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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사랑과 자비의 주님! 무더운 8월 아침 새로운 한 주가 시작이 됩니다. 창밖에 비가 내립니다. 여름에 오는 비는 무더위를 가시게 해 줍니다. 주님! 미국과 중국의 가장 큰 나라가 대만 문제로 다투고 한국은 새 대통령이 나라를 다스린지 겨우 몇 달이 되었는데 지지율이 낮다고 말이 많습니다. 코로나는 온 세계적으로 다시 거세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을 믿는 주님의 백성은 눈이 뜨면 주님 생각을 하고 주님의 뜻을 묻습니다. 아들이 새벽이 일어나 새벽 기도를 갑니다. 대견한 아들을 보면서 마음이 기쁩니다. 주님께서도 이 넓고 복잡한 세상에서 한국에서 새벽마다 드리는 예배를 기쁘게 받으시고 온 세상에 주님의 나라 아름답고 행복한 나라를 건설하는 모든 분들에게 위로와 평안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주님을 믿고 우리는 늘 평안했고 어떤 경우에도 주님의 따뜻한 손길을 느끼며 승리하며 살았습니다. 때론 너무나 실망하고 좌절하고 갈 길을 잃고 헤매기도 했지만 늘 주님께서 함께 하시며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아무리 삶이 어렵고 힘이 들어도 주변의 이웃의 아픔과 불행을 보며 함께 울었습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또 사랑이 식어가지만 의로운 분들이 소식은 끊이지 않고 전해집니다. 주여! 크신 자비를 베푸사 구원이 온 한국으로부터 온 세상으로 퍼져 가게 하시고 주님의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가 이 땅에서 미국으로 일본으로 그리고 거대해지는 중국으로 그리고 러시아로 쉬지 않고 전파되게 하소서! 우리는 이 귀한 사역을 위해서 즐거이 오늘도 더위를 이기고 전진하게 하소서! 우리가 생활하는 작은 공간에서 사랑을 실천하고 복음을 전하며 의로운 전쟁을 주님과 함께 씩씩하게 그리고 용감하게 수행하게 하소서! 주여! 우리 모두를 축복하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소서!! 우리 모두를 붙잡아 주시고 새 힘을 주실 줄로 굳게 믿습니다.
샬롬! 새로운 한 주가 시작이 됩니다. 새벽 기도를 다녀온 아들을 격려코자 좋아하는 부대찌개를 만들려고 쌀을 씻어서 전기밥솥에 넣고 그리고 뜨물을 받아서 멸치를 넣고 육수를 내고자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아내에게 불을 보라고 하고 24시간 하는 슈퍼에 갑니다. 오층의 엘리베이터가 없는 집의 계단을 내려가니 다리에 큰 통증이 옵니다. 허리가 휘고 디스크가 생기고 또 퇴화가 와서 이런 상태로 신경을 건드리니 허벅지와 다리에 통증이 온다고 합니다. 어떨 때는 너무나 아파서 기어서 다니는데 늘 기도하면서 이기려고 합니다. 우선 기쁨은 좋은 약이라고 하셨으니 병원에서 지은 약도 먹지만 하루에 여러 번 일을 하다가 틈이 생기면 가만히 않아서 기뻐합니다. 그러면 정말로 좋은 약이 몸에서 배출이 되어서 통증이 완화가 됩니다. 이렇게 약도 먹고 물리 치료도 받고 이기려고 합니다. 내려가면서 역시 기쁨의 약을 먹어야지 하면서 통증을 참고 기뻐합니다. 역시 말씀대로 효과가 납니다. 모든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을 받는 분들이 100% 효과를 볼 수가 있는 자가 치료법입니다. 모든 질병을 이 기쁨으로 이길 수가 있다고 믿고 저도 기쁨의 약을 먹으며 몸을 건강하게 만들 것입니다. 비록 여기저기 아플 나이지만 할 일이 너무나 많아서 건강을 달라고 늘 기도하며 이기고 있습니다.
장을 보니 쌈 채가 100그램에 3.500원이나 합니다. 너무 비싸서 그냥 지나치고 조금 흠이 난 복숭아와 키위를 아주 싼 가격으로 사고 콩나물과 그리고 두부를 샀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재료를 다 넣고 끓여서 밥과 함께 먹으니 아내가 자꾸 맛이 있다고 하고 아들도 잘 먹습니다. 복숭아는 흠을 제거하고 먹으니 꿀맛입니다. 이렇게 하루가 시작이 됩니다. 저는 오전에 아내와 같이 물리 치료를 받고 오후엔 하남의 밭에 가서 옥수수를 수확하고 참외도 따고 각종 채소의 수확을 해야 합니다. 엊그제는 옥수수와 가지 호박, 참외 오이를 수확해서 제가 밭을 주신 장로님과 제가 일하는 곳에 있는 분들과 나누었습니다. 수년째 농사짓고 팔지 않고 모든 수확을 다 나누어 먹습니다. 그러니 어떤 마음 좋은 분이 저녁을 사겠다고 합니다. 당진에 논에 쌀도 처가 식구들과 그리고 제 형제와 어머니와 나누었는데 90이 넘으신 어머니께서 며느리가 와서 논을 사고 쌀을 형제와 나누는 것을 보시고 손벽을 치셨습니다. 그리고 교회 분들과 모든 채소를 나누면서 논을 샀다고 하니 자신의 일인 양 역시 기뻐하며 손뼉을 쳐 주었습니다. 저는 속히 밭으로 만들어서 처남과 친구와 같이 성경을 공부하고 싶은데 아내는 여전히 논으로 사용하고자 해서 모를 사서 논을 갈아서 심고 수시로 물을 보려고 당진에 다녀옵니다. 논도 600평이고 밭도 하남에 600평이고 직장에 다니니 늘 바쁜 가운데 이렇게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글도 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가운데 허리가 탈이 났습니다.
목사 안수를 받고 11년 동안 이렇게 일반 성도와 똑같이 일을 하고 가정을 돌보고 그리고 성경 읽고 정리하고 전도하고 그리고 농사도 부지런히 짓고 있는데 어디를 가든지 전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합니다. 모두를 위해서 아침에 출근하면 기도합니다. 평안과 건강과 그리고 안전과 화목을 달리고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늘 좋은 직장 분위기가 되게 노력하고 믿지 않는 분들께 쉬지 않고 틈이 나는 데로 복음을 전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는 곳마다 함께 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사는 집도 직장도 밭도 논도 그리고 모든 형제를 축복하셔서 제가 별로 고민하고 신경을 쓸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편안하게 약 30여 년을 전도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이렇게 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서를 올바로 이해하게 되었고 교회 성장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더하심과 자라게 하심으로 성장하고 교회를 또 신앙의 고백도 중하지만 예수님께서 직접 세우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목사도 교회 성장에 1%도 기여하지 못함을 알게 되어 이를 전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목사도 교회에서 거드름을 피울 수가 없고 공로를 내세울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그리고 이는 전도를 통해서 밝혀졌고 전도자의 입장에서 본 교회 성장에 대한 연구로 글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한국의 역사를 보면서 대한민국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 그리고 사명이라는 파워포인트 자료를 만들어서 역시 소개를 했고 구원에 대해서도 구원의 파노라마로 글을 올렸고 이 세 가지는 이제 약 4년이 걸렸지만 끝을 보았습니다. 저의 대부분의 글들은 대학 대학원 행정고시를 공부하며 배운 사회과학의 지식과 그리고 신학 대학원에서 배운 신학과 그리고 쉬지 않는 전도 그리고 약 25년째 계속하고 있는 성경을 읽고 정리하는 내용과 그리고 일반 성도와 똑같이 세상에서 직장을 가지고 일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나온 글들입니다.
농사를 지으면 얼마나 성경의 내용이 잘 이해가 되는지 모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만 30배 100의 결실이 맺히는 것도 옥수수 씨 한 알이 땅에 심기면 자라서 옥수수 두 개를 달고 이는 약 400개의 알의 수확으로 온다는 것이 판명되고 수박도 그렇고 모든 씨앗이 수십 배 수백 배의 결실로 자신은 땅에 묻혀서 썩으면서 그 몸에서 뿌리가 나고 이 뿌리가 싹을 튀우며 식물이 자라게 되는데 이런 과정에서 본래의 씨는 자신의 양분을 모두 새 뿌리와 씨에 주고 죽게 되는데 이런 과정을 거쳐서 자신과 똑같은 모습과 성분의 씨와 열매를 수십 배 수백 배 생산하게 되는데 이를 고린도 전서 15장 부활장에서 바울 사도가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식물의 이런 원리를 설명하며 부활이 확실히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도 이제는 썩고 죽고 병드는 몸의 부활이 아니라 영생을 하는 놀라운 육체의 부활이 있다고 설명을 하는데 이도 제가 농사를 직접 지으면서 눈으로 확인하고 이를 부활이라는 전도 책자로 만들었고 이를 오천만의 로마서에서 모두 소개를 했고 책으로 출판을 준비하고 있는데 비용이 약 1300만 원 정도 들기에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 두 작물을 혼합해서 심지 말라라, 모퉁이의 것은 다 수확하지 말고 남겨라 그리고 이삭은 줍지 말라, 7년째는 그냥 파종하지 말고 두어 그냥 나는 것은 가난한 사람이 수확하게 하라, 아볼로는 심었고 나는 물을 주었지만 심은 것도 물을 준 것도 아무것도 아니지만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고 이 자라게 하심이 중요하다 란 구절도 역시 농부가 봄에 씨를 심거나 혹은 뿌리거나 혹은 모종을 심고 잠시 물을 주며 수고하는 것 같으나 그 후에 비를 주시고 햇빛을 주시고 식물이 자라서 열매를 맺는 과정을 보면 정말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다 하심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농사를 통해서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는 길이 있고 이는 농경 시대에 구약이 기록이 되었고 역시 농경 시대에 주님께서 오셔서 농민들과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부 즉 바닷가에 있는 분들이 또 성경을 이해하기 쉬운 것은 주님께서 갈릴리 바닷가에서 주로 사역을 하셨고 제자들을 부르셨고 훈련을 시켜셨기에 역시 바닷가의 사정을 잘 아는 것이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일임입니다. 사복음서의 씨 뿌리는 비유도 역시 농사를 통해서 잘 이해가 됩니다. 씨를 뿌리면 까치가 곁에서 조용히 봅니다. 그리고 얕게 심은 것은 바로 흙을 헤치고 먹습니다. 길가에 뿌려진 씨앗은 새들이 바로 먹습니다. 그리고 돌밭에 뿌려진 씨앗은 조금은 싹이 나지만 곧 마릅니다. 그리고 가시 덤불에 뿌려진 씨앗은 자라나 가시 등이 막아서 시듭니다. 오직 옥토에 뿌려진 씨앗이 30배, 100배의 결실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밭에 상태에 대한 설명입니다. 우리 밭은 옥토입니까? 박토는 돌을 가려내고 퇴비를 넣고 미생물이 번성하게 하면 옥토로 변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여러 가지 밭이 있을 수가 있는데 우리의 노력으로 옥토로 만들 수가 있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으면 죄를 용서받고 그리고 성령께서 선물로 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합니다. 돌과 같이 굳은 마음을 순식간에 부드럽게 합니다. 그리고 사랑하게 만들어 줍니다. 이렇게 순서에 따라서 성령을 받는 것이 모든 성도가 지켜야 할 1순위의 신앙의 절차입니다. 이 쉬운 방법을 두고서 내 힘으로 무엇을 하고자 하면 힘들고 그리고 큰 결실을 거둘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죄를 용서받고 그리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서 성령의 충만과 인도로 이 세상을 이기면서 위대한 사역을 하도록 선택이 되었습니다. 반드시 회개를 하시고 이 귀한 선물을 받는 일을 신앙생활과 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생각하고 성령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닷가 생활은 또한 성경의 놀라운 이해를 가져옵니다. 바다와 배와 그물과 그리고 고기들이 바닷가 생활의 주제인데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까운 나사렛에 사신 것도 다 이유가 있으니 어부들을 만나서 제자를 삼고자 하셨고 그리고 갈릴리 바다 주변에서 사역을 하시며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고기를 잡을 줄 아는 어부를 부르시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신다고 하셨고 이들이 예수님을 따라서 다니면서 사람을 잘 낚게 되었습니다. 고기를 잡는 것과 사람을 낚는 것은 너무나 비슷합니다. 이를 하나님의 은혜로 이해하고 성경적 교회 성장이란 파워포인트로 만들고 이를 모두 설명을 드렸습니다. 제가 남해 바닷가 노량에서 나고 자라면서 어부이셨던 선친의 모습을 늘 보면서 자랐는데 이는 갈릴리 바닷 전경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고 제 선친을 생각하며 베드로의 모습을 그대로 이해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으면 글자도 모르는 바닷가의 우직한 사람들이 얼마나 큰 능력자가 되며 위대한 일을 하고 똑똑한 사람이 되는 것을 확실히 알기에 늘 성령을 받게 하는 것이 모든 목사의 양무리에 대한 가장 큰 의무이며 또한 교회의 사명이며 이런 일을 제쳐두고서 다른 방법으로 사람을 키우고 세계적인 인물로 만들겠다는 주장과 시도가 모두가 거짓임을 너무나 분명하게 알기에 쉬지 않고 한국의 교회들이 올 학생도 없는 가운데 많은 중고등학교 그리고 대학이 폐교를 하는데 학교를 세운다고 선교와 전도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성도와 헌금을 자의로 쓰는 것을 극구 만류하고 아니다라고 온 세상에 전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베드로 사도의 전후서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실루아노가 대필을 했지만 지금 어떤 일류의 신학교를 담당하는 교수도 쓸 수가 없는 위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어부의 신분으로 고기나 잡던 당시의 바울과 같은 글을 알고 율법을 잘 연구하시고 구약에 대해서도 깊이 잘 모르셨던 분이시지만 예수님께 직접 3년 동안 교육을 받고 예수님께의 모습을 보고 그리고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늘 곁에서 보시고 그리고 예수님의 수난과 장례 그리고 부활 승천을 모두 보셨고 그리고 기다렸다가 성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냥 받아쓴 것이 아니라 그분의 교회와 성도에 대한 사랑과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그리고 신 구약의 성경의 성령에 대한 이해를 그렇게 베드로 전 후서를 쓰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을 받고 거듭난 사람은 교회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성도와 주변의 이웃을 다 함께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신 분들이 모여서 교회를 이루고 교회에서 주님의 인도로 모두가 형제로 자매로 지내면서 목사도 장로도 같은 신분으로 형제로 지내면서 다른 직분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면서 정의롭게 살면서 거룩한 성도의 모습을 보이면서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고 이렇게 세상에서 복음이 점점 사람들에게 더 퍼져가면서 온 세상이 복음화되고 하나님의 나라로 건설이 되는데 여기에는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내용이 있으니 이 나라의 법에 대한 내용입니다.
과연 하나님의 나라의 법은 무엇인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반드시 알고 지켜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법이 없는 나라는 없고 법이 없으면 어떤 나라나 조직도 온전히 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나라의 법에 대해서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이 곧 법이다 하면 이에 대해서 부정할 신도는 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 66권과 많은 말씀 중에 도대체 어떤 말씀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법인가 물으면 곧 많은 분들이 사랑이다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사랑에 대한 종교임을 믿는 사람 믿지 않는 사람 모두가 다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를 우리 주 예수께서 만인이 공감하게 정리를 잘 해주셨습니다.
가장 큰 계명
막 12:28.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지켜야 하는 가장 큰 계명입니다. 이 계명과 위반되게 성경을 해석하고 주장하는 신학이나 가르침은 모두가 잘못된 가르침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가장 법 중에서 위에 있는 법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법을 조금 풀어서 설명한 계명이 무엇입니까? 대부분의 성도는 바로 알 수가 있습니다. 바로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10계명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부분이 4계명이 있고 그리고 사람 즉 이웃에 대한 규정이 6계명이 있습니다. 가장 큰 계명과 그리고 십계명을 모든 성도가 지켜야 하는 가장 중요한 계명임을 부인하실 분이 혹시 있다면 이분은 기필코 예수님을 믿는 분이 아닙니다. 즉 다시 말해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가짜입니다. 우리가 가장 큰 계명과 십계명만 잘 알고 지켜도 예수를 잘 믿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이웃을 먼저 사랑했습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어떻게 보이지 않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까? 먼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알아야만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우리에게 나타났는지를 알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잘 사는 한국에서 복을 받고 좋은 집에 외제차를 타고 살고 수입도 넉넉해서 수십 년 수백 년을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먹고 살만해졌다고 할 때 과거의 나는 과연 어떤 존재였습니까? 내가 능력이 있어서 이렇게 부를 유지하고 사는 것입니까?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하는 중요한 사실은 우리는 죄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죄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죄인은 반드시 죄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어떤 죄를 지었습니까? 우리는 먼저 인류의 조상 아담으로부터 비롯된 원죄가 있습니다. 모든 인류에게 있는 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태어나면서 죄인으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지은 죄가 있습니다. 어떤 죄입니까?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법을 어긴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법을 정해 두셨습니까? 그 법이 율법이고 모세 오경의 법입니다. 어떤 랍비가 하라는 조항 248개와 하지 말라는 조항 365개 합쳐서 613조항으로 정리를 한 법입니다. 이 법을 어기면 죄인이 됩니다. 그런데 이법은 이스라엘이 지키는 법이고 우리는 왜 이 법을 지켜야 하는지 또 궁금합니다. 법이 오기 전에는 즉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기 전에는 마음의 양심이 기준이 됩니다. 즉 양심이 반하는 일을 하면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리고 이제는 예수님을 통해서 온 민족과 인류에게 생활과 행동의 기준이 되는 법을 주셨으니 곧 모세 오경의 율법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냥 오신 것이 아니라 구약의 말씀 즉 율법과 예언에 예언되신 모습대로 오신 것입니다. 이제 모든 사람이 다 예수님을 믿어야만 원죄와 자범죄를 용서를 받습니다. 그리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모든 성도는 성경의 기준에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국가의 법도 존중하고 지켜야 하지만 가장 먼저 잘 배우고 지켜야 하는 법이 성경의 율법입니다. 물론 믿지 않는 사람도 반드시 이 법을 잘 지켜야 하는데 자신의 심판의 기준이 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무시하고 예수님을 부정해도 소용이 없이 최후 심판 때 이 법에 따라서 심판을 받기 때문에 살아생전에 전도자들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믿고 죄를 용서받고 그리고 말씀을 잘 배워서 말씀대로 사는 것이 너무나 시급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이 하나님 나라의 법에 대해서 구약에서는 모든 성경을 통해서 잘 지킬 것을 너무나 강조하셨고 그리고 법을 버리고 마음대로 살면 반드시 벌을 받았고 그리고 나라가 망하는 일을 겪었으니 이 법을 잘 지키는 것이 유일한 이스라엘 민족과 그리고 백성이 살 길이었습니다. 다윗 왕 때는 모든 백성과 왕이 이 율법을 잘 지켰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복을 받고 주변의 모든 나라에 앞서서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점점 율법이 해이해지고 나라가 망하는 길로 갔고 포로가 되어서 나라가 없이 약 2500년의 세월을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아다녔습니다. 이런 망하는 택한 민족 이스라엘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이제는 다른 방법으로 율법을 잘 지키게 되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겔 11:19.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20.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겔 34:23.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24.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36:24.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에스겔 선지자는 포로로 잡혀간 바벨론에서 예언을 한 분이십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바벨론의 총리가 되고 고관이 되어 통치할 때 에스겔은 일반 포로로 잡힌 백성과 함께 하며 하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대로 다윗과 같은 목자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 오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속국으로 국가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시고 복음을 전하시고 천국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그리고 십자가를 지시고 피를 흘리시고 온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명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이제 예수님께 잘 베우고 그분의 이름의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은 무리가 함께 모여서 성령을 기다리며 말씀을 보며 기도할 때 약속하신 성령께서 마가 다락방에 오시고 모든 분들이 성령을 선물로 받고 방언을 하며 능역을 받았습니다. 새 영을 부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분들이 마음이 부드럽게 되어서 성도 간에 육신의 형제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사도들의 발아래에 두고서 이를 서로 나누니 집과 땅이 없던 가난한 사람도 집과 땅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율법을 보면 이렇게 형제를 사랑하고 정의롭게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사랑을 실천하며 모든 율법을 다 완성하는 것이 되기에 에스겔서에 예언하신 대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일 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가 본받고 행해야 할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제 글을 한 번에 다 써지 못해서 여러 날에 걸쳐서 쓰고 있는데 어젯밤에 근무 중에 너무나 비가 많이 와서 동료와 함께 밤을 새우면서 주변을 정리했습니다. 산에서 흙과 돌이 물과 함께 내를 이루면서 쏟아져 왔습니다. 비도 쉬지 않고 왔습니다. 얼마나 물살이 거센지 1톤이 넘는 차량 차단용 시설이 떠내려갔습니다. 돌도 큰 돌이 도로로 물과 함께 굴러서 내려왔고 흙도 많이 도로에 유입이 되어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그 비가 낮에는 조금 주춤하더니 이제 밤이 되니 어젯밤과 같이 송파에 내리고 있습니다. 뉴스를 보니 많은 지역이 침수를 당하고 차량이 떠내려가고 그리고 사람도 여러 명이 죽었습니다. 오늘 그 재앙이 또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저는 집에 있지만 오늘 밤에 근무하는 동료에게 전화를 해서 사정을 묻고 감전에 조심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이들도 잠을 자지 못하고 밤새 물과 토사와 그리고 굴러내려 오는 돌들과 전쟁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야 되는 가장 큰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현실적으로 또 사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 평안하고 늘 건강해야 믿는 우리도 행복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어려운 부분도 많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수십 년 만의 재앙이 우리 모두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가 섬기는 교회 시설에 물이 새는지 잘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려운 성도의 삶도 살펴서 수해를 입은 분들을 속히 도와야 하고 교회를 도와야 할 것입니다. 특히 작은 교회와 개척교회는 지하에 성전이 있는데 큰 피해가 없기를 기도합니다. 이런 큰 국가적인 재난에 서로 돕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침수를 당하고 흙이 들어오고 그리고 집과 시설이 무너진 이웃을 찾아서 사랑을 실천해야 될 것입니다. 예전엔 수해 의연금도 걷었습니다. 누구를 탓할 시간이 없고 그냥 어려운 분들을 국가에 맡기지 말고 교회가 나서서 돕고 이웃이 나서서 도우면 금방 회복이 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교회는 먼저 교인 중에 수해로 어려움을 겪는 분을 속히 찾아서 같이 회복을 시키고 필요를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먼저 교인을 챙겨야 합니다. 그리고 어려움을 겪는 이웃을 속히 가서 노동으로 물질로 도와야 합니다. 누가 탓할 시간도 필요도 없습니다. 제가 근무하던 곳에서도 냇가가 범람해서 어젯밤에 집이 침수되고 사람들이 밤에 집에서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온 서울과 경기의 교회가 이런 국가적인 어려운 상황에 속히 정비를 해서 어려운 교인과 이웃을 돕고 회복시키는 일을 지금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교회는 먼저 교인 중에 수해로 어려움을 겪는 분을 속히 찾아서 같이 회복을 시키고 필요를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먼저 교인을 챙겨야 합니다. 그리고 어려움을 겪는 이웃을 속히 가서 노동으로 물질로 도와야 합니다. 누가 탓할 시간도 필요도 없습니다. 제가 근무하던 곳에서도 냇가가 범람해서 어젯밤에 집이 침수되고 사람들이 밤에 집에서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온 서울과 경기의 교회가 이런 국가적인 어려운 상황에 속히 정비를 해서 어려운 교인과 이웃을 돕고 회복시키는 일을 지금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내일은 하남의 밭과 당진의 논도 살펴보아야 할 것이고 서초동의 비닐하우스도 가서 보아야 하겠습니다. 농작물이 막 자라고 있고 참외도 많이 열어서 익고 있는데 이렇게 비가 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풀도 너무나 속히 많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괜찮은 편입니다. 주변의 어려운 분들을 찾아서 도울 것입니다. 모두 주님께 자비를 구하며 기도함으로 이 폭우가 큰 피해가 없이 지나가도록 힘을 모읍시다.
주님의 나라는 이 땅에 세워져야 하는 나라입니다.
주님의 나라는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입니다.
주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주님의 나라는 예수를 믿는 성도가 서로 하나가 되고 사랑함으로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주님의 나라는 사랑이 실천이 되고 정의가 행해지며 서로 신뢰할 수가 있는 나라입니다.
주님의 나라는 법이 엄격하게 잘 지켜지는 나라입니다.
그 법은 성경 말씀이며 율법입니다.
주님의 백성은 우리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주님의 나라 백성의 의무입니다.
주님의 백성은 성령을 받고 성령의 춤만으로 복음을 전하고 선을 행해야 합니다.
선은 자비를 사랑하고 정의를 행하며 겸손히 주와 동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의 백성은 말씀을 잘 배우고 말씀을 이 세상에서 잘 실천해야 합니다.
주님의 백성은 가정이 있고 그리고 섬기는 교회가 있습니다. 가정에서 주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교회에서도 주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그리고 가정과 가정이 서로 사랑하고 이웃으로 사랑하고 교인이 서로
사랑하고 그리고 교회들이 교파를 초월해서 서로 사랑하고 그리고 하나가 되면 주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일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와 가정과 교회가 세상을 향해서 사랑을 실천하고 그리고 정의롭게 살면즉 율법이 잘 실천이 되면 그 나라 즉 하나님의 나라가 계속해서 확장이 될 것입니다. 세상과 싸워서 이기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 나라는 엄격한 법이 통치하는데 그 법은 율법으로 정의를 행하게 하며 사랑을 실천하게 하며 그리고 서로 믿고 사는 세상을 만드는 법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이 될수록 그 나라는 깨끗해지고 정이 넘치고 그리고 안전해져서 모든 백성이 살기에 행복한 나라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주님께서 이런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며 우리를 죄에서 세상에서 구원하셨음을 믿습니다.
주님의 나라는 먼저 땅과 집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믿는 것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모든 사람이 집과 땅을 가지고 사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세상을 만드시고 인간을 지우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사는데 가장 필요한 두 가지가 집과 땅인 것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그리고 죄로 물든 인간이 서로 배려함 없이 무조건 전쟁을 해서 뺏건 자본주의 논리로 합법적으로 가지든 집이 없고 땅이 없는 사람을 이기면서 집과 땅을 무제한 가지고 싶어 하는 파괴적인 존재임을 아십니다. 그래서 율법에 이에 대해서 엄격하게 강자의 횡포를 막고 모든 사람이 집과 땅을 가지고 기본적으로 살 수가 있게 땅은 하나님의 소유임을 명시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 팔고도 못하게 막으셨고 이스라엘의 경우 지파 별로 엄격하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땅을 팔았을 경우 다시 살 수가 있게 했고 희년이 되면 돈을 받지 않고 원주인에게 돌려주도록 했습니다. 집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하게 절대로 사고팔면서 부를 추구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인간이 이 땅에 태어나서 살면서 행복하게 사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땅과 집에 대해서 어떤 인간도 절대로 과도하게 갖지 못하게 엄격하게 명하셨고 이렇게 끝도 없이 한국이나 온 세상의 자본주의와 같이 무제한 갖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벌을 받아서 가진 것도 다 소용이 없게 되리라 하셨으니 반드시 한국을 비롯해서 부동산을 과도하게 가진 자는 그렇게 소망이 없게 망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자들의 주장과 욕심에 절대로 믿는 자가 따라서 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즉 한국에 살면서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이 집과 땅을 통해서 부를 추구하고 이러 저리 이동하는 것을 절대로 본받거나 따라갈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뜻과 우리가 생각을 해 보아야 하는 사건이 있으니 조선 이 씨 왕조가 멸망하고 일본이 이 나라를 다스릴 때 토지 조사사업을 하고 당시 왕토로 모든 국민이 토지의 소유가 없던 시절 국가로부터 토지를 몰수를 해서 모든 농민들에게 토지를 나누어 주었는데 왕권을 가진 개인의 소유가 모든 국민에게 분배가 된 사건입니다. 우리의 역사는 당시 70% 노비로서 매매의 대상이 되고 신분의 이동이 제한이 되고 그리고 소의 가격보다 사람의 가격이 쌌던 이씨 조선이 일본이 들어와서 망하게 됨으로 한국에 나라는 없어지게 되었지만 수많은 사람이 사는데 꼭 필요한 땅을 자신의 소유로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해방이 되어 자본주의 자유주의 사상에서 국민의 70%가 땅이 없는 사람이 되었고 국민의 1%인 50만이 가용 국토의 50%를 소유하고 나머지 50%는 또 1600만이 그래서 3천5백만이 땅이 없는 나라가 된 것입니다. 얼마나 기독교가 이 부분에 있어서 조용하게 자본주의를 그대로 따라갔는지 즉 주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정신없이 살았는지 잘 증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가와 민족의 경계도 역시 하나님께서 정해 두셨기에 이를 이기고 강대국이 되었다고 약소국을 함부로 대하고 침범하고 약탈하면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는데 모든 세계사가 이를 잘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복음을 중국에 전하고 일본에 전하고 미국에 전하고 러시아에 전해서 절대로 경거망동하지 못하게 해야 우리도 작은 나라도 늘 평안하게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율법은 공동체에 대한 법으로 이스라엘 이란 택하신 나라가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고 서로 어떻게 사랑하며 그리고 어떻게 주변의 나라와 지내야 하는지에 대해서 규정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팬데믹은 지나친 자유주의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는데 이렇게 공동체 의식으로 무장된 율법의 모든 믿는 나라에서의 시행은 이런 팬데믹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하리라 믿습니다. 공동체 의식이 있어야만 서로 하나가 될 수가 있고 서로 사랑할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인 경쟁과 그리고 개인적인 능력의 우위에 대해서 인정을 하면서도 가난하고 약한 사람에 대한 배려가 너무나 많은 법이 율법입니다. 형제에 대해서 절대로 그냥 보고만 있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이 이 땅에 와서 살면서 행복을 찾는 비결이 서로 사랑하며 정을 나누는 데 있지 홀로 모든 경쟁에 이겨서 모든 것을 가지고 이웃도 정도 없이 사는 것에 있지 않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속히 이 아름답고 정의롭고 공평한 놀라운 법에 대해서 깊이 이해하고 이 법을 찬양하고 잘 지켜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주님께서 통치권을 지니신 나라입니다. 주권이 주님께 있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마음대로 다스리는 나라가 절대로 아닙니다. 미리 어떻게 통치할지 법을 주시고 그 법은 온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고 정의로우며 그 법대로 통치하는 법치 국가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주님과 동행, 성령의 인도, 말씀으로 사는 법 모두가 서로 같은 말이며 이 말은 곧 율법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특징입니다. 그리고 율법은 모든 사람이 다 지킬 수가 있는 법입니다. 그 법을 우리는 헌법보다 더 사랑하고 배워야 하고 각종 법보다 더 중히 여기고 더 잘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 나라가 주님께서 이 땅에 세우고자 하시는 나라입니다. 그분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의는 십자가의 의입니다. 또 다른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께서 정의로우시니 율법의 정의에 그분의 정의가 잘 나타나 있으니 율법을 보면서 주님의 정의로우신 모습을 잘 이해할 수도 있는데 이제 율법과 다른 의가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그 의는 이미 율법과 예언에 미리 예언된 것입니다. 그 의가 십자가에 나타났습니다. 주님의 의는 죄에 대한 벌입니다 다양한 정의에 대한 설명이 있지만 그중에 하나가 죄에 대한 합당한 벌이 주님의 즉 하나님의 의입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절대로 죄를 그냥 보시지 않고 반드시 죄에 대한 벌을 받게 하시는데 이 벌도 율법에 다양하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사형에 해당하는 죄가 있고 화형에 해당하는 죄가 있고 과태료나 벌금에 해당하는 죄가 있습니다. 그리고 제사를 통해서 용서를 받는 죄도 있습니다. 이렇게 율법에는 죄에 대한 벌이 하나님의 정의로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새롭게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이렇게 개인이 자신의 죄에 대해서 벌을 받는 것과는 다른 의입니다. 이 의는 십자가에 나타나 있는데 모든 인간의 죄에 대한 벌을 독생자 예수님께서 받게 하신 것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반드시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하는데 그 벌을 이번에는 죄인들이 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아들이 받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에 대한 벌을 모두 받으셨습니다.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다는 조항은 예수님의 피 흘리심으로 충족이 되었습니다. 죄의 댓가가 죽음이다라는 조항도 주님께서 죽으심을 통해서 충족이 되었습니다.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데 우리가 달릴 저주의 십자가를 대신 지심으로 우리의 저주가 풀렸습니다.
사 53: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11.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12.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우리의 나음을 위해서 채찍에 맞으시고 우리의 죄로 인해서 상하셨고 그가 찔림으로 우리의 허물이 용서가 되었습니다. 이제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믿어야만 합니다. 바울이 로마서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율법이 아니고 믿어야 한다고 한 의미가 바로 이 의미입니다. 예수를 믿는 일이 이스라엘인이나 이방인이나 할 것 없이 이제는 가장 중요하고 필요하고 우선시해서 해야 될 일이 된 것입니다. 이를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유대인아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려 말고 이제는 먼저 이렇게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위해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를 속히 반드시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온 인류에게 이렇게 베푸신 놀라운 사랑을 알고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소식 GOOD NEWS 즉 복음을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만 택하시고 죄에 대해서 제사를 통해서 해결을 하셨고 이방인에게는 아직 구원의 소식도 없을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온 세상을 사랑하시고 구원을 하시려고 독생자를 통해서 그분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셨으니 이를 속히 믿으라는 이야기가 로마서요 그리고 갈라디아서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고 죄를 용서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다시 사랑을 실천하고 주님과 동행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까? 반드시 율법을 완성시켜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절대로 율법을 버리라는 말씀이 아님을 모든 성도는 굳게 굳게 믿어야만 비로소 율법을 배우고 지키면서 그분의 나라를 건설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잘못 이해하면 그 잘못된 이해로 법도 없이 행위도 없이 그냥 마음대로 살면 절대로 수천수만의 크리스천이 있어도 절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가 없으니 이를 아시고 주님께서 아래와 같이 너무나 정확하게 이렇게 절대로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마태복음의 말씀을 절대로 그냥 지나치면 큰일이 납니다. 로마서도 올바로 이해를 못 하고 그리고 마태복음의 예수님의 말씀도 지나치면 이미 이 사람은 예수를 믿는다고 외치나 그가 비록 개신교의 신학자요, 혹은 대형교회 목사로 해도 이미 그 사람은 예수님을 올바로 알고 믿는 사람이 아니 되는 것입니다. 보시겠습니다.
예수와 율법
마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심으로 자신의 의를 나타내셨고 즉 예수님을 우리 대신 벌을 받게 하심으로 자신이 의로운 분이심을 나타내셨고 그리고 이를 믿고 죄를 용서받은 사람도 역시 의롭게 하심으로 의롭게 하시는 분이심을 또 나타내신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1-26절의 말씀은 이를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롬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성도의 믿음은 아주 중요합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믿음으로 구원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에 대해서 조금 깊이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단순히 믿음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하니 오직 믿음이라고 강조를 하지만 그 믿음에 대해서 반드시 성경으로 설명을 해 놓은 부분을 또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믿음은 너무나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 믿음이 어떤 의미를 지닌 믿음인지 또 서두르지 말고 또 성경의 가르침을 살려 보아야 합니다. 이를 우리는 소홀히 했습니다. 보시겠습니다.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로마서 1장 17절의 말씀대로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은 틀림이 없이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에 대해서 위와 같이 어떤 믿음이 의롭게 되는지 잘 설명을 해 놓았으니 우리도 이와 같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잊으면 너무나 성급한 결론에 도달해서 도리어 이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아브라함의 위의 믿음이 우리가 본받아야 하는 의롭게 되는 믿음임을 알았으니 하박국서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는 의미도 하박국서를 읽어 보면서 이해하면 이 믿음도 역시 믿음으로 정의롭게 산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의롭게 됨은 정확하게 맞는 말이나 그 의롭게 되는 믿음이 시간적으로 영속성을 지닌 변치 않는 믿음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와,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의인은 정의롭게 산다는 행동하는 믿음이라는 사실을 또한 의미하고 있음을 알고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적으로 오래 흘러도 모든 여건이 믿을 수가 없게 되었을 때라도 절대로 하나님의 약속과 권능을 잊지 않고 변함없이 믿는다는 것과 그리고 불의한 세상에서 불의가 판을 쳐도 이를 척결하고 의로운 사람을 구원하신다는 하나님을 믿고 견디는 믿음 즉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정의롭게 꿋꿋하게 사는 믿음이 곧 의롭다 인정을 받는 믿음임을 알게 될 때 이 로마서의 믿음과 야고보서의 행함이 있는 믿음은 전적으로 일치를 하는 것이고 믿음과 행함의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고 이런 해결을 통해서 천주교와 개신교의 이신칭의에 대한 이해가 차이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냥 로마서 4장 17-22절을 캘빈이나 루터가 잘 살피고 그리고 하박국서의 3장 밖에 되지 않는 내용을 잘 이해를 해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라고 주장을 하면서 여기서 끝나지 않고 그 믿음은 위해서 본 바와 같이 로마서 4장 17-22절과 같은 믿음입니다. 그리고 하박국서의 믿음은 행동하는 믿음입니다. 이렇게 설명을 했으면 야고보서와 로마서의 갈등도 성도가 없는 것으로 알고 믿게 되었을 것이고 행함을 강조하는 천주교와도 별로 다툴 일이 없었을 것인데 무엇 때문에 이런 믿음의 의미에 대한 부분을 설명도 없이 그냥 믿음이라고 해서 오직 믿음으로 가게 되었는지 이제는 모두가 성경을 보면서 바로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건설은 이렇게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올바로 이해하고 안 하고에 따라서 너무나 다르게 됩니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우리가 이미 아는 바와 같이 그냥 그대로 이해를 해서 오직 믿음이라 율법이나 행위는 필요가 없다 라고 해서 만약에 우리가 율법도 배우지도 지키지도 않으면 어떻게 이 세상에 하나님의나라를 세울 수가 있는지 저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봅니다. 그 불가능한 일을 못 하게 위와 같이 예수님께서 위와 같이 말씀을 하셨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냥 위의 예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어야만 합니다. 그대로 지켜야만 합니다. 500년 너무나 로마서를 통해서 믿음의 의미도 이해 없이 오직 믿음만 강조한 신학은 이렇게 예수님의 너무나 분명하고 엄위하신 말씀도 성도들이 마음에 두고 지키게 하는 것을 막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어떻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수가 있고 또 예수님께서 건설하시고자는 율법이 그대로 실천이 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가 있습니까? 한마디로 예수님과 별로 관계가 없는 삶을 살고 예수를 믿는다고 소리치는 것입니다. 내가 그런 사람이면 속히 정신을 차리고 올바른 길로 가시기 바랍니다. 내가 천국에 가고 아니 가고를 결정할 수도 있는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잘못된 신학의 특징은 예수님의 말씀도 무시하게 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율법을 강조하니 어떤 신학생이 이렇게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폐지된 것을 세우려고 합니까? 율법을 폐지된 것으로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해는 틀림없이 위의 예수님의 말씀에 또 위반되고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선 별로 말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그냥 넘어갈 수가 있습니까? 절대로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미국을 비롯해서 한국에서도 바울에 너무나 치중되고 로마서의 올바르지 못한 이해로 오직 믿음으로 모든 신앙의 문제를 해결을 하려고 하고 정작 바울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소홀하게 하는 개신교의 잘못 이해된 이신칭의 신학은 이제 모든 나라의 검토를 받게 그 잘못이 온 천하에 드러나고 있으며 저도 이 부분을 누구보다 먼저 강하게 주장했고 많은 사람에 잘못 이해한 바울에서 떠나고 있습니다. 속히 모든 목사와 신학자는 떠나기 바랍니다. 로마서 4장 17-22절의 말씀대로 믿고 이해를 해야 되고 하박국서 2장 4절도 행동하는 믿음으로 올바로 이해하고 이와 함께 율법에 대해서도 올바르게 이해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세워져야 합니다.
이제 새로운 아침이 되었습니다. 비가 밤새 많이 내렸고 피해도 늘었을 것입니다. 저는 새벽에 미사리 밭으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서초동의 비닐하우스도 살피고 당진의 논도 가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목사님도 만나야 합니다. 세상이 어렵게 되고 사는 것이 어렵게 되고 나라가 정의가 없어지게 되는 것은 그 출발이 교회입니다. 교회가 이 세상에서 율법을 지키며 정의롭게 살고 사랑을 실천하면 세상이 이를 본받고 올바로 가게 되어 있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법이고 방법인데 택한 이스라엘을 나중에 이를 하지 못하고 세상과 조금도 구별됨 없이 완전히 율법이 사라지고 해이해져서 타락하자 이런 타락된 세상에서 의인이었던 하박국은 사는 것이 너무나 힘이 들어 동족인 이스라엘(남 유다)를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왜 그냥 두시냐고 묻습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절대로 그냥 두지 않는다. 반드시 심판이 있다 그런데 그 심판을 행할 자가 바벨론이다 하니 다시 하박국 선지자가 묻기를 어떻게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불의하다 소문난 바벨론을 도구로 사용해서 남유다를 칠 수가 있습니까? 하니 하나님께서 2장 4절에서 비록 바벨론이 내가 사용하는 도구이나 나는 그런 바벨론 즉 교만하고 많은 약한 나라를 침공하고 약탈하는 나라를 좋게 보지 않는다 바벨론도 반드시 심판을 받게 할 것이다 고 답을 하시면서 그렇지만 나의 의인은 이런 불의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의로우심을 굳게 믿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악한 남 유다와 그리고 더욱 악한 바벨론을 반드시 심판하게 징계하실 것을 믿고 불의한 세상에서 하루하루 정의롭게 살 것이다 하는 말씀이 하박국 2장 4절의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삶을 살것이다란 말씀으로 이 말씀을 바울 사도께서 로마서 1장 17절에 인용을 했고 이런 맥락의 이해가 없이 로마서 1장 17절에 기록이 된 것과 같이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로 번역이 된 대로 믿음이 있으면 산다 혹은 믿음으로 산다로 이해하고 오직 믿음을 강조하게 된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한결같이 하나님께서 꿈꾸시는 그분의 나라는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로서 정의로운 나라는 정의로운 백성이 정의롭게 살 때 이루어지는데 그 정의로운 백성은 하나님의 망극하신 사랑과 은혜로 과거의 모든 죄가 용서를 받게 된 의롭게 된 믿는 하나님의 백성이고 이분들이 이제 새롭게 태어나고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살아야 하니 세상에서 정의롭게 살 때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이 되는 것입니다. 그 정의롭게 사는 기준이 바로 율법입니다. 율법은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뜻대로 정의롭게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모세를 통해서 이제 우리 모두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정의가 이 땅에서 행해질 때 비로소 세상은 질서가 서게 되고 평안이 오게 되며 그 평안이 온 나라에 있을 때 희락 즉 기쁨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에서 율법은 중요합니다. 이 중요한 율법을 오직 믿음이다 라며 패싱을 할 때 이미 이들이 주장하고 세우려는 나라는 절대로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요, 법도 행위도 없이 자신의 마음대로 자본주의에 빌붙고 자유주의에 빌붙어서 물질이 우상이 되어서 하나님도 예수님도 버리고 오직 이 땅에서 물질만 더 손에 가득 쥐고 살고자 하는 나라를 세우는 것입니다. 이는 바로 세상 나라요 예수님과 대적이 되는 마귀의 나라를 세우려는 것입니다. 내가 입을 열어서 오늘도 성전의 강단에서 혹은 동영상으로 쉬지 않고 일생을 외친 나라가 바로 주님의 나라가 아니라 마귀의 나라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나라를 천만의 크리스천이 있는 한국에서 보고 있고 그들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는 세상과 조금도 구별됨 없이 오늘도 부를 늘리기 위해서 주식을 하고 땅을 찾고 집을 찾아서 정신없이 헤매는 믿는 무리를 우리는 오늘도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선봉에서 이렇게 살도록 부추기는 목자들이 있으니 이들은 먼저 하나님께 바쳐진 물질을 선교나 전도에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수억, 수십억대의 집에 사용하고 또 억대의 외제차나 고급 승용차에 사용하고 그리고 지나친 사례비를 받고 퇴직금도 받고 이렇게 사는 것이 너무나 좋아서 갈 때 가지도 않고 자녀를 후임으로 앉혀서 그 죄를 대를 이어서 짓게 하고 자신은 또 헌금으로 주님이 원치 않는 올 학생도 없는 학교를 세운 다든지 혹은 헛된 일에 주님께 바쳐 진 물질을 사용하고자 오늘도 정신이 나가서 이리저리 뛰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욕을 하고 건전한 교인이 그렇게 살지 마세요 해도 도무지 들을 기세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들이 나라가 망하게 되고 성도가 어렵게 되고 국민이 소망이 없어지게 하는 원흉이 되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타락은 온 나라가 위기에 빠지게 합니다. 대통령의 타락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글을 읽는 성도여! 아무리 세상이 불의로 가도 우리는 하박국과 같이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믿는 사람이 세상으로 가도 우리는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목자들이 헛소리를 해도 우리는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이들을 세상에서 사는 믿는 성도의 고난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습니다. 이렇게 비가 와서 피해를 입는 성도가 자신의 교회에도 생겨도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도리어 어떤 목자는 가난한 자신의 교회의 교인을 살피지 않고 국가의 구청이나 혹은 주변에서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고 난리를 피우는데 무엇 때문에 예산이 700조나 되는 온 세계에서 10권에 해당하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지닌 국가를 교회가 돕는다고 난리를 피웁니까? 이들에겐 국가가 권력이 우상으로 국가에 잘 보이는 일이 가난한 자신의 교인을 돕는 것보다 더 우선시 되기 때문입니다. 장로도 막지 않고 목사는 가야 할 길을 가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에 비로 인해서 참으로 살기에 어렵게 되신 분이 있는지 이분들을 믿는 사람 믿지 않는 사람 불문하고 위로하고 도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이 비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목사는 들판에서 예수님과 같이 갈 곳도 땅도 없이 살면서 세상의 불의에 대해서 맹렬히 싸우면서 살아야 비로소 자신과 같이 가난하고 힘이 없고 살기에 어려운 분들의 고난을 알게 되고 이를 말씀 즉 율법을 통해서 고치려고 발버둥을 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이면 예수님의 종이면 세상에서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이들이 어디에 앉아서 어디에 서서 어떻게 가르치고 어떻게 전합니까? 아무것도 아쉬울 것도 없고 부족도 없는 완벽하게 물질로 무장하고 교회의 보호를 받으면서 자신과 같이 복을 받고 사라고 오늘도 거짓을 그 입에서 쏟아내고 모든 어려운 믿음의 형제를 외면하고 사는 것입니다. 아무리 때론 바른 소리를 해도 그 자리는 그렇게 사는 자리입니다. 모든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신의 교인에게 나누어 주고서 가난하게 되어서 일용할 양식만 늘 챙기며 주님과 같이 집도 땅도 없이 낮고 낮은 자리에서 이 세상에서 불의를 뼈가 저리게 체험하고 그리고 이 모든 현실을 고칠 율법의 존재에 대해서 깊이 안도하고 그 율법을 찬양하며 그 율법을 잘 배우며 그 율법을 성도가 지키도록 목을 놓아서 전해야 비로소 예수님의 종이 되고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위대한 길로 모든 목자는 방향을 틀고 나서야 합니다. 주님께서 반드시 그런 목자와 함께 하시고 도울 것입니다. 신학을 하고 목회를 하고 교수가 되고 싶은 분은 이렇게 살 각오를 하시고 덤비시기 바랍니다.
모든 한국의 신학자 목사가 그리고 부자 장로들이 이렇게 살게 되면 그날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날이 될 것입니다. 이들이 그렇게 살도록 모든 성도는 격려하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절대로 절대로 당 태종과 같이 수십만 대군의 맨 뒤에서 부하들을 전쟁터에서 죽게 하는 목사와 같은 자들에게 기죽지 마시고 양만춘 장군과 같이 전투의 맨 앞에서 모든 위험을 주와 같이 하면서 세상의 불의와 싸우는 가난한 목사들을 존경하시고 돕기를 바랍니다. 그들에게 힘과 용기와 격려를 주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천만의 로마서의 모든 글들은 한결같이 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흔들림이 없습니다.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