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6장 4-5절]
이스라엘은 들으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주님은 오직 한 분뿐이십니다. 당신들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레위기 19장 17-18절]
너는 동족을 미워하는 마음을 품어서는 안된다. 이웃이 잘못을 하면, 너는 반드시 그를 타일러야 한다. 그래야만 너는 그 잘못 때문에 질 책임을 벗을 수 있다. 한 백성끼리 앙심을 품거나 원수 갚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다만 너는 너의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여라. 나는 주다.
[누가복음서 10장 25-37절]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서, 예수를 시험하여 말하였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하였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고 있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고, 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대답이 옳다. 그대로 행하여라. 그리하면 살 것이다." 그런데 그 율법교사는 자기를 옳게 보이고 싶어서 예수께 말하였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서, 거의 죽게 된 채로 내버려두고 갔다. 마침 어떤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이와 같이, 레위 사람도 그 곳에 이르러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길을 가다가, 그 사람이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가까이 가서, 그 상처에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에, 자기 짐승에 태워서,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다음 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서, 여관 주인에게 주고, 말하기를 '이 사람을 돌보아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겠습니다.' 하였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
===================
2월 28일 성서본문 말씀입니다.
일주일 동안 묵상하시면서, 혹 은혜받으신 내용이나, 궁금한 내용, 떠오르는 생각 등을 아래에 댓글로 남겨 주시면, 설교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한문덕 드림]
첫댓글 2/22(월) 묵상
1. 하나님이 한 분뿐이라는 고백은 깊이 사유하여 파고 파야할 말씀이다.
2. 이웃 사랑의 한 방법이 타일러서 어두운 곳으로 가지 않게 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 꼰대가 되서는 안되지만 회피해서도 안 된다.
3. 율법교사는 정답을 말했다. 그러나 삶으로 진입할 새로운 고민이 던져진다. 답 보다 질문, 실천에 이르는 질문이 중요하고,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이미 답과 실천이 녹아있다!
2/23(화) 묵상
1. 하나님 사랑의 명령은 폴 틸리히가 말한대로 궁극적 관심이요, 존재 전체를 거는 일이다. 존재 전체를 거는 결단과 태도 없이 신앙의 깊이에 다다를 수 없다.
2. "너의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여라" 명령 뒤에 하나님께서는 "나는 주다"라는 것을 강조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주님으로 고백한다면 그의 명령에 순종하여야 한다.
3.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라 불리는 이 비유의 결론은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이다. 신앙과 종교는 삶과 실천의 문제이지 이론의 문제가 아니다. 참된 신앙은 삶에서 몸으로 드러날 때만이 그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다.
2/24(수) 묵상
1. "당신들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이 부분에서 "뜻을 다하고"는 "목숨을 다하고"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 영어로는 soul이다. 그래야 누가복음의 말씀과 일치한다.
2. 이웃의 잘못에도 자기 책임이 있다. 사회가 불의한 것은 나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이다.
3. 율법교사의 첫째 질문은 영생이었으나, 이야기는 누구에게 이웃이 되어 줄 것인가로 흘러간다. 그런데 더 앞서 생각해 볼 문제 중에 하나는 강도를 양산하는 사회에 대한 문제이다. 인간이 처하는 다양한 곤경 중 강도를 만나는 것은 명확하게 사회적 문제이다. 태어날 때부터 강도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으니~
2/25(목) 묵상
1. 하나님과 우리는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우리는 피조물이다. 진정한 사랑은 주체적으로 대등한 사이에서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우리의 위상을 높여주는 말씀이다!
2.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방족속, 타자에 대한 사랑으로 나가기 위해 우선 동족, 이웃이라도 제대로 사랑하자!
3. 강도 만난 사람의 입장에서 본문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대제사장, 레위는 곤경 당하여 죽을 것 같은 같은 동족을 보고도 그냥 간다!!! 이 사회의 정부관료, 국회위원들, 언론, 사법기관들 누가 곤궁한 서민의 고통을 진정으로 돌보고 치유해 주는가?
2/26(금) 묵상
1. 주님이 한분 뿐이라는 것은 숫자로 셀 수 있는 그 무엇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세계의 모든 차원을 넘어서는 것을 말한다. 비교불가능하기 때문에 유일하다는 뜻이다.
2. 살면서 정말 해서는 안되는 것 중에 하나가 "앙심을 품는 것"이다. 앙심은 자기에게도 해를 끼친다.
3. 율법 교사는 자기를 중심으로 누가 내 이웃인가를 묻지만, 예수님은 곤경에 처한 사람을 중심으로 그 사람의 이웃이 되어준 사람이 누군지를 물으신다. 우리가 자비를 베푼다면 우리는 모든 사람의 이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27(토) 묵상
1.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라는 말은 지적인 면, 감정과 의지, 행위적인 측면 모두를 포괄한다. 전 존재적인 사랑이다. 사랑은 휘발성 짙은 감정 놀이가 아니다. 지적 판단이라는 농밀한 노력이 필요하고 몸의 행위로 훈련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2. 미움 없는 분노, 사랑 때문에 생기는 분노가 필요하다.
3. 오늘날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 줄 것인가? 먼저는 강도 만난 자를 빨리 치료해야 한다. 두번째는 강도를 잡아야 한다. 그런데 이 사회에서는 권력을 지닌 자들이 전부 강도짓을 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외치는 시민들이 피를 흘린다. 시민을 살리고 강도를 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