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주라
마태복음 14:13-21 / 2020-08-02
이상기후와 코로나바이러스
폭염이 기승을 부릴 8월이 되었습니다. 금년은 유난히 장마가 길었고, 여러 곳에서 물난리가 일어났고, 중부지방에서는 아직도 폭우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우리교회도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염려 때문에 지난 두 주 동안은 모여서 예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조심스러울 뿐입니다. 이상기후로 인한 고통을 지구촌이 겪는 시대이며,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두려움이 모든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때입니다.
집중 호우로 갑자기 물이 불어나니, 지하차도를 달리던 차를 타고 있던 사람들이 죽는 사고도 일어났습니다. 교통이 단절되지 않고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시설이 오히려 생명을 앗아가는 참극을 만들어냈습니다.
‘자연이 죽으면 인간도 죽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번 파괴된 자연은 회복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 모릅니다. 요즘 우리가 코로나19 때문에 늘 사용하는 일회용 마스크가 새라든지 동물들에게는 치명적인 장애와 덫이 되기도 합니다. 일회용 마스크에 다리가 걸려서 날지 못하는 새, 휘감겨 있는 물고기 등 보도를 보셨을 겁니다. 자연보호가 별 것이 아니고, 일회용 컵 하나 적게 쓰고, 음식물 쓰레기 줄이는 것 등이 자연을 보호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다가올 파국을 얼마나 늦추고 견딜 수 있는지 모르지만, 하여간 자연을 아끼고 환경을 보호하는 길이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입니다.
“코로나가 인류에게 보낸 편지”라는 제목의 글을 보신 일이 있지요? “지구가 속삭였지만 당신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지구가 소리를 내 이야기했지만 당신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지구가 소리쳐 외쳤을 때 당신들은 오히려 귀를 막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태어났습니다. 나는 당신들을 벌주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나는 당신들을 깨우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봉성교회 이야기들
1976년 8월 1일, 우리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44년이 되었습니다. 그때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상세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지켜보시고 경험하셨던 분들이 살아계시더라도 기억이 희미해졌습니다.
제주성안교회의 장로였던 저의 장인어른은 일기를 통해서 그 당시의 이야기를 조금 남겼습니다. 1976년 5월 30일에 주일예배를 마치고 모인 당회에서, 애월면에 교회를 개척하기로 하고, 의료 봉사를 매월 하기로 하였다고 결정하였습니다. 6월 18일 금요일 비가 오는 날의 기록입니다. “기드온 협회에서 성서를 배부하는 날이다. 지난번 조찬기도회에서 애월, 어도, 납읍 세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배부하기로 계획이 되었다. 김종식 장로가 차를 제공했고, 고원찬, 이경수, 현영립, 이익선, 김종식, 나 6명이 동행하고, 김익화, 김태화 두 분은 차에 자리가 모자라니 사양하였다. 가는 곳마다 선생님들이 이해하고 협조하였다. 특히 어도에서는 교장이, 정신교육은 교사들로서는 어려우므로, 마을의 집사를 청하여 매주 한두 차례 종교교육을 한다고 말한다. 아동들에게 성경을 나눠주고 나오려는데, 담임교사가 기도해주길 청하여서, 고맙고 놀라웠다. 기드온에서 성경을 배부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특히 어도는 성안교회에서 교회를 설립하기로 준비하는 중에 있으니,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바로 다음 주일인 6월 20일에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40여명의 의료봉사대가 봉성리에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왔다. 찬양예배에서 보고하여, 160여명 환자가 와서 진료를 받았고, 치과진료를 받고 이를 뺀 사람이 41명이라 했다.”
2008년 9월에 고광택 님이 출석하였습니다. 건강이 어려워진 상태였는데, 투병에 지친 육신으로 2009년 6월 한림 대림병원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 가족 중에서 이성관 집사님이 재정적으로 약한 교회를 돕기 위해 10년 이상 십일조를 봉헌하시고 이 여름에 멕시코로 가셨습니다.
5년 전 여름, 대전의 선창교회에서 여러분이 갑자기 오셔서, 도와줄 일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예기치 못했던 상황이어서 당황스러웠습니다. 교회 주변 정리와 청소를 부탁했는데, 교회 바깥벽의 봉성교회 장식이 떨어진 부분을 아래 화단에서 찾아내어 붙여주었습니다. 바람에 날아갔다고 생각하여 없어졌다고 저는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울산의 대영교회는 여러 해 우리교회와 마을을 위해 귀한 여름 사역으로 큰 도움을 베풀었습니다. 연초에, 그리고 봄에도 상황이 좋아지면 오겠다고 여러 번 약속하고 기다렸는데, 아쉽게도 올해는 그냥 넘겨야 할 상황입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오늘 본문의 기적은 모든 복음서에 기록된 이적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말씀입니다. 공관복음에 나오는 내용과 요한복음에 나오는 내용이 서로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공관복음에서는 제자들이 예수님께 ‘무리를 마을로 보내서 식사를 해결하도록 하소서’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 특히 빌립을 시험하고자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고 물으십니다. 요한복음은 빌립이나 안드레,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 그리고 유월절 등 구체적인 인명들과 장소와 때를 밝힙니다. 이와 달리, 공관복음은 구체적인 이름들이나 지명과 때를 밝히지 않습니다. 요한복음과 마가복음이 둘 다 무리를 먹이기 위해서는 적어도 200 데나리온 어치의 떡이 필요하다는 것을 밝힌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신 것은 믿음의 도전입니다. 사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사명을 수행할 능력이 제자들에게 없었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장정만 5천명을 먹일 능력이 제자들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믿음의 도전에 실패했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작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오히려 그런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미 날이 저물고 먹을 것을 구하기 외진 곳이라는 상황을 고려하여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명하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다시 현실로, 그들의 한계 안으로 회귀했고, 굶주린 자들을 향해 ‘가서 사먹으라’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명령에 순종하여 비록 우리 손에 들린 것이 오병이어처럼 적은 것일지라도 주님이 행하실 권능을 상상하며 가진 양식을 나눠주는 것이 제자의 본분입니다. 믿음으로 행동에 나설 때, 우리의 오병이어는 온 인류가 배불리 먹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주께서 우리에게 ‘네가 먹을 것을 주라’며 보내신 곳은 어디입니까? 현실과 능력을 핑계 삼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 순종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