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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공장에 들어가다] 동양고무로 자리를 옮긴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시골에서 동생 금자가 부산으로 왔다. 신발 공장에는 10대의 나이 어린 여공들이 제법 많았다. 여공들을 위해 마련된 기숙사 같은 것은 없었다. 대부분 친척집에 얹혀살거나, 친척이 없으면 공장 근처에서 자취를 했다. 어린 여공들은 별도로 공장 내 학생 반에 편성되어 오후 5시가 되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야간 학교를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주로 공장 인근의 동평여자상업고등학교[현 부산미용고등학교]나 계성여자상업고등학교[현 계성정보고등학교]에 많이 다녔고, 조금 멀지만 부산진여자상업고등학교에 다니는 여공도 있었다. 학생 반 여공들이 학교에 가고 나면 남아 있는 성인 여공들이 동생들이 하던 일을 대신해서 작업을 마무리 했다. 학교를 가야 하기 때문에 학생 반 여공들은 일주일에 몇 번씩 있던 잔업에도 당연히 제외됐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학교를 얼마 못 다닌 조윤자는 어린 여공들처럼 자신도 야간 학교라도 다니고 싶었으나 결혼까지 한 입장이라 학생 반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녀는 학생 반 여공들이 너무도 부러웠다. 금자는 낮에는 신발 공장인 사상 국제상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간 학교를 다녔다. 당시 국제상사에서 일하는 학생 반 여공들은 주로 구포여자상업고등학교[현 부산백양고등학교]에 많이 갔는데, 금자도 구포여자상업고등학교를 다녔다. 조윤자 집에서 함께 살던 금자가 따로 살림을 차리고 나가면서, 그 아래 동생 영자와 경자, 그리고 조카 경희가 부산으로 나와 조윤자 집에 식구가 늘었다. 시골의 엄마를 대신해서 조윤자가 동생들을 맡아 키운 셈이다. 잠시였지만 심지어 조카마저도 말이다. 조윤자는 살던 곳 인근에 방 2칸짜리 집을 새로 얻었다. 다 큰 동생들과 함께 사는 것이 단칸방 가지고는 도저히 감당이 안됐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