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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resurrection)의 중요성에 대해
할렐루야! 좋으신 하나님 부활에 대해서 모든 분들과 같이 배우며 은혜를 나누게 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믿은 자들의 부활에 대해서 잘 배울 수 있게 모든 참가하시는 분들을 축복하시고 용기와 힘을 주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부활에 대해서 구약의 예언을 보고 그리고 예수님께서 직접 자신의 부활에 대한 말씀과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지켜본 증인들의 기록을 통해서 부활을 공부를 하려고 계획을 세우고 자료를 찾다 보니 아직도 부활에 대한 공부가 많이 진행이 되지 않은 부분이 보이고 부활에 대한 구약의 자료를 찾아보니 이도 잘 정리된 내용이 많지가 않습니다. 모든 믿는 이가 관심을 가지고 같이 기도하면서 잘 연구를 해야 됨이 보입니다. 그래서 이 공부가 쉽지가 않게 느끼어집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예수님께서 구약의 말씀이 자신에 대한 말씀이라고 하셨으니 부활에 대한 구약의 예언을 반드시 존재할 것이며 이를 같이 찾아보고 공부하는 것도 상당히 재미가 있으니라 믿어집니다. 그리고 부활과 영생의 관계도 또 잘 연구를 해야 됨을 봅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우리 믿는 사람의 부활에 대해서도 잘 공부를 해야 하고 과거에 믿던 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천국에 계실지 그리고 마지막 때 악인과 의인의 부활이 어떤 모습인지 같이 반드시 공부를 해 보아야 하는 부분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같이 생각하며 기도하며 배울 부활의 중요성을 잘 설명한 교수님들의 글을 몇 편을 소개합니다. 같이 읽어보시면서 부활의 중요성을 같이 느껴보시기 바라며 또 부활에 대한 공부에 열심을 가셔보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아침
부활의 중요성 - 권연경 교수님 말씀 중
역사적으로 기독교가 출발할 때 십자가로부터 출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복음서 뒷부분 사도행전을 읽어보시면 알지만 교회의 출발점은 부활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더불어서 흩어졌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하고 그 부활의 충격에 휩싸인 채로 교회가 시작이 된 거였죠. 그리고 초대교회가 예루살렘에 있는 청중들에게 전했던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예수께서 살아나셨다.’입니다.
그런데 이 부활이 우리에게 있어서는 참 의미 없는 가르침으로 전락한 것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이야기할 때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 죽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는 이 얘기가 우리 복음 속에 가장 중요한 중심으로 녹아들지 않으면 우리가 복음을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 지금 우리의 상황이 그런 것 아닌가 하는 것이죠.
우리는 누구냐? 우리는 하나님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 스스로 이 믿음을 상실해 나가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죠.
아마 많은 분들이 외우고 계실 텐데, 제가 앞의 운을 떼면 구절을 한 번 완성해 보실래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구원을 얻으리라) 뭘 믿고 뭘 시인해요? 잘 모르시죠? 그것은 안 외웠어요. 지금 여러분들 외우신 것이 로마서 10장 10절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10장 10절은 사실 내용은 안 나왔고요. 내용은 9절에 나와요. 9절은 그런데 우리가 또 안 외워요.
9절에 보면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우리가 뭘 시인하죠? 예수가 주님이라는 사실을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님이라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고백하죠. 하나님의 전권의 위임받고 이제는 온 세상의 주님으로 우리를 다스리신다는 고백이 예수님이 주시라는 고백이죠. 그 고백의 배후에는 부활에 대한 고백이 전제가 되어 있습니다.
또 그다음에 하나님이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 우리를 구원하는 믿음이 바로 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 믿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에 이 믿음이 세워지는 것이 우리의 생존 가능성의, 유일한 생존 가능성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부활의 신앙으로 무장해서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 한국 교회를 새로이 이끌어 가실 때 그 흐름이 지금과 같은 욕망의 춤사위가 아니라 생명의 행진이 될 수 있도록 이 믿음이 풍성한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권연경 교수(숭실대 기독교학과 교수)
부활의 주와 마리아
김재진 교수 - 부활을 믿는 것이 구원이다
성경에서 증언하는 구원은 뭐냐? 부활을 믿는 것이 구원이에요.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교회에 가면 저도 목회를 해서 개척교회를 했습니다만, 교인들이 부활을 믿는 사람.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은 알아요. 설교를 수없이 들어서. 그러나 부활을 믿는 사람은 지극히 적잖아요. 그런데 기독교는 뭐 때문에 생겼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에요.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 가장 약하게 강조되고 있는 것이 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에요. 이것이 없으면 모든 신학이 다 무너집니다. 성경도 무너지고 다 무너져요. 성경은 왜 생겼어요? 신학이 왜 생겼어요? 기독교가 왜 생겼어요? 기독교의 가장 큰 뿌리. 뿌리 끝까지 짚고 나가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에요. 그런데 문제는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16세기 종교개혁을 일으키면서 루터가 로마 가톨릭에 의해서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에 대해서 싸움이 나니까 루터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로마서 3장에 기점을 두기 시작했죠.
그러나 로마서를 강해를 보면, 인류 역사에 대 신학자를 치고 로마서 강해를 안 쓴 사람이 없어요. 루터도 강의를 썼고 칼뱅도 썼고 마르크스도 썼고 다 썼는데 로마서 강의는 2장서부터 11장까지를 한 번에 읽고 읽고 또 읽고 해야 하는데 이 앞부분만 읽으면 안 돼요. 로마서 강의의 맨 마지막에는 10장이 끝난 다음에 11장에서 모든 것이 끝나고 12장에서부터 뭐가 나오냐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나오는데 여기서부터 뒤에 나오는 이야기가 예수가 부활했다. 이 부활을 믿는 것이 구원이다.라고 이야기한 거예요.
그런데 지금까지 교회에서 개신교에서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강점을 줬거든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믿음으로 된다. 이 칭의론이 신학의 하나의 핵심적인 구조로 부각시켰던 거죠. 왜? 행위냐 뭐냐 이거를 가지고 야고보서냐, 뭐냐 이거를 가지고 싸우다 보니까. 그러나 정작 초대교회에서부터 가장 중요했던 신학적 주제는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이었던 거예요. 부활. 부활의 능력이에요.
부활의 주와 도마
십자가와 부활 교육의 균형 필요
우리의 부활절 교육은 십자가에 집중된 반면 부활에 대한 교육은 매우 미흡하다. 십자가에 대한 교육은 평상시에도 자주 실시되지만 사순절이 시작되면 더 본격화된다. 재의 수요일에서 6주 동안 특별 새벽 기도, 금식 기도, 수난 주일 사건 재현, 세족식, 전시회, 영화, 연극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며 십자가에 대한 교육이 실시된다.
그러나 막상 부활주일에는 음악이나 축하 행사로 대치되고, 부활의 중요성이나 부활이 오늘의 삶에 주는 의미와 적용에 대한 교육은 제대로 실시되지 않고 있다. 교육 자료나 프로그램들도 매우 빈약한 편이고, 거기에다 부활절이 끝나면 부활 교육도 끝나버린다.
부활은 다른 종교와 완전히 구별되는 기독교만의 독특한 사건이며, 부활과 함께 기독교가 시작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좌절하며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서 다시 모였고, 부활을 통해 이 세상을 넘어서는 새로운 세상을 만났고, 부활신앙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전했다. 부활하여 살아계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신앙은 모든 믿는 자에게 엄청난 감격과 기쁨이고, 희망과 용기의 원천이며, 절망과 고통의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고, 새 역사 창조의 근원이다.
이처럼 부활이 기독교의 핵심 사건이기 때문에 동방교회에서는 부활신앙에 대한 가르침을 매우 중요시했다. 그러나 서방교회로 넘어오면서 십자가가 중심이 되었다. 물론 십자가 없는 부활이 존재할 수 없고 십자가 신앙도 교육해야 하지만 지나치게 편중됨으로 균형을 잃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이로 인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의 감격과 기쁨을 제대로 누리며 못하는 것은 물론 부활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조차도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신앙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부활신앙이 있어야 세상과는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고, 세상과는 다른 가치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 몰트만(J. Moltmann)은 "부활신앙은 세상을 비웃을 수 있다"라고 한다.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은 세상의 권력이나 부를 부러워하고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이 귀한 것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안다. 마치 바울이 세상의 자랑거리를 배설물로 여길 수 있듯이 세상과는 다른 세계관과 다른 가치관을 가치고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부활하신 예수가 모든 악과 죄와 죽음을 이긴 승리자였던 것처럼 승리자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바울이 현재의 고난은 장차 올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며 감옥에서도 기뻐하였던 것처럼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부활의 빛에서 고난을 해석한다. 어떤 어려움도 일시적이라는 것을 알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자연스럽게 넘쳐나게 된다. 이런 부활신앙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십자가는 고행의 상징이나 자기부정이나 자기희생이라는 족쇄가 될 수 있고, 복음의 기쁨과 감격을 상실할 위험성이 있다. 부활신앙의 빛에서 십자가는 고난 자체가 아니라 영광으로 가는 길이며, 엄청난 은혜요 삶의 긍정과 감사의 근거가 된다.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부활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가르쳐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과 의미에 대해 공부하고, 부활의 능력을 자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그리고 부활한 예수께서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찾고 함께 동참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 이를 위한 교육시간을 마련하고 다양한 자료들과 프로그램들도 개발하고 가르쳐야 한다.
박화경 교수(한일장신대학교 신학대학원)
부활의 주
제임스 보이스(James M. Boice)의 부활
부활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것은 기독교 시대의 최초의 순간들로부터도 찾아볼 수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던 남자들과 여자들은 그를 믿었으나 그가 붙잡혀 십자가에서 처형되자 그 믿음을 모두 땅에 묻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사흘 안에, 즉 부활이 있은 후 그들의 믿음은 다시 싹을 틔우고 그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부활하신 구세주의 복음을 세상에 전파하러 나섰다.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가 자신이 누구라고 주장하셨던 바로 그 존재이심과 또 그가 이 땅에 오시어 성취하시고자 하셨던 바로 그것을 이루셨음을 증거하였다. 복음 전도자 토레이(Reuben A. Torrey)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리켜 "기독교가 증거하는 것들을 굳게 지켜주는 견고한 요새요, 불신자들을 참패시킨 것"이라고 하였다. 부활은 하나의 역사적 토대로서 기독교의 다른 모든 교리들이 이것을 기초로 하여 세워지며 이것 앞에서 모든 의심은 비틀거리게 된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믿었던 대로 그리고 성경이 주장하는 대로 나사렛의 예수께서 실제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은 난공불락의 토대 위에 서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것이 서 있으면 다른 교리들도 서 있고, 반대로 부활의 교리가 넘어지면 다른 진리들도 넘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14-18절 말씀을 기록한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14-18절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제임스 보이스, 지상우 역, 「평신도를 위한 조직신학」, 크리스천 다이제이스트, 1990, pp.454-456
4분의 교수님의 글을 통해서 부활에 대한 이해와 부활신앙이 얼마나 중요한지 저도 잘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성경을 공부하는 것이 태평양의 바다를 연구하는 것과 같이 넓고 깊습니다. 제가 성령을 받고 전도를 하면서 성경 말씀 사도행전 1장 8절과 2장 38절의 의미를 나중에 깨닫게 되었고, 그리고 그로부터 또 십수 년이 지나서 로마서를 읽으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음을 믿는 부분이 보여서 믿게 되었고, 성령을 받고 복음만 잘 전하면 되지 하면서 이 삶이 가장 복된 삶인 줄 알았는데 선한 삶에 대한 부분도 역시 중요함이 나중에 보였습니다. 이렇게 믿고 전하면서 약 30년이 되었지만 종말에 대한 부분(요한계시록의 공부)와 부활에 대한 공부는 이제 겨우 시작하는 단계로 이렇게 같이 배우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구약의 예언을 먼저 공부하고 소개를 하려고 했는데, 하루 종일 자료를 검색을 해도 잘 정리가 되지 않았고 오늘 또 부활에 대한 부분을 인터넷으로 찾아보다가 이렇게 부활의 중요성에 대한 좋은 글들을 보면서 이 부분이 더 먼저 이해가 되어야겠다고 느껴져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함께 하나님의 인도와 깨닫게 해주심을 사모하며 기도하고 연구하다 보면, 곧 부활에 대한 많은 이해와 함께 부활에 대한 신앙을 올바로 가지게 되어서 우리의 신앙생활이 더욱 풍성해질 것으로 믿습니다. 꼭 기도해 주시기 부탁을 드리며 자주 오셔서 새로운 내용을 보시면서 함께 생각하며 배울 것을 권합니다.
늘 승리하시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기뻐하며 인내하시면서 더욱 깊은 진리의 세계로 같이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