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말, 나라를 이끌었던 성리학이 그 시효를 다하고 서양세력이 동양을 점령하는(서세동점西勢東漸) 상황에서 조선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 때에 새로운 시대와 문명을 모색했던 한 사람 수운水雲은 하늘天을 주목하고, 간절함으로 탐구하고 뜻을 구하며 깨달았다. 그렇게 동학을 만들고 전했다. 상제, 천주, 한울, 하나님이라 부르는 존재와의 만남과 깨달음은 서양의 천주교, 기독교와 같지만 그 모습은 조선 땅의 것이었다. 당시 서양 기독교의 문제점을 직시하며, 하나님을 바로 모시고 살자는 깨달음이 동학이다. 그 깨달음은 상부상조의 문화가 살아있던 소농 중심의 마을공동체가 보존된 조선사회에서 힘 있게 뻗어나갔다.
모임을 열며, 귀촌을 앞둔 간사님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이야기로 시작하여, 분양 받은 아파트 대출이자와 원금 상환을 위해 한달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출하여 교회의 자발적 나눔에 참여하지 않기로 한 청년의 이야기까지... 나라는 동학이 시작할 때보다 풍요롭고 부강해졌지만, 돈과 재물에 더 깊이 매여 살아가는 현실이다. 재물의 세력이 우리를 점령하고 있다. 이로 인해 각자 살아남을 방책을 강구한다. 수운은 이러한 세태를 각자위심이라고 하였다. 150여년전 위기 상황과 오늘이 전혀 다르지 않다. 그 때는 나라가 약해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이유를 내세우기도 하지만, 풍요롭고 부강한 지금도 이렇다면... 무언가 중요한 기본을 놓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가련한 세상사람 각자위심(各自爲心) 하단 말가
경천순천(敬天順天) 하여스라
효박(淆薄)한 이 세상에 불망기본(不忘其本) 하여스라
-용담유사, 권학가 중에서-
하늘을 공경하고 생명을 사랑하라는 큰 가르침과 진리가 2000년 전 팔레스타인에서, 그리고 150여년전 이 땅에서 이루어졌던 역사를 공부하였다. 위 가르침이 마을공동체가 존속하였던 조선말 민중들, 특히 청년들에게 자연스래 뻗어나아갔던 것과 달리, 각자위심과 각자도생의 경주를 해온 오늘의 청년들을 만나며 무엇을 해야할지 명확해진다. 함께 '오래된 미래'를 공부하며, 함께 그것을 '우리의 현재'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그 일에 최후의 보루가 되는 것이다.
첫댓글 곧 귀농하는 선교간사님과 운동회 📸