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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2장의 이해- 영어로 전하는 복된 소식
할렐루야!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바울 사도의 갈라디아 편지를 보낸 후 약 2000년 가까이 지나서 이 복음이 이스라엘에서 멀리 떨어진 한반도로 왔습니다. 이제 한국에 사는 모든 성도는 한글로 갈라디아서를 읽을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인류를 구원하시고 모든 것을 바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십자가 대속의 사랑으로 그리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이스라엘에서 보면 거의 땅의 끝인 이 민족에게 복음이 증거 된지도 천주교는 약 400년이 되었고 개신교는 약 150년이 되어 갑니다. 이 땅에 사는 백성의 약 30%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교회만 5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성경의 올바른 이해를 통해서 이해할 수가 있는데 이제 우리는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성경을 읽고 또 영어로도 읽고 온 세상의 언어로 읽고 또 한글로도 여러 번역본을 가지고 마음껏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반드시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성령의 깨닫게 하심을 따라서 이해를 해야 된다고 믿습니다. 참으로 짧지만 귀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 신약의 서신서를 모든 세상의 사람이 함께 올바로 이해할 수 있게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샬롬! 갈라디아서 공부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1장은 모두가 영어로 보았습니다. 이제 2장입니다. 2장에 대해서도 한 번의 글을 올렸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갈라디아서 2장에는 난제가 두 부분이나 있습니다. 17-19절의 이해가 어려운데 많은 분들이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 도전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의견이 있습니다.
우리도 이 문제의 해결에 도전을 해 볼 것입니다. 먼저 이러한 이해를 도울 자료들을 먼저 올립니다. 이 자료를 통해서 모든 분이 다 갈라디아서 2장의 이해가 올바로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먼저 영어로 정리한 자료를 또 올립니다.
Fourteen years later I went up again to Jerusalem, this time with Barnabas. I took Titus along also.I went in response to a revelation and set before them the gospel that I preach among the Gentiles. But I did this privately to those who seemed to be leaders, for fear that I was running or had run my race in vain.
Yet not even Titus, who was with me, was compelled to be circumcised, even though he was a Greek. This matter arose because some false brothers had infiltrated our ranks to spy on the freedom we have in Christ Jesus and to make us slaves. We did not give in to them for a moment, so that the truth of the gospel might remain with you.
As for those who seemed to be important -- whatever they were makes no difference to me; God does not judge by external appearance -- those men added nothing to my message. On the contrary, they saw that I had been entrusted with the task of preaching the gospel to the Gentiles, just as Peter had been to the Jews. For God, who was at work in the ministry of Peter as an apostle to the Jews, was also at work in my ministry as an apostle to the Gentiles.
James, Peter and John, those reputed to be pillars, gave me and Barnabas the right hand of fellowship when they recognized the grace given to me. They agreed that we should go to the Gentiles, and they to the Jews. All they asked was that we should continue to remember the poor, the very thing I was eager to do.
When Peter came to Antioch, I opposed him to his face, because he was clearly in the wrong. Before certain men came from James, he used to eat with the Gentiles. But when they arrived, he began to draw back and separate himself from the Gentiles because he was afraid of those who belonged to the circumcision group.
The other Jews joined him in his hypocrisy, so that by their hypocrisy even Barnabas was led astray.
When I saw that they were not acting in line with the truth of the gospel, I said to Peter in front of them all, "You are a Jew, yet you live like a Gentile and not like a Jew. How is it, then, that you force Gentiles to follow Jewish customs? "We who are Jews by birth and not `Gentile sinners' know that a man is not justified by observing the law, but by faith in Jesus Christ. So we, too, have put our faith in Christ Jesus that we may be justified by faith in Christ and not by observing the law, because by observing the law no one will be justified.
"If, while we seek to be justified in Christ, it becomes evident that we ourselves are sinners, does that mean that Christ promotes sin? Absolutely not! If I rebuild what I destroyed, I prove that I am a lawbreaker. For through the law I died to the law so that I might live for God.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and I no longer live, but Christ lives in me. The life I live in the body, I live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I do not set aside the grace of God, for if righteousness could be gained through the law, Christ died for nothing!“
Fourteen years later I went up again to Jerusalem, this time with Barnabas. I took Titus along also. I went in response to a revelation and set before them the gospel that I preach among the Gentiles. But I did this privately to those who seemed to be leaders, for fear that I was running or had run my race in vain.
Yet not even Titus, who was with me, was compelled to be circumcised, even though he was a Greek. This matter arose because some false brothers had infiltrated our ranks to spy on the freedom we have in Christ Jesus and to make us slaves. We did not give in to them for a moment, so that the truth of the gospel might remain with you.
As for those who seemed to be important -- whatever they were makes no difference to me; God does not judge by external appearance -- those men added nothing to my message. On the contrary, they saw that I had been entrusted with the task of preaching the gospel to the Gentiles, just as Peter had been to the Jews. For God, who was at work in the ministry of Peter as an apostle to the Jews, was also at work in my ministry as an apostle to the Gentiles.
James, Peter and John, those reputed to be pillars, gave me and Barnabas the right hand of fellowship when they recognized the grace given to me. They agreed that we should go to the Gentiles, and they to the Jews. All they asked was that we should continue to remember the poor, the very thing I was eager to do.
When Peter came to Antioch, I opposed him to his face, because he was clearly in the wrong. Before certain men came from James, he used to eat with the Gentiles. But when they arrived, he began to draw back and separate himself from the Gentiles because he was afraid of those who belonged to the circumcision group.
The other Jews joined him in his hypocrisy, so that by their hypocrisy even Barnabas was led astray.
When I saw that they were not acting in line with the truth of the gospel, I said to Peter in front of them all, "You are a Jew, yet you live like a Gentile and not like a Jew. How is it, then, that you force Gentiles to follow Jewish customs?" We who are Jews by birth and not `Gentile sinners' know that a man is not justified by observing the law, but by faith in Jesus Christ. So we, too, have put our faith in Christ Jesus that we may be justified by faith in Christ and not by observing the law, because by observing the law no one will be justified.
"If, while we seek to be justified in Christ, it becomes evident that we ourselves are sinners, does that mean that Christ promotes sin? Absolutely not! If I rebuild what I destroyed, I prove that I am a lawbreaker. For through the law I died to the law so that I might live for God.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and I no longer live, but Christ lives in me. The life I live in the body, I live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I do not set aside the grace of God, for if righteousness could be gained through the law, Christ died for nothing!“
바로 본문에 도전하시면 이해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같이 먼저 살펴보아야 하는 내용을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할 것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이 갈라디아서의 저자는 1장에서 밝힌 대로 이방의 사도인 바울 사도입니다. 바울 사도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들에게 보내는 편지임을 1장에서 모든 분이 다 확인을 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어떤 위치에 어떤 경로를 통해서 세워졌는지를 먼저 알아야만 그곳의 성도의 구성이 어떻게 되면 어떤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2천 년 전의 로마로 돌아가 보아야겠습니다. 지도를 보면서 이해를 하면 됩니다. 로마의 모습입니다. 지중해를 호수로 하는 당대 최고의 나라입니다.
예수님 당시보다 조금이 지난 로마의 모습입니다. 이때 당시에 로마의 인구가 약 5천7백만 명 정도 되었는데 유대인들도 약 6백에서 7백만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이 로마 전역에 흩어져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회당이 곳곳에 있어서 회당 중심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한지 약 700-500년이 지났습니다. 바울 사도도 길리기아 다소 출신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이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사는 것만 아니라 일 년에 적어도 세 번은 예루살렘을 방문을 해야 했었습니다. 당시에 적용이 되던 법은 우리가 잘 아는 로마법입니다. 로마법이 로마의 통치가 미치는 지역에 적용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이스라엘도 로마법이 적용이 되었고 로마 총독 빌라도가 와서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속국의 경우 그 나라의 고유한 종교나 법이 또 한편으로 속국에 적용이 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 때 유대의 율법의 적용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한다고 했고 총독은 로마법에 비추어 또 살펴보아야 했던 것입니다. 두 법이 달라서 총독이 난감해 했습니다. 율법의 규정에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은 일 년에 3번 예루살렘을 방문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로마 전역에 사던 사람이 예루살렘에 오면 당연히 예수님의 소식을 들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당시에 가장 큰 이슈가 되었던 사건은 예수님께서 오셔서 복음을 전하고 병자를 고치고 많은 기적을 행하는 것과 당시의 지도자들이 이런 예수님을 대적해서 어떻게든 죽이려고 하였던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소식도 들었을 것이고 또 직접 예수님을 만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복음을 전해 들은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아는 것이 갈라디아서를 이해하는 중요한 일이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 승천 후에 성령께서 오셔서 교회를 사도들을 데리고 세우시는데 복음의 전파를 통해서 교회가 세워지는데 이미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에 대해서 들고 보고 한 사실은 예수님을 믿는데 너무나 중요한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성령의 사역과 오순절 베드로의 설교로 3천 명이 한 번에 믿게 되는 일을 그림을 통해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2장 5절과 2장 9-11절의 말씀입니다. 이들이 성령을 받은 베드로의 설교로 예수님을 회개를 하고 믿게 됩니다. 세례도 물론 받게 됩니다. 이들이 다시 로마로 당시의 아시아로 그리고 온 세상으로 흩어집니다. 이들이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하기 전에 미리 가서 예수님을 믿고 복음을 전합니다. 제가 그냥 지어낸 말이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보시겠습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성령을 받게 되면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알아야 로마교회가 바울이 전도를 하지 않았는데도 세워졌고 성도의 믿음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던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에 혹은 어디든지 바울이 가기 전에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사도들이 예루살렘부터 전하고 스데반의 순교 사건으로 사마리아와 유다로 흩어져서 전하고, 안디옥에도 복음이 전해져서 큰 교회가 서게 됩니다. 이도 오순절 날 왔던 성도나 혹은 예수님을 명절에 와서 몇 번 보고 믿었던 사람들의 영향이 당연히 클 것입니다. 나중에 바나바가 예루살렘 교회의 파송으로 안디옥에 가고 이 바나바가 바울을 다소에서 불러와서 같이 사역을 합니다. 그리고 안디옥 교회를 통해서 바울을 선교사로 보냅니다. 유대가 아니라 이방인들에게 보냅니다.
행 11: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안디옥 교회에 의해서 파송된 바울과 바나바 등을 통해서 갈라디아 교회들이 설립이 되고 그리스에도 교회가 세워집니다. 이 모든 과정이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고 성령의 인도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목사나 장로가 세우지 않고 예수님께서 세우십니다.
마 16: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교회론에서 오랫동안 베드로를 반석으로 교회를 세우냐? 아니면 베드로의 신앙의 고백으로 교회를 세우냐? 가 중요한 논쟁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고도 하는데 교회는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서 복음을 전하고 이를 전해 받은 사람들이 또 하나님의 감동과 인도하심으로 예수님을 믿고 교인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교회가 세워지는데 모두가 예수님께서 하시고 성령께서 하시며 결국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될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선교여행에 대해서 같이 보겠습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잘 읽어보아야 하겠습니다. 바울 사도가 가는 곳에 회당이 있었습니다. 이 회당의 역할에 대해서도 더 이해를 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믿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만나서 성령세례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고 성령을 받게 합니다. 믿지 않는 이에게 전하는 일도 바울 사도의 중요한 일이었고 또 믿는 사람을 만나서 성령을 소개하고 받게 하는 일도 중요한 바울 사도의 사역이었는데 이들의 존재에 대해서 우리는 꼭 알고 있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가 선교를 하지만 교회는 예수님께서 세우시고 또 성령께서 다스림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도 목사나 장로가 교회를 개척을 합니다. 그러나 교회를 세우시는 분은 그리고 성장을 시키시는 분을 엄연히 예수님이시고 성령님이심을 절대로 잊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언제나 예수님이십니다. 모든 성도는 형제와 자매로서 존재하고 교회의 지도자는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마 23: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9.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10.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하나님께서 미리 믿는 사람을 로마의 전역에 보내시고 다음에 바울 사도와 다른 선교사를 보내서 이들과 함께 어떤 곳에 교회를 세우게 합니다. 바울 사도께서 가보지 않았던 로마에 교회가 서 있었고 이들에게 보낸 편지가 로마서입니다. 이렇게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십니다.
롬 1:8.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9.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10.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11.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12.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바울이 로마에 가기 전에 고린도에서 약 57-8년에 보낸 편지입니다. 그리고 바울의 연표를 보면 약 4년 뒤에 로마로 가게 됩니다. 이제 다시 갈라디아서로 돌아가서 당시의 교회들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갈라디아서를 보낼 당시의 교회들의 모습입니다. 가장 큰 교회 예루살렘 교회가 있고 이스라엘엔 전역에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구레네 사람들에 의해서 안디옥 교회가 설립이 되고 바울과 바나바가 갑니다. 그리고 바울의 선교로 또 교회들이 세워집니다. 로마교회는 바울의 선교와 별도로 세워졌습니다. 이제 교회에 문제가 생기면 예루살렘 교회를 중심으로 의논을 하고 해결을 합니다. 바울 사도도 처음에는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교회의 문제를 의논하고 해결을 합니다. 먼저 안디옥 교회에서 할례 문제가 생깁니다. 사도행전에 기록이 있습니다. 어떤 분의 잘 만든 표로 저도 이해를 했습니다. 지도도 다른 분이 만든 것을 많이 그대로 가져다가 씁니다. 제 홀로 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모든 분이 도와서 진행이 되고 하나님께서 가장 많이 도우시는 줄로 믿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 사도행전 15장 |
사도행전은 예루살렘 방문 목적이 할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으로 나오고, 갈라디아서는 그 목적이 2차 목적으로 나온다. 왜냐하면 갈라디아서 본문은 14년 후에 계시를 따라 예루살렘에 갔다고 우선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바울이 처음부터 헬라인 디도를 데리고 간 것, 그리고 거짓 형제들 때문에 일부러 디도에게 할례를 강요하지 않았다는 점을 비춰서 볼 때 계시를 따라 예루살렘에 갔다는 갈라디아서 본문은 그 내막에 할례에 따른 구원론 논쟁이 큰 이슈였음을 알 수 있다. 갈 2:1 | 안디옥 교회의 어떤 형제들의 가르침: 유대에서 내려온 어떤 형제들이 모세율법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가르침-행 15:1 |
안디옥 교회의 논쟁과 문제 해결을 위해 예루살렘 교회로 몇 사람을 보냄: 구원론에 대한 다툼과 변론이 있은 후에 바울과 바나바와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보내기로 작정- 행 15:2 안디옥 교회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미리 다툼 | |
예루살렘에 가는 도중 베니게와 사마리아를 돌면서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증언: 온 교회가 기뻐함- 행 15:3 | |
갈라디아서 본문은 이방 가운데 전파한 복음을 유명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제시했다고 나온다. 사도행전에서는 공식적인 발언과 사적인 발언으로 구분, 공적인 자리에서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표적과 기적을 보고했고, 사적인 자리에서는 예루살렘에 처음 도착해서 사도와 장로들에게 이야기한 것을 말한다. 갈 2:2
| 예루살렘 교회 도착: 그들의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서 행하신 모든 일을 증언함- 행 15:4 |
바리새파 출신 어떤 신자들의 주장: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행 15:5 | |
사도들과 장로들이 이 문제를 논의함- 15:6 | |
갈라디아서 본문은 유명한 자들이 내게 어떤 의무도 더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사도행전도 마찬가지인데, 베드로의 주장에서 멍에를 지워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했고, 야고보도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갈 2:6 | 논의 후에 베드로의 증언: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는다- 행 15:7-11 자신을 이방인을 구원하려고 택하심 말함 |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 보고- 행 15:12 | |
바울은 다만 가난한 자들을 돌봐야 한다는 부탁을 받았다고 말한다. 이 부분은 사도 회의가 내린 나름의 결의 조항이었고, 사도행전에서는 야고보의 마지막 부탁 사항과 연결된다. 갈 2:10 | 야고보의 결론: 내 의견에 이방인 중에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라. 다만 우상과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게 하라- 행 15:13-21 |
행 15: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2.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3.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사도행전의 15장의 이 부분은 안디옥 교회의 일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있는 교회에 유대로부터 온 형제가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니 바울과 바나바가 의견이 일치가 되지 않아서 다투는 내용입니다. 나중에 다른 문제로 또 다투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할례 문제로 다투고 결론이 나지 않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에게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바울과 바나바를 보내기로 결정을 하고 예루살렘으로 보냅니다.
이제 갈라디아서를 이 내용을 보면서 보면 이해가 됩니다.
Fourteen years later I went up again to Jerusalem, this time with Barnabas. I took Titus along also. I went in response to a revelation and set before them the gospel that I preach among the Gentiles. But I did this privately to those who seemed to be leaders, for fear that I was running or had run my race in vain.
Yet not even Titus, who was with me, was compelled to be circumcised, even though he was a Greek. This matter arose because some false brothers had infiltrated our ranks to spy on the freedom we have in Christ Jesus and to make us slaves. We did not give in to them for a moment, so that the truth of the gospel might remain with you.
바울이 회심을 한 연도가 대략 35년으로 보면 14년 후(Fourteen years later )는 약 50년경이 됩니다. 연표를 통해서 이렇게 저도 이해를 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할례 문제로 안디옥 교회에서 바나바 등과 다투고 예루살렘 교회로 온 것입니다. 14년 만에 왔으니 할 말도 보고할 내용도 많았을 것입니다. 장로들에게 이야기를 하니 바리새파 사람들 중에서 믿는 이가 안디옥 교회에서 할례를 받아야 된다고 주장한 것과 같이 똑같은 주장을 합니다. 우리는 이들이 성령을 아직 받지 않았음을 직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율법에 능합니다. 율법에 능하고 또 성령을 받은 바울 사도가 아니면 누구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사도행전 15장 7-11절에서 베드로가 잘 설명을 합니다.
행 15: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여기서 우리는 some false brothers 정체에 대해서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이제 안디옥 교회에도 있고 심지어 12사도가 있는 예루살렘 교회에도 있고 또 갈라디아 교회에도 있습니다. 로마교회에도 있습니다. 지도를 통해서 당시의 교회의 구성원과 지도자를 보시겠습니다. 어떤 잘못된 형제들을 표시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유대인으로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문제가 갈라디아 교회들의 문제만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의 문제이기도 하고 안디옥 교회의 문제이기도 하고 또 로마교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120문도와 12사도는 모두가 성령을 받았습니다. 바울 사도도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들에 의해서 예루살렘 교회도 많은 성도가 믿게 되었고 안디옥 교회, 갈라디아 교회들, 로마교회도 믿는 신자가 늘어갔습니다. 그리고 로마 전역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도 믿게 되었습니다.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믿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제 교회는 유대인 성도와 이방인 성도가 같이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고 또 성령을 받은 성도와 성령을 받지 않은 성도가 같이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 성도 중에서 성령을 받지 않고 율법으로 무장된 잘못된 형제들이 교회로 들어왔습니다. 이들이 다른 복음을 전해서 문제가 생깁니다. 베드로 사도는 사도행전에서 올바른 결정을 내립니다. 야고보도 같은 의견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을 이 문제에 대해서 정말로 단호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나바와 바울의 다툼의 내용이 어떻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아마도 바나바는 바리새인의 의견을 좇아서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을 했을 것입니다. 나중에 베드로와 같이 위선을 하는 모습을 우리는 또 봅니다. 바울은 최후의 보루입니다. 만약에 바울 사도께서 율법을 정통하게 몰랐다면 이렇게 할 수가 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율법에 정통한 자로서 예수님을 만나고 회개하고 성령을 받고 천국을 보니 율법 아래에서 살던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보잘것 없고 또 율법을 지키면서 산 삶이 복음을 통해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사는 삶에 비해서 또 초등 학문으로 밖에 볼 수 없게 여겨지는 것을 몸소 보지 않았다면 그렇게 단호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겪은 사도께서 자신이 과거에 예수님을 모르고 믿던 율법을 갈라디아 교인들이 믿는 일에 우선하고 성령의 세례와 인도를 무시하니 이를 바로 잡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갈라디아서의 후반의 논의는 성령과 육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지금 시대에도 성령을 받는 것이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하고 또 시급하고 좋은 일인지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제 바울 사도께서 말씀하신 계시에 대해서 같이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in response to a revelation라고 본문이 되어 있습니다. 계시에 따라서 란 말입니다. 어떻게 이 말을 사용했는지 과정을 보면 먼저 안디옥 교회에서
행 15: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2.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3.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사도행전의 내용과 같은 과정을 거쳐서 예루살렘 교회로 가게 됩니다. 바울과 바나바와 다른 형제들이 함께 간다고 합니다. 영어로도 봅니다.
행 15:1. Some men came down from Judea to Antioch and were teaching the brothers: "Unless you are circumcised, according to the custom taught by Moses, you cannot be saved."
2. This brought Paul and Barnabas into sharp dispute and debate with them. So Paul and Barnabas were appointed, along with some other believers, to go up to Jerusalem to see the apostles and elders about this question.
3. The church sent them on their way,
하나님의 계시가 일어나는 과정을 잘 설명해 줍니다. 먼저 어떤 사람이 와서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는 가르침을 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바울과 바나바가 심히 다툽니다. 제가 바울을 할례가 절대로 필요 없다 주장을 했다고 한 반면에 바나바는 할례를 꼭 필요하다고 주장을 했다고 설명을 했습니다. 같은 의견이면 절대로 다툴 필요가 없고 바울 사도가 단호하게 이에 대해서 한순간도 굴복을 하지 않았다고 하니 정확하게 이와 같이 밝힐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바울과 바나바와 그리고 몇 다른 형제를 예루살렘으로 보낼 결정을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스스로 가는 결정을 하지 않았음이 So Paul and Barnabas were appointed의 표현으로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정을 한 주체가 3절의 The church sent them로 나타나 있습니다. 교회가 이들을 보낸 것입니다. 이를 모두 겪은 바울은 이렇게 결정이 된 것을 계시 즉 revelation로 표시를 했습니다. 당시의 교회의 결정과 다툼의 해결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바울도 바나바도 안디옥 교회의 책임자였지만 교회의 결정을 따랐습니다. 선교로의 파송도 어떻게 되었는지 보겠습니다.
행 13: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제1차 선교여행을 떠나게 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성령께서 주관하고 계심을 봅니다. 바울도, 바나바도 , 베드로도 요한도 그리고 나머지 사도도 모두가 교회의 주인이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이렇게 의논을 하고 또 교회의 결정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예수님께서 주인이시고 성령께서 통치를 하셨습니다. 이들이 교회의 지도자가 아닌 모습이 여실히 보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유대인도 아니면서 율법을 하나도 지키지 않으면서 율법이나 믿음이냐에 늘 정신을 쏟고 있고 또 믿음이냐 행위이냐를 다투고 있습니다. 이렇게 교회의 주인이 예수님이시고 성령님이심을 아는 것이 더 필요하고 더 중요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무지한 자를 이렇게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주님의 통치가 온 교회에 온전히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율법과 초등학문의 내용 중에서 조금 수정했습니다. 2020, 7,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