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미항百味港
“도보여행은 좁은 공간에서의 해방이고 자유로운 곳으로의 돌진이다. ”
-오토 프리드리히 볼노-
경기만(灣)에는 썰물이 지면 육지와 연결되는 크고 작은 섬들이 많다. 사람들은 이런 섬들을 아예 둑을 쌓아 육지와 연결해 버렸다. 대표적인 섬이 대부도다. 시화. 탄도 방조제는 7년의 긴 토목 공사를 통해 1,329만 평의 담수호와 주변에 4,044만 평의 간척지가 생겨났다. 조금 아래에는 궁평항과 매향 항을 잇는 9.8km 길이의 화성방조제가 있다.
백미 항은 궁평항에서 북쪽 해안을 따라 안쪽으로 약간 고부라진 곳에 숨어 있다. 인접한 궁평항의 화려함에 소외되어 있던 이곳은 갯벌 체험이라는 새로운 문화에 따라 매년 십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찾게 되었으며‘ 어촌 체험 마을 전진 대회’에서 대상을 받기도 한 곳이다.
넓은 주차장과 2층 규모의 깨끗한 시설에는 “백미리 어촌 체험 안내소”라는 표시가 되어 있고 내부에 슈퍼, 화장실과 2층엔 카페까지 갖추어져 있다. 예부터 백가지 진미(珍味)가 있는 고장으로 백미리(百味理)라는 이름이 지어졌을 만큼 바다에 해산물이 풍부했던 고장이라고 한다.
도시화 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획일화한 공간, 익숙한 공간에 길들어 있다. 그래서 공간 밖으로 나가기를 꺼린다. ‘오토 프리드리히 볼노’ 는 <인간과 공간>이라는 책에서 이것을 수학적 공간과 자연적 공간이라고 구분 지었다. 수학적 공간은 중심점에서 컴퍼스를 돌려 그은 원과 같은 공간으로 낯선 곳이 없는 균일한 공간, 확실한 구분이 있는 공간이다. 이에 비해 자연적 공간은 경계가 불확실하고 균일하지 않은 공간이라고 했다.
여행은 수학적 공간을 벗어나는 일이다. 사람들이 낯설고 풍경이 낯설고 길이 낯설다. 그래서 때로는 환경에 익숙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최근 들어 많이 늘어나고 있는 자연에 대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이런 환경에 필요한 인력이다. 산에는 숲 해설가, 산림 전문가가 있고, 문화재가 있는 곳에는 문화해설사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자연 분야에 새로운 전문가들이 확산일로에 있다. 아마도 이곳 백미 항에서 운영하는 것과 같은 ‘갯벌 체험장’에도 국가자격증을 가진 사람의 안내를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입구에는 ‘갯벌 체험장은 체험료 지급 후 입장이 가능’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어서 아무나 출입하지 못하도록 통제가 되어 있었다. 바닷가 방파제를 따라 놓여 있는 긴 의자에 앉아 바라보면, 가까운 곳에 감투바위(모양이 감투처럼 생겼다해서 붙여진 이름)가 보이고, 아스라이 보이는 수평선 가까이에 사람들이 조개를 파는 모습과 마을버스처럼 생긴 트레일러에 사람들을 싣고 먼 갯벌로 나가고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인간은 수학적 공간의 무료함에서 벗어나고자 자연 속으로 들어간다. 그곳은 해방감이 있고 용솟음치는 생명력을 회복하는 공간이다. ‘오토 프리드리히 볼노’는 이것을 “태곳적 내밀한 행복으로의 회귀”, “모든 사물의 근원”으로의 회귀, “친숙한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획일화되는 사회에서 자연도 점차 본래의 맛을 잃어가고, 사람들이 자연에 맞추기 보다는 자연을 사람들의 편의에 맞추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마을에 가려면 수원역 환승주차장에서 400번 버스를 타고 백미리 마을 입구에서 하차, 백미 항까지 약 2km 거리를 걸어야 한다. 마을버스가 하루 4차례 왕래하지만, 시간을 맞추기 어렵고, 도보로 걸을 만하다. 마침, 이곳에 도로 확장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라서 나는 길을 잘못 들기도 했지만, 다행히 친절한 분의 도움으로 기분 좋게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