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사는 있다.
글 이 순 복
새벽에 날씨가 개였다. 천사들은 지금 작업을 시작하는 것일까? 비 오던 하늘을 개이게 하고 활동을 시작하는 것일까? 별들은 천사가 있다고 증명하기 위해서 나타나는 것일까? 별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그리고 열...백...천... 그렇게 보이더니 서서히 빛을 잃어갔다. 여명이 된 탓이다.
이때 대전역 대합실로 스며드는 여인. 여인은 조심스럽게 대합실로 들어와 헌 옷가지나 쓰레기같이 팽개쳐진 태심에게 다가갔다. 천사일까? 아니 태심이 천사의 화신일까? 예사스런 일이 아니다. 태심이나 여인 중, 어느 하나는 천사일까? 아무튼 그녀는 지난밤 한잠도 자지 못하고 천사의 마음이 되어 여기 태심의 곁에 날아 온 것이다.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그녀는 반미치광이가 되어 허둥대는 태심을 보았다. 태심의 모습은 너무나도 애처로웠다. 그래서 잠들 수 없었다. 그녀는 뜬눈으로 새벽을 기다리다 헐레벌떡 뛰어 왔다. 비장한 결심으로 태심을 찾아온 것이다.
“그래, 그녀가 틀림없다. 아무리 세월이 흘렀지만 틀림없어. 억수 엄마야. 내가 너무 욕심을 가지면 안 돼. 모자를 만나게 해 주자.”
그녀는 대합실에서 가게를 보는 아주머니다. 그녀는 태 산부인과가 망하기 전에는 간호사였다. 그런데 태 원장이 낙태수술을 잘못하여 감옥을 가니, 그녀도 직업이 바뀌었다.
‘태 원장 모신 뒤끝이 이렇다니...!’
그녀는 탄식했다. 퇴직금 한 푼 없이 세 명의 아이 엄마가 되어있었다.
‘염라대왕 같은 태 원장. 천사표 간호사.’
알고 보면 그녀도 공범자다. 부정한 일도 태 원장이 시키면 했다. 허드레 일에서부터 사람목숨을 앗은 일까지 무심코 했다.
‘원장과 간호사는 다 그런 거지. 낙태수술은 그 자체가 나라 일이 아닌가.’
지금은 아기를 셋만 낳아도 크게 대우를 받는 세상이지만, 그 때는 무조건 둘만 낳자던 세상이었다. 정관수술은 정부에서 공짜로 해주고 장려했다. 낙태수술은 공공연히 봐주는 세상이었다. 인구폭발로 먹고살기 힘든 세상이라 그랬다. 하여서 그녀는 일말의 양심에 가책도 없이 태 원장의 허드레 일을 도와주었다.
“간호원! 이 핏덩이 거즈에 싸서 버려!”
“예, 원장님.”
간호사는 의심 없이 거즈에 생명을 싸서 버렸다. 원장은 멀쩡하게 살아있는 아이도 버리라했다. 죽이라 명령한 것이다. 어떤 애는 굶겨 죽여 쓰레기통에 버린 일도 있었다. 그런데 개중에는 목숨이 질겨서 죽지 않고 죽일 수도 없는 경우가 발생하였다. 그 때마다 간호사는 눈물을 머금고 홀어머니를 설득하여 그 아기를 데려다 길러야 했다. 그런 것이 하나, 둘, 세 식구가 되었다. 결국 간호사는 아기들 때문에 혼인마저 포기하고 독신으로 살게 된 순진한 천사였다.
그런 업보 때문인지, 그녀는 외짝인생을 살았고, 살인마 태 원장은 감옥으로 갔다. 그리고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생령을 많이 죽인 죄과를 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돌려 줘야지. 아기를 돌려 줘야지. 속죄하는 마음으로 돌려 줘야지.’
그녀는 아주 조심스럽게 태심을 깨웠다.
“이봐요. 이보라고... 일어나!”
“아주머니는...?”
“할 말이 있으니 일어나!”
태심이 부스스한 머리를 매만지며 일어나자 그녀는 태심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천사가 세상을 돌다가 낙오된 자를 일으켜 세워 새 길로 인도하는 모습이 이런 모습일까? 아무튼 불쌍한 사람을 구원하는 역사가 시도되었다.
“당신, 날 기억하겠지.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지만 날 잊지 못했을 거야.”
그녀는 천사의 목소리가 되어 태심에게 말했다.
“누구시드라. 누구...?”
“당신이 찾는 태 산부인과...”
“그래요. 맞았어요. 태 산부인과 간호사 맞지요. 하나님, 부처님!”
태심은 갑자기 광기가 도진 듯 헐떡거리며 말했다.
“천천히 말해요. 나 도망가지 않아요.”
“우리아기 찾을 수 있어요? 만날 수 있을까요?”
“그래요. 만날 수 있어요. 우리 억수 잘 있어요.”
“억수... 억수가 우리아기이름이요?”
“그래요. 억수가 당신 아들이름이요. 매사를 억수로 잘하라고 그리 지었어요. 이제 진정해요. 곧 만날 수 있으니까.”
“억수... 억수...흐흐흐흑”
“울지 말아요. 웃으며 아들을 만나 봅시다. 알겠지요.”
천사표 아주머니는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으나 천사표를 동경했던 태심은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 그렇지만 거리는 갑자기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내려온 대전행 첫 열차가 도착한 때문이다.
삭풍이 휘몰아 쳤다. 대전역 광장은 맵고 차가운 한파 때문에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태심은 열차에서 내린 여행객을 따라 광장으로 나오더니 뜀박질했다. 그런데 그녀가 뛰는 뜀박질이 웬일인지 어설퍼 보였다. 마치 큰일을 보려고 가는 아주머니 같았다. 어찌 보면 젊은 여인의 몸이 저럴 수가 있을까 싶게 절구통이다. 또 어찌 보면 임신한 여인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날씨가 원체 추운지라 외투와 목도리 등속으로 몸을 두텁게 쌓더니 그랬다.
“흐흐흥 흐흐흥”
그녀는 대전역에서 인동과 원동 그리고 부사동 충무체육관 부근을 왕래하며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비를 맞고 괴성을 지르며 찾았다. 울부짖으며 찾고 있었다. 비바람 때문에 얼굴이 우거지상이다. 그녀의 형편을 자세히 보면 정상인이라 할 수 없게 보였다. 이성 한 토막마저 던져버린 채, 방황하고 있었다.
“태 산부인과. 태 산부인과”
태심은 부르짖었다. 염불하듯이 쉴 새 없이 부르짖었다.
“태 산부인과, 태 산부인과.”
허벅지를 꼬집으며 정신을 가다듬고 태 산부인과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태 산부인과가 어디 있습니까? 누가 태 산부인과를 아시나요? 태 산부인과가 어디로 갔어요?”
태심은 열병환자 마냥 부르짖었다. 평시에는 피했던 곳. 20년을 단 한 번도 바로 보지 않던 곳. 한 마음으로 피하고 외면한 거리. 죽고 싶도록 수치심을 심어 준 거리. 자존심을 접은 거리. 여인이기를 포기한 거리. 어머니를 원망하고 아버지를 저주한 거리. 음지에서 살겠다고 각오한 거리였다.
그녀는 대전에 올적마다 절대로 인동 땅은 밟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한사코 비를 맞으면서도 강추위를 견디며 이 거리에 있었던 태 산부인과를 찾아 헤맸다.
“으흐흐흐”
태심의 울부짖음은 폭풍우 속에 묻히면서도 계속되었다. 그녀의 한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 갔다.
태심이 태산부인과를 찾는 것은 20 년 전에 버렸던 아이를 찾기 위해서다.
‘왜? 이제 와서 아이를 찾으려 하는 것일까?’
이 문제는 간단치 않다. 태심이 철없이 연애하고, 임신하고, 애 낳아 단순명료하게 아이를 버렸다. 그리고 독신녀로 살아다가 중년인과 그 아이를 만나 정을 붙였다. 그런데 피치 못할 사건으로 이혼을 했다. 이혼은 했으나 아주 쉽게 아이의 양육권을 가졌다. 그런데 이혼한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자 보험금이 문제가 되어 아이의 양육권을 빼앗기게 되었다.
“아이는 할머니를 주어야 한다.”
검정색 법복을 입은 냉정한 법관의 매몰찬 심판이었다.
“안되오. 안 됩니다. 저 아이는 제 아이예요. 저 아이는 저의 생명과 같습니다. 나는 저 아이를 사랑합니다. 으흐흐흑”
태심은 방청객이 모두 떠나가고 없는 빈자리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한 번 내린 심판이 번복될 수 없었다. 그녀가 흘린 눈물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도 없었다. 무정한 법정이요, 무정한 세상이었다.
결국 태심은 재판결과 아이를 빼앗겼다. 한 번 빼앗긴 아이는 찾을 수 없었다.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그 후 태심은 한동안 방황했다. 부산을 가고 서울을 갔다. 제주도를 가고 괌에도 가고 발리에도 갔다. 그녀의 방황은 계속 되었다. 방황을 여행으로 잠재우려 하였으나 허사였다.
‘이러다가 미쳐버리지 않을까?’
아무런 약효가 없는 여행인 줄 알면서도 그녀는 떠나야 했다. 하지만 방황의 끈을 놓지 못했다. 아이에게 쏟았던 열정이 가라앉아 방황했다.
‘정이란 무엇이냐? 혈육의 정도 아닌 기른 정 뿐인데...’
태심이 아이에게 집착한 것은 원인이 있었다. 철없던 시절 버린 아이 때문이다. 그러니까 18세 청춘시절. 한 남자를 사랑을 했다.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생겼다. 불행한 임신이었다. 그로인해 달라진 인생. 이것이 태심을 만든 조건이 부여된 것이다. 그녀를 불행하게 동기를 부여한 것이다. 그런 아픔을 딛고 일어섰기에 마음 한구석에 아이를 기르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그래서 남편과 이혼하면서도 아이양육권을 가졌는데 재판결과는 비통했다.
‘내 전부를 쏟아 주려 했는데... 깊은 애정을 쏟았는데... 슬픔만 남기고 말았구나! 상처만 남겼구나! 아기를 빼앗기고 말았구나!’
눈을 감아도, 꿈에도 빼앗긴 아이 생각뿐이었다. 날이 갈수록 아이에 대한 집착이 더해 갔다. 그녀는 아이를 더욱 애타게 그리워하게 되었다.
“일제야! 일제야! 한재야! 한재야!”
태심은 자다가도 일제를 불렀다. 한재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길을 걷다가도 일제를 불렀다. 일제는 태심이 길렀던 전남편 아이다. 그녀가 일제를 만나게 된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할 꿈 속 같은 아리송한 가운데 일어난 일이었다.
태심이 서른아홉 살 되던 가을. 코스모스가 살랑살랑 고갯짓을 하고 들국화가 한가로이 피어 국향을 마음껏 토하는 시절. 이런 때면 어김없이 소쩍새는 밤을 울어 지새우는 법이 아니던가. 사십을 바라보는 시집 못간 노처녀의 히스테리는 이럴 때에 발작하고도 남았다. 태심은 견디다 못해 여행길로 나섰다.
‘여행이 약이 되리라. 생의 전환점을 만들리라.’
부여에서 서천으로 서천에서 다시 남쪽으로 내려갔다. 서해안 대역사가 벌어지고 있는 군장간척지를 구경하고 새만금 간척지를 보고 더 남쪽으로 내려가 월출산을 구경하고 고흥반도로, 그리고 소록도로 발길을 놓았다.
소록도ㅡ
말하여 천형의 땅이다. 한센시 병에 걸린 이들이 고향산천 부모형제를 등지고 이곳에서 산다. 병을 치료한다는 명분은 있으나 인연들을 끊고 감옥살이 하듯 산다. 친구도 직장도 다 버리고 사회와 격리되어 산다. 태생적인 천륜을 등지고, 그들과 발길을 끊고, 환자끼리 인연을 맺고, 교우를 맺고, 새 삶을 사는 곳이다. 봄이 오면 한하운 시인의 보리피리가 생각나는 곳이다. 작은 영토. 작은 나라! 소록도라는 나병공화국에서 요양이라는 이름을 달고 살아가는 곳이다.
한센시병은 조기발견하면 음성화하여 재가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영원히 소록도에서 살아야 한다. 죽음이 그를 천국에서 부를 때까지 소록도에서 지내야 하는 것이다.
태심은 그런 무시무시한 소록도를 찾았다. 사실 필자의 표현은 절망적인 사람들을 위주로 표현한 것이지만 이와는 반대로 소록도에는 희망적인 부분도 반 이상 존재한다.
우리 눈에 드러난 현실의 소록도는 글자가 말해 주듯이 작은 사슴 섬이란 예쁜 이름을 가진 섬이다. 잔잔한 남해바다. 그는 거금도 라는 엄마 사슴을 지척에 바라보며 도양읍 봉암리를 향해 어리광을 부린다. 마치 어린 꽃사슴이 제 어미의 젖을 빨고자 응석을 부리듯 한다. 고흥반도가 나누어 낸 예쁜 섬이다. 거기에 마늘과 양파, 양돈 양계를 하면서 작은 공화국을 만들고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고흥반도를 찾는 사람들에게 태평양이 만들어 낸 천혜의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관광명소이다.
녹동 항에서 10분 남짓 철선을 타고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2000년대부터는 다리가 놓여서 철선이 없어졌다. 100년 전부터 가꾸어온 숲과 나무들이 반긴다. 병원과 공원의 아름다움은 어쩜 한센시병이 날아오다가 놀라 기절하고 달아날 정도로 잘 꾸며져 있다.
태심은 관광객들과 함께 오솔길을 따라 소록도 공원이며 동물원을 구경했다. 공원 한복판의 救懶塔은 태심의 가슴을 격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황금편백의 아름다움은 눈이 부셨다. 종려나무를 위시한 이름 모를 남국에서 옮겨온 나무들도 눈길을 끌었다.
소록도 관광을 마치고 태심이 녹동 항에 돌아온 것은 오후 5시였다. 해가 짧은 가을철이라 녹동 항에는 어둠이 깃들고 있었다.
‘어디서 자면 어떠랴. 되는 대로 하루 밤 쉬어가는 것도 운치가 있겠지.’
태심은 녹동 항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하루 밤을 쉬어가고 싶었다. 인구 2만의 녹동 항은 만만히 볼 곳이 아니었다. 호텔에 버금가는 장급 여관도 많았다. 거금도 완도, 봉래도 등등 여러 섬에서 생산되는 해산물이 집산되는 곳이라서 자연 사람의 왕래가 잦은 탓이리라.
‘천하장’
태심은 부두가를 한동안 거닐다가 군산횟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이름이 좋아서 천하장에 들렸다. 주인에게 셈을 치르고 바다 쪽으로 창이 난 방을 얻었다. 밝은 달, 파도소리. 갈매기 쉬는 포구. 통통통 꼬막선 발동기 소리. 소녀의 꿈같은 녹동 항의 밤이다. 바다 저 끝으로 달빛 어려 파도 속에서 넘실거리는 거금도... 일찍이 밀감을 재배했다는 그 곳. 마치 환상의 섬처럼 느껴졌다. 태심은 가슴 설레는 밤을 보내고 새벽 일찍 부두가로 나갔다. 등대가 있는 부두 끝까지 거닐어 보았다. 소금 냄새가 짭짜름하게 풍겨왔다. 갈매기는 부산을 떨고 난다. 육지 여자 태심을 녹동 포구는 파도 소리로 반주하며 감싸주었다. 환경 탓인지 번민과 갈등이 살포시 작은 흥분으로 다가 왔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싫지 않는 인상의 중년인이다. 키가 후리후리하게 컸다.
“모르겠는데요.”
태심은 사실대로 말했다.
“그래요. 어제 함께 소록도 구경을 했는데요. 공원도...”
중년인은 그렇게 말했다.
“그래요. 미안해요. 저는 기억하지 못 했어요.”
태심은 미소와 함께 사과의 말을 보냈다.
“아니요. 아닙니다요. 당연히 기억하시지 못 할 겁니다. 하하하하.”
“호호호호”
태심도 중년인을 따라 웃어 주었다.
“제가 모닝커피를 사고 싶어요?”
중년인은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태심의 의중을 살폈다.
“좋아요.”
“감사합니다.”
중년인은 태심을 조심스럽게 인도하여 갈매기 다방으로 들어갔다.
‘꾸륵 꾸르르륵’
갈매기가 울어주는 녹동 항. 거기 중년인이 서 있었다. 태심 곁에서 녹슨 철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태심은 갈매기 울음 속에서 꿈에도 생각지 못한 사랑의 찬가를 부르게 되었다.
'인연이란 도둑처럼 맺어지는 것일까? 무상한 세월 속에 사랑도 오는 것일까?‘ 태심이 한사코 혼인을 외면하고 홀아비를 공양하며 독신녀로 살겠다고 다짐을 했는데 녹슨 철창은 열리고 있었다.
.혼인은 급진전하였다. 결혼이 이토록 급하게 성사된 것은 아들 일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제는 중년인이 일본에서 왜색바람을 섞어서 얻은 아들이다.
“일제(日濟, 日製)”
아이의 이름은 일본에서 건져 올렸다는 뜻도 있지만 일본에서 만든 제품이란 뜻도 담고 있었다.
“저는 아이를 낳을 수 없어요. 그런 나에게 일제를 주신다니 정말 고마워요.”
태심이 중년인과 혼인을 결심하면서 한 말이다. 그녀는 아이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아픔이 있었다. 아주 특별한 추억을 간직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자신의 배가 아프지 않고도 자식이 생겼다. 그것도 아들이. 일본에서 건져온 자식이. 길러서 전혀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아이. 태심이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였다.
‘동생 호적에 실은 아이 일제.’
일제는 중년인의 여동생 호적에서 살고 있었다. 애비가 가정을 만들지 못했기에 그랬다.
‘사망신고와 출생신고’
호적법과는 상관없이 쉽고 용이하게 일을 꾸몄다. 앞뒤를 재지 않고 맞춘 것이다. 허나 아이에게는 전혀 문제가 없게 하였다. 소위 편법으로 호적을 짜깁기 한 것이다. 일제를 사망처리 하고, 한재(韓在)라는 이름으로 태심과 중년인이 부모가 된 새 호적을 만들었다. 태심과 중년인이 혼인신고를 해서 아이를 입적시킨 것이다. 신통 망통하게도 새 가정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일제는 한재라는 이름으로 아들이 되었다. 한재는 새로운 가정의 아주 깨끗하고 멀쩡한 호적위에 장자로 기록되었다.
충남 논산군 00동 3번지 부 고중년. 모 방태심. 자 고한재의 호적인 것이다.
참 복 받을 호적이요, 어디 하나 흠이 없는, 하자가 없는 호적이다. 그런데 세상이 그렇게 단순명료하면 얼마나 좋을까? 죄라고 하는 놈이, 하자(흠)라고 하는 놈이 생명력이 없이, 그 시기를 지나면, 그 장소만 모면하면, 연기처럼 바람처럼 사라져버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헌데 옛날 속담에 죄는 지은대로 가고, 공은 들인 대로 간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그랬을까? 중년인과 혼인해서 살아보니 이것은 사람 사는 것이 아니었다. 태심이 생각하는 가정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죄업의 세상. 죄악을 둘러쓰고 벌을 받는 느낌 이었다. 혼인신고, 호적정리, 결혼식, 신혼여행. 이런 것이 말짱 도루묵이었다. 그렁저렁 세월은 3년이 흘러갔지만...
“한재 너만 빼어놓고 다 도둑놈덜이다.”
태심은 이를 갈면서 복장의 말을 토했다. 진솔한 여인의 길을 살려고 노력했으나 중년인은 노름꾼에 사기꾼이었다. 직업을 가지려고 하지 않았다. 고작 한다는 것이 일본을 드나들며 도꼬다이 짓이나 하는 놈팽이다.
‘할 수 없지. 내 복이 그런 걸... 내가 죄를 많이 지어서 그런 걸...’
태심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을 자제하고 인내했다.
“한재를 잘 기르면 되겠지.”
그녀의 유일한 희망은 한재였다. 남편이나 시댁일은 가급적 외면하려고 애를 썼다. 특히 하루가 멀다 않고 비위를 긁어대는 80객 시어머니는 마귀처럼 느껴졌다.
‘늙은 년이 살면 얼마나 살겠어.’
태심은 그렇게 위로하며 눈물을 삼키며 견뎌냈다.
‘돈 한 푼도 벌지 못한 그 잘난 아들을 가지고 떵떵거리다니...’
태심은 남편이 일본에서 나온 지 이틀 만에 시어머니에게 불려갔다. 불려간 남편은 함흥차사와 같았다. 꿩 구어 먹은 소식이다. 전화도 없다. 하지만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다. 시어머니의 유별난 성격을 욕할 뿐이었다. 그러나 인내에도 한도가 있는 법. 한 달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가자. 늬 할머니 댁으로 가 보자.”
태심은 한재와 함께 시댁을 찾아갔다. 시댁은 장항 변두리 들 가운데 있었다. 초가집을 스레트를 올린 한옥이었다. 대나무를 심어서 대숲 속에 갇힌 울창한 집. 개도 기르지 않아 절간 같은 집. 도둑님이 온데도 물 한 사발 밖에는 얻을 것이 없는 집. 그래서 사립문도 만들 필요가 없는 집이었다.
“다 왔다. 다 왔어.”
태심은 육고기 여러 근 떠서 들고 쫄랑거리는 여섯 살 박이 한재를 앞세우고 시댁을 들어섰다. 시댁은 부엌문이 열려 있었다. 태심은 갑자기 목이 말라 한재를 밖에 두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물 한잔 먹고 보자.’
물을 먹으려고 그릇을 찾는데 거북한 숨소리가 들렸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 대낮인데 누가 누구와 저럴까?’
태심은 먹고 싶다던 물을 먹을 생각도 못하고 불이 나게 부엌을 튀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한재야, 한재야.”
그런데 한재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 것도 모르는 한재는 마당가에서 잠자리를 잡고 있었다. 방안의 일이 두려워 밖에서 한재와 서성이는데 남편이 나오고 시어머니가 나오더니
“왔으면 왔다고 인기척을 해야 제. 올 거라고 연락을 하든가.”
80객 시어머니는 오만상을 짊어지고 괜한 투정을 놓았다.
“이놈아! 늬 잘난 여편네가 왔으니 따라 가거라. 가.”
시어머니가 부여에서 장항까지 찾아온 며느리에게 한 말이다.
“못 올 곳을 와서 미안해요. 못 들을 것을 들어서 미안해요. 잘 살아요. 나는 가요. 한재랑 나는 간단 말이요.”
태심은 속맘을 다 풀어 놓으려다가 애써 진정시키고 음산한 대숲을 벗어났다. 해가 서산에 노루꼬리 보다 적게 남았다.
‘짐승도 못할 짓을 모자가 하고 들켜서 부린 심술. 죄가 두려워서 딴청을 부리는 억지. 어미와 자식 놈이 붙었는데 그 지붕 아래서 내가 잘 수 있겠는가!’
태심은 눈물을 뿌리고 탄식을 하며 시댁을 나왔다. 그리고 장항읍 여관에서 몸을 누였다. 잠이 올 턱이 있겠는가. 불면의 밤을 지키는데 남편은 술이 만취가 되어 여관을 찾아왔다.
“왜 연락도 없이 나타났어? 낮에는 엄마 몸을 주물러 드렸어.”
”어머니 몸을 주무르는데 왜 x하는 소리가 날까? 미친 놈. 꺼져. 꺼지라고.“
“알것다. 이 잘난 년아!”
술을 빙자하여 횡설수설하다 욕 한 개를 태심에게 던지고 사라졌다.
‘하늘 두려워 할 줄 모르는 족속. 낯짝에 철판을 깐 족속. 짐승보다 더 못한 족속. 아들과 어미가 붙고 사는 족속. 인륜 도덕을 모르는 원시인.’
태심이 그린 시댁의 모습이다.
‘사진도 녹음도 하지 못한 심증뿐인 불윤. 현장 확인이 없는, 물증 없는 원시인의 작태. 그 괴상한 소리는 x하는 소리.’
태심은 고심했다. 이 일을 어떻게 규정해야 좋을지, 어떻게 판단해야 좋을지 결정짓지 못했다.
‘원시인 어미와 아들이다. 생각할수록 아리송한 모자간.’
시어머니는 일찍 남편과 사별했다. 그래서 홀로 중년인과 유복녀를 길렀다. 그녀는 소년과부로 살았다. 소년과부는 너무도 천하게 자라 무지했기에 천륜을 어기는 것이 큰 죄라는 사실에 둔감했다. 아들이 사춘기가 되자 남자로 만들어 살았다. 처음에는 죄의식 같은 것이 다소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자 재미있다는 단순개념으로 살았다. 그리고 그것이 행복했다. 정글의 법칙으로 사니 편했다. 모자는 밤이 즐거웠다. 그런 세월이 30 년이었다. 그런데 아들은 늙은 어미가 싫어졌다. 그러나 결혼은 생각해 보지 못했다. 생활이 너무 어려워서 그랬다. 그러다 외지로 돌게 되었다. 대처를 가고, 일본을 갔다. 특히 일본에서는 수입은 적었지만 섹스에 대한 갈망은 컸다. 그럴 때면 어미생각이 간절했다. 그 때 연인을 만났다. 그것도 백치에 가까운 나이 든 여인을 만났다. 거기서 아이가 생겼다.
‘무정한 놈. 일본에서 아들을 낳아와’
중년인의 어미는 손자가 반갑지 않았다. 며느리도 싫었다. 자신의 늙어짐을 크게 비관했다. 그러나 아들의 비위를 건드릴 수 없었다. 하지만 중년인은 가정을 이룰만한 능력이 없어서 어미와 관계를 청산하지 못했다.
중년인의 아이를 낳아 준 여인은 나고야 식당종업원이다. 이들은 경제적으로 궁핍하여 여관에서 하룻밤 정사도 갖지 못했다. 그래도 아이는 생기고 태어났다. 상말로 양깔보 외상 x에서 근근히 태어난 것이다. 아이 어미는 49세로 남편 빚에 나고야로 팔려온 백치였다.
‘마흔 여섯에도 결혼을 못한 중년인’
어미의 노리개로 살다가 우연히 태심을 만나 가까스로 결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미와 맺은 끈을 놓지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나 이 일로 결혼은 파경에 이르렀다.
‘불행만을 짊어지고 사는 사람들.’
태심은 새벽차를 타고 장항을 벗어나 부여로 향했다.
‘어서 가자. 더러운 곳을 벗어나자. 그리고 한재 하나만 보고 살자. 이혼이다. 이혼. 짐승들과는 살 수 없어. 여기서 종지부를 끊고 이혼을 해야 한다.’
태심이 그렇게 장항을 떠나 부여에 온지 17일째 되던 날 황혼이었다. 남편이 찾아왔다.
“내가 한재 데려 간다.”
그는 다짜고짜 아이를 데리고 사라졌다. 태심이 아이를 깊게 사랑한 것을 알고 그리한 것이다.
‘비겁한 인간들,’
태심은 일주일을 참다가 한재를 찾아 나섰다. 한재는 장항 할머니 댁에 있었다. 목욕도 시키지 않고 짐승처럼 기르고 있었다. 감기에 걸려 얼굴이 반쪽이다. 옷은 세탁을 하지 않아 실오라기가 보이지 않게 오염되었다.
“가자. 한재야. 가자. 엄마 따라가자.”
“엄마, 엉엉”
태심은 시댁식구들을 의식하지 않고 아이를 데려왔다. 그리고 편지를 썼다.
‘아이는 제가 기를 테니, 훌륭하게 기를 테니, 합의해 주세요. 합의이혼을 해 주세요. 제 입에서 아주 험한 말이 나오기 전에 합의이혼을 해 주세요.’
중년인과 모자도 원래 순박한 인간이었던 모양이다. 한재를 위해서 흔쾌히 합의이혼에 동의했다. 태심은 악귀들과 거래를 청산하고 한동안 행복했다. 보험설계사로 둘만의 행복한 세상을 가꾸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모처럼 태심에게 행복이란 단어를 떠 올려도 좋을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엄마! 이것은 뭐야?”
“이것은 불자동차야. 불이나면 소방서 아저씨들이 불을 꺼 주는 불자동차야.”
“엄마! 파란 불이 켜지면 달려가는 거지.”
“달리지 않아도 돼. 빨간불에는 멈추고 파란불이 켜지면 건널목을 건너는 거야.”
“알았어. 엄마.”
태심은 한재를 데리고 유치원 공부를 하고 있었다.
“따르릉 따르릉”
“엄마 전화 왔어요. 전화.”
한재는 공부를 하다 말고 태심에게 전화기를 건네주었다.
“여보세요.”
“... ... ....”
“네 그렇습니다. 뭐라고요. 끌끌끌”
태심은 혀를 차면서 전화기를 방바닥에 떨어뜨렸다.
‘불쌍한 사람, 참으로 불쌍한 사람.’
태임의 전 남편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연락이다. 태심이 보험설계사를 하면서 생명보험을 들어놓은 때문이다. 태심은 한재를 데리고 망자가 있는 병원으로, 경찰서로, 보험회사로 가보았다. 그런데 그의 죽음은 그냥 죽음이 아니요, 돈이 되는 죽음이었다. 하지만 그 돈은 혼란만을 가중시킨 불행을 부르는 돈이었다. 그 돈은 불연속선 같은 것. 한랭전선과 온난전선이 부딪치고 우박이 오고 벼락이 떨어지는 폭풍우보다 더한 세월을 몰고왔다.
태심에게 닥쳐온 가장 큰 변동은 한재를 빼앗긴 사건이다. 시어머니와 유복녀 남편의 합작품이었다. 돈을 탐내서 일으킨 절륜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실수는 태심에게 있었다. 남의 아이를 동의서 한 장 없이 결혼이라는 사건을 빌미로 자신의 호적에 올린 실수. 남편과 이혼이 성립되자 아이의 친권자가 새로 등장할 수 있다는 법리적 문제를 짚지 못한 실수. 그리고 아이의 아버지가 사망하므로 발생한 상속 문제. 돈과 연결된 법적투쟁이었다.
‘아이의 장래를 보장한다고 외치는 돈을 얻기 위한 악한 인간들’
이들의 법정투쟁은 이전구투를 방불케 했다. 변호사를 사고 일심을 붙고, 이심을 붙었다. 그 동안 한재는 그의 고모 댁에서 살고 있었다. 만약 한재의 아버지가 돈과 상관없이 사망했다면 태심의 따뜻한 애정 속에서 구김새 없이 살 아이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아니었다. 지금의 한재는 최소한 수억 원이 왔다 갔다 하는 돈 덩어리가 되어 이해의 추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태심은 한때나마 행복했던 시절 찍었던 가족사진을 제시했다. 판사는 그 사진을 시어머니에게 보이면서
“할머니! 이 사진이 다정하게 보이지 않습니까? 다정하고 행복하게 보이는 이 가정으로 한재를 보내어 살게 합시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판사님! 양의 탈을 쓴 저 여인의 미소에 속지 마십시오. 한재는 피가 같은 저와 저의 딸에 의해서 키워져야 합니다.”
영악스럽기 짝이 없는 말이었다. 이 말이 주효하여 한재는 그의 할머니에게로 고모에게로 돌아갔다.
“땅 땅 땅”
태심은 할 말이 많았으나 결국 한재를 빼앗기고 절대로 가지 않겠다던 원동과 인동 땅을 밟았다. 그리고 흘러간 20년 세월의 터울을 넘어 그 시간대에 있었던 자신의 잘못을 진실로 참회하고 뉘우쳤던 것이다.
‘내가 천벌을 맞아서 그렇구나!’
태심은 대전역 육교아래 동양약국 앞에서 주저 안고 말았다. 그녀는 지치고 만 것이다. 드센 비바람 탓인지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동양약국도 철물점도 전자상가도 굳게 문이 닫혔다. 다만 어두컴컴한 거리를 우악스럽게 달리는 이름 모를 차량들과 대전역 프랫홈을 떠나는 열차의 울부짖음이 있을 뿐이었다.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찬바람과 비는 그칠 줄 모르고 쏟아지고 있었다. 태심은 한 동안 육교에 의지하여 바람을 피하고 있다가 무엇을 생각했는지 대전역 지하도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장 대합실을 향하여 달리기 시작했다.
“아기야! 아기야!”
그러나 그녀는 입을 쉬지 않았다. 태 산부인과를 부르던 말이 다만 아기야로 바꿨을 뿐이다.
“아기야! 아기야!”
누군가가 그녀를 달래주지 않는다면 아마도 그녀는 이렇게 울부짖다가 영영 쓸어져버릴지도 모를 형편이었다. 뒤돌아보면 아침부터 여직껏 날비를 맞으며 추위와 싸우며 부르짖었다.
그런데 태심은 대합실로 들어서더니 갑자기 그 목소리며 울부짖음이 크게 변하고 말았다.
“누가 우리 아기를 찾아주세요. 누가 우리 아기를 보았으면 알려주세요. 누가 태 산부인과를 아시나요. 태 산부인과를 알려주세요. 으엉엉. 으흐흐흥”
이렇게 외치고 울부짖는 것이 아닌가. 이게 무슨 일인가. 한재를 여기서 찾자는 것인가. 아니면 또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다. 태심에게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그러니까 197x년 가을이었다. 그녀는 대전명문가 아들과 알게 되었다. 그것도 아이를 잉태한 후에야 그가 명문가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태심은 자신과 그를 비교할 때 도저히 결혼할 수 없는 너른 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이는 나의 짝이 아니야. 나 같은 시골뜨기가. 더구나 첩의 딸인 나를... 학벌도 그렇고...’
태심은 스스로를 비하하며 비관했다. 그래서 남자의 뜻과는 상관없이 멀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아이는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서 임신 8개월이 되었다. 태심은 태아 때문에 고심했다. 결국 아기를 지우려고 산부인과를 찾았다. 그 산부인과가 그녀가 오늘 진종일 찾고 있는 태 산부인과다.
“이봐 처녀! 아이 아버지를 데려와. 너무 늦었어.”
냉혹하기 짝이 없는 태 원장.
“원장님! 죄송해요. 아기 아버지가 없어요.”
태심은 거짓 주장을 했다. 그러나 그것을 믿어줄 의사가 있을까? 하지만 그녀의 간곡한 애원은 태 산부인과에 들어 간지 3일째 되는 날 저녁 낙태를 시켰다. 아이를 약물로 강제 출산시킨 것이다.
태심은 돈을 치루고 태 산부인과를 나오니 일시나마 홀가분한 마음이 되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3일이 지나자 아기에 대한 궁금증이 발동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가 보자. 어찌 되었는지 가서 보자.’
태심은 뻔뻔스럽게도 태 산부인과를 몰래 찾아갔다. 다행히도 담당 간호사를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담당 간호사는
“이봐요. 아가씨! 잘 왔어요. 날 따라와요.”
만나자 마자 태심을 이끌어 유아실로 갔다.
“저 울음소리 들리지요. 저게 아가씨의 아들이요. 아주 건강해요.”
그녀는 총알처럼 말해 버렸다.
“흐흑, 흐흑.”
태심은 손수건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생명은 소중해요. 저 생명을 어쩌면 굶겨서 죽일지도 몰라요. 아가씨! 아기를 데려다 기르세요. 네. 우리 원장님은 무서워요. 눈도 깜박 않고 생명을...”
간호사는 자상하게 일러주었다.
“흐흑 으흐흐흑”
태심은 그렇지 않아도 지난밤 밤을 새워 생각했지 않았던가. 아기를 데려다가 기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느라고. 그러나 도저히 그런 방법은 없었다.
“아, 아하하하 으하하하”
태심은 천지를 원망하며 아기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산부인과를 뛰쳐나오고 말았다. 딱 20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그런 아기를 지금 찾아 달라고 부르짖고 있었다.
“제발, 내 아기를 찾아 주세요. 인동 태 산부인과에서 잃어버린 내 아기를 찾아 주세요. 으흐흐흑”
태심은 두발을 쭉 뻗고 통곡을 그치지 않았다. 그 울음소리는 너무나도 슬퍼서 듣는 이로 하여금 애간장을 끊어지게 하였다. 특히나 태심의 절규는 IMF를 맞아 집 없이 대합실을, 지하도를 안방으로 알고 사는 IMF유랑민에게는 뼈를 깎는 고통으로 다가섰다.
“으흐흐흐. 으흐흐흐.”
태심은 머리도 풀어헤친 채, 대합실 바닥을 구르면서 통곡을 그치지 않았다.
“아기야! 아기야! 아ㅡ기ㅡ야!”
태심은 사생결단이라도 할 듯 아우성치고 발버둥 쳤다. 그러나 자정이 가까우니 이제는 그 힘이 탈진하여 죽은 듯이 잠이 들었다. 비참하게 버려진 헌 옷가지 같았다. IMF유랑민들도 하나 둘씩 제 잠자리를 찾아 떠나갔다. 제일 마지막으로 대합실에서 가게 일을 보는 아주머니도 집으로 돌아갔다.
새벽에는 날씨가 개였다. 하늘에는 별들도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이때 대전역 대합실로 스며드는 여인이 있었다. 여인은 조심스럽게 대합실로 들어오더니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는 태심에게로 다가갔다. 예사스런 일이 아니다.
‘모자의 정이 하늘만큼 클 것이다.’
그녀는 지난 밤을 과거에 묶여서 한잠도 잘 수 없었다. 아기를 찾는 태심의 모습이 너무나도 측은하여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녀는 그렇게 날을 밝히고 비장한 결심을 한 후, 태심을 찾아온 것이다.
“그래, 그녀가 틀림없다. 아무리 세월이 흘렀지만 틀림없어. 억수의 어머니야. 내가 크게 욕심을 가지면 안 돼. 모자를 만나게 해 주자. 하늘의 뜻이다.”
그녀는 지금은 대합실 가게를 보지만 과거에는 태 산부인과 간호사였다. 그런데 태 원장이 감옥에 가게 되자 병원 일을 그만 두었던 것이다.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
태 원장 생각이 났다. 무작정 생각 없이 시킨 대로 일한 자신이 보였다.
‘태 원장 때문에 내 삶이 이리 되었을까?’
그녀는 옛날을 회상하며 태 원장의 목소리를 기억해 낸다.
“간호원! 이 핏덩이 거즈에 싸서 버려.”
원장은 멀쩡하게 살아있는 아이를 버리라했다. 죽여라는 것이다. 어떤 애는 굶겨 죽여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런데 개중에는 태심의 아기처럼 목숨이 질겨서 죽지도 않고 죽일 수도 없는 경우가 발생하였다. 그 때마다 간호사는 눈물을 머금고 홀어머니를 설득하여 그 아기를 길렀다. 억수도 그 중 하나다.
‘돌려 줘야지. 아기를 돌려 줘야지.’
천사표 아주머니는 그렇게 마음먹고 아주 조심스럽게 태심에게 다가갔다. 한 사람의 천사가 되어서 말이다. 그런가 하면 천사를 대신하여 천사의 마음으로 살겠다던 태심은 진정한 한사람의 천사를 바라보며 화한의 눈물을 흘렸다.
“천사 아주머니!”
진정한 천사를 바라보며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그렇지만 거리는 갑자기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내려온 대전행 첫 열차가 도착한 때문이다.
ㅡ끝ㅡ
글쓴이 약력
성명 이 순 복
1946년 전남 고흥산
전남매일. 농민문학 등단
잡지 언론상
연초조합 전무이사 정년
브레이크 뉴스 논설위원(현)
제갈삼국지 연재(주간 현대신문)
첫댓글 멋진 단편입니다. 글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