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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37분, 오른편으로
확 트이는 전망대에 당도합니다.
멀쩡한 참나무를 톱으로 잘라
못질하여 붙여놓은
'신불산, 영축산, 통도사' 방향표시가
세워져 있는 옆에
이 백(李伯)의 '山中問答'이 붙어 있습니다.
골프를 쳐도 이 지점을 산중으로 여기고
풍월을 읊는다고
이런 시를 걸어 놓은 건가.
평범한 낙동정맥 종주객들에게는
멀쩡한 임야를 불도저로 마구 밀어붙여
자연 파괴로 수많은 생명체들이 학살되고
그것도 부족하여 농약을 마구 뿌려
무수히 많은 곤충들과 식물들을 몰살시킨
살육장으로 연상되는데...
여기서 잠시 촬영하고
산중문답을 옮겨봅니다.
'山中問答'
문여하사서벽산(問余何事棲碧山)
왜 푸른 산중에 사느냐고 물어봐도
소이부답심자한(笑而不答心自閑)
대답 없이 빙그레 웃으니 마음이 한가롭다.
도화유수묘연거(桃花流水杳然去)
복숭아꽃 흐르는 물 따라 묘연히 떠나가니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인간세상이 아닌 별천지에 있다네.
속세를 떠나
자연에 대한 동경과 자연 속에 묻혀
한가로이 지내는 모습을 보인 낭만적인 詩지만
아무래도 골프장과는
어울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게다가 살아있는 참나무를
그렇게 무참하게 잘라놓고
무슨 산중문답 풍월입니까.
*2003년4월27일(日)雲晴
▲낙동정맥종주23구간(지경고개~원효산)*사진82컷
해봉(16명)
제23구간 : 左 울산광역시 삼동면, 양산시 웅상읍,
右 양산시 하북면
♠참 고
♣울주군 삼동면(三同面)
울주군의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우리 삼동은 동쪽으로는
풍수지리학의 일설로 노적봉이라 일컫는 문수산과 남일산,
남쪽으로 신불산의 맥을 이은 정족산, 서쪽으로 멀리 영축산맥과
신불산의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행정구역상 경계를 살펴보면 동으로 청량면의 율리, 웅촌 면의 대복리,
검단리와 접경하고, 남으로 양산시 하북면의 답곡리, 서로는 삼남면의
방기리, 상천리, 신화리, 북쪽으로는 언양읍의 구수리 및 범서읍의 천상
리와 경계를 하고 있다.
크고 작은 산으로 에워 쌓인 산 사이로 군도 34호선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관통하고 그 도로 양쪽 산기슭에 작은 촌락이 형성되어 있으며, 산간오지
이나 산세가 아름답고 산골짜기 들녘 에는 물이 좋아 벼농사를 주업으로
하고 있다.
79.3%가 산지이고 동쪽에서 서쪽 대암댐에 이르는 애밀천 유역과 남서쪽
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축성천을 따라 소규모의 농지가 분포되어 있다.
토질는 일부 냇가에 인접해 있는 농토를 제외 하고는 박토였으나 주민들
이 농업에만 매달려 변함없이 가꿔온 보람으로 비옥해져 쌀농사의 산출이
풍성한 옥토로 변했다. 근래에 와서 축산을 겸한 복합영농으로 전환하여
표고버섯 등의 특산물 농가도 늘어 잘사는 농촌으로 탈바꿈되어 가고 있다.
♣양산시[梁山市]
경상남도 동부에 있는 시.
면적 484.13㎢
인구 19만 5721명(2001)
인구밀도 404명/㎢(2001)
가구수 6만 2834(2001)
행정구분 2읍 4면 3동
*시의 꽃 목련 *시의 나무 이팝나무 *시의 새 까치
북동쪽은 울산광역시, 남동쪽은 부산광역시 기장군과 금정구, 남서쪽은 김해시,
북서쪽은 밀양시에 접한다. 행정구역은 2읍 4면 3동으로 이루어졌으며, 시청
소재지는 양산시 남부동 에 있다.
태백산맥의 지맥에서 뻗어난 천성산(千聖山:812m)·원효산(元曉山:922m) 등의 높은
산지가 북부를 차지하며 북고남저(北高南低)의 지형을 이룬다. 서부에는 양산천
(梁山川)이 남류하면서 그 양안(兩岸)에 평야를 발달시키고 낙동강에 합류한다.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연평균기온 15.1℃, 1월 평균기온 -2℃, 8월 평균기온
27℃로서 비교적 온난한 편이나 산악지대이기 때문에 온도차가 큰 편이다.
연평균강수량은 1,796mm이다.
♣웅상읍[熊上邑]
위치 경남 양산시 북부
인구 6만 1364명(2001)
면적 64.53㎢
9개 리로 이루어져 있다. 남동쪽은 부산 기장군, 북동쪽은 울산, 서쪽은 하북면(下北面)·
상북면(上北面)·동면·삼승동에 접한다. 1991년 면에서 읍으로 승격하였다.
동부에 대운산(大雲山:742m), 서부에 원효산(元曉山:992.2m)과 천성산(千聖山)이 있고,
이 산지 사이를 회야강(回夜江)이 북류하면서 평야를 이룬다.
주요농산물은 쌀·보리·사료 작물 등이며, 산지가 많기 때문에 한우사육과 양봉업이
활발하다. 부산∼울산 간 국도가 면의 중앙부를 지난다.
♥문화재
미타암석아미타불입상(梁山彌陀庵石阿彌陀佛立像:보물 998),
천불산 신사(千佛山神祠:경남문화재자료 187), 삼호리(三湖里) 고분군,
삼호리 성지, 용강단소(龍岡壇所), 주남리 도요지(周南里陶窯址), 김여택
정려(金麗澤旌閭), 매곡리(梅谷里) 도요지
♣하북면[下北面]
위치 경남 양산시 북부
인구 1만 869명(2001)
면적 68.71㎢
문화재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通度寺大雄殿-金剛戒壇:국보 290), 양산 통도사 동종
(銅鍾:보물 11-6), 통도사 국장생석표(國長生石標:보물 74), 통도사 은입사동제향로
(銀入絲銅製香爐:보물 334), 통도사 봉발탑(奉鉢塔:보물 471), 문수사리보살최상승
무생계경(文殊師利菩薩最上乘無生戒經:보물 738), 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주본
〈권46〉(紺紙金泥大方廣佛華嚴經周本〈卷四十六〉:보물 757) 단조산성(丹鳥山城),
용연사지(龍淵寺址), 용연사지 부도(浮屠), 내원사지(內院寺址)
8개 리로 이루어져 있다. 북동쪽으로 울산 울주구, 서쪽으로 상북면(上北面)·원동면
(院洞面), 남쪽으로 웅상읍에 접한다.
남동부에는 천성산(千聖山)·원효산(元曉山)의 연맥이, 서부에는 취서산지(鷲棲山地)
가 남북으 로 각각 달린다. 이 두 산지간을 양산천이 남류하면서 그 양안에 소규모의
평야를 형성한다. 주요 농산물로 쌀·보리·사료작물이 있고, 산지에서는 한우의 사육이
성하다. 면의 중앙부를 서울∼부산 간 고속도로, 부산∼경주 간 국도가 통과한다.
♣사진은 오 지호 대원이 촬영했습니다.
♧산행 코스(23차)
09시03분 지경고개, 산마루매점
09시37분 골프장전망대
10시20분 솥발공원묘지
11시47분 정족산
12시18분 대성재
12시52분 안적고개, 식사
14시34분 천성산
15시38분 원효산
16시07분 원효암
17시15분 주차장
총 8시간12분
♣ 참여 대원(16명)
대장 : 김성수, 하종관(후미담당)
신철호, 김 신, 김두호, 오지호, 전한기, 이승우, 백운기,
조숙희, 남상기, 이혜년, 이진복, 최철식, 최금영, 김윤근,
☞☞☞☞산행도 불경기를 타는가, 시민회관 앞이 한산하고
각 산악회의 관광버스가 반 넘어 비어있습니다.
평소 원색의 등산복으로 넘쳐나든 네거리가 썰렁,
도무지 활기가 없습니다.
항상 크라운호텔 정문 앞에 주차하든 부산교통관광버스는
보이지 않고 네거리 남쪽 모서리에 해봉깃발을 두른 승합차가
한 대 주차해 있습니다.
횟수가 쌓일수록 참여대원 줄어, 지난번에 인원이 적어 승합차가
나올 거라고 했지만 김 대장을 비롯한 집행부 젊은이들의 인사하
는 목소리도 힘이 없습니다.
영락공원 입구의 고정 멤버를 위해 김 신 총무의 승용차가 먼저
출발하고 뒤따라 승합차도 두어 자리 비워둔 체 출발합니다.
영락공원입구에서 4명이 합류하여 통도사나들목으로 빠져 나가
국도를 달리다 양산시와 울주군의 경계가 되는 고개라 하여 부쳐진
이름의 지경고개에 못 미쳐 우측 도로로 꺾어져 경부고속도로를 넘고
현대자동차집하장 건너편 위쪽의
‘산고루식당 매점’앞에 도착한 게
08시53분. 각자 산행준비를 하고
09시03분, 김 대장의 별다른 설명과 상견례도 없이
우측 도로건너 얕은 비탈로 출발합니다.
신 고문이 항상 앞서나가는 최 철식 대원에게 웃으며 한마디 합니다.
“오늘, 너무 달리지 마이소!”
얕은 비탈로 올라서자마자
촉촉이 젖은 초록빛 숲 속의 무덤군이 나타납니다.
잡목 숲을 거쳐
내리막 끝에
0 9시09분, ‘통도컨트리클럽’경내에 들어섭니다.
잘 가꾸어놓은 관상수와 필드에는
골퍼들이 조를 짜서 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날 골프를 친 경험이 있는지
조 대원이 작은 구릉코스를 지날 때
“여기 소나무 종류가 수십 종이 되요!”
하는데 좌우 소나무가 조금씩 다른 것 같습니다.
모두 인위적으로 여기저기 누비며
파 옮겨 심은 것 같습니다.
일부 호사가들을 위해
무수한 수목들이 불도자로 깔아 뭉개지고
잔디밭을 유지한다고
지금도 주기적 살충제로 수많은 생명을
몰살시키고 있는 현장으로 떠오르니
이를 어쩝니까.
오 지호 대원도 한때 골프를 친다고
억수로 돈을 많이 썼다며
지난날을 회상하며 올라갑니다.
카트 코스와 필드를 가로지르며 가다
분수대가 있는 곳에서
이 대원이 기념 촬영하는 여유를 부리고
비탈 언덕을 올라
몇 번 가로지르기를 하며
카트 코스를 따라 오르다
09시35분, 오른편으로 영취산 자락이 파괴되어
속살을 들어낸 배경의 ‘몽키스트 홀 450M'를 거쳐
09시37분, 오른편으로 확 트이는
전망대에 당도합니다.
멀쩡한 참나무를 톱으로 잘라
못질하여 붙여놓은
‘신불산, 영축산, 통도사’
방향표시가 세워져 있는 옆에
이 백(李伯)의 ‘山中問答’이 붙어 있습니다.
골프를 쳐도 이 지점을 산중으로 여기고
풍월을 읊는다고 이런 시를 걸어 놓은 건가.
평범한 낙동정맥 종주객들에게는
멀쩡한 임야를 불도저로 마구 밀어붙여
자연 파괴로 수많은 생명체들이 학살되고
그것도 부족하여 농약을 마구 뿌려
무수히 많은 곤충들과 식물들을 몰살시킨
살육장으로 연상되는데...
여기서 잠시 기념촬영하고
산중문답을 옮겨봅니다.
‘山中問答’
문여하사서벽산(問余何事棲碧山)
왜 푸른 산중에 사느냐고 물어봐도
소이부답심자한(笑而不答心自閑)
대답 없이 빙그레 웃으니 마음이 한가롭다.
도화유수묘연거(桃花流水杳然去)
복숭아꽃 흐르는 물 따라 묘연히 떠나가니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인간세상이 아닌 별천지에 있다네.
속세를 떠나 자연에 대한 동경과 자연 속에 묻혀
한가로이 지내는 모습을 보인 낭만적인 詩지만
아무래도 골프장과는 어울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게다가 살아있는 참나무를 그렇게 무참하게 잘라놓고
무슨 산중문답 풍월입니까.
하늘은 맑지만 대기오염으로 건너편의 신불산과
지난번에 곤두박질치듯 내려온 영취산,
그 자락은
약속 저버린 북핵 협박에 주기만 하고 뺨맞고,
내리막경제는 뒷전에 두고 코드 (cord 아닌 code'암호,원칙‘)
타령만 하는 예측할 수 없는 오늘의 정국마냥
잿빛으로 보입니다.
아서라!
시름 떨치고 힘내어
콘크리트길을 따라 고개를 넘어
09시45분, 통도컨트리클럽 경내를 벗어나는
등산로로 진입합니다.
곧 임도를 가로질러
본격적인 등산로에 올라섭니다.
잡목과 바위 길 오름을 거쳐
저만큼 위에서 이 진복 대원이
올라가는 게 보이고
갈색 낙엽 속에 핀
노루귀, 제비꽃, 붓꽃들을 내려다보며 올라가는데
하 대원이
“여기 재피나무 꽃이 피었네요!”
소리칩니다.
10시5분, 고압송전철탑을 지나
숲속을 올라가면서
여 대원들이 산채를 캐고
작은 고개를 옆으로 넘어서니
10시13분, 바로 아래에 묘지가 보이는가 했더니
건너편 산자락이 온통 묘지로 덮은
솥발산 공원묘지가 나타납니다.
10시17분, 공원묘지 경내로 내려섭니다.
좌로 兄弟農場 간판이,
우로 ‘삼덕공원현장안내’간판이 보입니다.
오른편 전면의 콘크리트 포장로를 따라
올라가니 저만큼
접 벚꽃 나무아래서 간식을 하며 휴식하고 있는
중간그룹 대원들이 손을 흔들고
오른편으로 완만한 경사의 넓은 묘역 한 가운데
커다란 반송 한 그루가 서있어 시선을 끕니다.
그 근처에 안장된 고인들은 땡볕을 피할
나무그늘을 얻은 행운을 가졌다고 느끼면서
지금은 실로암 가족납골당에 먼저 가신 아버지와
함께 계시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회심곡과 어느 가수가 부른 사모곡을 흥얼거려 봅니다.
[회심곡]
-전략-
이 세상 나온 사람 뉘 덕으로 나왔었나 /
불보살님 은덕으로 아버님 전 뼈를 타고
어머님 전 살을 타고 칠성님께 명을 빌어 /
제석님께 복을 타고 석가여래 제도하사
인생일신 탄생하니 한 두 살에 철을 몰라 /
부모은공 아올소냐 이삼십을 당하여는
애윽하고 고생살이 부모은공 갚을소냐 /
절통하고 애달플사 부모은덕 못다 갚아
무정세월 약유파라 원수백발 달려드니 /
인간 칠십 고래희라 없던 망녕 절로 난다
망녕들어 변할소냐 이팔청춘 소년들아 /
늙은이 망녕 웃지마라 눈 어둡고 귀 먹으니
망녕이라 흉을 보고 구석구석 웃는 모양 /
절통하고 애달픈들 할 일 없고 할 일 없다
홍두백발 늙었으니 다시 젊듯 못 하리라
인간 백년 다 살아도 병든 날과 잠든 날과 /
걱정근심 다 제하면 단 사십을 못 사나니
어제 오늘 성턴 몸이 저녘 낮에 병이 들어 /
섬섬하고 약한 몸에 태산 같은 병이 들어 부르나니
어머니요 찾나니 냉수로다 /
인삼녹용 약을 쓴들 약덕이나 입을 소냐
판수들여 경 읽은들 경덕이나 입을소냐 /
제미 서되 쓸고 쓸어 명산대찰 찾아가니
상탕에 마지하고 중탕에 목욕하고 /
하탕에 수족 씻고 황촉 한 쌍 벌여 세고
향로향분 불 갖추고 소지삼장 드린 후에 /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나님전 비나이다
-하략-
[사모곡]
앞산 노을 질 때까지 호미자루 벗을 삼아
화전밭 일구시고 흙에 살던 어머니
땀에 찌든 삼베적삼 기워 입고 살으시다
소쩍새 울음 따라 하늘가신 어머니
그 모습 그리워서 이 한 밤을 지샙니다.
무명치마 졸라매고 새벽이슬 맞으시며
한평생 모진 가난 참아내신 어머니
자나 깨나 자식 위해 신령님전 빌고 빌며
학처럼 선녀처럼 살다 가신 어머니
이제는 눈물 말고 그 무엇을 바치리까.
콘크리트 포장로를 따라 갈지자로 올라가는데
뒤에 개인적으로 출발 했는가 백두대간 윤 말순 대원이
남편과 뒤따라올라 옵니다.
10시36분, 비탈길 끝의 넓은 터에 소나무 한 그루가
넓은 묘역을 조망하며 서 있는데
특이하게 굵은 줄기의 꼬부라진 부위의 파인 곳에
씨앗이 떨어 졌는지 이름을 알 수 없는 생명체가
앙증맞은 회색 꽃을 피우고 있는 걸
캠코더에 소중하게 담습니다.
다시 임도는 왼편으로 크게 돌아 올라가는데
저만큼 위쪽의 불규칙한 자연석으로
축대를 쌓아놓은 곳에 대원들이 올라가고 있는 걸
캠코더의 줌으로 촬영합니다.
10시44분, 축대위에 또 다른 엉성한 축대가 3,4m 높이로 쌓여있어
어렵게, 힘들게, 위험하게 올라가 모험을 하는 것 같아
하 대장이 인도하는 서너 명의 후미대원들을 뒤따라
좌로 10여m 우회하여 치고 올라 오른편으로 잡목과
바위와 너덜을 해치고 갑니다.
이제 솥발공원묘지는 벗어나고
등산로가 희미한 된비알을
가쁜 숨을 쉬며 올라갑니다.
하 대장이 그 비탈길에 어머니에게 드린다며
이름도 생소한 개발딱 취나물을 따고 있습니다.
11시2분, 된비알의 턱에 올라서고
바위길 고개를 넘어서니
왼편으로 요란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고
컨테이너형 가옥이 보입니다.
11시12분, 턱을 넘어
잘록이에 내려서니
왼편으로 석비가 보이는데
석비는 부산운봉산악회에서 세운 ‘雲峰仙化會員追慕碑’.
옛날 산을 좋아하는 어느 산꾼이 조난당해
자연으로 돌아간 지역인가 봅니다.
곧장 암괴 옆을 타고
정족산을 본격적으로 오릅니다.
이제 피기 시작하는 철쭉지대가 이어지는데
뻣뻣한 가지가 마구 팔과 얼굴을 할큅니다.
턱에 올라 뒤돌아보니
여전히 뿌연 가스 속의
영취산의 모습은
답답하기만 합니다.
되돌아 저만큼 정족산이 보이고
그 옆으로 멀리 천성산이 가물거립니다.
물을 마시고 뒤따라 올라온 하 대장에게
컨테이너 집이 무엇 하든 곳이냐고 물으니
“액자에 부처님사진을 모셔놓았는데
기도하는 곳 같습디다.”
합니다.
이제 평탄한,
간간이 철쭉이 보이는 등산로를 따라가다
11시25분, 틈틈이 자갈돌이 깔린 임도로 내려
계속 황토 길을 걷습니다.
오른편 얕은 언덕비탈에
이끼가 낀 곳이 나타나고
11시40분, 산 생김새가 마치 세 발 달린
가마솥과 같다 해서 부쳐진 이름의
정족산(鼎足山) 일명 솥발산 정상 바위 위에 올라서서
환호하는 회원들의 모습을 줌으로 캠코더에 담습니다.
그리고 얕은 내리막을 거쳐
11시45분, 우측으로 보이는
등산로로 진입합니다.
얼마가지 않아 중년부녀 세 등산객이
잡목 그늘아래에 휴식하고 있어
“안녕하세요!”
하고 먼저 인사하니
“반갑습니다!”
며 반깁니다.
산행중에 마주치는 등산객이 있으면 먼저 인사하는데
특히 빤히 쳐다보는 사람에게는 미소 지으며 인사합니다.
그중에 어린이들을 동반한 등산객들에게는
틀림없이 환히 웃으며 큰소리로 인사하면
어리둥절한 아이는
“아빠, 아는 사람이야?”
하고 질문하고
아빠와 엄마는 얼굴을 붉히며 답합니다.
“아니, 산에서는 서로 만나면 누구나 인사한단다.”
아이는 머리를 끄덕이며 뒤늦게 큰소리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는데
저는 두 번 행복감을 느낍니다.
그것은 젊은 부부에게 모범을 보이며 말없이 행동으로
교육 시킨 즐거움과
티 없이 밝게 자라는 아이들을 보는
또 다른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완만한 오름을 거쳐
암괴로 쌓인
바위사이를 지나
11시47분, 바위정상에 당도합니다.
10여 년 전, 웅상, 백동리에서
천성산과 정족산을 올라
안적암으로 하산한 기억이 가물대는 가운데
태극기를 색인 정상판(정족산700m4)과
건너편 암봉 표지석(양산413 1998재설)을 촬영하고
하산코스로 접어듭니다.
내려가면서
작은 통천문을 지나치고
천성산을 배경으로
오 대원이 시원하게 포즈를 취합니다.
멀리, 자연생태계의 보고라는
무제치늪을 촬영하며
돌고래 바위등
기이한 형상의
모가 부드러운 바위군,
암괴사이를 거쳐
오른편으로 천성산과
원효산이 가까이 닥아 오고
왼편으로 메마른 고산
생태계보전지역 무제치늪이 보입니다.
천성산에 사는 도롱뇽을 원고로 한
고속철 터널 공사착공금지 가처분신청이 제기돼
가까운 시일 내에 법에서 판결이 나올 예정인데
지율스님과 환경단체들은 천성산 관통 공사로 인해
무제치늪과 곧 지나칠 습지보호지역 화엄늪 등
산지늪의 파괴, 계곡수와 지하수의 고갈,
천연기념물과 법적 보호동식물의 생명위협 등
환경파괴가 우려되는 활성단층으로 인해
터널의 안전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인데도
기존 환경영향평가에선 이러한 문제들이 대부분
누락됐다고 지적,
논쟁 중에 있는 곳입니다.
12시8분, 황토 벌의
임도에 내려섭니다.
잠시 뒤돌아 지나온 정족산(鼎足山)을 촬영하는데
하 대장이 오 대원과 함께 서라며 기념촬영 합니다.
12시12분, 임도갈림길에서
등산로로 들어가 얼마가지 않아 다시 임도로 나옵니다.
얕은 고개를 너머면서 오른편으로
갈라진 작은 바위 돌에 신기하게도 철쭉이 발갛게 피어있어
앞서간 오 대원을 불러 촬영하게 했더니
지나가든 한 등산객이 흔들어보자 그만 빠져버려
어느 실없는 등산객이 장난친 걸로 판단,
실소하고 맙니다.
12시28분, 숲 속 등산로를 따라가다
고사목과 헬기장이 나타나고
곧 우측 산비탈에 대성암이 있어,
대성재 갈림길, 복잡한 이정표
(무제치늪3,4늪30분, 정족산40분 통도사2시간30분, 천성산2시간,
내원사2시간, 영산대학1시간10분, 웅촌 반계운흥사지1시간)를
지나고
등산로로 들어섰다가
12시34분, 다시 임도로 내려섭니다.
하 대장이 후미가 너무 쳐져 시간 단축하라는
무전을 받았는지
수월한 임도로 먼저 앞선 모양입니다.
오 대원이 하 대장을 놓쳐
바쁘게 임도를 따라가며 하 대장을 부릅니다.
대성암으로 오르내리는
차량은 계속 이어지는데
12시46분, 왼편으로 내려오는 등산로가 나타나고
전면에 이동통신 중계철탑이 보입니다.
12시50분, 우측 산비탈에 안적암이 있어,
안적고개 이정간판(대성암2km)갈림길
풀숲에서 식사하는
이, 오, 하 대장과 합류합니다.
산고루 매점에서 출발하여
처음으로 퍼질고 앉아
점심식사를 합니다.
13시10분,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고
일어나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왼편으로 꺾어져 30여m가볍게 올라간 거리에
또 다른 이정표(안적암, 내원사, 천성산제2봉. 주남마을)
가 보이고
많은 차량과 등산객과 유산객들이 모여
휴식하고 있습니다.
13시22분, 중계철탑을 거쳐
임도 차단기를 넘어
임도를 따라 올라갑니다.
13시24분, 갈림길에서
오른편으로 보이는 호젓한
등산로로 접어들어 양봉장을 지나치고
13시29분, 왼편으로 무슨 사연이 있는지
꽤 굵은 밑동이 똬리 튼
기형소나무가 눈에 뜨입니다.
얼마가지 않아 다시 임도로 내려서고
등산로에 올라서기를 반복하다
임도를 따라 계속 올라갑니다.
10여 년 전에 천성산에서 내려 올 때는
계속 등산로를 탔는데...
왼편으로 대운산과
산 아래로 웅상읍 소주공단이 보이고
얼마가지 않아
지난해 폭우 때 입은 산사태가 아직 보강공사 중인지
임도가 1/4정도 깎여진 상태로 방금 이라도 문어내릴 듯
금이 간체 있습니다.
이런 산사태 위험지역이
두 곳이나 더 있습니다.
땡볕이 땀나게 하면서
오히려 가파르지만
숲 속 등산로가 편하지 않을까하고
이 대원이 걸음을 멈추고
얼린 녹차를 권하며 이야기합니다.
14시12분, 양산시장명의의
‘임도아래의 밀반늪 보호를 위해 상수리나무와 오리나무를 식재,
초류종자를 파종하였으니 등산객들은 등산로로 통행해 달라’
는 안내간판이 그냥 땅에 떨어져 있는 임도에서,
오른편 8부 능선 비탈에
시그널이 보이는 등산로로 진입합니다.
완만한 오름을 거쳐
14시20분, 주능선에 올라섭니다.
밋밋한 오름은 왼편으로 이어지고
14시29분, 내원사 갈림길에 오릅니다.
오른편은 내원사로 내려가는 코스,
왼편으로 천성산의 날카로운 암봉이,
2시 방향으로 멀리 원효산이 의젓하게 앉아있습니다.
하대장과, 오 대원은 직진하여
암봉으로 오르고
이 대원은 보다 안전한
자일이 걸려있는 왼편으로 돌아 올라갑니다.
지금은 원효산을 천성산이라 하고
여기는 제2 천성산이라고 합니다.
정상비가 있는 건너편
날카로운 바위위에는
많은 남녀등산객들이 정상비를 배경으로
기념 촬영한다고 빽빽하게 올라있고
뒤돌아보니
지나온 정족산이 아득하기만 합니다.
오른편 산자락아래
동학의 교주 최제우(崔濟愚)선생님이
한때 토굴에서 수련했다는
내원사 계곡이 까마득히 내려다보이고
인근의 정상 이정표가 옛날같이 않습니다.
‘내원사주차장4.8km 내원사2.2km 천성산2.9km'
라고 쓰여 있는데
이건 서남쪽으로 멀리 보이는 보다 높은
원효산을 천성산으로 보는 시각 때문인데
평범한 등산객에게는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14시38분, 원효대사가 천 명의 스님을 이끌고
이곳에서 설법을 가르쳐
모두 성인으로 만들었다 해서 부쳐진 이름의
천성산(千聖山811.2m) 정상에 올라섭니다.
마침 흥룡사 주차장에서 역코스로 올라와 기다리고 있는
믿음직한 김 신 총무가 환하게 웃으며 반깁니다.
어느 장년 부녀등산객이 무슨 산이냐고 묻자
이 대원이 설명해 줍니다.
“옛날에 천명의 성인이 살고 있었다 해서 천성산이라고 합니다....
한자로 써놓으면 알기 쉬울 텐데....”
김 총무와 후미 네 사람이 함께
정상비(천성산811m)를 배경으로
어렵게 차례를 기다려
오 대원의 디카로 한 등산객에게 부탁하여
기념촬영하고 시간에 쫓기어 바쁘게 내려갑니다.
또 다른 작은 암봉에서 뒤돌아
아직 복작되고 있는 지나온 제2천성산과
앞으로 찾아갈 군 기지가 있는
원효산(천성산)을 촬영 후,
잰걸음으로 뒤를 쫓습니다.
14시49분, 임도로 내려섰다가
다시 등산로로 이어지고
14시55분, 다시 임도로 내려서는데
지나온 임도에서 보았든 양산시장명의의
’안내간판이 또 서 있습니다.
이상한 건 임도 한가운데
소나무 묘목을 약 1.5m 간격으로 심어놓았는데...
마치 갓난아기를 도로 한가운데 세워놓은 것처럼
위태롭게 보이는 건 나만의 느낌일까요?
그 의도가 자못 궁금합니다.
#그래서 23차 종주 후 양산시장님에게
아래와 같이 문의하였습니다.
지난 4월27일 낙동정맥을 종주하면서
천성산 임도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소주공단을 바라보며 올라가다 임도 세 곳이
닥아 올 장마철에 산사태가 날 염려가 있었고
천성산에서 원효산으로 가는 임도 한가운데
소나무 묘목을 심어놓았는데 그 까닭이 궁금하여
시장님을 찾았습니다.
*글쓴이 양산시장 답변부서 녹지공원과 답변일 2003-05-10
1. 평소 우리시 시정에 많은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 귀하께서 우리시 홈페이지 시장과의 대화란에 제시한
고견 건에 대하여는 아래와 같이 회시 하오니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가. 지난해 발생된 임도및 산사태 피해지에 대하여는 현재
복구 중으로 다가올 장마철 이전에 복구 완료할 계획이며
나. 임도 가운데 식재된 소나무는 임도 유실방지 및 밀밭늪의
생태계 보호를 위하여 식재 하게 되었습니다.
다. 기타 문의 사항이 있으면 우리시 녹지공원과 녹지관리담당
(055-380-4811)으로 연락 주시면 성실히 답변 드리겠읍니다. 끝.
평탄한 임도를 따라가다
15시, 오른편 도랑에 통나무로 다리를 놓은
등산로를 따라 내려갑니다.
원효산을 오르기 위한
내림 길에 돌배 꽃이 만발하고
억새가 있는 잘록이 한가운데 중년등산객 서너 명이
세상에서 제일 편안한 자세로 두 다리를 뻗고 낮잠을
즐기고 있는 여유 있는 신선놀음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습니다.
15시10분, 다시 완만한 오름의 왼편에
특이한 형태의 다지 반송 한 그루가
넉넉하게 앉아있는데 그 줄기 한 가운데
하 대장이 마치 소파처럼 편안하게
自然의 품에 안겨있다 촬영하는 캠코더를
의식하고 손을 흔듭니다.
잠시 휴식하면서 이 대원이
다시 시원한 녹차와 귤을 내어놓아 목을 축이고
내친김에 저도 동심으로 돌아가 어진 노송에게
실례를 하고 마치 송선(松仙)처럼 편안한 자세로
앉으니 두 대원이 동석, 오 대원이 찰칵합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신선이 될 수 없는 일.
곧 통나무계단을 올라
15시21분, 억새가 무성,
풍만한 오름의 중간 턱에 올라섭니다.
두 번째 턱에서 뒤돌아
멀리 지나온
정족산에서
능선 따라 제2 천성산을 촬영하고
계속 턴하며 좌로
장방골 장흥(長興)저수지까지
훑어 나갑니다.
15시30분, 원효산 정상(922m) 군사기지는
이제 이마위에 보입니다.
15시38분, 군사보호지역으로
철조망이 쳐져있는
안내간판 앞에 당도합니다.
낙동강유역환경청장 명의의
‘화엄늪습지보호지역’안내간판.
화엄늪습지의 보존가치의 중요성과 그 위치를 표시해 놓았는데
지나온 천성산에서 낙동정맥 주능선의 동남쪽 분지,
요즈음 내원사 스님의 시발로 매스컴에서 보도하고 있는
환경단체와 고속철도공사관계의 대립으로
세간에 주목을 끌고 있는 지역이지만 전문가가 아니어서
그 거리에 어느 정도 악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없고,
다만 환경영향평가에서 철저히 조사하여
국익차원에서 판단 내려주기 바랄뿐입니다.
저만큼 김 총무가 어서 내려오기를 묵묵히 기다리고 있어
더 지체하지 못하고 철조망을 낀 8부 능선을 따라
우로 내려갑니다.
오른편으로 철망이 쳐져있는
빗긴 등산로와 짧은 너덜과
서너 번 꺾어져 내려가는 등산로를 따라가다
오른편 비탈에 경고판이 걸려있고
15시56분, 군기지로 올라가는 이정표(정상 화엄벌, 대석 원효암)가
서있는 포장군사도로에 내려섭니다.
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왼편으로 덕계리와
장흥저수지가 바로 아래에 보이고
16시2분, 오른편으로 우회하는 지름길을 넘어서면
낙동정맥과 해어지고
곧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원효암 입구.
원효산 자락에
원효암이 자라잡고 있습니다.
불도 대원들은 뒤편의 벼랑 위,
아슬아슬한 암괴가 놓여 있는
대웅전 앞에서 합장합니다.
시원한 생수로 목을 축인 뒤,
원효암의 내력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한 석판을 보다가
시간에 쫓겨 홍룡폭포를 기대하며
본격적인 하산 길로 접어듭니다.
한데 하산 후에 알았지만
홍룡폭포 쪽으로 내려가려면
원효암 화장실 뒤편으로 내려 가야하는데...
16시17분, 되돌아 나와
오른편으로 시그널이 보이는 계단을 거쳐
예상보다 가파르지 않은 코스를 따라
간이밧줄 하나와 개울 둘에,
좌로 계곡의 물소리와
오른편으로 간벌이 안 된 측백나무 숲과
마지막으로 큰 개울을 건너
17시15분, 홍룡사 주차장에 도착함으로써
8시간12분의 산행이 끝납니다.
이 성우 대원이 건네주는 시원한 캔 맥주로
열기와 모든 피로를 한방에 날려 보내고
오랜만에
천성산 산행안내도를 배경으로
기사양반에게 부탁하여
단출한 단체기념촬영을 하고
홍룡폭포를 못 본 아쉬움을 남겨두고
17시31분, 부산으로 출발합니다.
자연은 우리 인간들의 어머니,
자연은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는 게 보존하고 사랑하는 것,
자식사랑도 좋은 대학, 해외유학보다 좋은 습관,
그 개성을 살펴 그 적성을 키워주는 것.
이 모든 건 자연사랑에서 나온다는 걸 새삼 느끼면서
18시, 부산T/G를 빠져나왔습니다.
산 벗-
# 홍룡폭포
홍룡폭포는 상북면 대석리 천성산 중턱에 있으며,
삼층 비류가 흘러내리는 상층은 높이가 80척이요, 중층은 높이가 46척,
하층은 높이가 33척이다.
깎아 세운 듯 한 바위가 위풍당당하고 흐르는 물의 기세는 골 안을 울리며
흰 눈과 같아서 참으로 장관이니 그 풍광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또 기암괴석이 폭포수가 떨어지는 뒷면에 돌립하여 있어 물이 바위에 부딪쳐
거슬러 튀어져 그 물보라가 수십척의 사방으로 날아 퍼지니 옥을 뿜어내는 듯
구슬이 튀어 나오는 듯하다.
세폭은 암벽사이로 날아 흐르니 천자형(川字形)과 같고 푸른 이끼는 고색천연
하게 절벽에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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