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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9월 제1회 잉씨배 결승 4 & 5국 관전기 –싱가포르 (1)
이미 18년이나 지난 시간이지만, 지금도 바둑황제
그 이미지, 바로 눈썹이다. 싱가포르 웨스틴 스텐포드(Westin Stanford) 호텔 12층에 준비된 특별 대국실에서 열렸다.
웨스틴 스탠포드 호텔이 포함된 레이플 시티(Raffle city)는, 1980년대 같은 기간에 지어진 마리나 스퀘어(Marina Square), 그리고, 1990년대에 지어진 선텍 시티(Suntec City)와 함께 싱가포르 정부가 내놓고 자랑하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이 세 건축물은 공교롭게도 모두 한국 건설업체의 작품이다.
레이플 시티는 그 당시 동양에서 가장 높은 72층짜리 웨스틴 스탠포드 호텔 건물과 3개의 주상 복합 건물로 이루어졌으며 쌍용건설이 주 시공업체이다. 반면 마리나 스퀘어는 3개의 일류 호텔과 3개의 백화점, 연쇄점, 극장가, 그리고 3000대를 수용할 수 있는 지하 주차장 등으로 이루어졌으며, 현대건설이 지었다. 또 후에 건축된 선텍 시티는 40층에서 60층에 이르는 고층건물 7동과 세계적인 국제회의장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는 현대건설과 쌍용건설이 합작해서 지었다.
당시 모 건설회사의 현지 책임자로 근무하던 시절, 제1회 응씨배 결승4국과 5국이 싱가포르에서 한국의
일행이 여럿인 줄 알았으나 단장 처음에는 중국측에서 한국측 엔트리를 5명으로 약속하였으나 2명으로 줄였다고 했다. 다음 날 바둑의 현 주소였다.
반면, 다음날 전야제에 참가한 중국측 인원을 보면 30여 명, 잉창치 씨는 물론 오청원, 천주덕, 체육성 관리(중국의 바둑은 체육성 산하)들, 보도진 등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인원이 대거 몰려왔다. 심지어 자기나라 선수가 출전하지 않는 일본에서도 현역기사, 관전필자, 사진기자들을 여럿 보내고 있었다. 자칫 위축되기 쉬운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바둑과는 상관없이 많은 교민들을 동원할 필요가 있었다.
9월 5일 오전, 필자는 대국 개시 전 20분을 남겨두고 조국수 방을 노크했다. 힐끗 조국수의 표정을 살폈다. 표정이 담담하면서도 여유가 있어 보였다. 어젯밤은 잠을 잘 잤다고 했다.안심이 됐다. 혹시 어제 저녁에 먹은 해산물과 기름기 있는 중국음식이 과하여 잠을 설치지 않았는지 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상급 기사들의 실력 차이는 백지 한 장 차이도 안 된다고 했다. 승패를 가르는 것은 오직 그날의 컨디션에 달렸다. 컨디션 조절만이 유일한 타개책이라고 했다. 컨디션을 알맞게 조절하려면 무엇보다 음식을 알맞게 먹어야 하고 잠을 잘 자야만 했다.
또한 신경을 거스르는 일이 없어야 했다. 이런 점에서
우리 일행이 대회장에 도착한 시간은 요원, 관객들로 대국실 안은 이미 초만원을 이루었다. 9월 2일 제4국 때만 해도 전혀 보이지 않던 한국 취재진들도 이날 대국에는 일본 취재진, 싱가포르, 중국 취재진과 함께 무리를 이루었다. 아직 상대인 녜웨이핑은 도착하지 않았다. 일본 취재진이 조 국수에게 몇 마디 물어보았다. 조국수가 빙긋이 웃으며 짧게 대답했다. 여유가 있어 보였다.
시작 전, 주최측에 통역, 계시원은 중국인 대신 일본인으로 교체되었고, 의자도 넓은 것으로 교환되었다. 3일 전에 있었던 제4국에서 두 대국자가 제한시간을 다 쓰고 피를 말리는 초읽기에 들어가자 중국인 계시원이 조 국수 차례에서는 빠르게 초를 읽고, 녜웨이핑 차례에서는 천천히 읽는 사례가 발생 하였기 때문이다. 심한 항의가 먹혀 든 셈이다. 넓은 의자는 평소 조 국수가 대국 중 발을 떠는 습관이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윤 단장이 좁은 의자보다는 넓은 의자가 편하다고 생각했기에 취한 조치였다.
시선을 내리깐 모습이 한결 어두워 보였다. 제4국 패배의 여한이 아직 가시지 않아서일까? 녜웨이핑이 착석하자 카메라 플래시가 여기저기에서 터졌다. 두 대국자는 상대를 애써 외면했다. 그동안 여러 차례 대국 경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4월 28일 같은 장소에서 제2국, 5월 2일 잉창치 씨의 고향인 절강성 영파에서 제3국을 두었고 싱가프로로 옮겨 바로 3일 전 이 장소에서 제4국을 두었으며 이제 세기의 대결인 제5국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오늘의 이 자리가 곧 금세기 바둑황제를 가리는 역사적인 자리가 되었다. 과연 누가 미화 40만 불의 상금과 함께 바둑 황제에 등극할 것인가? 모두가 마음을 죌 수밖에 없다.
대국선언이 있기 전, 진행자의 안내 발언이 있었다. 장내가 매우 혼잡하니 질서를 지켜줄 것과 취재진에게는 5분 동안의 취재시간을 허용하겠으니 5분 후에는 지체하지 말고 퇴장해 줄 것, 공개해설장과 대기실이 별도로 준비되어 있으니 그 곳을 이용해 달라는 요지.
곧 이어 돌 가리기를 했다. 녜웨이핑이 한 움큼의 백돌을 쥐었다. 조 국수가 흑 돌 하나를 반상에 올려 놓았다. 반상에 나열된 돌의 수는 짝수. 못 알아 맞힌 것이다. 선택권은 녜웨이핑에게 넘어갔다. 녜웨이핑은 주저없이 백을 선택했다.
순간 조 국수의 몸에서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미세한 반동이 있었다. 그의 몸에서 형용할 수 없는 진기가 한군데로 쏠리는듯한 감을 느낄 수 있었다. 눈썹 주위가 하얗게 변하고, 양 쪽 까만 일자 눈썹이 눈꼬리에서 하늘로 치켜 올라가고, 굳게 다문 입 주위로 잔근육이 꿈틀한다. 이는 곧 기의 이동을 의미한다.
인간의 감정 변화는 제일 먼저 눈에서 감지된다고 했다. 극에 달한 분노의 화신 같기도 하고, 각오를 다짐하는 자기 암시인 것도 같다. 신체 모든 부위의 기가 오직 한 곳, 단전에 모아지는 듯한 느낌이다. 예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모습이다.
오랫동안 단전에 머물러 있다가 필요에 따라 서서히 분출하는 진기. 인체 생명활동의 원동력이 되는 기. 선천적으로 받은 원기와 후천적으로 생긴 곡기가 합쳐져 이루어진 것이 진기라 했다. 이때 보여준 조국수의 진기 모음과 눈꼬리 눈썹은 18년이 지난 이 순간에도 뇌리에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1국에서 4국까지는 쌍방이 번갈아가며 백으로 두었다. 그러나 승패가 2 : 2인 상태에서 최종 결승국을 백으로 둔다는 것은 운이 따르지 않는 한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응씨룰에서는 덤이 8집이다.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덤 5집반이던 시대이다. 정상급 프로들에게 2집반의 차이는 대단한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응씨 바둑에서는 누구나 집 백을 원한다.
조 국수는 불리한 상황에서 진기를 끌어모아 자기 최면을 걸은 것이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어떻게 여기까지 온 길인데. 조 국수에게는 지나온 1년여의 시간이 참으로 멀고도 험난한 길이였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2년 전 1987년 가을로 되돌아간다. <사진/월간바둑>
(2편에서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