 수 있다는 것이 삶의 섭리다.
상인의 이윤 추구는 신뢰 속에서 발생한다.
한쪽이 이것을 파기하면 존재가 불가능하다.
이것은 인생살이고 사람사는 세상이 아닌가?
어디 선가에서
“뻥이요~” 하는 소리가 났다.
뻥튀기 가게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주막집도 빠질 수 없다.
막걸리 한 잔에
인생을 논하며 삶의 즐거움을 찾는 곳이
주막집이다.
소박한 웃음과 아낙들의 떠드는 소리가
밤을 지새도 시간이 부족할 것 같다.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도
할머들도 줄 지어 걸어가고 있다.
어디로 이동하고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의아해 바라보니 국밥집이었다.
허름한 한옥에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옛 부터 장터의 별미는 국밥이라고 했다.
펄펄 끓는 국물을 후후 불어가며 먹고 있는 모습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다.
예전에 목격 했던 모습 그대로다.
이러한 광경을 다시 목격할 수 있다니
난 행운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국밥집 잔치에 막걸리가 빠질 수 없다.
몇 사발체 마시고 있는 그릇을 내려놓고
두 그릇째 국밥을 들고 먹는 어르신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감돌고있다.
소박하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작은 것에도 만족하며 행복해하는 모습은
조선시대 어느 주막집 과도 같아보였다.
대장간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다.
농경이 시작되면서 철제농기구가 필수 화 되었다.
덩이 쇠를 불에 달아 농기구로 변형시키고
농민이 요구하는데로 안성 시킨다.
대장간은 애환이 가장 많이 담긴 곳이다.
농경사회에서 필요한 농기구나 생활 용품을 제작했던 곳으로
민족의 혼과 땀이 가장 많이 여린 곳이기때문이다.
요즘은 대부분 폐업하고 주변에서 볼 수 없는 곳인데
이곳에서 대장간을 목격할 수 있다니
인류사의 한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저녁 노을이 사라지고 땅거미가 지고있다.
오일장에서 소리없이 빠져 나오고있다.
승용차를 강변주차장에 미리 주차해두었기때문에 교통혼잡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 저년식사를 위해 식당을 찾고있다.
그런데 식당에서 한우고기를 판매하지않았다.
한우고기를 유통센터에서 사들고
식당으로 가야하는 구조라서
한우 등심을 사들고 식당으로 이동했다.
식당은 “만나식당”인 데
고기를 구워주고 음료수와 식비만 받았다.
오늘 오전에 도살한 소고기인 듯
육질이 부드럽고 육즘도 풍부하다.
소고기로 점심 겸 저녁으로 대신하고
장흥 읍에서 빠져나와
천관산 자연휴양림으로 이동하고 있다.
천관 산은 지리산, 내장 산, 월출산, 변 산과 함께 호남 5대 명산 중의 하나다.
해발고도가 723m 로 산 정상을 바위가 감싸고있어서
마치 기암 괴석의 전시장처럼 보였다.
사자 바위, 부처바위 등 모양에 따라 이름이 붙여진 바위들이
하늘로 향해 치솟아있는데 위세가 장엄하기그지없었다.
솟아있는 모양이 마치 황제의 면류관을 닮았다고 해서
천관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신라 김유신장군의 기녀 이었던 천관녀가 숨어살았다는 전설도 있어서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천관산은 지금까지 여러차례 산행한 경험이 있어서
대충 지리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천관산 자연휴양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장흥 군 관산 읍에서 837번 지방도로로 진입한 후
강진군 칠량면쪽으로 이동하다가 중간쯤에서 좌회전해
1차선 콘크리트 지방도로로 들어섰다.
이 도로는 농로로
차량 한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도로다.
앞에서 승용차나 트럭이 나타나면
서로 교차 하기도 버거왔다.
산과 언덕을 넘어 비탈진 경사면을 지나자
골짜기가 나타났다.
골짜기 속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멀리에 동백나무 군락지가 보였다.
동백꽃의 수려 함과
어른스러운 정숙미가 골짜기를 압도하고 있다.
동백꽃 한송이 한송이 마다
군계일 학 처럼
위풍당당하고 도도하게 느껴지고 있다.
산비탈에 겨우 승용차 한대가 지날 수 있는 1차선 도로가 개통되어있는 것을 보고
처음엔 불안했다.
경사면에서 돌멩이라도 떨어져 차량 파손이 발생할 것 같아서다.
그러나 휴양림이 가까워질수록 경관이 빼어났다.
수목이 하늘로 치솟고 있었기때문이다.
어느 곳에서도 목격할 수 없는 태고적 원시림이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오른쪽은 기암 괴석이 병풍처럼 펼쳐져있다.
마치 황제가 머리에 쓰고있는 면류관처럼 들쑥날쑥하고 있다.
주차장에 승용차를 세워두고 사무실에 들렀다.
방의 위치를 확인하기위해서다.
숙소는 숲속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동백나무 집이었다.
구조는 전국 자연휴양과 거의 대동소이 했으나 답답함이 덜했다.
방장산 자연휴양림에서 숙박할 때 최저 온도가 영하 8도까지 내려갔다.
밖이 어둡고 추워서 야간 산행을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다.
숙소의 좁은 공간에서 활동도 제한적 이었다.
이곳은 방장 산보다 위치가 남쪽 이어서 기온이 영상까지 올라갔다.
산책도 가능해서
취침하기 전 운동 겸 산책을 했다.
하늘이 서울보다 훨씬 높다.
별들도 나를 환영이라도 하는 듯
미소를 짓고있다.
초등학교시절
친구들과 하늘을 보며 별을 세던 시절이 생각났다.
마음 같아서는 밤새껏 산책길을 걷고싶다.
하지만 내일 천관산 산행이 기약되어있다.
다음날 기상해서 하늘을 바라보니 청명하다.
숲속의 다람쥐가 분주하게 활동하고 있다.
아침 끼니를 찾기위해서 일 것이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천관산 산행준비를 하고있다.
마누라와 함께 천관산 을 산행 하기로 했으나
내일 지리산 자연 휴양림 숙소 신청문제로 마누라는 숙소에 남게 되었다.
나 혼자서 천관산 산행에 나섰다.
천관산 산행때마다 장천 재 방향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가장 쉬운 코스고 늘 시도했던 습관성때문에
나도몰래 그쪽방향을 선호했다.
산행 초입에서 사무원의 도움을 받았다.
산행지도를 꺼내들고 초입과 능선 그리고
연대 봉 까지를 상세히 설명했다.
하산 코스 까지도 부연했다.
자신감을 얻은 나는 사무원이 설명한 코스대로 산행을 시작했다.
사무실 옆에서 부터 시작되는 산행코스는 40도 경사에 가까왔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우유 한 잔을 마셨던 것이
산행에 어려움을 주고 있었다.
중간에 잠시 호흡을 조정하고 산행을 다시 시작했다.
산행을 자주했기때문에 천황산 정도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급경사가 계속되고 있어서 걸음이 점점 늦어지고 있었다.
사무원이 연대봉 정상까지 왕복 3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
사무원이 말한 소요시간과 거의 맞아떨어졌기때문이다.
연대봉 정상에 도착했다.
시원한 남해의 해풍이 이마를 스쳤다.
바다 멀리 김 밭을 일구는 어부가 보이고
만선하여 풍어 가를 부르는 어부도 눈에 띄었다.
연대 봉에서 연대란 봉수대를 말한다.
봉수대는 일종의 통신기관이다.
유사시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로 신호를 보내 지원을 요청한 곳이다.
병영은 병마 절도사가 주재하고 있는 곳이고
수영은 수군 절도사가 주재하고 있는 곳이다.
조선시대는 관찰사가 병마 절도사와 수군 절도사를 겸했다.
이러한 통신신호체계는 전국적으로 분포돼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천관산 연대 봉에 있는 봉수 대다.
연대 봉에서 휴양림 방향쪽으로 하산하고 있는데
지리산 새석평전처럼 넓은 공간이 있었다.
그곳 억새 밭에 억새 들이 한들한들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처녀의 폴라티에 걸친 머플러가 바람에 날리는 것처럼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정상에서 200m 정도 하산 했는데 산행 길이 거의 산책코스나 다름없다.
환희 대를 경유 천관사와 자연휴양림방향으로 이동했다.
약간 경사진 곳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평이한 산책길이었다.
그리고 울창한 편백숲 속의 꼬불꼬불한
산책길이 나를 더욱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이곳은 편백숲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천관산 자연 휴양림의 특징이라면
단연 편백나무 숲과 동백나무 군락지일 것 같다.
또한 이곳에서 근무하는 직원들도 아주 친절했다.
치톤피드 향과 교합한 짙은 편백나무 향이 온 골짜기를 감돌아서
잠깐이나마 호흡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자연이 인간에게 베푼 혜택을 모두 누릴 수 있어서 특혜를 받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